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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9/23 23:3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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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일반] 신해철의 숨은 명반 - 비트겐슈타인 1집 (2000)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 1집 - Theatre Wittgenstein Part.1 A Man's Life

□ 트랙 리스트

01 Theatre Wittgenstein Part 1
02 백수의 아침
03 Friends
04 Theatre Wittgenstein Part 2
05 오버액션맨        
06 Cynical Love Song
07 수컷의 몰락 Part 1
08 Theatre Wittgenstein Part 3
09 소년아 기타를 잡아라
10 Pressure        
11 수컷의 몰락 Part 2          
12 Dear My Girlfriend



요근래 자유게시판에 음악 관련 글들이 자주 올라오니 눈과 귀가 즐겁네요.
저도 시류(?)에 슬쩍 끼어들어, 추천하고픈 음반 하나 소개해볼까 합니다.

바로 저 위의, 요상스런 재킷 사진의 주인공인 비트겐슈타인의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이죠.
어느덧 발매 10년이 다 된 지금 들어도 꽂히는, 허나 폭발적인 반응은 얻지 못했던 '숨은 명반'입니다.  

*

발매까지의 개략적인 과정은 이렇습니다.

1997년 <라젠카> 앨범을 끝으로 넥스트가 해체한 후, 리더 신해철은 홀홀단신으로 영국에 건너갑니다.
나머지 멤버들(김세황, 김영석, 이수용)은 솔로 활동중이던 패닉 멤버 김진표를 영입, 노바소닉을 결성하죠.

이후 2년여간, 신해철은 모노크롬이란 이름으로 두 장의 테크노 앨범을 발매합니다.
현학적 가사, 낯선 사운드로 그의 추종자들마저 시험(?)에 들게 했다는 문제작들이었죠.
(개중에 <일상으로의 초대>는 대박을 쳤습니다만..)

그렇게 두문불출하던 신해철이 2000년 무렵에 귀국, 데빈과 임형빈이란 두 꽃미남
기타리스트를 영입하여 결성한 프로젝트 밴드가 바로 '비트겐슈타인'입니다.

*

앨범 타이틀은 A Man's Life, 즉 남자의 인생입니다.

카리스마로 대변되던 신해철이 어깨의 힘을 쫙 빼고 (이 땅에서의) 남자의 삶에 대한
자기 생각들을 담담하고도 일관적으로 풀어낸 작품이죠.
총 제작비도 150만원이랬나 300만원이랬나, 여하튼 극히 저렴했노라 밝혔던 바 있습니다.

소리에 깊지 못한 제가 싸운드가 어쩌니 논할 그릇은 못되기에,
가사에 확 갔던 몇 곡을 꼽아봤습니다.

*

Track 2. 백수의 아침



『늦은 아침 빛나는 햇빛 사이로 울 엄마 모진 시선 부담스러워
오늘은 어디를 갈까 일단은 나서고 볼까
길가는 나를 보는 동네 시선들 그 무슨 뜻인지 난 너무 잘 알아
하지만 무시해야 해 웃기네 너네나 잘해

세상은 내가 없이도 잘만 돌아가고 있지만 난 한방 터뜨릴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봐 조만간 기대해봐

세상이 나를 몰라보는 것은 도대체 무슨 영문 때문일까
아니면 세상을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일까
어쨌든 뭐가 되든 언제 되든 되긴 될 테니까 보라니까
믿거나 말거나 나의 때는 곧 와 언제일지 모르지만 난 자신이 있어

내가 허풍 좀 쎈건 나도 인정해 내게서 그걸 빼면 뭐가 남겠어
신날 땐 재 뿌리지마 사실은 나도 좀 초조해』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인 이들의 심금을 찌르는 가사죠.
특히, 하는 것 없이 게으르고 교만하기만 했던 저를 까발린 듯한 리릭에 소름까지 살짝 돋았었더랬습니다.

세상은 내가 없이도 잘만 돌아가고 있지만, 난 한 방 터뜨릴거야ㅡ 아아 이 공허한 외침이여..
문제는, 지금도 저는 이 가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네요 헐헐.



