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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05 12:53
경제학은 몰랐어도 적어도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 정도는 알았겠죠. 문제는 재정이 그런걸 해야겠다 마음먹을 정도로 파탄이 나있었다는 것일테고...돈에 쪼들리는 사람이 더 도박을 하듯이요.
15/07/05 11:38
영조와 정조 때 이른바 전황이라는 걸 겪어 보았고, (두 전황의 성격이 다르긴 합니다만) 영조 대의 경우는 대규모 주전을 통해서 사태를 해결 해봤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정조 대의 전황은 시전에 돈이 돌지 않았던 경우라, 돈 엄청 찍어도 결국 난전이나 밖으로 다 돌아버렸던 경우)
이 후에는 말씀 하신대로 규모에 비해 주전이 자꾸 못따라 갔던것으로 보입니다. 대원군의 삽질 이후에도 서양에서 온 재정고문인 묄렌도르프의 건의로 당오전 열심히 찍었다가 한 번 더 악화(惡貨)남발.. 이거도 액면가가 5인데 실제가치가 상평통보의 2배가 안되었다고 합니다. 동서를 막론하고 악화 남발은 통치자 입장에선 매력적인 카드이긴 하죠. 돈놓고 돈 먹기 하는 기분인지라.. 그게 쥐약이라 문제(....)
15/07/05 12:41
이야. 당백전 수익률 처참하네요.
전에는 일본의 예처럼 만약에 대원군시기에 약간 노력했다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했었는데 그냥 답이 없던 시절이였군요.
15/07/05 13:07
그래도 당시 유럽 같으면 딴나라 화폐도 존재하기 때문에 저런 악화 발행하면 바로 자기 화폐는 지지 치겠다는 거니
저렇게 막나가지는 않죠. 딴나라 양화를 쓰게 되니까요. 물론 조선도 그점때문에 청나라 화폐를 많이 썼습니다. 그 청나라 화폐가 상평통보보다는 악화라 문제지. 아마 저런 단시간 통화량 증가는 전설적인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초기와 짐바브웨나 가능할 거 같습니다.
15/07/05 13:47
이런 상황인데도 당시 조선에 자본주의 맹아론 이니 자생적 근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고 하니 코웃음이 나오는거죠. -.- (다행이 요즘에는 다 폐기됐다고 하더군요.)
15/07/05 15:45
통화팽창을 통한 시장개입, '화폐발행권자' 양반의 통화가치조작+자본편취는 나름 '근대적' 행위이자 '자본주의'적인 행위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니 근대니 하는 물건들이 긍정적이기만 한 물건은 아니니까요. 자본주의 맹아론과 자생적 근대화론이 가지는 최고의 문제점은 '근대화'와 '자본주의'에 대해 제대로 정의를 내리지 않았다는 점, 근대화의 경우 '어떤 긍정적인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형태로 사용하고 있다는 지점에 있다고 봅니다. 그것이 '뭔지'도 이야기 하지 않고 역사속에서 해당 사례를 찾으려 했으니 성공하기 어렵죠. (식민지 근대화론 굴리는 양반들도 이 부분은 유사하긴 합니다만, 그쪽은 몇가지 '수치증가'를 근거로 삼는 것에서 역산가능한 근대화나 자본주의의 정의 '비슷한 것'을 가지고 있긴 하다는 점에서 이 기준상 좀더 낫긴 합니다...)
15/07/05 15:15
백과사전 여러군데를 참고했는데
-사실 나무 위키도 거기 인용 같더군요- 다른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죠? 좀 알려주시죠
15/07/05 18:39
당백전이 마치 조선에만 있었던... 재정확보를 위해 굉장히 획기적이고 백성들 엿먹이기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당백전 자체는 전혀 새로운 게 아닙니다. 한반도에서야 화폐보급이 17세기가 되어 성공해서 그 전에 이런 사례가 없었던 것이지, 중국에서만 해도 당백전과 비슷한 화폐가 통용되지 않은 시대가 거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고대로 가 촉의 직백이나, 오의 당천전같은 엽기적인 화폐는 굳이 얘기 안 하더라도, 당나라만해도 일당십이니 일당오십이니 하여 대전을 통용했고, 명나라도 당십, 당오, 당삼 등등 뻥튀기 된 화폐 자체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조선 태종만 하더라도 저화라 하여 종이돈을 만들어 녹봉을 죄다 저화로 줘버리고 국고의 쌀도 저화로 사버리는 엽기적인 행각까지 벌입니다. 이후 저화의 가치 폭락은 이루 말할 것도 없었고 후에 폐지되는데, 조정에서 그 가치하락이나 폐지 됐을 때의 손실을 책임 졌을까요? 조정에서도 과거 사례를 들어 당백까진 아니더라도 당오나 당십전을 만들어 통용하자. 이런 건의는 영정조 때부터 나옵니다. 그럼에도 화폐는 유통이 목적이니 이익창출이 목적이 아니고 폐단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으니 조심해야한다고 계속 미루고 미루다가, 흥선군 때 경복궁 화제 사건이 터져 엄청난 논의 끝에 유통한 겁니다. 그냥 한탕 해먹자 브라보. 하며 한 게 아니에요. 당백전 유통을 할 때도 엄청난 논의가 있었고, 그러고 결정한 겁니다. 또 조정에서는 이 화폐의 가치 하락을 막지 않기 위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애당초 저화도 그렇고 당백전도 그렇고 조정에서는 이 화폐를 진짜로 유통시키고 사용할 목적이 있었습니다. 군포도 당백전으로 걷으려고 했었고, 중간 관리들이 계속 당백전으로 인한 수취를 거부하자 이에 대한 처벌도 계속 했어요. 그럼에도 명목상 수십배에 달한 화폐의 신용은 올라가질 않았고, 개인이 돈을 만들어 유통하는 폐해가 계속 생겨서 유통을 중단한 거지요. 또한 당백전 유통량에 대해서도 진위가 불분명한데, 현대에 너무나 당연시 언급되는 1천 6백만냥이라는 숫자의 원 출처가 1970년대 출판된 한국화폐소사에 나온 기록이고 이후 아무런 연구도 없이 그냥 당연하게끔 이 숫자를 말해버립니다. 사실 조선 화폐사 자체가 연구가 미진하여 당백전의 폐해가 어느정도인지, 유통이 어느정도나 통용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가 정답입니다. 당백전의 유혹을 흥선군이 못 피해나갔다는 문제는 분명 있지만, 무슨 짐바브웨를 언급하는 건 정말 오바중에 오바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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