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The Ones Who Walk Away from Omelas]은 SF작가 어슐러 K. 르 귄의 작품입니다. 기껏해야 몇 페이지 정도의 분량에 불과하여 단편이라기보다는 엽편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려 보이지만, 그 안에 녹아 있는 철학적 고찰의 깊이는 결코 얕지 않습니다.
오멜라스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마치 동화 속 마을처럼 이상향이라고 할 만한 이 도시의 시민들은 완전무결한 행복을 영위하며 살아갑니다. 그 누구도 고통 받지 않고 모두가 즐겁게 살아갑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면요.
오멜라스의 어느 건물 지하실에는 한 아이가 벌거벗고 굶주린 채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아이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오멜라스의 완벽한 행복과 아름다움은 이 아이가 고통을 겪고 있는 동안에만 유지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아이가 밝은 햇살이 비치는 바깥으로 나온다면, 그래서 깨끗하게 씻고 잘 먹을 수 있게 된다면, 그 순간 오멜라스에서 살고 있는 수천 명의 행복과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그야말로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오멜라스의 거주민들은 누구나 이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아이의 괴로움에 공감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아이를 구해주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아이를 구해주는 순간, 앞서 말했다시피 오멜라스의 행복은 끝장나고 말 것입니다. 반면 그 아이에게서 눈을 돌려 모른 척한다면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단 한 사람, 그 아이만을 제외하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른척합니다. 혹은 자기합리화를 하기도 합니다. 한 사람이 고통을 받음으로서 수천 명이 행복하든지, 아니면 한 사람이 행복해지는 대신 모두가 불행해지던지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정답이 무엇인지는 너무나도 명백하니까요. 그리고 그들은 행복한 오멜라스 사람의 일원으로서 여전히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일부의 사람들은 그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오멜라스를 떠납니다. 그 완벽한 행복과 즐거움을 뒤로 하고 떠난 이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 확실한 것은,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대체로 일부 소수의 희생 위에서 성립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혼란과 분노를 저는 아직 기억합니다. 그 희생은 대체로 마지못해 등 떠밀리는 식이며, 심지어는 다른 이들로부터 강요당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물론 때로는 자발적인 희생도 있습니다. 그러나 설령 누군가가 죄를 대속하는 성자처럼 희생을 자원했다고 하더라도, 다수의 행복을 위한 그 희생이 과연 옳은 것일까요.
이 질문에 쉽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둘 중 하나일 겁니다. 그냥 생각이 없거나 아니면 사이코패스거나. 왜냐면 설령 희생양이 필요하더라도, 우리는 가능하면 희생양이 되기보다는 희생양의 존재로 인해 행복해질 수 있는 다수에 속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피지알에서 크고 작은 논란이 있을 때마다 저는 대체로 전장에 뛰어들기보다는 관망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내심으로는 운영진을 응원하는 쪽에 서 있곤 합니다. 피지알이라는, 넓디넓은 인터넷 세계에서도 비슷한 곳을 찾아보기 힘든 이 독특한 사이트는 사실 운영진의 자발적인 희생 위에서만 유지될 수 있는 불안정한 곳입니다. 어느 날 운영진 전체가 사표를 내고 더 이상 사이트를 관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면 피지알의 고유성을 잃고 멸망하는 데까지 채 일주일도 걸리지 않을 거라고 저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운영진들이 남의 강요가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운영진에 합류한 것이라는 사실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또한 굳이 퍼플레인의 반례를 들지 않더라도, 모든 운영진이 그러한 선의와 희생정신만으로 운영진에 합류한 것은 아니었음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운영진들이 감내하고 있는 희생이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닙니다.
