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PGR의 write 버튼을 눌러 봅니다. 가끔씩 들어오는데 늘 바쁘다는 핑계로 글은 못쓰고 눈팅만 하고 가네요. 오늘은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에 도전하는 날이죠. 선전을 기원하면서 어제 코미디언 고 배삼룡님의 발인 모습을 보고 여러모로 생각이 들어 짧은 식견이나마 이렇게 한 줄 써봅니다.
그저 저의 생각을 넋두리 식으로 쓴 것이니 행여나 용이 틀리거나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하고 편하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비실이’ ‘한국의 찰리 채플린’ ‘천재적 바보’ ‘어릿광대’ 등으로 불리던 한국 코미디계의 시조이자 대부였던 배삼룡 선생이 지난 23일 별세했다.
그가 이승과 작별하던 어제는 마치 하늘도 우는 것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더욱이 공교롭게도 별세한 시점부터 발인까지 3일간 우리의 눈과 귀는 먼 이국땅인 밴쿠버에 있어 노 희극인이 가는 길은 더욱 쓸쓸해 보였다.
물론 장례기간 많은 후배 코미디언과 개그맨들이 찾았고, 병원비 마련을 위해 힘을 모으기도 했으나 왠지 그의 죽음이 한국 코미디의 쓸쓸한 현실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실 필자는 올해 나이 36으로 그의 코미디를 많이 보지는 못했다. 그저 어렸을 때 TV화면에서 왜소하고 웃기게 생긴(아니 솔직히 못생긴) 외모의 남자가 개다리를 춤을 추고 우스꽝스럽게 넘어지는 장면을 봤던 기억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지금에서야 그가 바로 한국 코미디계의 대부였단 사실을 알았지만.
한국의 현대적인 코미디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흔히들 배삼룡과 구봉서, 서영춘(작고) 이 3명의 트로이카가 시작했고 지금의 기반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넘어지고 몸으로 웃기는 배삼룡의 바보연기는 한국 슬랩스틱 코미디의 원조이자 교과서와도 같아 남철․남성남, 이주일(작고), 심형래, 오재미, 김미화 등으로 이어져 왔다. 배삼룡이 없었다면 코미디 황제 이주일과 영구 심형래가 탄생했을 지도 의문이다.
한국 코미디의 르네상스가 열리다
여하튼 60~70년대 배삼룡, 구봉서, 송해, 서영춘 등의 1세대에 이어 80년대부터는 한국 코미디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게 된다. KBS, MBC, TBC(80년대 초 KBS와 강제통합) 등 각 방송사별로 공채 코미디언을 뽑기 시작했고, 이때 등장한 인물들이 바로 이홍렬, 이성미, 주병진, 서세원, 이경규, 김정렬, 조정현, 배일집, 배연정, 김보화, 최양락, 전유성, 임하룡, 심형래, 엄용수, 김형곤(작고), 최용순, 박미선, 이경실, 김한국, 김미화, 오재미, 김정식, 이봉원 등이다. 개그맨이란 용어가 생겨난 것 도 이들 때부터다.
MBC의 소문만복래, 웃으면 복이와요, 일요일밤의 대행진, 청춘만세 등 KBS의 유머1번지, 한바탕 웃음으로, 쇼비디오자키 등 8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 한국 코미디의 전성시대를 이끌게 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유머1번지를 가장 좋아했고(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탄생하기 전까지), 토요일 오후만 손꼽아 기다렸다. 심형래, 임하룡의 ‘영구야 영구야’ ‘내일은 챔피언’ ‘변방의 북소리’ 최양락, 전유성의 ‘도시의 사냥꾼’ 김형곤, 엄용수의 ‘회장님 회장님’ ‘탱자 가라사대’ 이봉원, 김한국의 ‘동작그만’ 등 슬랩스틱과 꽁트, 풍자 등이 어우러진 최고의 정통 코미디 프로로 꼽고 싶다.
하지만 유머 1번지에 밀리던 MBC가 개그계의 신사이자 최고의 입담과 재치, 진행능력을 보유한 주병진을 내세워 기존 일요일 밤의 대행진의 포맷을 전면적으로 바꿔 일요일 일요일밤에라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토크쇼 형식에 버라이어티를 가미한 프로로 개편하면서 일거에 역전하게 된다. 당시 일밤은 주병진과 이경규(몰래카메라), 노사연(배워봅시다), 김흥국 단 4명이서 만들었으나 주병진의 탁월한 진행능력과 입담에 코너마다 절묘한 기획력과 조화로 일요일 밤을 평정했다. 이 때문에 당시 일요일 밤 라이벌 프로이던 쇼비디오자키도 일밤을 따라 포맷을 비슷하게 바꾸기도 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주병진을 아직까지도 최고의 개그맨이자 진행자로 생각하고 있다. 주병진의 후계자로는 신동엽을 꼽을 수 있으나 그도 재치와 입담, 진행 능력은 뛰어나나 주병진을 따라가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이 있다.
