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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3/20 12:53:51
Name 검은책
Subject [일반] 버드맨과 보르헤스
이 글은 영화 [버드맨]과 보르헤스의 단편집 [알레프]에 실린 단편 중 하나, [죽지 않는 사람]을 연관시켜 써보는 개인적 감상입니다. 
영화와 소설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정신분석적 관점으로 버드맨을 보다

영화관에서 버드맨을 보고 나서 영화의 결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고 고민했습니다. 물론 영화는 허구일 뿐이고 허구의 열린 결말은 감상자가 어떤 해석을 내리든 상관없습니다. 현실적 개연성을 따져서 리건의 염력을 환상으로, 마지막 장면을 자살로 해석해도 상관없고, 딸인 샘이 창문가에 서서 짓던 미소를 근거로 리건을 둘러싼 모든 사건을 한편의 거대한 농담으로 해석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또 한가지, 감독은 영화에 외삽된 해석, 즉 버드맨에 등장하는 인물과 배우로서의 그들의 실제 삶이 메타적으로 연결되도록 유도합니다. 일례로, 주인공 마이클 키튼이 히어로물인 배트맨의 실제 주인공이었다는 것, 마이크 역을 맡은 에드워드 노튼이 대본에 간섭을 많이 하는 배우로 알려진 것 등이 허구로 짜여진 원형의 세상인 무대와 무대 뒤라는 버드맨의 배경을 배우들의 현실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시키지요. 

저는 정신분석적 관점으로 버드맨의 해석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말하자면 리건이 준비하는 무대와 그 무대 뒷편을 리건 자신의 정신(의식)과 연결해서 보는 것이지요. 무대는 리건이 타인에게 보여지고 싶어하는 의식을 형상화 한 것이며, 무대의 뒷편은 리건의 무의식의 영역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하고요. 그렇게 본다면 리건의 초능력, 즉, 마음에 안드는 배우에게 조명을 떨구어 하차시킨다거나, 공중부양을 한다거나, 염력을 발휘하는 것은 하나도 신기할 이유가 없지요. 이런 해석이 일말의 개연성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영화의 음악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영화음악이란 외삽되어 관객에게 특정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또는 강요하는) 방식인 반면에 이 영화에서 들려오던 음악은 리건의 정서와 심지어 위기의 상황에서 가파르게 뛰는 심장소리와도 연결되지요.

영화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등장하던 드럼 소리는 영화의 중후반 리건과 마이크가 브로드웨이를 걸을 때 길가에서 우연히 마주친 드러머로 현실화되지요. 그러다 마지막 무대를 향해 걸어가는 리건이 무대 뒤의 구불구불한 복도를 지날때 드러머는 태연하게 어느 구석을 차지하고 영화의 음악을 연주합니다. 그러나 드러머를 바라보는 시선(이 시선은 리건의 시선이 아닙니다. 리건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며, 영화를 보는 관객의 시선이지요. 또한 리건이 리건 자신을 보는 시선이기도 합니다.)은 태연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영화의 음악은 실제 리건이라는 배우의 삶이라 상정지은 것을 단숨에 허구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리죠. 실제와 허구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 관객은 이 영화를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쓸모없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리건을 무대라는 강박으로 이끄는 세 가지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빨간 등이 켜지며 들려오는 소리 즉, 무대를 준비하라는 목소리와  버드맨의 목소리, 그리고 리건 자신의 독백이 있습니다. 이것을 프로이트식으로 슈퍼에고, 이드, 에고로 해석해 보면 어떨까요? 리건은 분열된 채로 세 가지의 목소리를 다 듣습니다. 무대에 오르라는 슈퍼에고의 명령을 리건은 착실히 따르죠. 그러나 그냥은 안됩니다. 예술가로 성공하고 싶다는 리건의 에고는 [넌 버드맨이야]라고 말하는 이드의 명령과 갈등을 일으키죠. 처음에 리건은 이러한 분열이 하나도 봉합이 안된 상태로 무대에 오릅니다. 세 가지의 목소리는 처음에는 완벽히 분열되어 있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혼재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버드맨과 리건의 목소리가 명확히 혼재되는 시점은 분명, 비평가와 입씨름을 하고 술을 마신 리건이 쓰레기 더미 위에서 잠을 자고 난 다음입니다. 그 후 리건은 버드맨의 목소리를 온전히 받아들이죠. 그 후에 그는 하늘을 날기도 합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이제까지 애써 부정하고 벗어나려고 했지만 리건은 버드맨이니까요. 또는 버드맨이 리건을 죽음으로 이끈 사자일 수도 있지요. 이냐리투 감독은 그의 전작 [비우티풀]에서도 주인공 욱스발의 죽은 아버지의 환영을 소환하는 시점에서 새를 등장시킵니다. 어쩌면 버드맨인 리건은 태어나기도 전에 신탁을 받은 율리시스와 같은 운명인지도 모를 일이지요.