*

Track 3. Friends



『오랜 둥지를 떠나 저마다 앞의 하늘을 날아간 친구들아 지금 모두 어디 있니
누구는 잘 나간다 하고 누구는 무지 힘들게 살았대 누구는 벌써 아깝게 삶을 접었대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이 맘에 드는 모습은 아니지만 하지만 나
지금 이대로 우리 다 이대로 그냥들 열심히 사는게 내겐 너무 좋아만 보여

옛 동네 어느새 변해버리고 우리도 딱 그만큼 변해버렸지만
죽는 날까지 가져갈 우리 기억들 또 약속들

오늘 하루는 그 모든 근심들을 버리자ㅡ 추억의 향기로 취하기 전에 그 술잔을 들어라』


도입부의 웅장한 전주로부터 감성을 뒤헤집는 가사까지, 김태원 형님식으로 표현하자면 아름다운 곡입니다.
본 앨범에서 가장 좋아라 하는 곡이기도 하고요. (흥신월드 한창 할 무렵 1년 넘게 BGM으로 깔아놨던)



*

Track 6. Cynical Love Song



『그건 그저 잠깐이야 눈에 씌였던 뭔가가 벗겨지는건
좋아 보이던 모든 부분들이 이해가 가던 모든것들이 대체 왜 저러나 싶어져

아주 그저 순간이야 흔한 순진한 꿈에서 깨어나는 건
옷에 뿌려진 향수는 흐려지듯 오래된 사진은 바래어지듯 언제 그랬던가 싶어져

어차피 그는 그만의 그녀는 그녀만의 꿈을 꿔 잠시 겹칠 뿐이야
어차피 나는 나만의 그쪽은 그쪽의 길이있어 착각하지 마

내게 너무 많은 기대는 하지 말아줘 나를 너의 그림 안에다 넣지 말아줘』


정석원류의 애정분석학과는 확실히 다른 맛이 있죠.
제목 그대로 냉소적인 사랑가(歌).



*

Track 7. 수컷의 몰락 Part 1



『싸움에 지고 꼬랑지를 내린 녀석의 구슬픈 낑낑소리는 사실, 언제라도 당신의 것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이건 뭐 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다지 공평한 종류의 게임은 아니다

도전하지 않을수록 안전하며 눈에 띄지 않을수록 오래 버티지만, 그 결과는 초라하다
무모함 객기 이런 것들마저 상실한 채 찌꺼기를 줍는 녀석들ㅡ 거세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먹을 것을 찾아 배를 채우고 암컷을 차지해 번식을 해야하는 그 숙명 뒤에도
싸움은 끝없이 이어지며, 그 뒤엔 노쇠와 몰락이 찾아온다

수컷들이란 절반의 허세 그리고 절반의 컴플렉스로 이루어져 있다ㅡ
배를 잔뜩 부풀린 복어의 낯짝이 사실은 새파랗게 겁에 질려있는 것처럼

웃기는 건, 섹스할 때도 무능력해보일까 초조해하는 의외의 소심함이지만
웃기지도 않은 건, 그러고 난 뒤에 허탈해하고 고독해하는 의외의 예민함이다

그러니 허세의 대가란게 꽤나 비싸다
약한 척도 안되고 변명도 않되고 남자답게 사내답게라는 그 말 안에 스스로 고립 된다

대통령이야 과학자야 하던 꿈은 의외로 빨리 사그러진다ㅡ 그 빈자리에 밤마다
술을 들이붓고 나이 40에 간암으로 갈 때까지 마누라와 새끼들을 위해 일하고 일하고 일한다

어디가서 살기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흐느껴 울 데도 없는 게 수컷들의 불쌍함이긴 하지만,
솔직히 수컷들 청승떠는 소리만큼 듣기 싫은 소리도 없다

한밤중의 산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서울은,
교회 십자가와 수컷들이 꿈속에서 남몰래 내지르는 신음 소리로 가득 차있다』


넥스트 1집(1992)의 <아버지와 나>의 연장선상에 있는 곡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버지와 나>가 아직은 어린 화자의 눈으로 그려낸 아버지(남자)상이라면 <수컷의 몰락>은
그 아버지의 나이에 가까워진 화자가 더 많은 것들을 직접 겪고 토해낸 또다른 남자 이야기랄까요.

