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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에 쓴 글을 존칭으로 바꾼 것입니다.
새 게임이 나올 때가 되었든, 일 때문이든, 아니면 제가 즐기고 싶어서 하는 것이든, 저는 한 해 약 100 타이틀, 그러니까 100개 정도의 게임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작년부터 세워서 실천하고 있는 목표이기도 하고, 올해도 지킨 것 같습니다.
게임 100개라면 상당히 많다... 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사실 많은 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오픈 베타테스트나, 상용 게임만 100타이틀을 하는 것이 아니고, 클베라든지 프로토타입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불완전한 완성도를 가진 게임들도 상당 수 있고, 두서너 달 정도에 한 번씩 가는 아케이드 게임장에서 새로 나온 게임 몇 개를 한 것도 포함하기 때문이죠. 간혹 즐기는 모바일게임도 있고요.
그런 게임들의 플레이 타임은 길어야 한두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고, 오픈 베타테스트나 상용 게임이라 해도 제가 흥미를 못 느낀 게임은 길어야 이틀에서 일주일 안에 매듭을 짓기 때문에 제가 뭐 100개의 게임을 한 해에 한다 한들. 그게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닙니다. 다른 테스트만 죽어라 하는 사람들은 저보다 많이 하면 많이 하지 적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니까요. 해 본 게임들 중 일부는 보고가 되어 DB화가 되고, 나머지는 그저 기억에만 남겨둡니다.
아무리 일 때문이라지만, 그렇게 많은 게임들을 하다 보면 제가 과연 어떤 심정으로 게임을 하는지 잘 모르고 번민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제가 새로운 게임을 찾고, 인스톨하고, 깔고, 그런 속에서 헤매고, 답을 찾고, 나름대로 생각하고 분석하고, 그러고 접을 것은 접고 할 것은 하는 과정을 늘 거치지만, 그것에 대한 마음을 잘 모를 때가 있기 때문이니까요. 그것이 과연 제가 몸담고 있는 분야나 게임에 대한 갈망 때문인지. 아니면 게임에 대한 중독 때문인지. 뭐 그런 것 사이에서 어느 쪽인지 돌아보고 있는 셈이죠.
그리고 돌아보면, 제 마음과, 제 생각은 어느 하나로 딱 잘라 말 할 수 없는, 이른바 '갈망과 중독 사이'를 헤매고 있는 것 같습니다.
회상하자면, 저는 상당 기간 동안 단순 자극에 상당히 단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그 단순 자극이 주는, 이른바 '핵 앤 슬래쉬'류의 지루함이 주는 은근한 쾌감에 상당히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좀 나아진 상황이지만 말이죠) 예전에 오랜 동안 하던 리니지에서 철괴 만이천 개, 엔트의 줄기 만오천 개를 난쟁이를 잡고, 엔트를 두들겨 패 가며 모았던 때의 느낌이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리니지의 경험이 예전 창세기전 2에서 아수라 없이 약 50분 간 전투해서 베라모드를 꺾고 느꼈던 희열을 대신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과거에 패키지 게임, 소위 말하는 일본식 어드벤처 롤플레잉 게임에서 일일이 그 많은 캐릭터들을 세세하게, 지루할 정도로 노가다로 키우고 흡족해했던 기억을 생각나게 만드는 데엔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발더스 게이트 같이 자유도 높은 게임들이 주는 중독이나 재미와는 또 다른 것이죠.
그런 '단련'이 없었다면 제가 지금 하는 WOW에서 성기사를 세 캐릭터나 만레벨로 키울 수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지금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현자를 만들기 위해 아직도 퀘스트를 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한 해에 100타이틀의 게임을 해 보겠다는 목표를 감히 세울 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그런 단순 자극의 쾌감에 너무 많이 빠지면, 여러 가지가 파탄납니다. 쉽게 말해 일과 일상 생활까지 지장을 받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환자에게 강력한 진통제가 필요하다면 의사에 의해 마약성분이 든 진통제가 처방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걸 자주 사용하게 되면 당연히 마약중독이 되는 것처럼. 제 경우도 그러하니까요.
반면, 갈망만이 너무 강조되어도 일상 생활이나 일에 지장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욕구는 한 가지가 아니고 한 가지가 될 수도 없습니다. 좀 바보스러운 이야기지만 사람이기 때문이니까요. 비록 저처럼 일과 게임에 몰두하느라 인간관계의 폭이 상대적으로 협소한 사람이라 해도, 게임에 대한 갈망만으로 머리속이 꽉 차 버리면 다른 요소가 지장이 되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리고 갈망은 중독보다 게임 평가를 객관적으로 하는 것에 더 나쁜 영향을 끼칩니다. - 적어도 저에게는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 일정 정도의 수준을 가진 게임을 다른 게임을 배불리 먹었을... 아니, 하고 싶은 만큼 했을 때에 평가해 보게 되면 그 느낌이 약해지는 정도에 그치지만, 갈망 상태에서 평가를 하게 되면 마치 맛은 있지만 그저 그런 음식을 사흘쯤 굶은 정도로 극한 상황에서 먹었을 때 그 감사함과 포만감이 극대화되는 것처럼, 점수가 필요 이상으로 후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평가에서만 악영향이 크고, 전체적으로 보면 중독보다는 (갈망의) 해악의 정도가 낮다고 생각하고, 사실 중독보다는 갈망이 여러 모로 좋은 점을 가져다주기도 하지만. 그러나 어쨌든, 해악은 해악인 것이죠.
제가 게임 일을 하는 한, 아니, 게임이라는 것을 제 손에서 완전히 놓는다 해도 저는 '갈망과 중독 사이'의 외줄타기를 계속해 나갈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제가 지금까지 해 왔던 모든 일들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분명하고 간단한 답이자.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에 몰두하고, 무엇에 갈망하며, 진정으로 좋아하는 무엇에 열정과 힘과 마음을 바칠 수 있는 힘. 그것이 저의 삶의 원동력이니까요. 때론 그것이 광기를 유발하기도 하고 제가 격노하기도 하고 광폭화하기도 하는 원인이 되지만, '뭐 어떠랴. 그러면서 살아가는 것인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언젠가는 갈망도, 중독도 모두 벗어던진, '그 이상의 경지'에 오르기를 원합니다.
- The xian -
P.S. 이 글을 적고 나니, 처음 이미지처럼 PGR 글쓰기 점수가 딱 20,000점이 되었습니다.
요즘 '쓴소리'를 쓸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20,000점째 글은 '쓴소리'가 아닌 다른 말로 채워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