2. 미로와 같은 무대의 뒷편은 구조화된 무의식을 형상화한 것이 아닐까?

버드맨을 보는 또 다른 재미 중 하나는 마치 미로와 같은 무대의 뒷편입니다. 리건의 방, 거울에 붙어 있는 여러 경구들, 지저분하고 낡은 복도의 벽을 따라 붙어있는 여러 지시 사항들은 마치 리건에게 버려진 기억처럼 느껴지죠. 또한 미로를 따라 가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인물들은 아무 곳에도 없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합니다. 잊고 있다가 갑자기 기억이 나는 사건과 그 사건에 얽힌 인물들처럼 말이죠. 그러므로 도저히 그 구조를 물리적으로 짐작하지 못하게 하는 이런 공간은 라캉의 저 유명한 말처럼 구조화 되어 있는 무의식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입니다. 

또한 버드맨의 목소리는 타자의 함의가 진리를 보증하지 않으므로 타자를 거부하는, 리건 자신의 데카르트적 코기토이기도 합니다. 리건이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흥행배우 버드맨은 결국 리건을 입증하는 방식(코가 날아간 리건은 버드맨처럼 붕대를 하고 있고, 붕대를 풀고 난 리건의 얼굴의 멍과 부풀어오른 코는 리건을 흡사 버드맨처럼 보이게 합니다.)으로 작동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버드맨은 한치의 의심도 없이 리건이 버드맨임을 주장합니다. 무대 뒤 즉, 리건의 무의식 속에서 리건은 수도없이 타자와 대화를 나눕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내면화할 수 없는 타자성을 뒤로 한 채 결국 자신의 코기토를 증명해줄 버드맨을 다시 불러낼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보르헤스의 미로와 버드맨

마이크가 태닝을 하다가 화가 난 리건을 맞이하는 장면에서 마이크의 손에 들린 책은 보르헤스의 [라비린스]입니다. 보르헤스는 실제로 [라비린스]라는 노골적인(?) 제목의 책을 낸 적이 없어 의아했는데, 검색해 보니 보르헤스의 단편 모음집인 [픽션들][알레프]를 영어권 편집자가 따로 선하여 출판한 것이라고 합니다. 단편집 [알레프][자기 미로에서 죽은 이븐 하캄 알 보크하리]라는 제목의 단편이 있고, 그 외의 단편들도 미로의 이미지를 차용하긴 합니다만, 버드맨을 보면서는 그 중 [죽지않는 사람]이라는 단편을 떠올렸습니다. 줄거리는 아래와 같습니다. 

