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과 충동이란 상당히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이를테면 당신은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편의점에서 파는 막걸리를 증류하면 소주가 될까? 마트에서 파는 맥주를 증류하면 위스키가 될까?’하는 호기심에 사로잡히게 될 수도 있다. 한국 전통주 연구소 병설 서로서로 공방에서 7년 동안 개량한복을 입고 술을 빚어온 최우택 씨(32세, 연구원)는 어느 날 갑자기 ‘맥주를 증류하면 무슨 맛이 날까? 막걸리를 증류하면 무슨 맛이 날까?’ 하는 호기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물론 7년차 연구원인 그는 맥주를 단지 증류하기만 해서는 위스키 맛이 나지는 않으리라는 것과, 막걸리를 단지 증류하기만 해서는 소주 맛이 나지 않을 거라는 것 정도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무슨 맛이 날 것인가. 마침 그에게는 연구실이라는 공간도 있었고 증류기도 있었기에 일을 저질러보게 되었다. 그렇게 지난 5월 6일, 한국 전통주 연구소에서는 ‘증류주 시음회’가 개최되게 되었고, 나는 증류주 강의 및 위스키 시음 패널로 참석하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술에 대한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기초적인 과학을 조금 정리해보도록 하자. 술은, 알코올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특정한 효모가 당을 알코올로 발효시킨다. 좀 더 쉽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특정 효모가 당을 먹고 알코올을 똥으로 싸게 된다. 맥주는 효모가 보리에 있는 당을 발효시켜 만드는 것이고, 와인은 포도 껍질에 있는 효모가 포도의 당을 발효시켜 만드는 것이고 탁주는 누룩에 있는 효모가 쌀에 있는 당을 발효시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발효’만을 통해서는 높은 도수의 술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발효가 진행되며 알코올 도수가 어느 정도 높아지면, 발효를 담당하는 효모는 활동을 멈추게 된다. 자기가 싼 똥에 자기가 질식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높은 도수의 술을 만들 수 있을까.
우리는 ‘증류’를 통해 높은 도수의 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알코올의 끓는점인 78도가 되면 술 안에 있는 액체 상태의 알코올이 증기가 되어 분리된다. 100도까지 올라가게 되면 술 안에 있는 물도 수증기가 되고. 즉, 78도에서 100도 사이에서 발생하는 알코올 증기를 모아 냉각시키면 짜잔, 당신은 순도 높은 알코올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순수한 알코올=에탄올만이 추출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78도보다 조금 낮은 온도에서는 알데히드와 메탄올을 필두로 한 다양한 발암물질과 독극물과 다양한 향미를 내는 화학적 증기가 발생하기 시작하며, 78도부터 에탄올과 또 다양한 물질들이 발생한다. 단순한 ‘기화’뿐이 아닌 다채로운 화학 작용이 발생하기도 하고(위스키 증류기의 내부에는 이러한 화학 작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구리 촉매가 덧붙여지기도 한다).
증류의 초기에 나오는 증기를 냉각시킨 것을 ‘초류’라 하고 끄트머리에 나오는 물 섞인 증기를 냉각시킨 것을 ‘후류’라 하며, 먹을 만한 맛있고 안전한 부분을 ‘중류’라 하는데, 초류 중에도 맨 앞부분은 되도록 버리는 편이 좋다. 특히 다른 발효주에 비해 메탄올 함량이 상대적으로 높은 와인 같은 걸 증류해서 초류를 거르지 않고 마시게 되면 실명과 사망 등의 심히 곤란한 일을 겪게 된다. 초류와 후류는 맛이 좋지 않으니 위험한 부분은 버리고 다시 섞어 재증류의 원료로 쓰는 편이 좋다. 자, 이렇게 당신은 증류를 통해 높은 도수의 술을 얻을 수 있다(참고로 가장 유명한 증류주인 ‘위스키’의 원액은 두세 번의 증류를 거쳐 70도에서 80도 사이로 증류된다).
그러면 편의점과 마트에서 파는 평범한 국산 맥주를 증류하면 위스키와 비슷한 맛이 날까. 어차피 맥주나 위스키나 맥아로 만드는데. 평범한 국산 막걸리를 증류하면 소주와 비슷한 맛이 날까. 어차피 막걸리나 소주나 쌀로 만드는데. 최우택 씨는 호기심과 충동으로 이러한 증류 실험을 진행하였고, 증류된 술로 시음 행사를 진행하였다. 결과는 꽤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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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류된 맥주 : 짜파게티 끓인 물에 소맥을 섞은 맛이 난다.
왜 위스키 맛이 나지 않을까. 첫째, 우리가 흔히 마시는 ‘스카치 위스키’는, 오크통에서 최하 3년 이상 숙성된 위스키이다. 화학적인 수준에서 위스키의 맛의 70%는 숙성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저 70%의 과정이 빠진 숙성하지 않은 증류 원액이 위스키와 비슷할 리가 없다. 둘째, 국산 맥주의 경우 대략 60%의 맥아와 30%의 전분, 10%의 기타 재료로 만들어지는 것으로 추정된다(국내 주류회사들은 각 브랜드별 성분 함량을 정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으나, 주류회사가 발표한 곡물 매입 관련 자료와 브랜드 라인업들을 고려하면 대략 이 정도가 될 것이다).
