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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0/01/04 01:07:50
Name Snoopy
Subject [일반] 너의 신을 쫓아라
어렸을 때 과학자의 꿈을 갖게 해준 것은 뉴턴의 전기였다. 제대로 된 전기를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삶 속에서 합리주의의 절정을 느꼈다. 짧은 생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변치 않을 진리를 추구하는 것뿐이고 그것은 합리주의로부터만 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다. 나중에 경제학자인 케인즈가 뉴턴을 연구하여 사실 그가 물리학보다도 연금술에 심취했던, 최초의 과학자라기보다 마지막 마법사였다는 것을 밝혀냈지만, 뉴턴이 찾아내려던 마법이라는 것 역시 결국 신의 섭리였을 것이다.

신의 섭리를 밝히기에 합리성이라는 도구는 많은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과학의 정반대에 있다고 오해되는) 종교에 관심을 가졌다. 기독교, 불교 등 여타 종교들이 상당히 다른 모습임에도 대부분 자아비판에 이론적 토대를 두고 있는 듯하다. 세상 속에 홀로 버려진 자신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되어 함께 사는 것을 강조한다. 굳이 산업혁명이 아니더라도 인류는 이전부터 합리주의에 지쳐있었고 때문에 종교에서 강조하는 하나된 세상은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신이 있다면 바라지 않았을 (바라지 않았으면 좋았을) 신은 단 하나뿐이고 그의 섭리 역시 단 하나뿐이며 내가 그것을 믿고 네가 그것을 믿고 그가 그것을 믿음으로써 우리 모두 하나가 된다는 저급한 오해를 낳았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난리 피며 우매한 대중들에게 성경을 읽어주는 난독증 가진 목사들을 저주했을 때, 개성을 존중하는 조화로운 세상을 옹호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문명의 조화를 꿈꾸는 사람들을 “마침내 행복을 찾아낸 저급인”이라며 철없는 어린아이 취급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개성은 부모의 유산이며 그들의 안도감은 개별성이 아니라 집합성으로부터 나오는데 끝끝내 그것을 모름으로써 그들은 결국 행복을 찾아냈다.

그런데 문제는 수천년동안 시달려온 틈에 신은 죽었다는 소문이 돌면서 현실이 악화되는 것이다. 신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하나인지 둘인지 이렇게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 애초에 없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 신이 아니라 네 신과 그의 신을 죽이기 시작했다. 네 신과 그의 신을 죽여버린다면 내 신을 살아있을 것이라는 광기는 세계사 속에서 가장 무서운 얼굴을 한 공포의 살인마였으나 지금은 가장 손쉽게 안락을 제공하는 보편적인 매춘부가 되었다.

양심이 살아있는 지식인들은 미친 세상의 치유제로 가치자유를 개발했다. “인간은 누구나 제각기 가치를 설정하고 추구할 수 있다”는 명제 아래 밥의 자유와 밥의 평등이 정신의 자유와 정신의 평등이 되고 민주주의가 생겨났다. 그러나 내 신이 살아있고 네 신도 살아있고 그의 신조차 살아있다는 그럴법한 긍정론 앞에 인간의 영혼은 과연 자유를 얻었는가? 결국 다른 방향으로 뿔뿔이 흩어질 뿐인 모래성을 쌓아놓고 뿌듯해하는 죽은 꽃의 향기를 맡는 저급인들의 사회가 아니라면 양눈 옆에 칸막이를 해놓아 앞 밖에 못 보는 장님들의 사회가 아닌가? 지식인들은 모래성 위에서 위태롭게 서서 자유를 노래하는 척하며 세상을 저주하고 그 밑에서 눈가리개를 한 대중은 보지 못한 채 뛰어다니며 서로 부딪히고 있다. 혹시라도 눈가리개가 풀려 진실을 본 자들은 미쳐서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다.

언젠가는 인류가 답을 찾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을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만큼 절박하고 목마르기 때문에 반복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물을 찾았고 찾을 때마다 더 목말랐기에 한 방울이라도 더 찾아내었다. 불완전해 보이고 불안하게 만드나 지금 마지막으로 찾아낸 오아시스, 아니 마지막으로 파낸 물웅덩이가 가치자유다. 타락할 수 없다면 순수가 아니고 무뎌질 수 없다면 양심이 아니다. 영원히 충족될 수 없는 인간의 갈증이 가치자유라는 물웅덩이를 파먹고 있다. 이 역시 동이 나고 다른 곳을 찾아 헤매게 될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현 인류의 사명이랄 것(사명이랄 것도 없는 것)은 너의 신을 쫓는 것이다. 그리고 우연히 떨어진 썩을 수 밖에 없는 이 곳이 썩지 않도록 발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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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04 01:10
수정 아이콘
날씨가 추워서...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뻘글 하나 씁니다. -0-;;
10/01/04 01:53
수정 아이콘
철학적인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글쓴님이 철학과나 혹은 철학쪽에 관심이 많으신분 같네요.
10/01/04 01:56
수정 아이콘
럭스님// 아니요... 철학과도 아니고 철학도 잘 모르는데 쓴 글입니다 ;;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10/01/04 05:54
수정 아이콘
모더니즘의 느낌이 풍겨나는 글이네요
10/01/04 10:26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10/01/04 14:47
수정 아이콘
재미있는 글이었습니다. 뭐랄까... 철학에 관심은 많지만 실제 본인의 정체성은 이과계열인 사람의 글이라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스타일인데, 저로서는 이런 글이 참 읽기가 쉽더군요. 제 글쓰기 스타일도 Snoopy 님과 참 비슷한데, 골수 문과들은 이런 문체를 별로라고 하더군요. 도대체 뭐가 문젠지 알 수가 없는데, 역시 세상은 요지경, 참 신기하죠..
10/01/04 15:32
수정 아이콘
네오님// 모더니즘이 뭔지 잘 몰라서 ;; 고맙습니다~

Erehwon님// 넹~ 감사합니다!

OrBef2님// 법대의 글쓰기는 문단별로 주제가 딱딱 끊어지는 대신에 문장이 호흡이 길더라고요. 글 잘 쓰는 사람들은 깔끔하고 명료한 것을 좋아할 것 같아요... 제 경우는 뭔가 들은 것 있고 하고 싶은 말은 있는데 정확히 몰라서 말이 길어지는 건 아닐까 싶어요 ㅠㅠ
10/01/04 18:57
수정 아이콘
저도 잘 읽었습니다.

버림받은자 모임 2차 때, 주막에서 옆에 앉았었는데, 그때도 입담이 뭔가 남다르셨는데
이런 관심이 있으실줄이야 흐흐

대학원 관련해서 하시는일 잘 되길 바랍니다.!!
10/01/05 17:17
수정 아이콘
같이자유~~~~
10/01/06 22:58
수정 아이콘
스누피님 잘 읽었어요
버림받은자 모임 주막에서 저도 옆에 앉아있었는데...
그때도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이야길 많이 해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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