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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리
아스피린을 무진장 집어먹고 입가에 거품을 문 네 마리의 들개들은 아직 일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간질성 발작을 일으키는 그 들개들의 신체에는 (지금의 주인에게는 아쉽게도)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할 수는 있지만, 그 속에 뭐가 들었는지 보기만 하고 알아차리는 기능은 없어 보였다.
빌리가 그 중 한 놈의 팔을 잡고 한쪽으로 끌어냈다, 반사적으로 팔다리를 휘두르지만 과호흡증으로 몸을 가누기도 어려운 신체로는 빌리를 위협할 수 없었다.
그놈의 머리채를 고쳐 잡고 출구로 향하는 빌리, 문밖으로 나가자 마치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보는 듯한 강렬한 햇살이 그를 마주했다, 문을 빠져나와 바로 앞의 공터에 들개를 엎드리게 한 후, 목덜미를 한 발로 짓누른 상태로 허리춤에서 주사기를 하나 꺼내 목 근처의 경동맥에 놓아버렸다. 마취제인 클로로폼이었다, 정량 따위 알 리가 없다. 그저 한 주사기 가득히 재어 찔러버렸다. 그러자 이내 들개의 떨림은 잦아 들었다.
그런 작업을 네 번 반복하자, 건물 앞에는 팔다리가 풀린 들개가 네 마리, 그리고 두개골이 이상한 모습으로 어긋난 들개가 또 한 마리 마치 시장가의 생선처럼 줄지어 놓이게 되었다. 그렇게 여보란 듯 진열을 해 놓고 나서 빌리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폴라로이드 사진기였다.
격렬한 전투의 전리품 삼듯 그는 자신의 얼굴이 나오도록 해서 한 장의 사진을 찍었다. 죽인 것들의 숫자와 종류, 그리고 그것들이 있던 장소가 명확하게 새겨지고 카메라가 가지고 있던 기능에 의해서 그 위에 날짜까지 자동으로 더해졌다. 그 사진은 빌리에게 단순한 기념품 이상의 가치를 가진다. 언제나 떠돌아다니는 노마드들은 낯선 사람과 만났을 때 자신의 전과를 보여줘 자신에 대한 신뢰를 얻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치사량이 당연할 양의 마취제를 놓았으므로 더는 놈들을 상대할 이유는 없었지만 빌리는 여기에 가솔린 한통을 뿌려 불까지 질러버린다. 꼭 불장난을 한 후 그 위에 오줌을 누는 어린아이 같았다, 들개들을 바싹 구워버린 빌리는 그놈들이 숯덩어리가 되는 걸 끝까지 보았다. 그리고 난 후 걸음을 옮겼다.
식량과 생필품 그리고 가솔린을 가득 실은 카트를 끌고 조금 떨어진 도로변으로 간다, 거기엔 빌리의 자동차가 있었다. 구식 사륜구동 닷지 다코타는 꽤 많은 짐이 들어가 이럴 때 편리했다.
짐을 모두 싣고 운전석에 올라타는 빌리, 목숨을 건지고 식량을 얻어 만족스러운 하루였지만 다만 한 가지, 총을 망가뜨렸다는 게 맘에 조금 걸렸다. 차 안의 글러브 박스를 여는 빌리, 그 안에는 한 손에 쏙 들어갈 만한 테이저건이 하나 있었다, 이를 꺼내 주머니에 넣고 시동을 건다.
시동을 걸자 카 스테레오에도 전기가 공급됐다. 빌리가 이전에 틀어 놓은 듯한 라디오 채널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비틀스의 Yellow Submarine의 거의 끝자락이다. 그리고는 이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저는 밥 맥두걸입니다.”
눈길도 주지 않는 빌리, 라디오는 굵은 남자 목소리로 혼자서 떠들어 댄다.
“저는 지금 캐피털 시티에서 남쪽으로 9km 떨어진 보드빌이라는 곳에 있습니다.”
잠시 정적
“오늘은 낚시로 커다란 민어 네 마리를 잡았습니다, 근처에 작은 강이 있어서 저는 이곳에서 먹을 걸 구해옵니다.”
“이곳의 물은 오염되지 않아 식수로도 쓸 수 있습니다, 낚시는 아버지에게 배웠죠, 아버지는 제가 혼자서도 살 수 있도록 많은 걸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일곱 살 때 아버지와 얼음낚시를 갔다가 그곳에 빠져 바람에 목숨을 잃을 뻔한 이야기, 그때 심장에 이상이 가 페이스메이커를 달고 사는 처지라는 이야기, 페이스메이커의 전지가 다 떨어지면 더는 교체할 수 있는 병원이 없어서 자신은 삼 년 내에 죽을 거란 이야기. 등등.
빌리는 그런 이야기들을 줄곧 듣기만 했다.
약 두 시간 정도 그런 일상 다반사를 실컷 떠든 그 맥두걸이라는 남자는 이제 슬슬 싫증이 났는지, 솜씨 좋게 배경 음악과 함께 작별 인사를 한다. 그 목소리의 뒤의 음악은 비틀스의 help다.
“늘 하는 말이지만, 당신의 얼굴을 보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느낀다면 이곳으로 오면 좋겠네요, 기왕이면 여자라면 좋겠습니다. 여긴 캐피털 시티에서 9km 떨어진 보드빌이라는 동네입니다. 91번 국도를 타고 오면 오른쪽으로 커다란 식수 탱크가 보이는 마을입니다. 밤에 찾아오신다면 불 켜진 네 번째 집으로 오시면 됩니다. ”
빌리의 운전석 밖으로는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그가 방금 표지판 하나를 지나쳤다.
[91번 국도], 멀리 오른쪽 옆으로 커다란 식수 탱크가 서 있고 몇몇 불 켜진 집이 있는 마을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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