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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3/06 08:44:21
Name fd테란
Subject [일반] 강도를 잡았다.
그저께 강도를 잡았다.

...아니 신고했다라는 표현이 더 맞을려나.


나 말고 동생이...


동생이 새벽 세시쯤에 베란다에 얼굴을 빠꼼이 내밀고 연초를 태우던 도중에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쳐다봤더랜다.

얼핏 보니깐 웬 빤스[?]만 입은 베트남 사람 두명이 우유배달 하는 아저씨에게 고함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베트남 사람 둘은 약간 술이 취한듯 보였었다.
그 중에 한명은 커다란 식칼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우유배달아저씨를 위협하면서 으슥한 골목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워낙 깽판치는 목소리가 커서 잘 들어보니 '지갑 내놔 지갑내놔'라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손사래를 치다가 틈을 봐서 둘을 뿌리치고
걸음아 날 살려라 쌩 하고 도망을 쳤다.


이 장면을 약 십분동안 담배를 태우면서 느긋하게 목격한 동생은
거의 담배를 다 태우고 나서야 거실에 있는 전화에다가 느긋한 모습으로 112에 전화를 걸었다.


'거기 경찰서죠? 여기 xx빌라앞인데요. 여기 웬 베트남 사람 두명이 한손에는 커다란 식칼을 들고
지나가는 행인을 위협하네요? 아 아저씨는 도망갔구요. 인상착의는 한놈은 빨간팬티를 입고 티셔츠를 입었구요
키는 165정도였나? 한놈은 170정도구요. 넵넵 수고하세요'


과연 대한민국 경찰은 훌륭했다.
5분도 지나지 않아서 경찰차 다섯대가 집앞으로 달려오더라.
새벽세시에 다시한번 집 전화벨이 따르르 따르르 울렸다.
내동생은 터덜터덜 옷을 주워입고 연초를 꼬나물며 다시 밖으로 나갔다.


30분도 안되서 근처에 서식하던 베트남사람 두명은 잡히고 말았다.
우유배달 아저씨는 아직도 혼이 빠졌는지 그들을 앞에두고도 범인이 맞는지 안맞는지 헷갈려했다고 한다.
내동생은 다시 연초를 꼬나물며 그 둘을 찬찬히 흩어봤다.


'제가 바로 집 베란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봤거든요? 야야. 나봐봐 보라고. 새퀴들아.
얼레 이새키들 그새 옷 갈아입었네? 이새키는 빨간 티셔츠에 빨간 팬티 비슷한거 입고 있었구요.
이새키도 나시티에 바지 하나 걸치고 있었거든요? 야 새키야 너 언제 옷갈아입었냐?
이새키 지금 바지 벗겨보세요. 그럼 아마 빨간팬티 비슷한거 입고 있을거에요. 확인해보세요.
아쭈 이새키가 버티네? 벗어임마. 얼른 벗겨보세요. 봐요? 빨간색 맞죠?"

그녀석들 집으로 갔다.


'이 싱크대위에 있는 요 칼 휘둘렀어요. 아 그리고 저기 내팽겨친 저 옷 입고있었어요.
아까 전화에서 말한 그 옷이요. 아저씨 맞죠?'

'어..지금 보니깐 그런것도 같네...맞아요 저 칼이에요 저걸로 날 위협했어요'


내동생은 새벽 세시에 빽차를 타고 경찰서로 가 목격자 진술이라는 것을 써보게 됐다.
얼마전 수술때문에 양팔을 깁스한 상태라서 핸드폰에 터치로 진술서를 쓰고 경찰서 아저씨가 배껴써줬댄다.


아침에 동생이 집에 들어왔다.


'형 짜증나. 경찰서 갔는데 새벽에 밥이라도 시켜줄 줄 알았는데 xx 커피한잔 밖에 안줬어'

'헐 뭐야 웬 경찰서?'

'블라블라블라블라 블라블라블라 그래서 갔다왔어'

'헐 무섭다야 그래도 잘했네. 다음부턴 그런 위험한짓..아냐 그런거 보고도 못본채 하면 안된다.
잘했다. 동생아'


...그래 난 동생을 칭찬했다.

아 이새퀴 정말 요즘 보기드문 정의감이 넘치는 청년이구나.
동생교육 하나는 참 잘 시켰다 라는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을 듣기 전까지...



'아 형 근데 왜 경찰서에서는 밥을 안주냐? 꼴랑 커퓌한잔이라니 개념이 없네 진짜! xx
밤새도록 목격진술에 진술서까지 쓰고왔는데 뭐 남는게 없네?
형 그리고 만약에 그 아저씨가 칼에 찔린다음에 내가 병원 데려다주고 신고해서 잡았으면 포상금 좀 받나?
아아 용감한시민상 표창장 뭐 그런것도 주나? 아 그거보단 역시 포상금이 쫌 아쉬...'



오케이 거기까지...



'아 xx 왜 때려 밤새도록 큰일한 사람한테!