1926년 뤼생주의 공작부인은 고서적상 카르타필루스에게 포프의 여섯 권짜리 [일리아드]를 구입합니다. 그리고 이 묘한 분위기의 고서적상에게 호기심을 느끼지요. 그녀는 나중에 제우스호의 승객을 통해 카르타필루스가 바다에서 죽었으며 이오스 섬에 묻혔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녀는 카르타필루스에게서 산 [일리아드]의 마지막 권에서 원고를 하나 발견하는데 거기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화자)의 기억을 따라갑니다. 나는 로마의 장군으로 여러 차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 심한 박탈감을 느끼고 '죽지않는 사람들의 도시'를 찾아나섭니다. 그 도시는 아득한 강변에 요새와 원형극장과 사원이 즐비한 곳에 세워져 있다고 하는데, 나는 끝없는 사막을 헤메다 나를 따르는 군사를 모두 잃고 정신을 잃고 맙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나(화자)는 손이 등뒤로 묶인 채 한 혈거부족의 포로가 되었음을 깨닫습니다. 혈거부족은 뱀을 잡아먹고 돌로 이루어진 조그만 동굴에서 기거하며 말대신 짐승과도 같은 음성언어로 소통합니다. 갈증으로 무모해진 나는 절벽아래 물이 있는 곳으로 몸을 날리고 물을 마신 뒤 그곳을 탈출합니다. 그런데 의아하게도 나를 따르는 혈거부족인이 한 명 있습니다. 나는 그에게 율리시스의 개인 '아르고스'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사람의 말을 가르치지요. 그러나 그 노력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나는 사막을 배회한 끝에 동굴 하나와 마주치게 됩니다. 그 동굴은 미로와 이어져 있고 신비한 미로는 시작도 끝도 없지요. 어느 복도의 끝에서 나는 예측지 못한 한 줄기 빛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 빛에 이끌려 아주 오래전에 축조된 도시를 발견하지요. 고색창연하고, 무한하고, 잔악하며, 강박적일 정도로 무분별한 구조물 속에서 나는 또 한번 길을 잃고 맙니다. 뒤엉킨 도시를 빠져나왔을 때쯤 나는 혈거부족이 실은 '죽지 않는 사람들'이며, 그가 마신 물이 영생의 샘물이라는 것과 아르고스라고 이름 붙인 자신을 따르던 혈거부족인은 다름 아닌 율리스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영원히 사는 혈거부족인들은 그들의 삶에서 점차 의식과 생각, 언어를 소거해 갔던 것이지요. 모든 지식은 단지 회상에 불과하다는, 이 단편을 여는 말처럼 혈거부족인이며, 아르고스이며, 율리시스는 갑자기 야만을 벗어던지고 그리스어로 나에게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그 후에도 새로운 왕국과 새로운 제국들을 돌아다니며 전투에 참가합니다. 그동안 여려 이야기를 필사하기도 하고, 감옥의 안마당에서 체스를 무척 많이 두기도 합니다. 나는 죽지 않는 사람이니까요. 어느 도시에서는 점성학을 가르치기도 하고, 포프의 [일리아드]를 기쁜 마음으로 구독하기도 합니다. 수사학 교수와 시의 기원에 관해 토론을 벌이기도 하죠. 그러다 1921년 어느 항구의 외곽 도시에서 맑은 물이 솟아나는 샘을 발견하고 그 물을 마시지요. 그리고 살을 에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낍니다. 나는 드디어 다시 죽는 존재, 모든 사람과 같은 존재가 된 것이지요. 그날 밤 나는 모든 고뇌를 뒤로하고 새벽녘까지 잠을 잡니다.

일년이 지난 후 나는 내가 한 모험의 이야기를 읽습니다. 그리고 많은 것들이 허구임을 발견합니다. 끝이 가까와지면서 기억의 모습은 남아있지 않고 단지 단어만이 남으며, 운명의 상징인 단어들은 혼동될 수 있다는 사실이 별로 이상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나는 율리시스처럼 '그 누구도 아닌 사람'이 될 것이며, 나는 모든 사람이 될 것이며, 나는 죽을 것이다, 라고 말하며 이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보르헤스의 저 이야기처럼 버드맨 또는 리건이라는 서사의 미로에 들어선 관객은 안과 밖이 불분명해 집니다. 마치 미로의 벽은 안과 밖이 불분명 한 것처럼 말입니다. 관객은 리건이 아닌 제 삼자로 이야기에 끌려들어가지만 어느새 리건이 되어 다른 사람을 바라보기도 하고, 급작스럽게 다시 삼자의 위치로 강등되기도 하지요. 리건은 버드맨이길 거부하지만 그의 의식이라는 미로 속에서 리건은 버드맨으로 돌아가지요. 죽지 않는 사람들의 도시를 찾아 떠난 나는 결국 영생의 샘물을 마시고 율리시스를 만나고, 포프의 [일리아드]를 읽으며, 또 많은 것이 허구임을 발견합니다. 리건의 비행이 참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그러므로 무의미합니다. 관객은 리건처럼는 죽는 사람이지만 버드맨처럼 죽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니까요. 이야기의 미로에 들어선 순간 나는 모든 사람이며, 나는 죽을 것이지만, 또 죽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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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3/20 13:16
수정 아이콘
멋진 독해입니다.

'이야기는 풍부하되, 글은 집약적으로'란 암묵적 글쓰기 강령에 꼭 부합할만치 근사한 글이기도 하구요.

잘 읽고 갑니다.
삼공파일
15/03/20 13:47
수정 아이콘
[버드맨]이 위대한 영화인 건 이런 독해를 유도하고 풍부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면서도 그 영화 자체로의 짜릿함을 조금도 잃지 않는데 있는 듯합니다. 실제 주인공 세 명이 보이는 정신병적 증상들도 개연성이 충분하여 억지 설정이나 무리수도 없고요.
검은책
15/03/20 23:26
수정 아이콘
맞습니다. 이따위 되도 않는 해석 따위 다 필요없습니다.
그런거 없어도 버드맨은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정말 보는 내내 얼마나 감탄을 했는지 모릅니다.
마스터충달
15/03/20 15:58
수정 아이콘
정말 좋은 글이네요. 다양한 상징들에 적절한 의미부여가 되어 글 속에 빠져들게 하시네요. 필력에 감탄했습니다.