때문에 2000년도에 주병진이 꽃뱀의 사기사건에 휘말려 방송계를 떠난 게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90년대 위축되어 가는 한국 코미디
90년대 초에는 SBS의 개국과 함께 개그맨 3세대들이 등장한다. KBS에는 감자꼴 4인방인 김국진, 김용만, 김수용, 박수홍을 필두로 김지선, 유재석, 최승경, 남희석, 이창명, 조혜련, 백재현, 송은이 등이 MBC에는 서경석, 이윤석, 박명수, 김현철, 김효진, 고명환, 정찬우, 김태균, 강호동 등이, SBS에서는 틴틴파이브 멤버인 표인봉, 홍록기, 이웅호, 이동우, 김경식을 비롯 신동엽, 정선희, 김구라, 지상렬, 염경환 등이 대표적 개그맨들이다.
90년대 초에서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KBS의 쇼 행운열차, MBC의 웃는 날 좋은 날, SBS의 좋은 친구들, 코미디 전망대 등 이들이 활약할 프로들이 있었다.
하지만 90년대 초까지 중흥기를 맞았던 한국 코미디는 90년대 중반 들어 방송환경이 급변하면서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게 된다.
각 방송사 마다 코미디 프로를 없애고 쇼 버라이어티 쪽으로 방향을 돌리면서 자연스레 코미디언과 개그맨들(특히 2세대들)은 자연스레 방송에서 얼굴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90년대 말까지 위축되어가던 한국 코미디는 99년 KBS에서 개그콘서트를 신설하면서 활로를 모색하게 된다. 공개코미디의 새로운 장을 연 개콘은 당시 대학로에서 전유성이 실험을 통해 성공한 뒤 방송에 전격 도입된 것으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프로였다. 초기에는 김미화를 필두로 백재현, 심현섭, 김영철, 김준호, 김대희, 김경희 등이 기반을 잡았고, 이후 박준형, 정종철, 김병만, 김기수, 강성범, 이수근, 박성호 등이 바통을 이어받아 개콘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신인 개그맨들의 산실이자 많은 스타 개그맨과 코너를 탄생시켜온 개콘은 10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의 대표적 코미디 프로로 자리매김 하며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개콘을 제외하고는 KBS에서는 솔직히 현재 개그맨들이 설 무대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타 방송사는 상대적으로 더 좋지 않다. SBS는 웃찾사가 한 때 개콘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인기를 구가했으나 지금은 많이 시들한 상태며, MBC는 개그야에 이어 하땅사라는 프로로 돌파구를 모색했으나 시청률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어두운 한국 코미디의 미래
이미 TV예능프로는 1박2일나 무한도전, 패떴 등의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가 대세이고, 여기에는 가수 출신들이나 탤런트, 기타 비개그맨 출신 연예인들이 차지한 지 오래다. 신정환, 탁재훈, 윤종신, 이효리, MC몽, 하하, 은지원, 김수로, 김태원, 길, 신동, 이특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중 신정환 등은 가수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다. 또 요즘은 기획사에서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는 아이돌그룹이 가수활동 보다는 예능프로 등에서 더 활약을 하며 개그맨들의 자리를 점령하고 있다. 가수 출신들이 주류이고 개그맨들이 변두리에 있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한국 가요계의 슬픈 자화상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듦)
이제는 코미디언, 개그맨이라는 용어는 사라지고, '예능인’ ‘MC’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됐다. 쇼 예능프로그램에서만 활동하는 예능인이라는 새로운 영역이 탄생한 셈이다.
연말 시상식에서도 KBS를 제외한 MBC와 SBS에서는 개그맨들이 뒷전이 된 지 오래다. 80년대에서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있었던 코미디언과 개그맨들 위한 각 방송사의 코미디대상이 별도로 있었으나(MBC는 방송대상으로 처음에는 같이했다가 중간에 코미디대상을 분리한 뒤 다시 합침) 연예대상이나 방송연예대상으로 합쳐져 이제 정통 코미디언 출신들이 대상을 받는 모습은 쉽지 않게 됐다.
젊은 개그맨들은 개콘 등에서 인기를 얻은 뒤 버라이어티 등 예능프로로 진출하고 있다. 그 길이 더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또 예능프로 말고도 TV 드라마나 영화쪽으로 겸업 하거나 아예 전업하기도 하고 있다. 김병만, 류담, 고명환, 지상렬, 이정룡, 최승경, 허승재, 임하룡 등이 대표적이다. 참으로 씁쓸한 현실이다.
고 배삼룡 선생은 죽기 전 까지도 “무대에 서고 싶다”고 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라도 이승에서 못 다한 희극 연기를 활짝 펴시길 바라면서 그의 죽음이 한국 코미디가 부활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지는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