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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6/01 20:37:19
Name yangjyess
Subject [일반]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
사랑에 빠졌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은 관심을 갖는 것이다.



대상이 테니스든 게임이든 관심이 있으면 거의 좋아하게 된다.



이런 것들도 사랑이라고 한다면



일반적으로 인간의 행위 속에 사랑과 관계가 없는 건 드물 것이다.



누가 '이 사람을 사랑해라' 라고 명령한다고 사랑하게 되지는 않는다.



생물의 욕망으로 솟아나오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만다.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을 사랑하게 될 때도 있다.



사랑은 의무나 금지를 초월한다.



행동의 룰로서의 도덕이 대부분 강제인데 반해 사랑은 자발적이다.



사랑이 흘러 넘치면 도덕이 필요 없게 될지도 모르지만 사랑 때문에 생기는 악행도 있기 때문에 도덕 또한 필요하다.



사랑에는 세가지 종류가 있다.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



[에로스는 결여의 사랑, 연모의 정열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이해하기는 쉽지만 관점에 따라 폭력적인 면이 있다.



자신의 것이 되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기분이 정열의 비밀이고,



이것은 종교의 비밀이 되기도 한다.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는, 신에 의해 반으로 나뉘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반쪽을 찾아 헤매게 되었다는 설명도 이에 해당한다.



원래는 하나로 묶여 있었던 운명의 상대가 있고 그 상대를 발견해 내려는 욕망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반쪽을 찾아야 하는 배타적이고 절대적인 사랑.



소유하여 만족하는 것만이 목표인, 상대의 만족을 배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사랑.



막상 상대방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금새 식어버리고 권태를 맞이하는 사랑이다.



이와 반대로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며 누리고 어떠한 결여도 없는 사랑이 필리아다.]



상대방의 존재 그 자체를 기쁘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랑.



에로스가 정열이라면 필리아는 행동이다.



에로스가 생성과 소멸의 반복이라면 필리아는 끊임없이 깊어지고 강해지고 성숙해진다.



막 태어난 아이는 결여에 의 해 움직이고 만족을 추구할 수 밖에 없다. 자기보존으로서의 이기주의인 것이다.



그러다가 가족의 테두리 안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배워나간다.



가족을 통해 기쁨과 우애가 싹트고 에로스가 충족되면서 차차 필리아로서의 사랑을 키워 간다.



[아가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원수를 사랑하라"



이것이 가능한가?



우리가 평생 사랑하는 에로스와 필리아를 모두 합쳐도 이 지구상에 사는 전체 인구에 비하면 아주 미미할 것이다.



그렇게 무수한 존재들을, 그곳에 있을 뿐인 상대방을, 비록 적이라 하더라도 그 당사자를 위해 사랑하라니.



아낌없이 주는 사랑, 무상無償의 사랑을 정당화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그딴거 없다.



자신에게 부족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에로스도 아니고,



자신을 기쁘게 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필리아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근거없는 사랑을 하라는 것일까?



인간은 성장과정 속에서 자기애로부터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을 익히고,



이해가 얽힌 타인과의 사랑으로부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에 대한 사랑으로 이동해 간다.



우리 안에서 사랑이 성숙해지고 풍요로워지고 다양성을 갖춰 가는 과정이다.



모르는 사람을 위한 무조건적인 사람은 자칫 자애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의 여지가 있으나



[보지도 못하는 타인을 자신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곧 [자신을 모르는 사람 사랑하듯 사랑한다]는 태도를 수반하고



이것은 자기애를 순화시켜 자아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우리들의 본능상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고



사랑의 다양한 형태를 몸에 익혀가는 것은 사랑의 대상과 범위를 점점 더 넓혀가는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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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6/01 20:50
수정 아이콘
에로스는 번식의 욕구, 필리아는 유전자 공유도가 높은 개체를 보존하려는 욕구, 아가페는 유전자 공유도가 낮은 개체까지 보존하려는 욕구...
15/06/01 20:53
수정 아이콘
이상 이과생의 정리입니다(?)
철학은 머리 아포요.. 크크
yangjyess
15/06/01 21:13
수정 아이콘
설득력이 있네요... 크
오빠나추워
15/06/02 02:02
수정 아이콘
크크 재밌네요.
15/06/01 20:51
수정 아이콘
계절학기로 들었던 심리학개론이 생각나네요...
교수님 엄청 재밌으셨는데. 그때 왜 A0 주셨는지 물어보고 싶네요.
LoNesoRA
15/06/01 21:01
수정 아이콘
인가탐이 생각나는군요
SugarRay
15/06/01 21:05
수정 아이콘
그런데 정말 궁금한 건데요. 사랑에 대한 저런 분류가 있을 때,

1. 저 분류에서 교집합이 서로 없나요?
2. 모든 사랑은 저 분류 중 하나인가요?

즉, mutually exclusive and collectively exhaustive 한가요?
그렇지 않다면, 저 분류는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
혹은 어떤 degree에 대하여, 그 degree의 정도에 대하여 구분한 것일까요? 피라미드식?

저는 매번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 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맨 처음 정의할 때 어떤 식으로 정의했는지 매번 궁금하더라구요. 왜 3개일까? 4개이거나 5개, 2개이면 안 되나? 뭐 이런 생각들 말이죠...
yangjyess
15/06/01 21:41
수정 아이콘
교집합도 있고... 분류 밖의 사랑도 많겠죠... 과학적 분류가 아니라 말장난 비슷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마다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종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흫
설명왕
15/06/02 08:11
수정 아이콘
글쎄요
"관심이 있으면 거의 좋아하게 된다."라고 하기에는 반례가 너무 많은 것 같은데요.

박근혜가 어딜가서 뭘하는지 관심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박근혜를 싫어하고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박근혜가 어딜가서 뭘하는지 관심이 없고, 관심가지고 조사하려는 사람들한테 화내죠.

예외적인 경우라고 하기에는, 우리 주변에 이런 상황들이 너무 많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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