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시간이동을 해보겠습니다.
우선 주의사항으로 먼저 삼성라이온즈를 응원하시는 팬분들중에 연세가 있으시거나 심장이 안좋으신 분들은 심장에 충격이 크게 올 것이니 대비를 해주십시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4년 11월 1일입니다. 장소는 서울, 그중에서도 잠실구장입니다. 비가 거세게 내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 한국시리즈를 하고 있습니다. 9차전입니다. 현대유니콘스가 2회초에 폭풍처럼 8점을 얻어낸 후에 삼성라이온즈가 차근차근히 추격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느덧 8회말이 되었습니다. 현대쪽 더그아웃에서 한명의 크지 않은 선수가 터벅터벅 마운드에 오르고 있습니다. 현대의 3루수 서한규의 실책으로 신동주 출루, 박종호 볼넷으로 무사 1, 2루의 기회가 삼성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조동찬 우익수앞 안타.
!!! 박종호대신 들어온 대주자 강명구가 2, 3루사이에 어정쩡하게 서있다가 결국 태그아웃. 박한이가 땅볼로 1점을 추격했지만 주자가 없는 상황입니다.
9회말입니다. 삼성이 또 실책을 틈타 1점을 얻어냈습니다. 현대의 투수는 아직까지 등번호 51을 달고 있는 선수입니다. 타석에는 대타 강동우. 2아웃상황이었지만 1점차이였고 1, 2루에 주자가 있었기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끝내기 안타까지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강동우가 투수의 공을 때렸습니다. 그런데...... 그 공이 이숭용의 글러브로 빨려들어갔습니다.
경기 종료. 8 : 7로 현대유니콘스의 승리, 그리고 현대유니콘스가 4번째 우승컵을 손에 쥐었습니다.
2004 한국시리즈 9차전. 빗속에는 한 명의 현대유니콘스 유니폼을 입은 등번호 51의 투수가 마운드위에 서있었습니다. 키가 큰 편도 아닙니다. 그리고 호리호리한 선수입니다.
그러나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던 그 투수. 그러나 그 선수는 상대편 타자들에게, 그리고 상대편 관중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선동렬, 염종석, 김수경. 이 세 투수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한 시대를 풍미한 슬라이더의 명인들이라는 점입니다.
웬만한 직구와 맞먹는 140km대의 구속과 웬만한 커브 못지않게 떨어지던 선동렬의 슬라이더는 해태타이거즈에게 한국시리즈 4연패와 그 후, 2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안겨주었고 선동렬을 1980년대를 대표하는 선발투수, 그리고 199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최고의 마무리로 군림하게 해주었습니다.
부산고를 졸업한 고졸신인 염종석이 던지던 슬라이더는 1992년, 롯데자이언츠의 2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안겨주었습니다. 특히, 해태타이거즈와의 플레이오프에서 그 슬라이더는 위기때마다 롯데를 구해냈습니다. 그리고 염종석에게 평균 자책점부문 타이틀과 신인왕을 수상하게 해주었습니다.
인천고를 졸업한 고졸신인 김수경이 던진 슬라이더는 김수경에게 신인왕을 안겨주었고 닥터 K라는 별명을 달게 해주었으며 현대유니콘스의 주축 투수로 훌륭한 모습을 보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또다른 슬라이더의 명인이 있습니다.
웬만한 투수의 직구와 맞먹는 140km대의 구속, 쓰리쿼터에 가까운 투구폼으로 인해 웬만한 투수보다 낮은 릴리스 포인트, 그리고 종으로 떨어지는 각도역시 웬만한 커브와 맞먹을 정도였습니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은 그의 슬라이더를 커터로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정명원 - 위재영으로 이어지던 현대유니콘스의 마무리계보를 이은 투수이자 타 팀, 특히 삼성라이온즈의 악몽으로 군림했던 투수. 등번호 51의 조라이더 조용준이 이번 글의 주인공입니다.
혹자는 4시즌 반짝한 투수가 어딜 봐서 레전드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4시즌동안에 활약했던 기록을 본다면 조금이나마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 그리고 LA다저스의 '황금의 왼팔' 샌디 코팩스의 경우에도 그렇듯이 -
불꽃같았던 4시즌후, 기나긴 재활끝에 다시금 마운드에 돌아온 조용준. 비록 예전만큼 송곳같은 직구와 슬라이더를 내려꽂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돌아와준 그를 위해 짧게나마 글을 써보려 합니다.
1979년 3월 17일에 태어난 조용준, 순천효천고를 졸업하고 프로지명무대에 섰습니다. 원래 고교시절 조용준의 포지션은 내야수였지만 효천고의 감독, 장호연의 권유로 투수로 전향하게 됩니다.
1차지명이 끝났고 - 이때, 1차지명된 선수들이 LG의 조인성, 두산의 김동주, 삼성의 강동우, 롯데의 임경완, 기아의 최희섭입니다. - 고졸우선지명도 끝난데다가 2차지명에서 신경현, 서한규, 이혜천, 채종국, 서승화, 현재윤등의 선수들이 계속 지명되고 있었습니다.
