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 한국나이로 36세니까, 저에게 평생 잊지못할 상처를 준 그 사건은 바야흐로 25년도 더 전 얘기입니다.
20가구도 살지 않는 '동'은 물론 아니고 '면'도 아니고 무려 '리'에 살았던 저는 8살때 서울로 상경하게 됩니다.
부모님이 오이하우스를 그만두시고 자식들 교육 시키겠다고 상경을 결심하신 것이죠.
동네에서는 신동소리 들었던 저에게 많은 기대를 하신 모양이지만 20가구 내에서의 경쟁과 무려 20개의 반이 있는 학년에서의
경쟁은 당연히 달랐고, 부모님으로 하여금 저는 그냥 평범한 학생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킬 뿐 이었습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지났고 걸쭉한 사투리로 한참 놀림받던 저도 서울말이 제법 자연스러워져서 스스로도 특별시민이라고
자부심을 느끼던 어느날 오후였습니다.
급식이 없던 시기인지라 국민학교에서는 항상 도시락을 가지고 다녀야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항상 팬시한 보온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는데 저는 지금은 포차 프렌차이즈에서나 볼만한 추억의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어요.
그래도 항상 어머니께서는 신경 쓰셔서 도시락을 싸주셨고 저도 우리집이 부자가 아니라는것을 알고 있었기에 도시락에는
큰 불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먹은 도시락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아니면 그날 단순히 제가 컨디션이 나빴는지 급속히 아랫배가 아파왔습니다.
우리 동네만 그런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당시 국민학교 저학년들의 세계에서 학교에서 똥을 싼다는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어요. 똥을 싼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아이들이 화장실로 우르르 달려가서 문을 두드리며 놀렸고 시원하게 싸고 나온후에는
여자아이 남자이아 할것없이 다들 화장실 문 밖에서 싸고나오는 아이가 누군지 확인하며 큭큭거리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몇번의 타인의 참사를 통해 인지하고 있었던 저는 필사적으로 배번을 참으려 노력했습니다.
'이제 두시간만 지나면 집에 간다. 집이 아니라도 좋다. 어디든 학교만 아니라면 막힌 울분을 다 토해낼 수 있다' 얼굴이 노래지도록
마인트 컨트롤을 하며 밀려나오는 변을 막고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묽은상태는 아니었고, 오히려 딱딱한 고체에 가까운 녀석이었습니다. 덕분에 한시간정도는 참아 낼 수 있었지만
초등학교 4학년짜리에게 두시간은 도저히 무리였고 저는 거사를 치르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일단 우리 교실이 있는 층은 안된다. 그렇다면 선생님들도 많이 다니시는 1층으로 가자.' 별로 좋지 않은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려서 결론을 내린 후 1층으로 내려가서 전후좌우를 면밀히 살핀후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것을 확인하고 화장실로
들어갔습니다.
쉬는시간이 10분이니 충분히 완전범죄를 저지르고 돌아갈 수 있다는 판단이었지만, 예상치 못했던것은 상상외로 딱딱한 변이었습니다.
이녀석이 너무 두꺼워서 도저히 밀어내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이녀석은 제가 10여년 뒤에 훈련소에서 보았던 똬리를 튼 뱀보다 더
강력해서 비단뱀은 아니더라도 코브라 정도는 충분히 되는 녀석이었습니다.
출산을 하는 느낌으로(어머니들 죄송합니다) 얼굴이 벌개지도록 노력해보았지만 실패했고 약속했던 10분이 지났습니다. 수업종은
울렸는데 저는 끊을수 조차 없는 코브라를 어쩌지 못해 안절부절 하고 있었죠. 시간은 더 지나서 20분이 흘러버렸고 수업시간에
빠지거나 늦는것은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그때의 저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지나가던 선생님께서 우연히 그 소리를 들었는지 저에게 말을 건넵니다.
"거기 무슨일 있니?"
저는 너무 당황했지만 못다치룬 거사보다 늦어버린 수업시간만이 머리속에 가득 찬 상태였죠.
"똥이 안나와요 선생님. 수업시간에 늦어버렸는데 어떻게야 하나요?"
지금 생각해도 그 선생님이 원망스럽습니다. 그 선생님입장에서는 호의였겠지만 저는 선생님이 수업중인 저희 반까지 올라가셔서
무렁찬 목소리로 말씀하실줄은 몰랐던거죠.
"선생님 XXX지금 1층 화장실에서 똥이 안나와서 못온데요."
그 뒤에 일어난 일은 마치 아비규환과 같았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수업중이던 우리반 모든 아이들이 교실에서 뛰어나와 제가 볼일을
보고있던 1층 화장실로 달려버린거죠.
아이들은 밖에서 기다리는데 그치지 않고 안에 들어와 칸막이 화장실에 기어올라 제가 볼일 보고있는 장면을 키득거리며 밖에 있던
여자아이들에게 생중계를 했던것이죠.
저는 정말로 정말로 상심했습니다. 다음날 할교에 가지 않겠다고 우는 저를 나무라시는 부모님과 대판 싸우면서도 결국은 이유를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은 그냥 어린 아이의 투정이라고 생각하셨는지 대수롭지 않게 넘기셨고 저는 결국 학교에서 꽤 오랬동안 굴욕적인
시간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저는 정말로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때는 공부 잘하는 아이가 멋진 아이였기 때문이죠. 결국 반에서 1등도 여러번 하게 되었고
반장도 그 이후로 계속 하게되면서 그때의 그 사건들은 서서히 잊혀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 사건은 2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날만큼 저에게는 큰 트라우마가 되었고 한동안은 밖에서 절대로
배변을 보지 않았습니다. 물론 지금은 어디서나 잘 쌉니다만은..
이상 상경소년의 성적상승 후일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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