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일간에 기간에 맞지 않는 고온 현상을 해소해줄 단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것을 보며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가 이런 날씨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좋아했다. 그러나 이런 날씨는 그가 오늘 하고자 했던 '계획'을 뒤로 미뤄야 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자살"
이 것이 그가 하고자 하는 '계획'의 목표였다. 그런데 날씨가 이렇게 우중충하면 혹자는 "극도로 예민한 상태에서 날씨로 인해..." 라는 식의 추측을 해버릴 것이다. 날씨와 관련해서 이유를 멋대로 추측하면 곤란하니까, '계획'은 미뤄졌다.
누군가 그에게 자살을 할 이유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라고 답할 것이다. 그는 딱히 인생에 절망한다던가 도무지 넘을 수 없는 슬픔에 사로잡히지도 않았다. 단지 이 것은 '욕망'일 뿐이다.
언제부터였던가. 그는 '자살'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단어만을 보았을 뿐인데, 이 단어는 점점 그의 사고를 정지시키고 그의 모든 것을 사로잡았다. 일견 맹목적이면서도 무목적인 이유. 그 생각은 몇 년의 시간에 걸쳐 점점 커져갔고, 4년이 넘는 고민 끝에 그는. 드디어 '자살'을 결심했다.
계획도 모두 세워놓았다. 우선 자살의 방법. 뛰어내리는 것으로 정했다. 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순수하게 부셔뜨릴 방법이 딱히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뛰어 내리는 장소는 학교 건물 옥상. 그는 그가 다니는 학교의 건물이 맘에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건물 아래에 바닥이 딱딱한 시멘트 바닥이라는 것이다. 만약이지만 떨어져서 살아남으면 곤란하니까
비가 그치고 해가 떠올랐다.
그는 옥상에 올라갔다.
사람들은 그가 왜 자살했다고 생각할까. 그의 일기장을 보면서 그가 심심해서 끄적거렸던 글들을 보고 '이런 아픔을 가지고 있었나'하고 멋대로 이유를 가져다 붙이겠지. 인간이라는건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이유가 없으면 불안한 법이니까.
신발을 벗고 난간 위에 올라섰다.
찬 바람이 분다.
시원하겠구나
라고 그는 생각했다.
왜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신발을 벗을까?
혹자는 자살하는 사람이 '그 마지막 모습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하는 이상행동' 이라고 한다.
틀렸다.
그는 뛰어내리는 사람들이 신발을 벗는 이유를 알고 있다. 아니 적어도 왜 자신이 신발을 벗는지는 알고 있다.
타인에게 밀려서 떨어진 것이라는 타살의혹이나 사고사라는 추측을 없애기 위해서다.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놓았으니 스스로가 뛰어내리는 것이 확실해지지 않는가
그는 시선을 내려 아래를 본다. 사람들은 아직 그의 존재를 눈치 못채고 있다. 기회다. 그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한걸음. 난간 앞으로 내딛었다.
떨어져간다.
역시 바람이 시원하다.
점점 지상이 가까워짐을 느낀다.
아아 자살이구나. 이 것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는 것일까.
그는 이 짧은 시간에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fin.
PS. 음.... 제 싸이를 다시 보던 중 4월달에 저런 내용을 혼자서 끄적거린 걸 보고
도대체 저는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인가 궁금해졌습니다.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어떤 느낌으로 썼던 것일까요?
참고로 저는 자살 자체를 매우 싫어하는 사람입니다만...
뻘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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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잘읽었습니다. 관념적인 글 치곤 문체가 깔끔하여 보기 좋았습니다.
그 어떤 생물도 진정한 自殺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소설, 논설 등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글쓴이께서는 아무도 확답을 내리지 못 한 완전한 자살을 표현하려 하신 것 같다면 저의 과대해석 일려나요.
적어도 그와 비슷한 존재를 지우는 것에 집착하는 남성을 그리려 하신 것 같은데
뭔가 단편이라기보다 장(掌)편에 가까운 글이 뜻하신 바를 담으시기엔 너무 부족해보이는 군요.
그냥 가볍게 읽고 넘어가기엔 아쉬운 맛이 있는 글이기에 좀더 무게를 두고 쓰신다면 좋은 글이 나오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