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자마자 한 여자가 막무가내로 들어오며 비명을 질렀다. 회사 인포 데스크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안내원이다. 나가려던 남자와 부딪히며 안내원이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카페테리아 내부에 갑작스러운 정적이 흘렀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방금 들어온 안내원에게 쏠렸지만 그녀는 바닥에 쓰러진 채 앞에 서 있는 남자의 다리를 붙잡고 살려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활짝 열린 문으로 다른 여자가 조금 이상한 걸음걸이로 들어왔다. 아침 출근길에 봤던 그들처럼 미친 듯이 웃으며.
무거운 침묵이 흐르던 카페테리아에 갑작스레 엄청난 하이 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며 신경을 짜증스럽게 긁어댔다. 바닥에 쓰러져있던 안내원은 또 다시 비명을 지르며 달려나갔고 미친 웃음소리의 여자는 조금 과장된 동작으로 파워 워킹을 하는 동네 아주머니처럼 안내원을 쫓아갔다. 안내원이 내 쪽으로 오고 있었기 때문에 나와 내 동료는 자리를 피할 수 밖에 없었다. 근처에 앉아있던 어떤 남자는 우리보다 좀더 신사적으로 행동했다. 쫓아오는 미친 여자를 붙잡으며 진정하시라는 말을 건넸지만 미친 여자는 막무가내였다. 간단하게 남자를 뿌리치고 테이블에 부딪혀 바닥을 기어 다니는 안내원에게 그대로 다가섰다.
그 때 나는 그 미친 여자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귀에 엄청난 수의 피 묻은 귀걸이가 끈끈이에 달라붙은 파리처럼 달려있었고 손가락에는 반지가 잔뜩 끼어져 있었는데 신데렐라의 언니처럼 크기가 맞지 않는 반지를 억지로 끼워서인지 피멍이 잔뜩 나 있었다.
소름 끼치는 모습을 한 채 바닥에 엎드린 안내원에게 다가가 하이힐을 신은 발로 등을 밟고 목에 걸려있던 목걸이를 양 손으로 잡아 당기기 시작했다. 목걸이가 끊어질 듯 팽팽해지며 안내원의 목을 조르자 컥 하고 숨막히는 소리가 났고 그제서야 구경하던 주변 사람들에게서 비명과 소란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목걸이가 끊어지며 새우처럼 휘었던 안내원의 몸이 다시 바닥에 처박혔고 미친 여자는 목걸이를 자신의 목으로 가져가 어설픈 매듭으로 맸다.
그리곤 바닥에 엎드려 흐느끼고 있는 있는 안내원의 목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미친 여자는 비명소리에 자극을 받았는지 일어나 몸을 돌려 엄청나게 커진 동공으로 주변을 둘러보다가 겁에 질린 채 벌벌 떨고 있는 바리스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더욱 크게 웃으며 그 우스꽝스러운 파워 워킹으로.
바리스타는 기겁을 하며 바 안에서 어쩔 줄 모르며 버둥거리다 시설물창고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미친 여자가 문 앞까지 걸어간 뒤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모두 도망가기 시작했다. 나 역시 더 이상 남아있을 이유도, 바리스타를 구할 용기도 찾지 못한 채 출입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카페테리아를 나와 계단을 통해 1층으로 올라가자 곳곳에 쓰러진 사람들이 보였다. 인포 데스크에는 한 안내원이 귀와 손가락이 뜯긴 채 빨래처럼 널려 있었고 그 옆 바닥에는 경비원이 바닥에 엎드려 있었지만 목이 돌아간 상태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방에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뛰어다니며 밖으로 나가거나 사무실로 돌아가는 등 엄청난 혼란으로 가득했다. 점점 현실을 믿기 힘들었다. 오늘은 집에 들어가는 길에 맛있는 치킨을 사 지난 주말에 대형 마트에서 구입해 냉장고에 보관해 둔 독일 맥주와 먹을 생각이었다. 시체처럼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밟지 않도록 피하며 도망가는 계획 따위 전혀 생각지 않았는데!
