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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1/25 21:12
송수권의 '산문에 기대어'
시란 이런 것이다! 남자의 시란 이런 것이다! 한국적인 서정이 담긴 남자의 시란 이런 것이다! ...라고 느끼게 해 준 시입니다. 그리고, 그런 시를 쓰고 싶다라고 생각했죠.
09/11/25 21:22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09/11/25 21:43
피천득 인연 中 참 맘에 들어하는 구절입니다 +_+
간다간다 하기에 가라하고는 가나 아니 가나 문틈으로 내다보니 눈물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더라.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09/11/25 21:59
잊고 있었던 '시의 힘'을 느끼게 해 준 시입니다.
<장편(掌篇) 2> - 김종삼 조선총독부가 있을 때 청계천변 10전 균일상 밥집 문턱엔 거지소녀가 거지장님 어버이를 이끌고 와 서 있었다 주인 영감이 소리를 질렀으나 태연하였다 어린소녀는 어버이의 생일이라고 10전짜리 두 개를 보였다
09/11/25 22:34
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가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이 시 완전 좋아해요~!
09/11/25 22:47
상한 영혼을 위하여/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아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저는 이 시 완전 좋아해요!
09/11/25 22:47
국어교육과에 들어오고 나서 다시 배웠던 시들 중에서,
제일 충격적(?)이었던 시는... 백석의 '여승'이었습니다. 또 하나 꼽자면 이육사의 '광야'... 제일 감동적이었던 시는... 이용악의 '그리움'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공감하였고 좋아했던 시는 바로 이 시입니다. 더딘 사랑 / 이정록 돌부처는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말라. 달은 윙크 한번 하는 데 한 달이나 걸린다.
09/11/25 22:52
시좋아하시는 분 많네요. 저도 첫사랑을 생각 많이나게 하는 시가 있는데
이별하고 한참뒤에 항상 읽고 또 읽었던 기억이 나는 시입니다. 많이들 아실 것 같네요 세월이 가면 -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날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09/11/25 23:33
학창 시절때는 김소월을 좋아하였지만..
최근에는 길어서 외우기 힘든시보다 정현종 시인의 이제는 너무나도 유명한 두 줄짜리 시.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09/11/26 00:06
문학 좋아하는 사람들하고 이야기 나눌 때,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누구냐고 이야기했을 때 "윤동주요." 라고 대답하면 다들 비웃습니다. 윤동주 시인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문학 좋아한다는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꼽기에는 워낙 대중적이라고나 할까요.
그럼에도 역시 제 인생의 최고의 시인은 윤동주 시인이고, 가장 와닿는 구절은 제 프로필에도 적어 두었듯이 '길'의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입니다.
09/11/26 00:55
저도 살면서 가슴에 와 닿았던 몇가지 시 내지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젤로 가슴에 남는게, 헤엄치는레콘님이 올려주신 피천득의 인연에 나오는 이 시. 첨에 읽었을 때 그 느낌을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네요. 사실 이 글 읽고 이 시조를 올리려고 했는데 먼저 선수를 치셨습니다 :). 그리고, 서정주씨의 '눈이 부시게' 가끔씩 맑은 가을 하는 보면서 송창식씨의 노래를 읖조리기도 하구요. 그리고,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첨 이 구절을 읽고 참 잘 표현 했구나 했구요. 여기 피지알에도 댓글로 올린 것 같은데, 역시 피천득의 수필집 '인연'에 나옵니다. 得了愛情痛苦 失了愛情痛苦 사람을 사랑하는 모든 것이 이 두 구절에 함축되어 있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참, 그리고, 제가 대학다니던 80년대 후반에 가장 인기를 끌었던 시 하나. 홀로서기1 - 서정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의 한 쪽을 위해 헤메이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었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 그시절 이 시의 인기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했죠.
09/11/26 01:30
저는 스무살에 저를 울게 만들었던 신경림시인의 가난한 사랑노래가 생각나네요.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 두 점을 치는 소리 방범대원의 호각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 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 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 집 뒤 감나무에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 새빨간 감 바람소리도 그려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이시를 읽는 동안 저는 시인의 이웃집 젊은이였고, 또 무한한 위로를 받았습니다. 지금 고등학교 시절 국어책속을 보면 왜 그 시를 배워야 했는지를 알게 되는 것 같아요.
09/11/26 01:55
강은교님의 '사랑법'도 좋아하지만, 아무래도 피천득님의 '친구를 잃고'가 제일 기억에 남네요.