2차지명 34번째로 한화에서 채상병을 지명한 후, 1997시즌에 6위에 머물렀던 현대유니콘스가 2차지명 35번째로 조용준을 지명했습니다.
조용준은 현대유니콘스의 지명을 받은 후, 연세대에 진학합니다.
연세대를 졸업한 후, 조용준은 드디어 현대유니콘스에 입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선발요원으로 쓰기에 조용준은 부상위험이 너무나도 큰 선수였고 조용준의 보직은 마무리투수로 정해집니다.
그리고 2002년, 조용준은 처음으로 프로무대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2002 조용준 : 64등판, 0선발, 109이닝, ERA : 1.90, WHIP : 1.08, 9승(9구원승) 5패 4홀드 28세이브, 피안타율 0.199, 피출루율 0.274, 116삼진
최다 등판 8위, 평균 자책점 3위, WHIP 3위, 다승 15위, 최다 구원승 4위, 홀드 18위, 세이브 2위, 피안타율 3위, 피출루율 2위, 탈삼진 13위 - 단, 평균 자책점과 WHIP, 피안타율과 피출루율은 규정이닝의 50%이상 투구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했습니다. -
신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대단한 성적. 그리고 30.1이닝 연속 무자책점, 21경기 연속 무패. 조용준은 기아의 김진우를 제치고 신인왕을 차지합니다.
12승 투수 김수경, 10승 투수 토레스를 제외하고는 선발진이 엉망이었던 현대유니콘스. 그러나 마무리투수 조용준의 대활약으로 현대유니콘스는 3위에 올라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합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LG트윈스와 격돌했지만 내리 2연패를 당하고 준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현대유니콘스.
조용준은 2경기에 모두 등판해 4.1이닝을 던지며 ERA : 0.00, WHIP : 0.69, 탈삼진 4개를 기록합니다.
2003년, 이 해에도 마무리투수로 활약하지만 조용준은 상대 타자들에게 많이 얻어맞았고 블론세이브와 패도 작년에 비해 늘어났습니다.
2003 조용준 : 47등판, 0선발, 53.2이닝, ERA : 3.52, WHIP : 1.30, 2승(2구원승) 7패 1홀드 26세이브, 피안타율 0.249, 피출루율 0.310, 39삼진
최다 등판 25위, 최다 구원승 28위, 세이브 3위
이 해에 현대유니콘스는 돌아온 에이스 정민태, 평균 자책부문 타이틀을 차지한 용병 투수 바워스, 10승을 올린 김수경등의 선발진과 53개의 홈런을 때려낸 심정수, 박재홍과 트레이드되어 날카로운 정확성을 보여준 정성훈, 노장 이적생 김동수의 부활, 이숭용등의 활약을 앞세워 정규리그 1위에 올랐고 한국시리즈에 직행합니다.
한국시리즈에서 돌풍의 팀 SK와이번스와 숨막히는 혈투를 치렀고 결국 한국시리즈에서 3승을 거둔 에이스 정민태의 활약에 힘입어 현대유니콘스는 4 : 3으로 SK와이번스를 꺾고 3번째로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차지하게 됩니다.
조용준은 2경기에 등판, 1.2이닝을 던졌고 ERA : 10.80, WHIP : 1.80, 1삼진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세이브를 기록했지만 2차전에서는 패전투수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2004년, 모두가 기억하는 악마같은 조용준의 모습이 나타난 해.
선동렬, 김용수, 정명원, 구대성, 이상훈, 임창용, 진필중, 오승환등 내노라하는 국내 최고의 마무리투수도 한 시즌에 적어도 한개의 홈런은 얻어맞았으나 2004년의 조용준은 한시즌 무피홈런이라는 대기록을 세웁니다.
2004 조용준 : 63등판, 0선발, 75이닝, ERA : 2.28, WHIP : 1.19, 10승(10구원승) 3패 0홀드 34세이브, 피안타율 0.245, 피출루율 0.308, 56삼진
최다 등판 9위, 평균 자책점 2위, WHIP 10위, 다승 10위, 최다 구원승 1위, 세이브 2위, 피안타율 18위, 피출루율 11위
피안타율과 피출루율은 조금 높았으나 조용준은 삼성의 임창용과 함께 당대 최강의 마무리로서 이름을 높였습니다.
그리고 정민태가 내리막길을 걷던 대신, 용병 투수 피어리, 11승의 김수경, 10승의 오재영이 선발진을 이끌었고 박진만, 이숭용, 전준호, 심정수, 이적생 송지만등이 고루 타선을 이끈데다가 무적의 마무리 조용준이 버티며 현대유니콘스는 1위에 올라 한국시리즈에 직행합니다.
그리고 2004 한국시리즈. 조용준의 독무대나 다름없던 그 경기.