어디로 가야 하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같이 커피를 마셨던 동료는 보이지 않았다. 함께 마셨던 커피보다 더 쓰디쓴 허탈함이 느껴졌지만 한가롭게 그 맛을 음미할 시간은 없었다.
파워 워킹으로 걸어가던 미친 여자를 생각하며 어디가 됐든 일단 탁 트인 공간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는 방식이 우스꽝스럽거나 무서운 것과는 별개로 빠른 속도는 아니었기에 빠르게 달리면 충분히 피할 수 있기에 밀폐된 공간보다는 안전할 것이다. 결정을 내린 나는 회사 밖으로 나갔다. 무더운 여름 날씨가 숨을 턱 막히게 만들고 강렬한 햇빛이 눈을 찌푸리게 만들었지만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온 거리에 사람들이 뛰쳐나와 비명을 지르고 뛰어다니며 자동차가 인도위로 올라가 잔디밭을 질주하고 방금 전까지 옆에 있었던 동료가 그 차에 치여 공중으로 날아가다 바닥에 처박히며 목뼈가 부러지는 광경을.
태어나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몰려오는 공포에 몸이 떨렸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상황에서 밖으로 나가봤자 공황상태인 사람들에게 휩쓸리는 것이 더 위험해 보였다. 이미 교통수단은 엄청나게 몰린 사람들로 인해 사용하지 못할 것 같고 거점을 마련해서 이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몸을 움직여 계단을 통해 다시 사무실로 올라갔다. 계단으로 올라가는 와중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회사 밖으로 나가기 위해 거칠게 내려오고 있어 올라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5층에 위치한 사무실 입구에 도착하자 투명한 유리문 너머로 책상이 차곡차곡 쌓여있어 쉽게 들어갈 수 없게 막아놓은 상태였다. 사무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미 어느 정도 사태를 파악한 것 같았다. 사원증을 꺼내 자동문을 열고 얼기설기 쌓여있는 책상들 사이로 난 조그만 틈을 비집고 들어가자 생각보다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같은 팀 사람들은 대부분 자리를 비운 채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 남아있던 사람은 겨우 세 명이었는데 한 명은 다른 팀이었다. 작은 회사는 아니지만 팀 별 인원이 많지 않아 같은 사무실 안에 여러 팀이 배치되어 일하는 경우가 많았고 내가 일하는 사무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남아있던 같은 팀 동료는 26살 신입 여직원인 정은씨와 36살 노총각 직원인 성훈씨였다.
이쁘다기 보다는 귀엽다는 말이 어울리는 이정은은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평소 업무를 진행할 때 꼼꼼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실수하는 일 없이 노련한 모습을 보여주다가도 의외의 부분에서 허술한 부분이 드러나곤 했는데 두 모습간의 차이가 극명하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다. 분명 똑똑하고 얼굴도 이쁘고 도도할 것 같은데 빈틈이 많고 친절해서 남자들은 그녀와 생각보다 쉽게 어울릴 수 있었다. 더 나아가 한번쯤 꼬셔볼 수도 있겠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곤 했지만 그 착각은 결코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착각으로만 남았다.
반대로 박성훈은 그다지 호감 가는 타입이 아니었다. 매사에 불만이 많았고 또 그걸 노골적으로 드러내서 다른 사람에게 짜증을 퍼뜨리는 성격이었다. 거기에 지독한 유머 불감증에 걸려있었고 더 심각한 건 그걸 전혀 인지하지 못해 언제나 자신감에 가득 차 끔찍한 유머를 뱉어놓고 웃음을 강요해온다는 점이었다. 상대방의 반응이 시큰둥하면 갑자기 공격적으로 변하거나 침울해져서 분위기를 다운시켰다. 총만 안 들었지 트러블 메이커 수준을 넘어선 가차없는 무드 테러리스트였다. 저러니 결혼을 못했지 라는 뒷담화 소재로 하루에도 몇 번씩 사골국물 우려먹듯 등장했다.
