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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3/20 03:41:10
Name OrBef
Subject [일반] (책후기, 스압) 다윈의 위험한 생각 - by Daniel Dennett (1/3)
이 글은 원래는 디씨에 5부로 나눠서 올린 글입니다. 좀 길어서 도저히 하나의 글로 줄일 수가 없네요. 세 번에 나눠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올릴 부분의 원글 링크는 아래 (디씨인 관계로 문체가 조금 다릅니다?):

리뷰1
리뷰2

시작하기에 앞서서, 이 책의 주제는 '진화론이 왜 우리의 기원과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 인류가 가지고 있는 유일무이한 해답인지, 진화론을 바탕으로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입니다. 따라서 독실한 신앙인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글임을 미리 알려드리고, 제가 생각하는 주 독자층은 '진화론은 받아들였으되 삶의 방향성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사람' 입니다. 그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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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위험한 생각 - 진화와 삶의 의미>

[책 제목부터 포스가 넘친다!!]


진화론에 대한 책이라고 해도 중심 주제는 상당히 다양한데, 예를 들어서 다음의 두 책은 리차드 도킨스라는 같은 저자가 썼음에도 불구하고 책의 색깔이 많아 다릅니다.


이기적인 유전자: 이것은 진화 과정의 주체가 개별 생명체들 즉 phenotype이 아니라 유전자들 즉 genotype이라는 이야기를 길게 풀어쓰는, 진화의 원리에 대한 책입니다. 진화의 주체가 우리 개개인이 아니라 우리 몸속에 담겨있는 유전 정보라고 인식하게 되면, '자기 희생을 하는 개체는 진화론으로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상당히 강력한 해답을 줄 수 있지요. 책 제목은 그런 이야기를 (이기적인 유전자가 이타적인 개체들을 만들어낼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 담고 있습니다.


지상 최대의 쇼: 이 책은 진화론이 더 이상 '또 하나의 가설' 수준이 아닌, 중력 이론 수준의 확고한 위치를 점했다는 사실을 수많은 예를 들어서 설명해 줍니다. 이미 진화론을 받아들인 사람 or 절대 진화론을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는 책이죠. 하지만 '진화론 그거 진짜야? 난 잘 모르겠던데?' 하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입문서가 될 것입니다.


반면에, 대니얼 데닛이 1995년에 쓴 이 책은 '진화론의 사실 여부' 나 '진화 과정의 세세한 메커니즘' 등은 논하지 않습니다. 책 서문에서 대놓고 '이 책은 진화론은 받아들였으되 그 이론이 가지는 파괴력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 보라고 쓴 거임' 이라고 말하지요. 즉 데닛은 '진화 현상을 이해하고 나면 우리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어떻게 영향받게 되는지''진화론이 왜 생물학 이론으로 그치지 않고 물리 화학부터 예술 윤리까지를 관통하는 강력한 통일장 이론(?) 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지요.


<<< 1. 고대 철학과 종교 >>>


저 본인은 무신론자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의 개념을 착안해내고 그것을 위해 목숨도 흔쾌히 바쳤던 고대인들을 '무식한 놈들' 이라고 매도하고 싶진 않습니다. 데닛 역시 '진화론 이전에는 유신론이 설득력이 더 강했다' 라고 이야기하며, 고대 그리스 철학부터 유신론을 기반으로 했음을 지적합니다. 그리스의 위대한 철학자 두 사람의 철학의 근본은 다음과 같습니다.


플라톤: 현실에 존재하는 수많은 불완전한 삼각형을 보면서 우리가 완전한 삼각형이라는 이데아를 떠올릴 수 있듯이, 현실에 존재하는 수많은 불완전한 토끼나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완전한 토끼나 사람들이라는 이데아를 떠올릴 수 있다. 사실 그 이데아의 세계가 진짜 세계이고 우리의 현실 세계는 그 이데아 세계의 열화 버전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우리의 학문은 우리의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고, 우리의 호기심은 크게 '사물은 본질적으로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데닛의 영어 번역으로는 What?' '사물은 왜 저런 형태를 띠는가? Where?' '이 현상을 일으킨 원인은 무엇인가? When?' '이 현상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Why?' 이렇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아리스토텔리스의 네 영역 중 첫 세 가지는 현대에 와서는 과학의 영역에 흡수되었지만 단 하나, why? 는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오지 않고 teleology 즉 목적론이라는 철학 분과로 남았습니다. 이 분과가 과학이 되지 못한 이유가 있습니다. Why? 라는 질문은 사실 과학적인 인과관계를 묻는 것이 아니죠. 자연 현상도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현상과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그런 현상이 일어나기를 바랬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보고, '누가' 그런 현상을 '왜' 원하는가? 라고 물어보는 것에 가깝습니다. 아시겠지만 과학은 '불필요한 가정'을 최소화하는 것이 진실에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보는 학문이고, 따라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지적 존재가 있다'라는 가정은 과학에서 받아들일 이유가 없죠. 해서 목적론은 철학, 그중에서도 주로 신학을 뒷받침하기 위한 철학으로 변해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학적으로 불필요한 가정을 세우고 그 위에서 설정 놀이하는 것처럼 보이는' 목적론은 도대체 왜 시작되었을까요? 데닛은 두 가지 이유를 대는데, 1. 목적론은 매우 직관적이고, 2. 목적론을 폐기할 경우 우리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었다는 점을 이야기합니다. 1 번을 설명하기 위해서 데닛은 '존재의 피라밋'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하는데, 일단 우리가 관측 가능한 세계를 '우리의 직관만 이용해서' 배치해보면 대충 다음과 같습니다.