동생은 언제 인간이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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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zzPianist
10/03/06 08:56
수정 아이콘
목적이야 어찌되었건(?);; 동생분이 참으로 용감한 분이십니다. 저라면 절대로 못할거같다는..
켈로그김
10/03/06 09:09
수정 아이콘
지금도 훌륭한 사람인데요 뭐..
그 상황에서 목격자로서도 훌륭했고,
경제적 관념도 제대로 박혀있습니다...?;;
10/03/06 09:42
수정 아이콘
대단한데요.. ^^
신고라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경찰서 가서 피의자 지목도 해야 하고, 진술도 해야 하고..
이런 일들이 귀찮아서 신고 안 하는 사람이 많거든요...
멋진 동생분을 두셨네요.. ^^

아.. 그리고 경찰서에서의 '식사'는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배고파서 못 하겠다~" 라고 하면 간혹 시켜주기도 합니다만...
10/03/06 09:59
수정 아이콘
어휴...... 그래도 좋은일 하셨네요.

그런데 걱정되는게 베트남애들이 얼굴기억해서 보복할까봐........ 저라면 걔네들한테 얼굴은 못보여줬을 것 같아요..
Hell[fOu]
10/03/06 10:11
수정 아이콘
글이 정말 재밌네요. ^^
COurage0
10/03/06 10:18
수정 아이콘
넵. 멋진 동생분을 두셨네요.
10/03/06 10:35
수정 아이콘
아이고..
다른건 모르겠고 배트남 남자들 특히 조심하셔야 합니다.
정말 이사람들 가리는게 없더군요.
미국에서도 그랬고, 한국에서도 그랬고, 일본에서도..
하여튼 참 좋은일 하셨습니다 :D
그리고 동생분 멋져요 -_-b
ILikeOOv
10/03/06 10:57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동생분이 하신말은 100% 진담같지는 않고 농담같아 보입니다 ~!!
신고및 / 검거과정 / 진술할때 에 느꼈던 불안감이나 긴장감 같은걸 해소하고자 그랬지 싶습니다~
용감한 동생분이군요~!!
민첩이
10/03/06 12:15
수정 아이콘
"나와서 찾아가겠습니다"
후덜덜덜

저번에 방송에서 무서워서 신고 못한다는 내용을 봤었는데
사실 동남아쪽 사람이면 별 빽이 없을테니 안 무섭겠지만

덩치 크고 검은양복 입은 아저씨가 위협하는걸 봤다면 좀 사릴지도...


동생분과 같이 열린생각을 가지신 분이 한분 두분 늘어나면
치안이 점점 좋아지겠죠, 대단합니다
10/03/06 12:44
수정 아이콘
동생분이 멋지시네요 흐흐.
저는 112에 신고한게 비 부슬부슬 오는날 길바닥에서 주무시고 계신 할아버지 데려가라고 신고한 적밖에 없어서리..
C.P.company
10/03/06 13:08
수정 아이콘
그러게요. 선뜻 신고하고 그러기가 쉽지가 않은데.

전 강간미수범 직접 잡아서 경찰에 넘긴적 있습니다. 근데 용감한 시민상이고 뭐고 없더군요-_- 참고인 진술하러 갔을때 짜장면 하나

시켜주면서 칭찬만 오라지게 해주던데요
10/03/06 13:27
수정 아이콘
하하하 재미있네요^^;;;
저는 그 지방에서 서울로 가는날...차가 서울 만남의 광장?휴게소에서 부터인가 무진장 막히더라구요...
그런데 나는 2시간 넘게 기어가는데...버스전용차선으로 유유히 지나가는 고급외제차들...
참 내가 기가막혀서...
바로 디카를 꺼내들고 30여방 찍었습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알아보니 포상금 제도는 사라졌고...큭
그냥 36대던가???사이버경찰수사대에 곧장 신고크리 들어갔죠...(나는 XX이라 기다리고 있는줄 아냐!!!)
몇일뒤 메일이 왔습니다.
귀하의 투철한 신고정신에 감사드린다면. 확인후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구요.
무튼 지킬건 지킵시다 여러분...

내앞에서 교통법규 위반하지말란말이다!
메를린
10/03/06 19:06
수정 아이콘
전 어떤 남자분이 어떤 여자를 길거리에서 때리는걸 보고 신고를 했죠. 쳐다보면서 신고를 했더니, 남자가 제게 다가오더군요. 그래도 그냥 신고할거 다하니 별일은 없었습니다만, 하지만 경찰이 도착한 후에; 여자가 오히려 남자를 감싸더군요. 그 이후로 신고는 하되, 그냥 뒷일은 나몰라라 하고 지나갑니다.
10/03/07 13:04
수정 아이콘
막장이네요
전 실제로 남자가 여자 때리는거 주사부리는걸로 딱 한번 밖에 못 봐서..
여자가 제 지인이었는데 정말 그땐 온 몸을 날렸네요.
그런데 이런 때 애매한게 결국 지넨 커플이니까 나중에 왜 내 남친 그리했냐고 여자한테 욕 먹을 지도 모를 일(-_-)이니
남자를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잡고 같이 엎어지면서 방어 밖에 해줄 수 없더라고요.
그게 그 커플의 엔딩이어서 다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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