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R21.com
- 자유 주제로 사용할 수 있는 게시판입니다.
- 토론 게시판의 용도를 겸합니다.
Date 2015/06/10 02:23:16
Name 소주의탄생
Subject [일반] 한잔하고 들어가자
대학교 다닐때 용돈을 안받고 1년반 정도 다닌적이 있다.

고시원비는 한달에 25만원이었고 여차저차 생활비해서 한달에 들어가는돈은 약 50~60만원 이었다. 통신비에 밥값까지 다 충당해야했으니
당연히 여자친구는 생각지도 못했고 일주일에 5일은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좀 더 높은 시급의 아르바이트를 찾다가 학원에서 수학강사를 하니 조금은 나아지더라. 시급도 좋고 일하는 환경도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두 달 정도 생활하고 나니 어느정도 여유가 생겼다. 친구들 만날 시간도 2주에 한번정도는 생기고 고향에 내려가는 일도 한달반에 한번정도는 내려가고 사실 내려가는 차비가 굉장히 아까웠다. 왔다갔다 거의 6~7만원 정도였다.

사실 굉장히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술자리보다는 술이 좋고 안주들어갈 배에 술을 집어넣는 전형적인 술꾼이었다.
집에서 지원이 끊기고 나서 부터는 술을 입에 대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너무 몸이 힘든 상태였고 술 값마저 아깝게 느껴질 상황이었으니

친구들은 굉장히 의아해했다. 그 좋아하던 술자리를 이래저래 핑계대면서 빠지게되니 어느순간 난 친구들 모임을 싫어하는 친구로 되어있었고 해명할 기회도 없이 친구들과는 연락이 끊겼었다. 물론 시간적인 여유도 있지 않았지만..

학원강사를 하면서 여유가 생겨 한 잔 하고싶어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보았지만 내가 되는시간에는 보통 다 되지않는것이 일쑤였다. 일부러 피한것이거나.. 그래서 자연스레 집가는길에 편의점에서 소주한병과 라면하나를 사가는게 또는 조금 돈이 있으면 맥주를 사가는게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세 달 정도 지냈다. 방학이 끼어버리니 자연스레 친구들과는 더욱더 멀어지게 되고 재수까지하며 온 파란만장하고 풋풋한 대학생활은 잠시 혼자 소주 마시는 날도 늘어만 갔다.

그러던 어느날 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xx야 한잔하고 들어가자'
무슨소리인가 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내가 주로가던 편의점에 내가 가는시간 바로 전타임 아르바이트가 그녀석이었던 것이다.
뒤 알바한테 얘기를 들었는지 어쨋는지 알았나보다.

그렇게 근처 술집가서 한 잔 하기로 했다. 그런데 메뉴판을 보니 너무 비싼것이었다.
안주하나에 기본적으로 15000원 이상되는... 그래서 가장 저렴한 안주를 찾던 차에 그 친구가 참치 타다끼와 사케 하나를 시키는것이 아닌가.
사실 참치 타다끼와 그 친구가 시킨 사케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안주와 사케였다. 괜시리 눈물이 앞을 가리더라.

그리고 한잔 두잔 먹다보니 얘기가 나오게 되고 내가 그럴수 밖에 없던 이유와 상황등.. 술이 들어가다보니 얘기하게 되었다.
사실 혼자가 아닌 누군가와 술먹는건 굉장히 오랜만이라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나 보다.
그리고는 시간이 2시가 다 될무렵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값은 그친구가 계산을 했더라. 얼마간의 돈을 주려고 했지만 한 사코 거절하더니
그 친구가 다른 말은 안하고 딱 한마디 하더라
'xx야 다음에도 한잔하자'

그 이후 다른 친구들과 억지로 연락하며 가끔 술 한잔씩 했다. 그리고 점점 소통이 되고 트이는듯 했다.
근데 날 그때 불러낸 친구는 학교에서 보이지 않더라. 소식을 물어보니 집안 형편상 휴학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하더라.
가끔 전화를 했지만 서울에서는 볼 수 없었다.