글 자체와는 별개로 읽고나서 재밌다고 느낀 것이 있네요. 우선 정신분석학입니다. '왜 비평은 아직도 정신분석학인가?'라는 아쉬움이 들기도 하지만, 정신분석학에 문학적 가치는 있었다 보기에 이 부분은 스킵하고... 재밌는 것이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리건의 생사 여부는 무의미 하다는 것과 실제와 허구의 구분도 무의미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뭐랄까 정신분석학 자체와 닮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분석의 결과가 분석의 도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다른 것은 정신분석적으로 해석되어도, 이를 부정하는 심리적으로 해석되어도 어느 것도 무리가 없다는 짐입니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버드맨이라는 작품과 이냐리투라는 감독에 새삼 소름이 돋네요.
삼공파일
15/03/20 16:29
수정 아이콘
인셉션에서 마지막 팽이처럼 열린 결말처럼 보이긴 하는데 꿈이 아니었던 것처럼, 버드맨도 환각에서 벗어나지 못한 리건이 모든 걸 포기하고 자살했다는 결론이어야 스토리가 완결성이 갖는 게 아닌가 합니다. 리건이 환각을 보는 것을 극 내내 강조하고 그걸 중심으로 연출하다가 개연성을 다 깨뜨리고 마지막에는 진짜 하늘을 날았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릴 근거가 좀 부족해보여요.
마스터충달
15/03/20 16:46
수정 아이콘
그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 영화내내 이어지는 불안을 야기하는 구도와 드럼소리죠. 내러티브 면에서도 리건의 심리를 압박하는 각종 요소에 약물과 알콜이 등장하기도 하고요. 때문에 저는 심리적 불안에 의한 자살이 타당하다고 봤었구요.

근데 정신분석학 측면에서 바라본 이 글도 매우 그럴듯하게 다가오네요. 비록 그런 해석이 실재하는 인간심리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학문 자체의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버드맨의 위엄이자 이 본문의 위엄이 아닐까 싶네요.
검은책
15/03/20 23:30
수정 아이콘
스토리의 완결성과 현실적 개연성을 같은 것으로 놓으면 서사로서의 예술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현실이 쥐지 못하는 일말의 진실을 위해 우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창조하고 그것을 소비하는 것이니까요.
검은책
15/03/20 20:43
수정 아이콘
방금 위플레시보고 치맥 흡입중이에요.
아... 영화 정말 좋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마스터충달
15/03/20 20:49
수정 아이콘
위플래쉬 vs 버드맨 어떤 쪽의 손을 들어주시려나요? 검은책님의 의견이 정말 궁금합니다.
검은책
15/03/20 23:21
수정 아이콘
서사예술로서 영화라는 쟝르를 보자면 당연히 버드맨이지요.
하지만 위플레시는 특별한 영화입니다.
이제까지 천재를 다룬 영화는 천재의 고난과 시련에 촛점을 맞춘 반면 위플래시는 [천재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 하니까요.
천재는 [큐를 기다리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으려나요.
카라반과 위플래시를 연결하는 연주를 하는 것이 천재지요.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만으로 천재가 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마스터충달
15/03/21 02:10
수정 아이콘
전 위플래쉬는 서사 예술의 면모 보다는 영상예술로서의 면모가 더 훌륭하다고 봤습니다. 위플래쉬가 천재를 다뤘다기엔 천재에 대한 서사의 깊이가 좀 부족해보여요. 애당초 영화가 내러티브의 엉성함을 일종의 미덕으로 보여주고 있긴 하죠.
검은책
15/03/21 08:41
수정 아이콘
'서사의 깊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서사(내러티브)는 깊이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완결성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위플레시가 영상예술로서의 면모가 뛰어났다고 하시는데 제가 영상예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그것에 대해 드릴 말씀은 없구요.
앞에서 이미 말씀드렸듯이 [천재에 대한 서사]에 대해 말해보자면 '천재는 이미 천재인데 태클거는 놈이 많아서 천재 해먹기 힘들어.'
이런 것은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수없이 많이 우려먹은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영화관에 걸린 이미테이션 게임도 그런 영화죠.
솔직히 별로 재미없었어요.