生과 死는 구슬같이 굴러간다고 꽃잎이 흙이 되고 흙에서 꽃이 핀다고 영혼은 나래를 펴고 하늘로 올라간다고 그 눈빛 그 웃음소리를 어디서 어디서 찾을 것인가 ------------------------------------- 그러고보니 벌써 떠나신지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네요...
09/11/26 02:06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필 때 느낌은 그렇게 오는가 꽃나무에 처음 꽃이 질 때 느낌은 그렇게 지는가 종이 위의 물방울이 한참을 마르지 않다가 물방울 사라진 자리에 얼룩이 지고 비틀려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 있다 - 이성복, 느낌
09/11/26 02:15
morncafe님//
홀로서기라는 시 좋죠 ^^ 저는 특히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다시 쓰려져 있었다. 이 부분이 좋더라구요. 유유히님//덕분에 오랜만에 좋아하는 시를 읽었네요.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기형도 시인의 '바람은 그대 쪽으로'라는 시도 좋아합니다! 외롭다 그대, 내 낮은 기침 소리가 그대 단편의 잠속에서 끼어들 때면 창틀에 조그만 램프를 켜다오 내 그리움의 거리는 너무 멀고 침묵은 언제나 이리저리 나를 끌고 다닌다 그대는 아주 늦게 창문을 열어야 한다 ...... 좋은 시들 반갑게 잘 읽고 갑니다 ^^
09/11/26 03:36
개인적으로 고교시절 3년동안 짝사랑했던 국어선생님이 좋아하셨던 황동규 시인의 '즐거운편지'가 불현듯 떠오르네요
고교시절 그리운 추억들을 떠올려주게 하는 시이기도 합니다..
09/11/26 09:56
덕분에 좋은 시 많이 감상하고 갑니다. 고마움에 저도 한 편 소개하고자 합니다.
내가 만약 청년으로 다시 난다면 이렇게 하고 싶어라 우선 책을 많이 읽어 지식의 허술한 곳을 남기지 않고 운동을 하되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하여 튼튼하고 멋진 몸을 가꾸리라. 그리고 나의 한가지 특기를 살려 연마하되 기초를 튼튼히 하고 교만하지 않으리라. 사람관계를 소중히 여겨 남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고 늘 친밀한 정분을 나누되 소탈하게 지내고 싶어라. 연애를 하게 되면 그의 성장을 돕되 나를 만났으므로 세상이 괜찮았다는 말은 나오게 해야지. 사람들의 아픔을 알며 나와 세상이 나아짐을 기뻐하고 그것을 위해 계획을 세워 봐야지. 꽃한송이 돌하나에도 배우고 감사하며 많이들어 편견에 빠지지 말고 늘 자신을 살펴야 겠네. 술은 즐기지 않되 친구와 밤늦도록 토론할 정도는 되어야 겠고 음악이 약하니 음악을 많이 들어야지 간단한 악기 하나쯤은 다룰줄 아는게 좋겠지. 그리고 부모님 생각도 좀 해야지. 그래서 나날이 조금씩 조금씩 충만해가는 나를 느끼며 넘어가는 노을을 뿌듯한 가슴으로 맞으며 살아봐야지. 나의 청년 때는 정말이지 교만과 방황으로 얼룩져 있었다. 이런 평이한 바램을 갖게 되기까지 내겐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겸손과 꾸준한 노력을 몰랐고 사람들과 고락을 할 줄 몰랐고 세상을 제대로 볼 줄도 몰랐고 역사의 큰 뜻도 몰랐다. 사람이 된다는 것이 내게 있어선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직도 모자라고 모자라지만 지금이라도 걸음을 가눌 수 있기에 다행으로 여기며 방일하지 않는 걸음을 걷고자 한다. 박재동님의 [청년으로] 라는 글입니다. 주로 청년을 앞 둔 아이들에게, 때론 청년들에게, 가끔은 청년을 지난 선배들에게도 소개하곤 합니다. 후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게 인생이라지만, 그럼에도 후회하지 않도록 치열하게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09/11/26 10:14
레알 소름돋는 시
거미 - 김수영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09/11/26 11:35
"가장 좋아하는 시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보다 몇배는 잔인해요. 하핫;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원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 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문태준, 가재미- 게처럼 꽉 물고 놓지 않으려는 마음을 게 발처럼 뚝뚝 끊어버리고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조용히, 방금 스쳐간 구름보다도 조용히, 마음 비우고가 아니라 그냥 마음 없이 살고 싶다 저물녘 마음속 흐르던 강물들 서로 얽혀 온 길 갈 길 잃고 헤맬 때 어떤 강물은 가슴 답답해 둔치에 기어올랐다가 할 수 없이 흘러내린다 그 흘러내린 자리를 마음 사라진 자리로 삼고 싶다 내림 줄 쳐진 시간 본 적이 있는가? -황동규, 쨍한 사랑 노래- 차가 막힌다고 함은, 도로에 차가 많아서, 아니다, 도로의 수용 능력보다 차의 대수가 많아서, 아니다, 도로의 표면적보다 차의 표면적이 많아서, 이제는 분명하다, 일정한 구간에서 차들의 표면적의 합이 도로의 표면적의 합에 가까이 도달하여, 더욱 분명해진다, 차들의 표면적의 합과 차가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는 필수 여유 공간의 합이 도로의 표면적의 합을 초과할 때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여, 내가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에 그것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다 -김연신, 차가 막힌다고 함은- 맨 위 가재미는 문태준시집 '가재미'에서 그 아래 두 시는 문지300번째 특별시집 '쨍한 사랑노래'에서 본 시들이에요. 