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이라는 소설집을 읽고 있습니다.
얼마 전 오랜 친구들과 함께 청춘의 사랑들을 복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한 번 그랬던 청춘의 사연을 써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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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카이는 본래 수량 쪽에는 큰 흥미가 없는 사람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질이었다. 또한 상대의 외모에는 그다지 연연하지 않았다.(···) 외모 같은 건 마음만 먹으면, 그리고 필요한 만큼의 돈만 있으면 거의 누구나 어떻게든 바꿀 수 있다. 그보다도 그가 높이 평가하는 것은 머리 회전이 빠르고 타고난 유머 감각을 지녔으며 뛰어난 지적 센스를 갖춘 여자들이었다.(···) 어떤 수술로도 지적 스킬은 향상시킬 수는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 <독립기관>, <<여자 없는 남자들>> 122~123쪽.
이제 나의 세대도 청춘의 끝자락이다. 그래서 요즘은 친구들과 만나면 청춘을 복기할 때가 많다. 청춘 복기의 메인 테마는 역시나 연애다. 각별히 친한 몇 몇 친구들이 있고, 함께 지내온지 어엿 15년 이상씩이 되었다. 각자가 맡고 있는 캐릭터가 있고, 나 역시 그렇다.
여자애를 볼 때 남자라면 흔히 그렇지만 외모가 빠질 수 없다. 여자라고 다를리 없지만, 남자의 외모 사랑은 각별하다. 각별히 예쁜 여자애들은 텔레비전이 쓸어 가곤 하지만, 그래도 세상엔 사람으로 가득차 있다. 물론 각별히 예쁜 여자는 드물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를일이지만, 나는 다소 예쁘장한 남자로 태어났고, 또 그 비슷하게 자랐다. 그래서 딱히 노력하진 않았지만, 드물게 예쁜 여자애들을 종종 소개 받곤 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도 예쁜 여자애를 좋아한다. 가끔 이상형을 답해야 할 때면 '북극여우'라고 말하곤 했다. 영문을 몰라하는 인터뷰어한테 음흉한 침묵을 유지해 문학적인 분위기를 풍겼지만, 당연히 별 거없다. 그냥 하얗고 예쁜애를 말하는 것이었다. 여우는 곰보다는 여우가 좋지 않나 했던 것이고.
아무튼, 그랬다. 그런데 문제는 소개를 받고 가까워지는 과정을 보냈지만, 연애가 가능한 정도까지 가까워지진 않는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그녀에가 그만한 매력이 없어서 일 때도 있었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세상에 각별히 예쁜 여자애는 각별히 적은 편이고 내가 짧지 않은 청춘의 기간동안 그러한 특혜를 받을 수 있는 횟수도 적었다. 그녀의 거절에 가까웠던 경우가 1번이었던 것 같고, 똑부러지진 않았지만 사실상 나의 거절이 된 경우가 2번있었다. 사실, 한 번은 너무 똑부러져서 지금은 왜 그랬나 싶다. 어쨌든,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만남이었고, 심지어 한 번의 경우는 친구가 오래 짝사랑하던 여자애이기도 했다. 어차피 자기는 안 되니깐 차라리 나랑 잘 되기를 바라는 이상한 녀석이었는데, 아무튼 잘 되진 않았다. 똑부러졌던 한 번의 경우가 그 여자애였기 때문에 그 친구와는 이후 상당히 서먹해지기도 했었다. 뭐가 문제였을까.
하루키 소설의 도카이는 성형외과 의사로 외모에 다소 달관한 인물이다. 대신 수술로 가능하지 않는 지적 스킬의 유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나도 그런가? 그럴리가. 간단한 문제는 아니지만, 여자애를 볼 때 3가지를 보는 것 같다.
1. 외모
2. 지적 스킬/ 문화적 코드
3. 성격
이런 분류는 항상 폭력적이지만, 대충의 느낌으로 정리는 될 것 같다. 아무튼 나의 경우는 솔로일 때는 외모가 우선적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막상 여자애와 썸을 타기 시작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쌓아 놓은 자신의 벽을 허물어 가는 과정의 지속성은 외모의 수준이 크게 영향을 행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2/3인 것 같다.
