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야구 해설자 허구연을 감독으로 임명하며 새롭게 출발을 한 청보. 재일교포 투수 김기태, 김신부등을 영입하며 팀의 전력보강을 꾀했지만 - 장명부는 빙그레이글스로 갑니다. - 연패의 늪으로 빠져들고 맙니다. 그리고 전기리그 중반에 허구연은 유학을 명분으로 삼아 지휘봉을 내려놓습니다. 그나마 신생팀 빙그레가 워낙에 허약했던 팀이라 전기리그에서 17승 37패로 6위에 머무릅니다.
후기리그가 개막하기 전에 허구연이 다시 돌아와 지휘봉을 잡았으나 이번에도 성적부진으로 도중에 하차하고 맙니다. 결국 강태정 감독대행을 정식감독으로 올리며 팀을 재정비합니다.
재일교포투수 김신부는 233이닝을 던지며 10승을 올려 팀내 최다승 투수가 되었으며 언더핸드 투수 김기태도 175.1이닝을 던지며 9승으로 팀내 마운드를 뒷받침합니다.
타선에서는 유격수 권두조가 타율 0.162로 단일시즌 최저타율 기록을 세웠으며 - 박진만이 현대유니콘스에서 활약했던 1997년에 타율 0.185로 단일시즌 최저타율 기록을 세웠으나 권두조가 1986년에 세웠던 기록으로 수정되었습니다. - 정구선은 1983년부터 3년 연속으로 차지한 2루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삼성의 김성래에게 넘겨주었습니다.
1987년, 또다시 대형 트레이드가 한건 터집니다.
롯데에서 예전에 삼미에서 트레이드했던 임호균을 다시 청보로 되돌려주었고 "왼손잡이 최동원" 이라고 불리던 양상문 그 외에 배경환, 김진근, 이진우를 청보로 보냈고 청보에서는 2루수 정구선과 투수 정성만, 외야수 우경하를 롯데로 보냅니다.
임호균과 우경하는 리턴트레이드되어 각각 자신의 친정팀으로 되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재일교포 투수 김기태를 삼성으로 보내는 대신에 삼성에서 정현발과 김근석을 받아왔고 이 밖에도 삼성에서 또다시 이해창과 정진호를 보내주었습니다.
롯데에서 청보로 되돌아온 임호균은 173.2이닝을 던지며 9승을 올리며 돌아온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특히 8월 25일에는 해태타이거즈를 상대로 73구 완봉승을 거두며 역대 최소투구 완봉승기록을 세웁니다.
롯데에서 재기불능이라고 판단했던 양상문은 허약한 팀 타선의 지원과 그동안의 혹사로 인해 소진되어버린 자신의 어깨를 가지고도 209.1이닝을 던지며 12승을 올려 재기를 알립니다.
삼성에서 건너온 정현발은 홈런 13개를 때려내며 중심타선에서 활약했고 이해창은 도루 54개를 기록하며 1982년에 해태의 김일권이 세운 그당시 단일시즌 최다 도루기록인 53개를 넘어서며 도루부문 타이틀을 차지합니다. 그리고 이 타이틀은 인천구단이 처음으로 차지한 공격부문 타이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 주전포수로 활약할 김동기가 타율 0.277, 홈런 9개를 기록하며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었고 특히 앞으로 있을 "선동렬 킬러" 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 특히 선동렬은 5월 21일에 김동기와의 맞대결에서 김동기에게 볼넷을 주고 발을 잘못디뎌 허리부상으로 결장하게 됩니다. -
하지만, 원체 약했던 팀의 타선과 마운드는 청보를 강팀으로 끌어올리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그때까지 팀을 이끌었던 주축타자인 김진우가 교통사고와 팀내 불화로 인해 인천구단에서의 선수생활이 불투명해졌고 양승관도 부상으로 앞으로의 선수생활이 불투명해졌습니다.
그리고 청보그룹의 적자는 쌓이고 쌓여 더이상 구단을 운영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결국 태평양그룹에게 구단을 매각합니다.
1987년 청보의 성적을 살펴보자면 전기리그 18승 36패로 꼴찌, 후기리그에서도 23승 29패 2무로 빙그레, OB와 공동 꼴찌를 합니다. 종합순위는 41승 65패 2무로 꼴찌.
"투수왕국" 태평양돌핀스 8년사로 이어집니다.
모든 기록은 아이스탯(www.istat.co.kr)에 있습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