극과 극의 느낌을 가진 두 명이 날 보고 놀라며 말을 걸어왔다.
“아, 준성씨 어디 있다가 이제 온 거에요? 걱정했어요. 지금 밖에 난리 난 거 알아요?”
“네 정은씨. 직접 겪고 왔는걸요. 지하 카페테리아도 난장판이에요. 그.. 아시나요? 미친 사람들.”
“알지 알아! 그 쓰레기 같은 새끼들. 사람만 보면 다짜고짜 물어뜯고 옘병 지랄을 하더구만!”
“단순히 물어 뜯기만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다른 분들은 안 보이네요. 전부 다른 곳으로 가신 건가요?”
“네. 핸드폰에 불 나도록 사방에서 연락이 왔어요. 결혼하신 분들이나 부모님과 같이 사시는 분들은 전부 가족 분들 만나러 집으로 가셨고 자취하는 저나 성훈씨는 딱히 밖으로 나가봐야 위험하기만 하고 집에 도착해도 혼자니 차라리 회사에서 같이 있는 게 나을 것 같아 남았어요.”
“정은씨는 걱정 말고 나만 믿어! 나 공수부대 나온 거 얘기했나? 응? 특전사 출신이야. 이런 상황에는 섣불리 나가서 설치는 것 보다 한곳에 거점 마련해서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아.”
성훈씨는 엄청난 자신감을 내뿜으며 자신의 장점을 한껏 뽐냈다. 어떻게든 정은씨에게 점수 따려고 하는 속셈이 훤히 보였다.
“아 진짜요? 네. 믿음직스럽네요. 준성씨는 어떻게 된 거에요?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거에요?”
난 근처에 빈 책상에서 의자를 가져와 둘이 앉은 자리 옆에 앉고 지하 카페테리아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같이 커피 마시던 동료가 날 버리고 홀로 밖으로 나갔다가 차에 치여 목이 부러져 죽은 사건은 제외하고.
“그랬었구나. 그래도 준성씨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여기서 밖에 쳐다보니 위험하긴 하더라고요. 사람들 엄청 많아요. 차도 도로 막히니까 막 인도로 치고 들어오고. 소방 방재청에서 가급적 외출을 삼가고 자택에서 대기하라는 긴급문자도 오긴 했었는데. 아무래도 다들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가 봐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뭐긴. 미친 놈들이지. 단체로 약 먹고 환각증세라도 일으킨 거겠지. 일하다 스트레스 받아 돌아버렸거나.”
“그렇게 단순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이렇게 동시 다발적으로 사방에서 사건이 일어나는 걸 보면 전염성 강한 질병 아닐까요?”
“그럼 광견병이나 광우병 같은 거 아냐?”
“어? 저 어제 소고기 먹었는데요! 안돼!”
반쯤 농담 섞인 어조였지만 어린아이처럼 눈썹이 축 내려앉은 표정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감정에 따라 그대로 드러나는 풍부한 표정 변화. 이게 정은씨의 매력이지.
“에이. 도대체 언제적 광우병이에요. 제가 지금까지 본 증상을 보면 단순히 사람을 물어뜯거나 공격하는 게 전부가 아니었어요. 아까 카페테리아에서 봤던 여자는 인포 안내원을 득달같이 쫓아가서 목걸이부터 잡아뜯고는 자기 목에 매던걸요?”
“목걸이를 뜯어서 맸다고? 음 그건 지나치게 인간적인데? 개는 그냥 멀쩡한데 일부러 미친 척 하는 거 아냐? 이 난리 중에 한몫 챙기려고”
“아니에요. 그 놈들 실제로 한번 모면 그 특유의 광기라고 해야 할까. 도저히 사람 같지 않은 기운이 뿜어져 나와요. 절대 미친 척 하고 그런 수준이 아니에요. 단순히 보이는 사람 물어뜯고 하는 식이 아니라 좀더 개개인의 행동패턴이 달랐어요. 아침 출근길에는 여자 강간하는 놈도 있었어요”
“강간..이요? 아 끔찍해. 진짜 미친 건가 봐요.”