그리고 6월 10일 그 친구의 기일이다.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일찍 가버렸다. 그 친구 장례식장가서 사진을 보는 순간 그 친구가 했던말이 떠올랐다.

'한잔하고 들어가자'

'다음에도 한잔하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냥 불러내서 술 한잔 하고 그냥 하는 말로 다음에도 한잔하자고 한 말이 뭐가 그렇게 의미가 있냐고..

지금도 참치타다끼와 사케는 그 이후에 먹지 않았다. 오직 그 친구와 먹기위해 남겨 놓았던 메뉴이기때문이다.

기일에 그 친구 고향에는 내려가지 못하지만 난 그 친구와 함께 있는거 같다.
어디서 구해온 참치타다끼와 사케..
그리고 두개의 잔과 함께 마시고 있다.





통합규정 1.3 이용안내 인용

"Pgr은 '명문화된 삭제규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분을 환영합니다.
법 없이도 사는 사람,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분이면 좋겠습니다."
15/06/10 03:02
수정 아이콘
가슴이 먹먹하네요. 잘 읽고 갑니다.
평안한 밤이 되시길.
15/06/10 05:23
수정 아이콘
댓글1에 추천수 29라니 실례지만 처음에는 조작인줄 알았네요 근데 좀 찡한 글을 읽었습니다.
15/06/10 06:42
수정 아이콘
눈물이 핑 도는 글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비익조
15/06/10 06:43
수정 아이콘
6월 14일이 제 친구놈 기일입니다. 군대에서 열사병으로 세상을 떠난 친구라 대전에 있는데 저도 잔 하나를 더 둬야 겠습니다. 아침부터 먹먹해지고 갑니다.
커피보다홍차
15/06/10 06:48
수정 아이콘
먹먹합니다. 그래도 잘 읽고 갑니다.
크로우
15/06/10 06:52
수정 아이콘
잘 읽고 갑니다.
15/06/10 07:36
수정 아이콘
아련한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15/06/10 08:05
수정 아이콘
술 하나 기억 하나 곱씹고 싶은 글이네요.
15/06/10 08:26
수정 아이콘
멋진친구네요.
15/06/10 08:35
수정 아이콘
조금 일찍 간 녀석이 생각납니다.
15/06/10 08:59
수정 아이콘
닉넴보고 또 4번째 문장까지 읽으면서 소주에 관한 이야기인가 하면서 읽다가.....ㅠ 먹먹해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스위든
15/06/10 09:01
수정 아이콘
멋진친구분을 두셨었네요
잘읽고갑니다~!
기다림
15/06/10 09:24
수정 아이콘
일찍 간 친구에게 추천해준 뒤로 영화가 마음에 들었는지 만날 때마다 다른 영화 추천해 달라고 했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그때 추천했던 나폴레옹 다이나마이트 오랜만에 봐야겠습니다
윌모어
15/06/10 09:58
수정 아이콘
제가 다 마음이 먹먹해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파란발바닥
15/06/10 10:15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좋은 곳에서 지켜보고 계실겁니다.
15/06/10 10:20
수정 아이콘
술을 매우 싫어하는 저도 둘의 멋진 우정아래 맥주캔을 따게한 글이네요. 덕분에 잘 읽고 잘 마시다갑니다
오상현
15/06/10 10:25
수정 아이콘
누르고 갑니다..
코코볼
15/06/10 10:27
수정 아이콘
101번째 추천찍구 갑니다. 좋은글 잘봤습니다.
견우야
15/06/10 10:41
수정 아이콘
추천하고 갑니다.
견우야
15/06/10 10:52
수정 아이콘
3월 28일 이후로 추천게시판으로 가는 글을 볼 수 없는데..
이 글은 반드시 추천게시판으로 가서... 훗날 많은 분들이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길 바랍니다.
15/06/10 11:14
수정 아이콘
누구든 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이 나이대엔 말이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우주모함
15/06/10 11:18
수정 아이콘
소설의 한 장면 같네요.
15/06/10 11:58
수정 아이콘
성불하셨을 겁니다. 종교적 의미는 아니구요. 뭐라 떠오르지가 않아서.
