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사진 찍는 날: 그 생각하면 웃음도 나고 그래서
수룡마을 문임순 할머니
죄없는 남편은 기관에 끌려갔다 3년이 다 되어 풀려나왔다.
그 사이 며늘아기는 집을 나갔고 아들놈은 집 뒷편 숲에 목을 매었다.
이름조차 제때 못 붙여준 돌도 안된 손주 핏덩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고
폐인이 되어 돌아온 남편은 이미 예전의 남편이 아니더라.
알 수 없는 소리를 며칠간 고래고래 질러대더니
손주아기를 다리 밑으로 던져 죽게 하고
화병으로 몸져 눕더니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더라.
싸늘한 손주 핏덩이의 묘에 흙을 덮고 남편의 뼈를 집 뒷산에 홀로 묻으며
피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수천번 수만번 또 생각했던가.
내가 왜 살아야 하나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
살아야 하나
그래도 내 어릴적
날이 좋고 볕이 쬐면
남편 지게에 올라타
들쳐 지고 이산 저산 다니며
꽃도 따주고 산딸기도 따 먹여주고
노래도 불러주고 같이 춤도 추고
수줍은 척 눈도 흘기고 하면 '어흠' '어흠' 거리던 남편이 생각나.
그 생각 한번이라도 더 하고 싶어서
하루라도 그 생각 또 하고 싶어서
그 생각하면 웃음도 나고 그래서
여지껏 여든 다섯을 넘게 살았네.
영정 찍어준다고 온 어린 청년 등에 업혀봐도 그때 내 남편 만치는 안좋더라.
안좋고 말고.
살날도 얼마 안남은 노인네지만 자꾸 졸라대는 청년 등쌀에
나오지도 않는 쉰목소리라도 한번 외쳐본다.
어~이, 내 남편 조일권아! 돌나물 무쳐서 뛰어 갈텐께 조금만 기다리시오!
<이 글은 인터뷰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사진의 주인공인 문임순 할머니는 영정사진을 찍고 넉달이 지난 아침 남편 조일권님이 계시는 곳으로 가셨습니다.
'기왕이면 꽃도 나오고 곱게 나온 사진이 좋다'던 할머니의 요청에 의해 위 사진의 원본이 그대로 영정으로 쓰였습니다.
모두 12년 전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