“그럼 뭐야? 단체로 오늘부터 법 따위 개나 줘! 우린 하고 싶은 대로 할 꺼야! 그런 건가? 이상한 사이트에서 단체로 테러 일으키기로 마음먹기라도 한 건가?”
“뭔가 도움되는 이야기들을 나누시는 것 같은데 저도 좀 껴도 될까요?”
낯선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옆 팀 사람 같았다. 회사 오고 가며 대화는 없었지만 얼굴은 봤기에 기억이 났다. 성훈씨가 경계하며 대답했다.
“음? 옆 팀 분이신가?”
“네. 반갑습니다. 얼굴은 기억하는데 이렇게 인사 나누기는 처음이네요. 김승현이라고 합니다.”
멋진 남자였다. 깔끔한 외모에 훤칠한 키가 돋보이고 인정하긴 싫지만 매너도 좋았다. 구김 하나 없이 잘 다려진 하얀 와이셔츠처럼 빳빳하고 깨끗한, 잘나서 재수없는 부류. 나도 모르게 슬쩍 정은씨의 얼굴을 보게 됐다. 그녀는 승현을 바라보며 알 수 없는 오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나눈 뒤 우리는 이 이상한 사건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매우 중요한 정보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나눈 정보를 모으자 미친 사람들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있었다.
“첫 번째. 놈들은 사람에 대해 호전적이다. 눈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물리적 폭력을 가한다. 일반 사람보다 강력한 근력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물리적 폭력 이외에 다른 방식으로도 상해를 입힌다. 강간하거나, 목걸이 같은 액세서리를 강탈하기도 한다.
세 번째. 간단한 몇 가지 단어를 반복적으로 말하지만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네 번째. 강력한 충격에도 버티는 뛰어난 맷집을 가지고 있다.
다섯 번째. 항상 웃는 표정으로 웃음 소리를 낸다.”
승현씨가 정리한 내용을 하나씩 말할 때 마다 분위기는 점점 침울해졌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기이한 특징 들이었다.
“문제는 놈들이 어떻게 해서 나타났고 어떤 식으로 처리할 수 있는지를 모른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나눈 얘기와 인터넷 기사 등을 참고해봤을 때 아침에만 하더라도 강남역 부근에서만 목격됐는데 지금은 서울, 경기 지방에 광역적으로 퍼져서 나타나고 있거든요. 전염성 정신이상질환 같은 종류가 아닐까 싶네요.”
승현의 말에 정은이 놀라며 대답했다.
“전염되는 정신질환이요? 그게 가능해요?”
“불과 10년 전만해도 항생제에 면역인 슈퍼 박테리아 같은 건 상상도 못했죠. 미생물의 진화속도는 상상을 초월해서 말도 안 되는 변종이 나타나기도 하니까요. 듣도보도 못한 새로운 병원균이 등장하는 건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닙니다. 물론 저 의견은 어디까지나 단순한 개인적 추측일 뿐이에요”
“사람을 공격하게 만드는 정신질환이라니. 생화학 무기 같은 거 아냐? 그 북한 놈들이 할만한 짓이라 생각지 않아?”
“음 성훈씨 그건 지나친 과장 같아요. 그보다 저는 놈들이 공격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다양하달까, 지극히 인간적인 방식으로 피해를 입히는 부분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나의 반론에 성훈씨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지극히 인간적인 방식이라고?”
“네. 세상에 다른 여자의 목걸이나 반지를 강탈해서 자신이 차는 그런 병이 어딨어요. 더 골때리는 건 어떤 놈은 소화기로 사람을 후려치고 다른 놈은 여자를 강간하고. 증상이 제각각 이라는 거에요. 어떤 질병이든 감염 시 나타나는 증상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런데 이 경우는 그게 감염자마다 전혀 다르다는 거죠.”
“준성씨 얘기를 들어보니 단순한 전염병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겠네요. 역시 정신질환 쪽 이려나. 사람이 다른 사람을 공격하거나 강간하거나 금품을 강탈하는 이유는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