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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10 15:10
말 그대로 감시능력이 딸려서요...
군 전력 자체도 저언저리 까진 북한이 우세(...)했을 수 있고, 경제상황도 상대적으로 더 나았기 때문에 부족한 감시능력의 빈틈을 이유 밀어넣기가 가능했다고 생각됩니다.
15/05/10 13:15
이야기속 정말 재미있는건. 무장 간첩세력들을 잡아서 대부분 살렸다는 거 같네요. 김신조도 그렇고 북한 비밀을 얘기하면 살려주는 협상이라도 했나봅니다
15/05/10 13:18
그것도 있고 살려서 남한사회에 잘 적응시키면 그게 또 선전효과가 되거든요.
투항만하면 너희들도 이렇게 목숨살려주고 잘살게해주겠다는 ...
15/05/10 13:26
위에 발롱드로님 말처럼 선전효과 때문인것 같습니다. IS에 가입하면 돈 여자 등등을 준다고 선전하며 가입자를 모으는 것도 마찬가지겠지요.
15/05/10 13:23
사실 이용가치 문제죠.
이는 남북은 물론 동서냉전 당시 동서 모두 같았습니다. 없는 사람은 애초 그 존재 자체를 우리는 모르죠
15/05/10 13:28
그 시대는 그게 정석이었죠.
지금에서야 뭔 또라이짓인가 싶지만, 60~70년대는 체제 대결이 거의 극에 달하던 시절이라 전향자는 나름 군침도는 떡밥이었습니다.
15/05/10 13:16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건데 당시 dmz는 준 전시였습니다.
양측의 체제 경쟁이 극에 달한 시기라서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심했거든요 70년대 초까지 미군만 200여명 정도 전사하고 한국군도 수백명 사상자가 발생한 크고 작은 전투의 연속이었죠. 대충 아시고 싶은 분들은 히스토리 채널에 다큐가 있으니 참조해보세요 사실 그런면에서 당시 정부는 이를 완벽히 정보통제했다는.거죠. 그 흔적이 바로 이 글인데 이 사건은 다 주 전장인 비무장지대에서 벗어나 정보가 통제 될수 없는 지역들이었습니다 아니면 판문점이거나요 뭐랄까 이런 사건을 보면 한편으로 이용했지만 한편에서는 숨기고 싶어하는 이중적 행태를 알 수 있는 거죠
15/05/10 14:11
예 울진 삼척 등 위 세사건 판문점 미류나무 도끼만행 그리고 최후의
판문점 총격전까지 한국인 대부분은 인지 하지 못했던 1960년대 Dmz 충돌이라는 캠페인의 일부였습니다. 최종적으로 박정희가 이후락을 평양에 밀사로 보내 남북대화를 시작하고 박정희와 김일성 모두 독재체제를 공고히 하면서 이 전역은 끝납니다 뭐 진짜 종결 원인은 중소의 분열 월남전 종결 미중간의 밀월 시작으로 북한은 김일성 독재를 위한 외교관계에서 독자노선이 시작된 것과 박정희가 미국을 믿지 못하게 되면서 이긴 했지만요.
15/05/10 15:14
빵빵 사건터지는 것 까진 이용해 먹을 수 있겠지만, '못막아서 이 글의 일이 생길정도인 상황'을 알리는 것은 정권정당성에 좋을 수가 없으니까요.
(사람이 막 죽어도 알려지지 않는다는 것에서 당시 쿠닌에대한 국가의 인식을 알 수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아니 당시'부터'인가요...)
15/05/10 13:27
'후에 이름을 바꾸고 개신교 목사가 된 김신조는 술집에서 오줌누다가 왠 청년에게 뒤통수를 맞고 "너 때문에 군대에서 개피봤다" 라며 욕설을 듣습니다. 그리고 김신조는 그냥 죄송하다며 사과하고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그 청년 용감하네요. 그래도 전직 무장공비시라 사람 죽이는건 일도 아니신 분일텐데
15/05/11 00:24
생각해보면 세월이 지났는데도 그걸 마음에 계속 품어서 당사자를 우연히 보고 뒷통수 까지 때릴정도면.. 그 청년이 오죽 그 당시 열받았을까 하는 생각이 크크..
15/05/10 16:07
푸에블로호 사진 속 인물들이 의도적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건 저뿐인가요?
뭐 예컨대 북한 측을 그네들이 모르게 조롱하는 것이라든지. 궁금하네요.
15/05/10 17:47
68년 위의 사건들이 이러난 계기 중 하나가 바로 베트남 전쟁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한국이 베트남전으로 참전한 상황에서, 같은 공산주의 국가로써 북베트남을 지원하기 위해 북한이 위의 도발을 일으켰다는 겁니다. 상당수의 전투병력이 베트남으로 빠져나간 상황에서 북한의 도발이 계속 되어 추가적인 파병이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죠. 또 재미있는 일화중 하나가 박정희의 미국에 대한 삐짐입니다. 김신조 사건때는 잠잠하던 미국이 푸에블로 사건때는 급박한 모습을 보이니 삐질만 하죠. 그래서 그런 박정희를 달래기 위해 미국은 1억달러를 추가로 원조하게 되고 박정희는 그중 절반을 예비군 개선 등 군에 투자함으로써 본격적인 군사정권이 시작되었다는 평이 있습니다
15/05/11 03:15
개.. 개신교 목사요!?
헐...... 그나마 인권단체가 여럿 있는 요즘도 아니고, 아무 상관없는 사람도 픽픽 잡아 사형때려버리던 시절에 실제 무장공비가 어쨌건 풀려나 버젓한 직업을 갖게 되다니 참 기묘하군요.
15/05/11 09:22
저 군생활 할 때 김신조 목사 초청해서 2시간정도 안보 강의 들었던게 기억나네요.(09년 군번입니다.)
부대에 목사분이 오신다길래 그런가보다~ 하고 모였는데 정말 강해보이는 인상의 노인이 오더니 본인이 김신조라고 소개를.. 그 나이에 풍채며 목소리며 여튼 보통사람은 아닌것 같았습니다. 청와대 습격당시의 준비단계 부터 결말까지 직접 겪은 사실을 생생하게 말해주는데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경청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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