시 나름 재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집은 책들중 가장 싼 축에 속하죠;;;;; 하핫;;; 개인적으로는 소설 몇권 사게되면 꼭 시집 하나는 사보려고 노력한답니다. 그리고 소설은 두번 읽으면 대부분 더 읽기 힘들어져도, 시집은 몇번이고 계속 다시 보게 되더라고요. 늦가을... 시집 한권씩 사 보심은 어떠하세요... 하하하하하 (무슨;;; 출판사 관련인같은 멘트로군요;;;)
09/11/26 15:18
국내 시가 많이 나온 관계로, 제가 좋아하는 외국(번역)시를 적는 편이 낫겠네요. (웃음)
<무지개> - 워즈워스 하늘의 무지개를 볼 때마다 내 가슴 설레느니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 다 자란 오늘에도 매한가지, 쉰 예순에도 그렇지 못하다면 차라리 죽음이 나으리라.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 바라노니 나의 하루하루가 자연의 믿음에 매어지고자. 번역이 원작에 50%만 따라가도 대 성공이라면, 저는 이 시의 번역이 상당히 마음에 드는 편입니다. (아닌 분도 계시지만) <로렐라이> - 하이네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찌하여 옛날의 동화 하나가 잊혀지지 않고 나를 슬프게 하는지. 바람은 차고 날은 저무는데, 라인 강은 고요히 흐르고, 산봉우리 위에는 저녁 햇살이 빛난다.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음악 선생님이 독일어 원문 노래로 로렐라이를 부르게 했던 기억이 나네요. 혹자가 별 볼일 없는 로렐라이 뻥튀기라고는 하지만, 강 하나에 서정성을 이렇게까지 부여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에 짝이라면 역시 아래의 시겠지요. <미라보 다리> -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흘러내린다. 내 마음 속에 깊이 아로새기리 기쁨은 언제나 괴로움에 이어 옴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 보면 우리네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살이 저렇듯이 천천히 흘러내린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사랑은 흘러간다 이 물결처럼 우리네 사랑도 흘러간다. 어쩌면 삶이란 이다지도 지루한가 희망이란 왜 이렇게 격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나날은 흘러가고 달도 흐르고 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간다. 우리네 사랑은 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이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비가 내린다>역시 좋아하지만 옮기는 것은 불가능이지요. 그 정말로 내리는 시어들은 원문을 보는 수 밖에 없겠네요. 한편 비슷한 시기 장 콕토의 시 또한 아폴리네르 만큼 재미있는 시들을 썼었죠. <귀> - 콕토 내 귀는 소라 껍질 바다 소리 그리워라 엘뤼아르의 시들도 좋아는 합니다만, 오, “자유”여! 한 마디는 너무 유명해서 생략하려구요. 브레히트의 시 어느 구절은 제목이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력이 떨어졌나...) 구절은 정확히 기억나네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에즈라 파운드에 대해서는 <모벌리> 스스로 무덤을 선택하는 에즈라 파운드의 송시 마지막 구절 ‘그는 사라졌네. / 뮤즈의 영광에 아무 보탬도 못되었던 생애.’ 가 오스카 와일드의 “모든 예술은 전혀 쓸모없다.”는 말과 함께 기억이 납니다. <지하철 정거장에서>는 이게 전문이었던가요? 군중들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이 얼굴들,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그 이후의 시 들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번역되었는가? 보다는 제대로 번역 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강해서, 여기까지가 제가 자신 있게 “나 이 시 외웠다.”고 말할 수 있는 시들이네요. 물론 원문은 못 읽습니다.(웃음) 그 감각만 느낄 뿐이죠. 그래서 프랑스어는 배웠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조금 드네요. 영미권 시는 그나마 이해가 가는데, 프랑스 시는 읽는건 불가능하고 들었을 때 그 운율만 느낄 뿐이니 그게 아쉬울 뿐이죠.