친구들이 부러워 했던 썸에 대해 말해보자. 그녀들은 한결같이 존예에 가까웠고, 사실상 내 이상형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제는 취향이었다. 나는 이미지와는 달리, 마이너한 것들에 경도되는 인간이다(고등학생 때 수학여행을 가서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서태지의 '필승'을 불렀고, 핑클이나 SES를 생각하던 친구들이 다소 당황해했다). 음악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녀도 나처럼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가 즐겨듣는 음악은 멜론탑100이었고, 세부적으로는 다비치나 노을이었다. 로로스는 아니더라도 브로콜리너마저나 검정치마 정도는 함께 공유할 수 있었으면 했는데, 쉽지 않았다. 그건 나도 다비치나 노을이 내게 오기 어려운 것이니 피차 마찬가지라 할 만하다. 읽는 책도 그런 식이었다.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그녀는 <힐러리처럼>을 읽었다. 영화도 같은 맥락이다.
존예의 세 그녀들은 취향에 있어서 만큼은 사실상 반복이었다. 성격은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문화 코드는 거의 유사했다. 선호하는 헐리우드 배우에 차이가 있었을 뿐. 그래서, 그런지,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 자신도 몰랐었는데, 나에게 그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얼굴이 예쁘다는 것. 몸매가 아름답다는 것은 굉장한 박력을 가진다. 그래서 나의 벽들은 잘도 무너져 나간다. 하지만 연애에 도달하기 위한 한뼘은 외모만으로 넘기는 어렵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존예와의 썸을 알고 있는 친구들은, 막상 내가 사귀게 되는 여친에 대해 실망하곤 했다. 친구는 "네가 아깝다"로 요약했고,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울컥했다. 나는 여간해서는 외모로 다운되지 않았고, 오히려 비슷한 취향을 가진 여자애와 친하게 지내다가 연인으로 발전하는 식이었다. 성격은 매번 마음에 들 수는 없지만, 보통의 경우, 대부분 사람은 착하다고 믿는 편이다. 내 곁의 친구들,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상처들이 있기에 울컥하긴 하지만, 착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사람이 세상에 깔려있다. 각별히 나쁜 놈들도 물론 있지만.
성격을 말하자면, 나는 사소한 손해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 좋다. 사람은 누구나 손해보기 마련이고, 쉽게 잊곤 하지만, 우리는 누군가의 손해로 득을 보며 살아간다. 세상에 태어나 살아간다는 건 누군가들을 번거롭게 하는 일이지만, 그 번거로움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이기도 하다. 많은 경우, 어떤 잘못은 비율의 차이가 있을 뿐 서로가 공유하는 것일 때가 많고, 그럴 때는 그냥 서로가 서로에게 더 많은 사과를 건네는 관계가 좋다고 나는 생각한다. 뭐, 꼭 그런 여자를 만나야겠다는 건 아니지만 대충 그런 느낌이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내가 이기적이니깐 착한 애가 옆에서 밸런스를 맞춰주면 좋겠다 뭐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청춘은 짧다. 고등학생 때부터 연애를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공식적인 연인관계의 여부를 떠나, 양적으로는 평균 이상의 여자를 만나온 느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충의 기대들이 대충 채워지는 경우는 드물었고, 어물쩍 하다보니 청춘은 복기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다만 이제는 확실히 안다. 그 동안의 오만함에 대하여. 대충의 기대는 이상적인 기대였고, 대부분은 대충이 아니라 매우 충만하게 채워져었다는 것을. 세상엔 각별히 예쁜애가 적은 만큼이나 내가 선호하는 취향의 애도 각별히 적고, 성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니깐, 이건 상식이지만, 세상에 대부분은 내같은 애들로 깔려있는 것이다. 선호하는 기대의 하나만 충족하기도 빡빡하다는 말이다.
사랑은 의지의 산물이라기 보단, 큐피트의 난사에 가깝다. 그럴리가 싶지만, 그렇게 사귀어지곤 한다. 그래서 사랑은 신비롭다. 청춘의 시간을 거쳐올 때는 의아했다. 나의 기대는 계속해서 굴절되었고, 뜬금없는 관계에서 연애가 시작되었다. 누구나 선호할 만하고, 나 역시 그런 선호가 확실한 상태였는데, 의외로 잘 되지 않곤 했다. 그건 청춘의 거리에서 내가 뭐가 되어가는지 몰랐기 때문이었고, 굴절이 당연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서였다. 그리고
지금 나는 뭔 말을 이렇게 썼나 싶고, 이 글을 지금껏 읽은 당신도 뭔 글을 읽고 있었나 싶었을 것 같다. 그러니깐 내 말은-
내 곁의 네가 너무 고맙고 소중하고, 나를 견디지 못해 떠났던 그녀들에게 미안하지만, 그래도 고맙고, 무엇보다 나의 사연과 상관없고 뭔 글을 읽고 있나 싶은 당신이, 그리고 당신의 연애가 더 없이 소중할 것이고, 아, 수습이 안 돼. 디 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