가사 전체를 관통하는 신랄함에 역시 신해철이구나 하는 감탄을 금할 길 없습니다.
'요새 한창 욕먹었던' 신해철이라는 선입견을 걷어낸다면 말이죠.

일단 네 곡만 꼽아봤습니다만,
나머지 트랙들도 하나같이 재기넘치는 수작들이니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

사람은 역시나 예전 추억에 가산점을 주게 마련인지, 저는 넥스트 초기작이나
신해철 솔로앨범, 그리고 요 비트겐슈타인 프로젝트의 곡들이 좋더군요.
넥스트 5집 이후의 곡들에 그다지 꽂히지 못한 탓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의 신보도 영..)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나 100분 토론이 아닌, 가사와 멜로디로 어필하던 마왕의 모습이 그립지만,
그분이 제가 해달라는대로 해줄 양반도 아니니 어쩌겠습니까 헐헐.

그저 <나에게 쓰는 편지>나 <영원히>, <오션>처럼 10년, 20년 후에 들어도
빛이 바라지 않을 명 넘버들이나 계속 만들어줬으면 하고 바랄 뿐입니다.

*

참고로 신해철의 비트겐슈타인 활동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이소라의 프로포즈 외엔 딱히 방송에 나왔던 기억이 안떠오르는군요)

그리곤 2004년께 넥스트를 재결성, 몇 차례의 멤버 교체와 함께 지금까지 오고 있습니다.

데빈은 5집 <개한민국>부터 넥스트 정식 멤버로 편입되어 5.5집까지 함께 했으며,
임형빈은 2002년에 Vink란 이름으로 솔로 앨범을 발표했지만 큰 반응을 얻지 못한채 어딘가로......

*

늦게나마 Theatre Wittgenstein Part.2가 나와줬으면 하는, 비현실적인 소망과 함께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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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23 23:38
수정 아이콘
Vink 임형빈씨가 참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후에 솔로음반도 그렇고 다른 가수에게 준 곡들도 괜찮았었는데...
데빈 리는 쭈니랑 같이 닥터코어911로 간거 같더군요...
태공망
09/09/23 23:39
수정 아이콘
제가 고등학교 시절 친구녀석에게 영향을 받아서 테잎이 늘어져라 들었던 앨범이네요..
09/09/23 23:41
수정 아이콘
"wittgen wittgen wittgen 웃기는 전자 가극단" 이 나름 인상적이였던 엘범 이였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명반이나 기억에 남는 엘범은 아니였습니다.
Randy Rhoads
09/09/23 23:43
수정 아이콘
그래도 넥스트는 4집이 진리인듯...
이번에나올 6집 파트2 엘범도 기대중..
deathknt
09/09/23 23:43
수정 아이콘
언젠가 인터뷰를 본 기억이 있는데, 언젠가 돈이 없을때(?) 비트겐슈타인 2집 할거라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모노크롬이 상당히 마음에 든 앨범이었습니다.

언젠가 모노크롬도 숨겨진 명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09/09/24 00:03
수정 아이콘
모노크롬. 이건 신해철 음악생에서 전에도 후에도 없을 최고의 명반이 될거야!라고 고등학교 시절 주위 넥스트와 신해철 팬 친구들에게 거의 강요하다시피 들려주곤 했었지요.

반응은 참담... 후에 99crom live 앨범이 나왔을때 다시 들은 친구 몇몇은 괜찮다는 평을 주기도 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라이브앨범을 더 좋아합니다.

비트겐슈타인 앨범은 전 처음에 나온줄도 몰랐다가 테잎 구입한 친구 하나가 아 이거 영 별로네하고 툭 던져 주길래 넙죽 받아 들어보고는 흠뻑 빠져들어 고3 수험생활 내내 끼고 살았었지요. 노래들이, 뭐랄까 투박하고 거친 남자의 노래같은 느낌? 크크크

넥스트는 3집이 포텐 폭발이라고 많이들 그러시던데 제게는 4집이 본좌. 그 세련된 사운드란...