위플레시가 특별한 것은 정확히 그 반대의 서사라는 점입니다.
주인공이 천재인지 아닌지 관객은 알지 못합니다. 열심히 하는데 별볼일 없는 범재일 수도 있죠.
플래처교수도 그에게 내가 가르친 학생 중에 찰리 파커는 없었다고 말하죠.
그러나 찰리 파커가 찰리 파커가 된 이유는 그에게 '굿잡'이라는 발린 말대신, 심벌즈를 날려서 목이 날아갈 수도 있었기 때문이지요.
엔딩에서 주인공이 첫번째로 연주한 곡은 그에게 익숙하지 않은 곡이고, 연주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주인공은 자리를 뜨죠.
만약, 재즈의 즉흥성(?)에 기대어 멋있는 연주를 해낸다 이런 식으로 흘러가면 이미 많이 우려먹은 흔한 이야기가 되어버렸겠지요.
그러다 주인공은 다시 돌아와 무대를 자기 것으로 만들지요.
지휘자가 큐를 주면 연주를 시작하던 종래의 방식을 깨고 적대적인 지휘자에 대항해서 카라반과 위플레시를 드럼 연주로 연결해 버립니다.
플레처는 자존심을 지키는 것보다 무대위에서 완벽함이 더 우위의 가치를 가지기 때문에 그가 하는 연주에 기꺼이 따랐던 것입니다.
천재는 날 때부터 천재가 아니죠. 천재를 향해 가는 것이죠.
화장실의 변기를 떼어와 미술관에 전시했던 뒤샹처럼요.
마스터충달
15/03/21 09:27
수정 아이콘
깊이가 없다는 것은 조금 넓게 말하자면 '이야기가 부실하다.' 입니다. <위플래쉬>가 천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라면 그것에 대해 더 깊이있게 다루어야 했습니다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죠. 나쁘게 말하면 수박 겉핥기 같은 건데, 저는 이 점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보긴 했습니다. 깊이가 없는 대신 속도감을 살렸죠. 여담입니다만, <위플래쉬>의 서사는 완결성도 없긴 하군요;;;

검은책님이 <위플래쉬>를 '천재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바라보셨다는 것은 서사예술로 바라봤기에 나온 것이라고 봅니다. 그것은 '위플래쉬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영화인가?'라는 질문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근데 저는 '위플래쉬는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영화는 아니다.'라고 봅니다. 천재성을 이야기 하기엔 이룰 다루는 이야기가 부족하고, 광기와 욕망에 대해선 그것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않는 애매한 입장이죠. 그렇다고 스승과 제자의 갈등을 다룬다고 하자니 결말이 또 애매하죠. 설령 천재성을 다룬 것으로 본다 하더라도 큐를 무시한 행동에 천재성이 있는 것은 아닐겁니다. 플레처가 마음이 동한 것은 큐를 무시한 행동이 아니라 드럼솔로에서 보여준 연주실력 때문이었죠.(그리고 카라반과 위플래쉬를 드럼 연주로 연결했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위플래쉬'가 나온 것은 엔딩 크레딧이고 연주는 오로지 '카라반'만 나왔던걸로 알고 있어서요.)

뭐 위와 같이 내러티브가 부실하거나 불충분한 면모가 있기도 하고, 영화에서 느꼈던 감흥이 이야기에서 왔던 것도 아니었기에 저는 <위플래쉬>를 서사예술로서의 영화보다는 영상예술로서의 영화로 보는 편입니다. <위플래쉬>를 보면서 감탄이 나왔던 장면들은 그 장면까지 끌고온 서사에서 오는 감흥이 아니었거든요. 조명, 카메라 워크, 편집, 현장감 넘치는 연주와 음악 등등 <위플래쉬>에서 쩌는 부분은 이것이 비디오라는 매체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같은 내용을 활자로 옮긴다면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결국 내러티브 중심의 영화로 보기 보다 스타일 중심의 영화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미테이션 게임> 재미없다는 것에 깊이 동감합니다;;
검은책
15/03/21 10:07
수정 아이콘
영화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가가 서사의 질을 따질 수 있는 요소는 아닙니다.
주인공의 실력은 이미 플레쳐가 알고 있고 그 사이에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도 아닙니다.
무대 위에서는 일종의 관계의 역전이 일어나죠.
뒤샹이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이유와 같습니다.
변기를 미술관 안으로 들여온 것은 기존의 예술의 개념을 뒤엎는 전복이고 혁명이죠.
주인공이 무대에서 한 것이 바로 그런 겁니다.
주인공이 한 돌발적 행동은 재즈음악이라는 개념을 신선하게 일깨운 것이죠.
플레처는 주인공의 실력에 새삼 감탄한 것이 아닙니다.
마스터충달
15/03/21 10:12
수정 아이콘
댓글 다는 사이에 다시 쓰셔서 계층이 깨졌네요. 다시 긁어와서 달아 놓습니다.

