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aura입니다.
이번 편은 도박!!인 판치기와 관련된 단편입니다.
재밌게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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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손목이 뻑적지근하다. 덜덜 떨린다. 두꺼운 국어책위로 놓인 동전은 오백 원짜리 단 두 개. 그러나 이 동전 두 개의 가치는 액면가인 천 원을 수십 배 이상 상회한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모여들어 북적거릴만한 인파를 형성하였음에도 주변은 그야말로 정막. 고요 그 자체다. 그 숨 막힐 듯한, 역설적인 긴장감이 나를 질식시킬 정도로 조여 온다.
하지만 즐겁다. 이 짜릿한 긴장감. 백척간두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위태함이 나는 정말 기쁘다. 이것이 도박의 묘미인가. 이건 중독되지 않곤 베길 수 없다. 이 짜릿함은.
텐션 하이. 그 짜릿한 긴장감이 극도에 달했을 때, 잠시 손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아이들의 시선은 오직 책상 위, 정확히는 오백 원짜리 동 전 두 개에 꽂혀있다. 정말 멍청하고, 탐욕적이고, 원초적인 갈망이 느껴지는 눈빛들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게걸스러운 아이들의 눈빛이 사랑스럽다.
아이들의 눈빛이 말하고 있지 않은가. 어서 동전 두 개를 넘겨버려! 뒤집어버리라고!
오늘 이 자리에서 누군가는 돈을 따고, 누군가는 잃을 것이다. 누군가는 절망하고 체념하고, 또 누군가는 환희에 물들겠지. 어떤 이는 숨겨왔던 폭력성을 유감없이 발휘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딴 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지금 내게 중요한 것? 지금 내가 이 판의 주인공이라는 것 뿐. 모두들 지켜봐. 이 판의 엔딩을. 결말이 해피엔딩일지 배드엔딩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자 간다! 마음속 기합과 동시에 마침내 손을 움직인다. 이 손, 수십 명의 학생들의 탐욕과 저주를 담은 손이.
2.
나는 평범한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평범하게 입시라는 괴물에 쫓겨 이리저리 치이고,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움직이는 평범한 꼭두각시. 믿을지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내가 그 숨 막히는 짜릿함에 취하여 판을 찾아다닌 것은 아니다.
우연. 정말로 우연이었다.
그날 내가 아프지 않아 점심시간에 교실에서 쉬지 않았다면, 그날 매점에 가지 않았다면 아니 거스름돈으로 짤짤이(동전)가 생기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평범한 고등학생으로써 학업을 마쳤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에 만약이란 게 있을까. 결국 나는 우연히, 그날 매점을 갔고 거스름돈으로 짤짤이를 받았으며 점심시간에는 아파서 교실에 있었다.
한창 모두가 식사를 마치고 농구니 축구니 뛰어놓고 있을 무렵 나는 몸에서 으스스 올라오는 몸살기운에 책상에 엎드려 골골대고 있었다.
옆 반 쪼다가 찾아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쪼다는 모은 두 손을 한껏 옴짝거리며, 짤랑이는 동전소리를 과시하는 한편, 탐욕적이게 찢어진 눈으로는 자신에게 도전할 도전자를 물색하고 있었다. 그러나 판치기 할 사람 없냐?는 쪼다의 물음에 선뜻 자신 있게 앞으로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쪼다는 나름 이 학교에서 먹어주는 꾼이었다. 스케일로 치자면 소소하기 그지없었지만, 반에서는 매일 짭짤하게 용돈벌이를 하곤 했다. 좀스럽게 자신보다 잘하는 상대는 피하고, 먹음직스러운 상대만을 먹어치운 성과였다.
잠깐의 적막을 깨고, 쪼다의 짤랑이 소리에 탐욕이 동했는지 우리 반 호구가 그의 앞에 나섰다.
불쌍하고 멍청한 호구. 내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녀석이다. 크고 멍청해 보이는 눈망울에 왜소한 체격이 한 눈에 들어오는 호구는 매번 쪼다에게 털리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 날 받은 용돈을 다 잃고도 뭐에 홀린 것 마냥 다음 날 다시 쪼다에게 그 날 용돈을 다 잃었다. 그런 일이 반복된 지도 벌써 두 달이 넘었으니 호구가 쪼다에게 잃은 돈만해도 아마 수십은 될 것이다.
이쯤 되면 쪼다에게 돈을 따는 일이 불가능한 것임을 깨닫고 그만두는 것이 정상일 텐데 호구는 이번에는 돈을 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잃은 돈이 분해서인지 매번 저렇게 쪼다에게 재차 도전해왔다.
쪼다는 먼저 자진해서 판을 만드는 호구를 보며 미소 지었다. 아마 그에게 호구란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다름없을 것이다. 한없이 예쁘고 사랑스러운 저금통.
내가 보기에는 불빛에 뛰어드는 불나방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판은 벌어졌다. 책상위에 책 한 권이 놓였고, 판돈인 동전들이 줄을 섰다. 구경꾼들이 하나 둘 모였고, 망을 봐주고 약간의 커미션을 받는 망돌이가 교실 문에 위치한 순간. 마침내 본격적인 판치기가 시작됐다.
교실 귀퉁이에서 엎드려 자는 것보다는 판을 구경하는 것이 조금 더 구미가 당겼던 나도 구경꾼들 중에 하나가 되어있었다.