작년 발매한 6집 싱글 part1 듣고 조금은 기대중입니다.

6집 발매 콘서트도 갔었는데... 해철이형 많이 노쇠한거 같아 조금 가슴이 아프더군요. ㅠㅠ
abrasax_:JW
09/09/24 00:11
수정 아이콘
절 화나게 하는 앨범 자켓이네요.
펩시보다콬
09/09/24 00:23
수정 아이콘
아 저는 이 엘범 정말 정말 좋아해요. 남자의 노래!!
태바리
09/09/24 00:41
수정 아이콘
계속된 변신속에서도 동전의 양면같은 음악성과 대중성을 놓지 않는 몇안되는 인물이죠.
이때까지가 좋았죠.
글쓴분 말씀처럼 힘을 빼다보니 너무 뺀건지 파워가 필요한 넥스트 이후 앨범은 솔직히 많이 실망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교주의 모습은 이게 아닌데...
Rocky_maivia
09/09/24 00:44
수정 아이콘
왜 비트겐슈타인인가? 라는 질문에 단순히 발음이 맘에 들어서 쓰고 있다라는 대답이 기억이 나네요.
확실히 데빈리와 이별한건 정말 아쉽네요.
비트겐슈타인은 발매당시에는 꽤 외면받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좋게 재평가를 받게되었죠.
타이틀 오버액션맨이 너무 앞서가는 실험적 음악이었다고 해야될까요;
저도 명반은 모노크롬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뭐 그 뒤로 나오는 앨범에 불만이 있는건 아닙니다.
단지 라이브 실력이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끔 점차 감퇴한다는 느낌이 아쉽죠.
Spanish Coffee
09/09/24 01:20
수정 아이콘
1996년의 정글스토리 OST도 秀作이라 생각합니다.
임효환
09/09/24 01:57
수정 아이콘
일상으로의 초대 명곡이죠.
EX_SilnetKilleR
09/09/24 02:09
수정 아이콘
비트겐슈타인 앨범 오랜만에 보네요. 뭐랄까. 세련되고 정갈해진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중학교 시절 오지게도 많이 들었었는데. 그래도 마왕은 아직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게하는 몇 안되는 인물들 중 하나니까요..

넥스트 4집정도의 파워는 바라지 않더라도, 이번 6집 파트 2는 조금 기대가 되고 있습니다;
아침싫어은둔
09/09/24 02:24
수정 아이콘
가끔...놀라는 것이... pgr자게에는 우연하게도 나의 일상과 맞아 떨어지는 것들이 툭툭 올라온단 말입니다.
우연하게도 오늘 전 신해철씨를 만나고 왔습니다.
2시간 가량의 인터뷰....음악에 관한 대화는 아니었지만...하여튼 이런 우연히 신기하군요. 오늘 들은 목소리와 약간 만들어낸 저 노래들이 묘한 대비를 이루는군요. 그나저나 담배를 나보다도 많이 피우더군요....몸이 안좋은 것 같아 걱정되던데...하여튼 신기한 맞아떨어짐. 재미있네요.
토쉬바
09/09/24 09:21
수정 아이콘
모노크롬!!!!!!!
최근에도 다시 찾아서 듣고 있지만, 정말 파격적이고 신선한 명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앨범을 통하지 않고선 이런 노래들은 다른곳에서 들을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들어도 현란하고 파워풀한 사운드란..와우!
09/09/24 11:10
수정 아이콘
비트겐슈타인으로 처음 나왔을 때는 평단이고 리스너고 할 것 없이 아주 융단 폭격이었죠. 특히나 평단에서 인디씬을 밀어주려고 90년대 싱어송 라이터들 까는 건 노골적인 수준을 넘어 악의적이기까지 했었는데...
ArcanumToss
09/09/24 11:48
수정 아이콘
저는 넥스트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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