제 설명이 애매모호한가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위플래쉬>는 내러티브가 엉성하고 구멍이 많아요. 제기되는 물음들에 대해 답변을 확실하게 하지도 않고, 완결되지 않은 서브플롯도 산재하고 있고요.

천재성을 다룬다고 하기엔 천재란 무엇인지, 네이먼은 다른이들과 무엇이 다른지, 결론적으로 네이먼이 천재인지 아닌지도 불분명하죠. 지휘자의 큐를 무시하는 진입을 천재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것도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네이먼의 입모양 처럼 플레처를 엿먹이는 것에 촛점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겠죠. 주도권의 역전이 쾌감으로 다가오는 것은 네이먼과 플레처가 갖고있던 갈등관계에서 오는 것이지, 이 행위가 유래가 없는 독보적인 과감성을 갖고 있기 때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또한 영화 전체적으로 봐도 '천재 네이먼'의 심리와 내적 갈등 같은 부분은 다루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천재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라고 하기엔 이 부분에 대한 서술이 턱없이 부족하다 즉, 깊이가 없다고 말씀드린겁니다.

<위플래쉬>라는 영화는 특유의 감성을 위해 서사를 과감하게 가지치기 했고, 그 대신에 속도감이나 긴장감과 같은 스타일을 강화했다고 봐야합니다.

그리고 드럼 연주에 대해서는 저는 카라반이 끝난 것이 아니라 네이먼이 즉흥해낸 카라반의 드럼솔로라고 봤습니다. 이 드럼솔로 이후에 다소 촌스러울 정도로 장대한 마무리를 표현하기도 하고요. 거기서 카라반이 끝나고 엔딩크레딧으로 위플래쉬를 넣었다고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검은책
15/03/21 10:19
수정 아이콘
작품에 제기되는 물음은 관객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음은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 던지는 것이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제대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떡밥을 던져놓은 다음에 회수하지 못하는 것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하면 되는 것이지요.
네이먼이 처음부터 천재인지 아닌지는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네이먼의 심리적 갈등이 왜 다루어지지 않나요?
여자친구를 대할 때 다루어지잖아요.
이것 저것 많이 다룬다고 좋은 서사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속도감, 긴장감으로 스타일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고 제대로 했다면 그것으로 이야기는 끝난 것이지요.
마지막 무대에서는 카라반과 위플레시를 이어 연주한 것 맞습니다.
그것이 천재적인 이유는 위 덧글에 설명드렸습니다.
지우고 다시 쓰는 동안 글을 주셨네요.
죄송합니다.
저도 다시 가져다 붙였어요.
마스터충달
15/03/21 10:52
수정 아이콘
제 의견이 잘 전달되지 않은 것 같네요
저도 작품에 제기되는 물음을 관객이 하는 것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그리고 <위플래쉬>가 이것저것 많이 다루지 않아서 불만이지도 않고요. 되려 하나라도 제대로 다뤘다면 내러티브가 엉성하다는 비판은 없었을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천재성'에 대해 영화의 처음부터 다루지 않았다고 하시는데, 이는 반대로 이 영화가 '천재성'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여자친구와의 갈등은 그의 '천재성'을 설명해주기 보다는 집착과 광기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거고요. 그리고 영화 전반의 내외적 갈등을 생각하면 '천재성'보다 '광기'에 더 촛점이 맞춰졌다고 보여집니다.

검은책님의 댓글을 보니 이런 해석 차이가 벌어지는 이유는 네이먼이 카라반을 통해 무대를 지배하는 것을 천재적이라 볼 수 있는가, 아닌가에 달려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런 행동들이 전혀 천재적이라고 다가오지 않았거든요. 뒤샹의 혁명 같다는 느낌은 전혀 없었어요. 이런 가치역전의 쾌감을 느끼지 못하니 천재적이라고 바라보지 못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그저 플레처에게 한방 먹였다는 쾌감만 느꼈거든요. 결국 이 장면에 대한 해석차이가 영화 전반을 이해하는 시각차이가 되지 않았나 싶네요.

그리고 엔딩크레딧의 곡이 'Whiplash'가 아니라 'Overture'라는 곡이더군요. (https://www.youtube.com/watch?v=1Wr0yz4FLAg) 이게 메들리인지 아닌지에 집중하다 보니 위플래쉬려니 했는데 아니네요;; 아무래도 마지막 드럼솔로는 카라반의 연장으로 봐야 맞지 않나 싶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itQNblifPg, https://www.youtube.com/watch?v=mL-LyKcFE5c)
15/03/21 14:15
수정 아이콘
영화가 표현하는 전문적 분야와 재능의 세계를 검은책님께서 이를 '천재성'이라 말씀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도 영화를 보면 비슷한 걸 느껴서 알 거 같거든요. 나름의 전문 분야를 다룬다는 영화 속에서 참 쉽게 '천재'들이 등장하니까요. 그리고 이 '천재'는 다시 휴머니티를 깨달으며 휴머니즘의 찬가를 불러대죠.