증류된 막걸리 : 라면을 끓인 듯한 구수한 맛이 난다.
왜 안동소주나 화요 같은 맛이 나지 않을까. 먼저 재료를 살펴보자. 몇몇 쌀 막걸리는 쌀 100%를 사용하나, 상당수의 시판되는 막걸리들은 상당량의 전분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막걸리들은 단순히 발효를 통해 맛을 내는 것이 아닌, 아스파탐 등의 강렬한 감미료가 사용된 술이다. 라면 면발을 떠오르게 하는 전분의 향이 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며, 알싸한 감칠맛이 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또한, 증류 소주들은 나름의 숙성 과정을 통해 맛을 안정화하기도 하는데 시음회에서 마시게 된 것은 갓 증류해낸 싱싱한 소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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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단순히 맥주를 증류한다고 위스키가 되는 것은 아니며 막걸리를 증류한다고 소주가 되는 것도 아니다. 증류한 맥주와 위스키의 차이는, 증류한 막걸리와 소주의 차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위스키를 마시고 싶다면 사서 마시고 증류식 소주를 마시고 싶다면 역시 사서 마시자. 품질의 문제도 있지만 가격 면에서도 슬퍼진다. 이번 시음회에서, 시판되는 맥주 10리터(대략 2만5천 원어치)를 증류하여 28도짜리 초류 0.5리터. 11도짜리 후류 0.5리터를 증류해냈다. 대략 20도짜리 증류주 1리터를 만들어낸 것인데, 이는 술에 있던 총 알코올의 절반 정도가 하늘로 사라졌음을 의미한다(4도짜리 맥주 10리터에는 0.4리터의 알코올이 존재한다. 이 술을 1리터로 증류했을 때의 알코올 도수는 40도가 되어야 할 것인데, 20도가 되었으니 반 정도의 알코올이 날아간 것이다). 이렇게 1차 증류한 술을 40도로 2차 증류하면 1차 증류를 고려해볼 때 대략 0.25리터의 증류주가 증류될 것이다. 0.75리터짜리 싸구려 위스키 한 병이 2만5천 원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시판 맥주를 증류해 만드는 ‘맥주 위스키’의 가격은 세 배 정도 비싸다. 맥주 30리터, 7만5천 원어치를 증류하면 40도짜리 증류주 한 병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이 돈이면 주류상이나 마트에서 꽤 괜찮은 싱글 몰트 위스키 한 병을 살 수 있는 돈이며 편한 분위기의 동네 술집에서 위스키 한 병을 마실 수 있는 돈이다. 막걸리와 소주의 관계도 대략 비슷하다.
그렇다면 ‘시판되는 발효주를 증류해서 독주를 만들기’가 아닌 ‘쌀에서 소주’를 만드는 가격은 어느 정도 될까. 이번 증류 실험의 결과를 통해, 이중 증류로 양주 한 병 분량(0.75리터)의 40도짜리 증류 소주를 증류하는 데에는 10도짜리 탁주 20리터 정도가 필요하다고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0리터의 탁주를 만드는 데 필요한 쌀의 양은 대략 10kg정도이며, 이는 인터넷 쇼핑 최저가로 3만 원 정도이다. 이 정도를 발효시키는 데에는 대충 오천 원에서 만 원 어치의 누룩이 필요하다. 자, 집에서 소주 한 병을 만들어 먹는 데 필요한 ‘재료 원가’만 대략 4만원이다. 마트에 가서 ‘화요41’ 두 병을 사면 당신은 상당히 괜찮은 증류식 소주 0.75리터를 4만 원 정도에 구할 수 있다. 해 볼 만 한가? 뭐, 당신 집에 초대형 밥솥과 숙성용 항아리와 그 항아리를 일정한 온도로 보관할 수 있는 항온실과 증류기가 있다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 이런 것이 준비되었다면 10kg의 쌀을 불리고, 그걸로 밥을 지은 후에, 발효제와 섞고, 적당한 온도가 유지되는 곳에 숙성시켜 먼저 발효주를 만들어보자. 그렇게 만든 발효주를 증류기로 두 번 정도 증류하면 된다. 어때요, 참 쉽죠?
아, 발효 과정에서 실수로 술 대신 식초를 만들어버리면 조금 아쉬운 일이 될 것이다, 증류 과정에서 실수로 메탄올과 메탄 알데히드가 가득 담긴 술을 증류하게 되면 조금 아쉬운 일로 끝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뭐, 한번쯤 해 볼만 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이상한 것일 지라도, 무엇인가를 직접 만들어본다는 것은 상당히 즐거운 일이니까. 한국 전통주 연구소는 며칠 전의 시음회 외에도 다양한 시도들을 진행하고 있다. 시간이 나면 검색해보고 문의해보시라. 최우택 연구원과 나는 조만간 또 흥미로운 일을 벌여 볼 생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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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허핑턴포스트에도 기고되었습니다.
http://www.huffingtonpost.kr/youngjune-joo/story_b_7230928.html?utm_hp_ref=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