판치기의 룰은 굉장히 간단했다. 적정한 두께의 책 위에 선수들이 같은 액수의 동전을 올려놓는다. 이 전에 더 박진감 넘치는 게임을 위해 책에 쿠션을 넣는 것이 허락되는데, 판치기에 참여하는 선수들은 모두 다 한 번씩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가 인정하는 선에서 쿠션을 넣을 수 있었다. 쿠션을 넣고 동전을 올리고 나면 가위바위보든 묵찌빠든 선공권을 결정하고 선공권을 얻은 사람이 먼저 손바닥으로 책을 친다. 이때 올려둔 동전이 한 번에 모두 뒤집어지면 판에 있는 돈을 싹쓸이한다. 반대로 하나라도 뒤집기에 실패했을 경우에는 차례가 상대에게 넘어간다. 승자가 나올 때까지 기회는 평등하게 한 번씩이다.
생각해 보면 어린애들 장난에 불과한 판치기도 서글플 만큼 세상의 이치와 맞닿은 면이 있었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패자는 쓴 빈손만이 기다리고 있다. 아니, 그나마 판치기가 나을지도 모르겠다. 판치기는 그나마 한 번씩 평등하고,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니까.
첫 판은 가볍게 백 원짜리 동전 4개가 올려졌다. 쪼다는 답지 않게 호구에게 선공권을 양보했다. 호구는 사양하지 않고 먼저 작고 초라한 손을 들어올렸다.
좀 따봐라 새끼야. 천천히 쳐 천천히! 여기 보이냐? 여기 쿠션 많이 들어간 데를 툭 치라고.
구경꾼들은 어느새 저마다 감독이니 코치가 되어 오지랖을 떨기 시작했다. 막상 쪼다와 맞 판을 벌일 생각은 없으면서 남의 판에 이래라저래라 하다니. 살짝 코웃음이 나왔다. 판을 마주할 담도 깜냥도 안 되는 것들보다는 모두가 무시하는 호구가 차라리 낫다고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호구의 손이 움찔거렸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동전들이 낮게 위로 떠올랐다. 구경꾼들의 눈이 바삐 동전을 쫓기 시작했다.
아무도 예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은 결과가 이어서 벌어졌다. 호구의 작은 손이 동전 네 개를 한꺼번에 뒤집어 버린 것이다.
오! 하는 탄성 소리가 구경꾼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호구 자신도 놀랐는지 돈을 가져가는 것도 잊은 채 넘어간 동전들을 어벙한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빨리 안 가져가고 뭐하냐?
예상 밖의 결과에 쪼다는 짜증이 났는지 호구를 채근했다. 그제야 호구는 자신이 딴 판돈을 주섬주섬 챙겼다.
호구의 작은 일격에 쪼다는 아직 여유로웠다. 탐욕적인 얼굴을 숨기지도 안은 채 씩 웃고는 호구에게 판돈을 한 번에 크게 올리자고 제안했다.
호구는 쪼다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아마 초장부터 기세를 잡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며 어쩌면 오늘은 잃었던 돈들을 찾아올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적나라하게 표정으로 드러났다.
판돈을 크게 올리기 위해서 판치기의 룰이 살짝 바뀌었다. 판 위에 동전 두 개만 올리고, 그 옆에 판돈을 건다. 동전 두 개만 넘기면 걸린 판돈을 승자가 독식한다.
한 판에 사백 원만 오갔던 판이 순식간에 몇 천 원씩 오가는 판으로 탈바꿈했다. 제 돈이 아님에도 긴장이 됐는지 꿀꺽 침을 삼키는 구경꾼도 생겨났다. 올라간 판돈에 비해 그 난이도는 현저하게 떨어졌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 그만큼 단 한 방에 승부가 갈릴 확률이 늘어났으니까.
호구 네가 방금 먼저 했으니까 이번에는 내가 먼저 한다?
모두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던 순간 쪼다가 선수를 쳤다. 호구가 어어? 하는 새에 어물쩍 쪼다가 손을 풀기 시작했다. 전 판 선공권을 쪼다가 선뜻 양보한터라 바보 같은 호구는 거절의 의사도 제대로 말하지도 못한 채 쪼다에게 선공권을 양보해버렸다.
바보 머저리 같은 놈!
나는 속으로 호구를 욕했다. 아무도 쪼다에게 선공권을 양보해달라고 하지 않았다. 제 스스로 나서서 양보해준 것을 빚 마냥 받아들이고 그걸 다시 되돌려주는 꼴이라니. 나름 판치기에 잔뼈가 굵은 비열한 쪼다 녀석에게 백 원짜리 두 개를 넘기기란 정말로 어린아이 손목비트는 것보다 쉬울 것이다.
쪼다 녀석의 비열한 웃음과 동시에 순식간에 오천 원이 걸린 한 판이 쪼다에게 넘어갔다.
판이 커졌으니까 먼저 치는 건 이긴 사람이 계속하기로 하자. 어때 괜찮지?
악랄하다. 오늘도 역시 쪼다 녀석은 호구의 돈을 탈탈 털어버릴 생각인 것이다. 그것도 아주 더럽고 비열한 방법으로.
호구는 내 예상대로 제대로 거절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렇게 내리 세 판을 더 지고 무려 2만원이라는 돈을 잃었다. 무려 삼 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그 앞에 인심 쓰듯 쪼다는 씩 웃으며 판돈의 일부였던 책 위의 이백 원을 호구에게 던져줬다. 그리고는 터덜터덜 판을 정리하고 개선장군 마냥 우리 반을 나섰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다. 평소 정의감과는 거리가 먼 나이지만, 이대로 쪼다를 우리 반에서 나가게 할 수 없었다. 그냥 뭔가가, 쪼다 녀석에게 우리 반 전체가 조롱 받은 것 같아서, 호구가 조금은 불쌍해서.
마침 내 주머니 안에는 공교롭게도 칠백 원이라는 돈이 모두 백 원짜리로 있었다.
기다려! 나랑 한 판 하자.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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