대표적인 사례가 말씀하신 이미테이션 게임입니다. 이미테이션 게임 속 튜링은 스스로가 전쟁을 기획했고, 대를 위해 소를 희생했고 어쨌다고 하는데 실제 튜링이 그런 인식이 있었을지, 있어도 얼마나 강했을지 의문입니다. 그리 영웅적인 결단이 아니었을 거고, 차라리 다른 사람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겠죠. 에스트로겐을 주입받게 된 사건도, 영화 속에선 옆집의 신고였다고 나오지만 실제로는 튜링 자신의 신고였다고 합니다. 오로지 자신의 지성으로서만 자신을 평가하던 상아탑에서 살았고, 그 안에선 스스로가 게이든 말든 공공연히 드러내도 아무 문제가 없었기에, 바깥에서도 뭐가 문제인지 별 의식이 없었던 거죠. 그러나 영화는 암호해독 와중 인간에 대한 이해와 생명에 대한 존중과 휴머니티를 깨닫는 천재를 그려내고 싶었고, 그래서 그렇게 쉽게 튜링을 천재로 만들어버리고, 다시 그 위에 휴머니즘을 놓는 황당한 도식을 그려댑니다. 이런 영화 많습니다. 뷰티풀 마인드나 굿 윌 헌팅 어디에도 수학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오직 수학 천재들의 인간적인 드라마만 가득하죠. 트랜센던스쯤 되면 거의 코미디입니다. 각자 분야에 있어 세계에서 손에 꼽는 위대한 천재들이 갈등하고 고민하는 지점이 무슨 중학교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생명 윤리니, 생명의 본질이니 하는 수준에서 한치도 벗어나질 못하다니... 전 그래서 이런 영화를 보면서 불편을 넘어 불쾌했습니다. 아니, 저럴 거면 굳이 전문 분야를 다룰 이유가 뭐야, 굳이 천재를 동원할 이유가 없잖아. 그냥 중딩끼리 개구리 실험하다가 "개구리 너무 불쌍행... 징징징", 이런 수준이면 될 걸 거창하게도 만들었네, 하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뭐 정확히 트랜센던스가 지시하는 부분은 이와 좀 다르긴 합니다만, 형상화하려는 것의 유치함이야 그게 그 수준이니...).

반면 위플래시는 다르죠. 이 영화는 철저하게 재능의 영역을 다루고, 그 영역의 인간이 어떠한 태도를 취하게 대며, 무엇이 그들에게 중요한지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아마 위에서 언급한 다른 영화들이었다면 플레쳐의 폭력적이고, 고압적이며, 다른 무엇보다 오로지 예술만을 중시하는 절대적인 방식을 거부하는 천재적인 주인공이 자신의 여친과 아버지를 통해 서로에 대한 고려와 이해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이를 음악적으로 승화하여(물론 이 승화의 과정은 주인공은 천재니까 정도로 설명될테죠) 플레쳐에게 깨닫게 해주는 식의 위플래시가 되었겠죠. 하지만 실제 위플래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앤드류가 플레쳐를 뛰어넘는 순간은 플레쳐가 상정한 폭압을, 절대적인 예술성을 앤드류가 거부하는 순간이 아니라 절대성의 한복판으로 올라가 되려 폭압을 견뎌내고, 더 이상 폭압을 받지 않아도 될 시점에 이르러 플레쳐에게 자기 권력을 휘두르는 때입니다. 이 순간, 앤드류를 파멸시키려고 했던 플레쳐는 그딴 시시한 건 잊어버리고 앤드류 앞에 경배하죠. 황금가지 전승의식의 시작이자, 가장 치열한 분야에서 서로 간의 소통과 공감이라는 게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인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이전 자기 품을 떠나 무대로 다시 돌아가는 앤드류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시선은, 바로 관객의 시선이기도 하고요. 우리 모두가 그 순간엔 관객이 되고, 해당 분야에 있어서 철저한 범인/일반인으로 내려앉게 되지요. 이후 앤드류의 카라반과 즉흥연주가 음악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건 너무나 당연합니다. 아버지/범인/관객 앞에서 재능을 쥔 예술가가 보여줄 수 있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자기 작품밖에 없죠. 우리는 아버지처럼 문 틈으로 무대를 보고 있고, 오직 같은 무대 위에 선 플레쳐만이 앤드류에게 반응하며 그의 작품에 뛰어들어 조응합니다.