좋은 친구 두셨네요. 두 분 다요.
*alchemist*
15/06/10 13:13
수정 아이콘
두분께선 참 좋은 친구이십니다...
기승전정
15/06/10 14:58
수정 아이콘
갑자기 친구분 기일이야기 하시니까 해태의 김상진선수도 오늘이 기일입니다. 이 글읽으니까 울컥하네요.
도토레
15/06/10 15:55
수정 아이콘
오늘 친구와의 술자리가 의미깊어질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명박
15/06/10 16:35
수정 아이콘
행복할겁니다
SarAng_nAmoO
15/06/10 16:49
수정 아이콘
..참..요새 친구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다던 제게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네요. 추천드리고 갑니다.
목록 삭게로! 맨위로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추천
58943 [일반] 약국 단상#3 [30] 황금동불장갑3432 15/06/10 3432 10
58942 [일반] 정신질환자 아버지와 살아가는 이야기 [44] 삭제됨6142 15/06/10 6142 11
58940 [일반] 87년, 6월, 민주화 [14] SaiNT3467 15/06/10 3467 14
58939 [일반] 음, 그러니까 이게 특수 상대성 이론이라 이거지... [112] Neandertal11983 15/06/10 11983 9
58938 [일반] 약국 단상#2 [41] 황금동불장갑4569 15/06/10 4569 29
58937 [일반] [KBO] 오피셜 NC 새 외국인 투수 계약 [30] 지구특공대5865 15/06/10 5865 0
58936 [일반] 약국 단상#1 [29] 황금동불장갑4574 15/06/10 4574 8
58935 [일반] [MLB] 샌프의 헤스턴 2015 첫 노히트 달성!! [10] ll Apink ll3334 15/06/10 3334 0
58934 [일반] [해축] 어제의 bbc 이적가십 [25] pioren4481 15/06/10 4481 0
58933 [일반] [축구] 호날두 vs 마라도나 비교 [221] 리동궈14303 15/06/10 14303 3
58932 [일반] 奇談 - 열번째 기이한 이야기 : 우렁이가 다녀간 날 (4) - 끝 [42] 글곰5052 15/06/10 5052 15
58931 [일반] 한잔하고 들어가자 [28] 소주의탄생9325 15/06/10 9325 160
58930 [일반] 어렸을때본 아재들이 레알 아재가 되어 나온 DVD [10] style5760 15/06/10 5760 2
58929 [일반] 독일 슈피겔 온라인 메인 화면을 차지한 대한민국. [29] 종이사진9802 15/06/10 9802 3
58928 [일반] 메르스에 가려서 은근히 조용한 가뭄 문제 [64] swordfish-72만세10265 15/06/09 10265 9
58927 [일반]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생산하는 유전 Top10 [3] 김치찌개4187 15/06/09 4187 1
58926 [일반]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홍등가가 있는 지역 Top10 [19] 김치찌개22493 15/06/09 22493 1
58925 [일반] 의견을 묻습니다. [47] 焰星緋帝7430 15/06/09 7430 2
58924 [일반] [상상주의] 살면서 굉장히 아팠던 기억 [27] AraTa_Lovely5138 15/06/09 5138 0
58923 [일반] <스파이>, 액션과 해학을 곁들여 낸 풍자 요리. [27] 파우스트4326 15/06/09 4326 2
58922 [일반] [WWE] 크리스 벤와, 숀 마이클스, 트리플 H, 최고와 최고와 최고의 승부를 회상하며 [46] 신불해11787 15/06/09 11787 15
58919 [일반] 서울시 공무원 시험을 강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188] ArcanumToss12837 15/06/09 12837 2
58918 [일반] 런닝맨이 중국 예능프로의 역사를 바꿨습니다. [121] Leeka16763 15/06/09 16763 3
목록 이전 다음
댓글

+ : 최근 1시간내에 달린 댓글
+ : 최근 2시간내에 달린 댓글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