언젠가 운영진을 공개 모집할 때 저도 신청을 해 볼까 하는 마음이 슬며시 들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신청하지 못한 이유는 잘 해낼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냥 운영진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운영진은 하나의 단체가 아니라 개개인의 집합입니다. 필연적으로 일관성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회원들은 일관성을 요구합니다. 그러한 일관성의 요구가 나쁘거나 옳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며 어찌 보면 당연한 요구에 가깝습니다. 문제는, 그러한 요구를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운영자는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니까요. 개개인의 성향 차이는 둘째치더라도 동일한 운영자가 흡사한 두 가지 사례에서 서로 다른 대처를 보이는 경우는 아주 흔합니다. 심지어 가장 엄격하고 공정하게 판단해야 할 판사들조차도 그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운영진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러나 피지알의 운영진은 불가능한 일관성을 지속적으로 강요받습니다. 그것이 제가 운영진이 희생하는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고, 설령 누가 시켜 주더라도 제가 운영진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게다가 ‘운영진’이 개개인의 집합인 것처럼 ‘피지알러’ 역시 개개인의 집합입니다. 어떠한 사태에 대해 피지알러 개개인이 요구하는 것은 전부 다르고, 운영진은 아무리 현명한 대처를 하더라도 대부분의 피지알러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운영진이 항상 욕을 먹는 것은 어쩌면 논리적으로 당연한 귀결입니다. 어떠한 결정을 하더라도 그 결정은 소수만 만족시킬 수 있을 뿐 절대 다수는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게 운영진 노릇을 함에 있어 물질적인 대가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하다못해 정신적인 충족감이라도 주어져야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운영진이 활동을 중지한다면 피지알은 모래로 쌓은 성처럼 쉽사리 무너지고 말 겁니다. 안타깝게도 피지알은 소수 운영진의 희생 하에서만 성립될 수 있는 구조의 사이트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개개인의 희생을 감내하면서 피지알을 유지시키고 있는 운영진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슬슬 눈치채셨을 것 같습니다. 예. 이 글은 낯간지러운 응원글입니다. 그럭저럭 피지알에서 십여 년 이상을 거주한 회원이, 왕년에 젊은 감성에 푹 젖어 선수들을 응원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다소 민망한 마음으로 쓴 응원글입니다. 운영진에게 그냥 힘내시라는 말 한 마디를 하고 싶어서 구차하게 길게 쓴 글입니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지만 오멜라스에 남아서 여전히 행복함을 즐기고 있는, 하지만 그 행복이 일부의 희생 위에 성립되어 있음을 알고 약간이나마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그러면서도 그 희생이 강요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이라는 사실에 조금은 안도하고 있는, 그리고 오멜라스가 계속 지속되기를 바라는 저 같은 평범한 소시민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쓸데없이 글이 길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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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판사들은 그에 걸맞는 명예와 권위라도 부여받죠....
피지알 운영진들은... 뭐 좀 하려고 하면, 여기저기서 딴지걸고, 긁어대고, 비꼬고, 맞먹으려 들고...;;
아무리 탈권위주의 시대라 해도, 그거 갖고 뭘 얻어가는 분들도 아닌데, 적어도 이 사이트 안에서의 권위는 좀 인정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듭니다.
운영진 분들 화이팅입니다~! ^^*
이런글이 올라올 수 있는 커뮤니티는 제 좁은 식견으로는 아직 피지알 밖에 없습니다.
많이 변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시지만, 밑의 다른분의 글에서 처럼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은 모든것은 변한다는 것이다"라는 문구가 생각납니다.
피지알을 처음 알았을 때와 지금의 우리가 다른 것 처럼 우리가 처음 알았던 피지알과 현재의 피지알은 다른 모습일 겁니다. 앞으로도 다르겠죠.
그게 자연스러운게 아닌가..합니다.
그래도 그 숱한 세월에서 이 정도로 튼튼한 커뮤니티가 생성되고 유지될 수 있게 오늘도 열심히 일해주시는 운영진들께 감탄해 마지 않습니다.
피지알 운영진의 업무는 까다롭고 과중해 지원자가 극히 미미하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그 고단함이 어느정도일지 상상이 잘 안갑니다. 조금이나마 이번 토론에 참가하면서 든 생각중에 하나는 피지알 운영진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것이었어요. 주중 일과를 끝내고 가족과 함께 휴식을 취해야하는 주말에 그 휴식시간을 고스란히 헌납하셨을텐데..
피지알에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으로서 운영진분들께 항상 많이 많이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