09/11/26 22:20
사랑한다는 것은
이렇게 속으로는 조용히 울고있다는 것을 그대는 모르게 하는일 - 원태연 제 첫사랑이 좋아해던 시에요ㅠ 지금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구요ㅠ
09/11/26 23:13
동상(東牀) 자리를 말아 치우고
떨어지는 잎새처럼 이제 가야겠네 가을이 하얗게 아득한 하늘 햇볕이 문 앞 길에 가득하다 당나라 시대 시인 이하의 시입니다. 정말 좋아했던 시죠. 병든 천재의 젊은 마지막날이 눈앞에 아련히 보이는 듯 합니다. 북소리는 둥둥 인명을 재촉하는데 돌아보니 해는 저물어 가는구나 황천에는 객주집이 없을 것이니 오늘밤은 뉘 집에서 자야 하는고. 성삼문의 사세시입니다. 사춘기 시절 절 사로잡았던 시인데 중2병에 걸렸었는지 -_- 죽음에 관한 시를 참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벌판한복판에꽃나무가하나있소. 근처에는꽃나무가하나도없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열심으로생각하는것처럼꽃을피워가지고섰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 나는막달아났소 한꽃나무를위하는그러는것처럼나는참그런이상스런흉내를내었소 이상의 꽃나무입니다. 이 시도 참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게 되네요. 사춘기병이 깊었을 적 -0- 폐부를 관통하던(?) ...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 平生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줄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이상의 이런 시 중에서 일부... 마지막 시구만 바꾸면 얼마든지 제 마음이라 해도 될 것 같다 생각하지만 늘 떠올리는 건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이 부분이네요. 내 노동으로 오늘도 살자고 결심을 한 것이 언제인가 머슴살이하듯이 바친 청춘은 다 무엇인가. 돌이킬 수 없는 절은 날의 실수들은 다 무엇인가. 그 여자의 입술을 꾀던 내 거짓말들은 다 무엇인가. 그 눈물을 달래던 내 어릿광대 표정은 다 무엇인가. 이 야위고 흰 손가락은 다 무엇인가. 제 맛도 모르면서 밤 새워 마시는 이 술버릇은 다 무엇인가. 그리고 친구여 모두가 모두 창백한 얼굴로 명동에 모이는 친구여. 당신들을 만나는 쓸쓸한 이 습성은 다 무엇인가. 절반을 더 살고도 절반을 다 못 깨친 이 답답한 목숨의 미련 미련을 되씹는 이 어리석음은 다 무엇인가.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 내 노동으로 오늘을 살자고 결심했던 것이 언제인데 내 노동으로, 신동문 시인의 시입니다. 몇 년 전에 참 좋아했었던 시입니다. 거리에 비 내리듯 내 마음 속에도 눈물이 내린다 무엇일까 내 가슴 속 스며드는 이 설레임 대지에도 지붕에도 내리는 부드러운 빗소리여! 답답한 내 마음에 오. 비 내리듯 내리는 노래 소리여! 울적한 내 마음에 까닭 모를 눈물 내린다. 웬일인가! 쌓인 한도 없는데 이 슬픔은 까닭도 없다 이 슬픔 까닭 모르는 괴로운 고통. 사랑도 증오도 없는데 한없이 괴로운 마음이여! 베를렌느의 거리에 비가 내리듯, 입니다. 비오는 날 시의 이해라는 수업을 듣기 위해 아침 9시에 강의실에 갔더니 그날은 선생님이 아닌 시인으로 분하신 분이 칠판 앞이 아닌 창문 곁에서 저 시를 읊으시더라구요. 번역이 아쉽긴 하지만 참 좋아하는 시입니다. +이런 글 너무 좋네요. 댓글들도 너무 좋구요. 유유히님께서 예전에 김삿갓 시 관련 글도 쓰셨던데 아흑... 제가 젤 좋아하는 시인이었는데 한참 뒤에 발견하고 너무 좋았었습니다.
09/11/29 22:59
pgr 글 읽고 눈물이 나기는 처음이네요...
나이 서른에 사무실에 앉아서 이게 무슨 청승인지 모르겠습니다... 유유히님과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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