영화는 이 모두를 말하는 과정에서 '천재'란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그런 뉘앙스를 풍기는 인물이 있다면 오직 말을 통해서만 제시되는 찰리 파커나 조 존스 등일 겁니다. 이들을 말하며 플레쳐와 앤드류는 '심벌즈' 이야기를 하죠. 이건 그들 세계, 전문 세계, 스스로 예술을 만들어 다른 이 앞에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쥔 이들의 세계에선 '치열함'으로 술회될 뿐입니다만, 그 전에 '재능'에 대한 이야기기도 합니다. 애초에 재능이 없다면 자신이 바라보는 분야에 그렇게 매혹되기도 어렵고, 그 치열함을 당연하게 기대하기도 어렵거든요. 어느 순간이 되면 재능과 치열함은 거의 구분이 없어지니, 그냥 천재같은 건 제껴두고 치열함만을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근사한 거죠. 방만한 천재가 치열한 수재를 비웃으며 까불까불대다 겸손한 일반인을 만나 감화받고 모두 다 해피엔딩~~~ 이딴 나긋나긋한 이야기가 끼어들 여지가 없죠. 천재는 그들의 분야를 그저 그들의 분야로 남기겠단 표시고, 난 그 분야로 뛰어들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흔한 천재 영화들은 자신들이 등장시킨 '천재'를 어떻게든 자신들과 동화시키기 위해, 접점을 찾기 위해 애를 써대죠. 흔히 쓰는 방법이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들이 자신의 분야가 아닌 곳에서 좌충우돌하다 휴머니티를 깨닫는 방법을 쓰는 거구요. 자기 분야가 아니면 재능도 천재도 아니고, 휴머니티란 인간이면 모두가 느끼는 것 아니겠습니까. 바로 그렇기에, '천재', '천재성' 이런 표현은 위플래시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음악이란 천재들이 하는 게 아니니까요. 오직 매혹되지 않을 수 없을만큼 강렬하며, 그 치열함 속에서 발발 떨면서 한발 한발 나아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러한 맥락에서, 위플래시야말로, 진정 재능이(즉, 천재가 될 가능성을 쥔 이가) 자신의 분야를 바라볼 때 느끼는 강렬한 매혹을 진지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거구요.
검은책
15/03/21 15:45
수정 아이콘
위에 팟저님이 제가 이 영화가 어떤 의미에서 천재성을 다루고 있는지에 대해 잘 말씀해주셨으니 더 이상 덧붙일 말은 없구요.
내러티브가 약하다는 말씀에 대해서만 한말씀 드릴께요.
여러 인물이 등장하고 많은 갈등이 그려진다고 내러티브가 풍부하다고(또는 그래서 좋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줄거리가 길다고 내러티브가 풍부한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어야 할 때와 아닐때를 구분하면 되는 것이지요.
오히려 저는 주인공이 눈도 못쳐다볼 정도로 수줍게 고백한 여친을 자신의 음악을 위해 단칼에 절교한 것으로 주인공의 결심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왜 많은 인물이 등장해서 주인공의 고뇌에 대해 이야기 해줘야 하나요.
관객은 바보가 아닌데요.
그리고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도 그게 아닌데요.
주인공의 아버지, 여친 이 두명 만으로도 감독이 그리고자 하는 것이 다 갖추어 진 셈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작품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한다면 그 작품은 좋은 작품이고
위플레시는 그런 의미에서 정말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흠잡을 데가 없어요.
마스터충달
15/03/21 16:28
수정 아이콘
팟저님, 검은책 님// 두분이 영화에서 느끼셨던 것이 무엇인지 잘 알겠습니다. 저는 그런 감정이 광기로 느껴졌고 두 분의 말씀을 봐도 그 생각이 변하진 않네요. 다만 긴 설명을 보고나니 제 리뷰에 구밀복검님이 달아주신 리뷰 링크의 중이병과 고이병의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 어느정도는 이해됐습니다.
검은책
15/03/20 23:51
수정 아이콘
한가지 더...베를린 필의 상임 지휘자인 사이먼 래틀이 팀파니 신동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대체 팀파니 신동은 뭘까??? 하면서 (비)웃었는데 반성 많이 했어요. 타악기는 위대합니다. 지금 유튜브로 여러 연주자들 연주 듣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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