4시간 이후 추가이닝 금지, 12이닝까지 승부가 안나면 무승부라는 말도 안되는 규칙으로 인해 3번의 무승부가 나왔고 9번이나 경기를 가져야 했던 그 한국시리즈에서 조용준은 삼성라이온즈의 타선을 거침없이 요리했습니다.
조용준은 9경기중 7경기에 등판했고 12.1이닝을 던지며 오재영, 피어리에 이어 현대 투수중 한국시리즈에서 3번째로 많은 이닝을 소화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시리즈 5차전을 제외한 1, 8, 9차전에서 현대의 승리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활약합니다.
조용준은 7경기 등판, 12.1이닝투구, ERA : 0.00, WHIP : 0.97, 11삼진, 3세이브를 기록했고 2004 한국시리즈 MVP에 선정되었습니다.
(조용준이 2실점을 기록했지만 모두 비자책점입니다. 한국시리즈 9차전 8회말에 3루수 서한규의 실책으로 주자 출루 후 1실점, 9회말 유격수 박진만의 실책으로 1실점했습니다.)
특히 한국시리즈 9차전. 비오는 날의 대혈투에서 조용준은 삼성의 악몽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습니다.
2005년, 현대유니콘스는 재정난, 그리고 FA선언을 한 박진만과 심정수가 빠져나갔고 오재영, 김수경등의 선발진이 주저앉으며 순식간에 추락했지만 조용준은 변함없이 현대유니콘스의 뒷문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2005년 6월 8일, vs LG트윈스전에서 197경기만에 100세이브를 올리며 쌍방울레이더스의 조규제가 보유하던 최소경기 100세이브 기록을 넘어섭니다.
2005 조용준 : 49등판, 0선발, 52.1이닝, ERA : 3.27, WHIP : 1.28, 2승(2구원승) 1패 27세이브, 피안타율 0.233, 피출루율 0.310, 61K
최다 등판 24위, 최다 구원승 27위, 세이브 2위
그러나 조용준 특유의 팔을 비틀어 던지는 투구폼은 조용준의 팔을 갉아먹고 있었고 결국 2005년 시즌이 끝난 후, 어깨부상으로 조용준은 팀 전력에서 이탈하고 맙니다.
그리고 그 후, 간간히 재활 중, 복귀를 위해 노력하는 중등의 소식이 들려왔지만 그마저도 나중에는 거의 끊겼고 조용준은 야구팬들의 관심밖으로 벗어나 버립니다.
2007년 정규리그가 끝나고 현대유니콘스는 역사속으로 사라졌고 우리히어로즈가 10번째 구단으로 창단되었습니다. 그나마 간신히 구단과 계약을 했지만 2008년에도 마운드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2005년을 마지막으로 마운드를 떠났던 그가 다시 돌아온 것은 2009년 중반, 히어로즈의 2대 감독으로 선임된 김시진 감독이 "올 시즌 후반쯤 조용준이 복귀할 것" 이라고 예고를 했고 김시진 감독의 말대로 조용준은 결국 돌아왔습니다.
2009년 8월 18일, 히어로즈 vs 기아타이거즈의 경기에서 1432일만에 조용준이 마운드에 섰고 1이닝동안 1피안타, 1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오랜만의 복귀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그 후 간간히 등판하며 모습을 비춘 조용준. 9월 10일, vs 두산베어즈전에서 2타자를 상대해 0.1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기록하며 부상 이후, 첫 세이브를 기록해냈습니다.
2009 조용준 : 11등판, 0선발, 9이닝, ERA : 4.00, WHIP : 1.78, 0승 1패 0홀드 1세이브, 피안타율 0.324, 피출루율 0.439, 6삼진
비록 예전처럼 칼날같은 고속 슬라이더, 송곳같은 직구를 던지지는 못하지만 그는 결국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고 마운드에 돌아왔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통산 234등판, 0선발, 299이닝, 102실점, 86자책점, ERA : 2.59, WHIP : 1.20, 23승(23구원승) 17패 5홀드 116세이브(9위), 승률 0.575, 피안타율 0.229, 피출루율 0.301, 278삼진, 103피볼넷
조용준이 5시즌동안 남긴 기록입니다.
포스트시즌과 올스타전의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 올스타전은 2번 서군소속으로 참가했습니다. -
포스트시즌
11등판, 0선발, 18.1이닝, 4실점, 2자책점, ERA : 0.98, WHIP : 0.98, 0승 1패 0홀드 4세이브, 16삼진, 5피볼넷
올스타전
2등판, 0선발, 1.1이닝, 0실점, 0자책점, ERA : 0.00, WHIP : 0.75, 0승 0패 0홀드 1세이브, 0삼진, 1피볼넷
칼날과 같이 예리한 슬라이더를 꽂으며 상대 타자들을 농락하던 조용준. 최정상급 마무리투수로 활약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겪게 된 기나긴 재활의 시기.
그러나 기나긴 재활의 시기를 거쳐 결국 마운드에 돌아온 조용준.
그를 볼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폭우가 쏟아지던 2004 한국시리즈 9차전에서의 영화같던 장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