<관측 가능한 세계>


존재를 저런 식으로 층층이 배열하고 나서 깨닫게 되는 것은, 저 피라밋은 단방향 피라밋이라는 점입니다. 인간이 태어나려면 다른 인간이 필요하지 무에서 인간이 뿅하고 나타나진 않습니다. 인간은 망치 (디자인) 를 만들어낼 수 있지만 망치는 인간을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질서가 파괴되면 혼돈이 오지만 혼돈 속에서 저절로 질서가 생겨나진 않습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존재의 피라밋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존재하게 되었을까요?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관측 가능한 세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창조의 힘이 무엇인지 깨닫습니다. '마음'이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강한 욕망과 지적 능력이 있는 존재'뿐입니다. 목적론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지요. 혼돈에서 질서가 생겨나는 예가 없고 단순한 질서에서 마음이 나타나는 예가 없으니, 결국 질서를 창조할 수 있는 존재는 마음을 지닌 우리 인간뿐입니다. 근데 이 세상에서 인간이 창조하는 것은 아주 조금뿐, 세상 대부분은 인간과 독립적으로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은 누가 창조했을까요? 그리고 우리 인간은 누가 창조했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의 결론은,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는 '인간의 마음보다도 훨씬 더 고차원적인 마음' 뿐이며, 세계는 그 위대한 마음의 목적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개념은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과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면서 이후 수천 년을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로 내려오게 됩니다. 물론 '신의 존재를 받아들일 때 생겨나는 논리적 오류들' 이를 테면 에피쿠로스의 악의 문제 같은 것들은 종종 제기되었지만, 그때마다 '니 말이 맞다 치고 그래서 지금 신 없이 세상이 생겨났다는 거요? 님 개념 좀'이라는 거센 (당시로서는 충분히 논리적인) 반론  에 막혀서 쓰러졌고, 위대한 계몽철학자인 존 로크도 '신 없이 우리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 자명하므로 내 철학에서 공리로 사용한다'라고 했을 정도가 됩니다.


몇 안 되는 예외적인 철학자 중 하나로, 회의론의 끝판왕인 데이빗 흄은 저 존재의 피라밋 가설이 지닌 치명적인 약점을 간파했었습니다. 그의 논증은 다음과 같습니다. '창조하는 힘은 꼭 위대한 마음을 필요로 한다고 치자. 그럼 그 위대한 마음은 누가 창조했지? 마음 없이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며? 근데 저 위대한 마음은 어떻게 시작했냐고?'라는 날카로운 반론을 (목적론은 순환 논증을 피할 수 없다!) 핀 흄은, 하나의 대안 가설을 제시합니다. '창조하는 힘에 마음이 없을 수도 있지. 혼돈에서 질서가 우연히 저절로 생겨날 수도 있잖아?'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흄은 진화론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철학자였고, '근데 말이 그렇다는 거고, 솔까 혼돈에서 질서가 저절로 생겨날 수는 없지. 난 여기서 생각을 정지하겠음'이라고 결론을 내고 맙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19세기 중반, 드디어 수염 덥수룩한 과학자 한 명이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책을 쓰게 됩니다.


<<< 2. 위험한 생각, 드디어 시작되다. >>>


종의 기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들어있습니다:


"만약, 긴 세월이 지나고 주변 환경의 다양함 속에서 생물 개체들이 몸 이곳저곳에 조금이라도 다양성을 보유하게 된다면 (나는 이것에 대해서 반박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만약 각 개체가 낳는 아이의 숫자가 원래 개체 숫자보다 많아서 생존을 위한 경쟁이 펼쳐지게 된다면 (이것에 대해서도 반박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앞서 이야기한 약간의 다양성 중 적어도 몇몇 가지는 생물 개체의 생존에 유리함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생존에 유리한 특성을 가진 개체는 생존할 확률이 다른 개체에 비해서 높을 것이다. 그리고 생물은 자신을 닮은 개체를 낳는다는 점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 이런 과정의 무한한 반복을, 나는 자연선택이라고 부르겠다"


자, 150년이 지나서도 간지를 잃지 않는 이 짧은 문단이 진화론의 핵심입니다. 이 문단은, 과학적으로 보면 너무 당연해서 반박하고 싶은 생각 자체가 들지 않는 문장입니다. 그런데 왜 15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많은 사람이 저 문단을 보고 '아니야 이것은 절대 사실일 리가 없어!'라고 생각할까요?

생물 종에게 불변하는 본성 같은 것은 없다.


진화론이 현대에까지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그것이 수천 년간 내려온 두 가지의 사상 - 플라톤의 이데아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 - 을 동시에 무효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우선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부터 시작해보지요. '응? 요즘 누가 이데아 이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고 이러세요?'라고 반응하실 분을 위해서: 이데아 개념이 현대에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데닛이 간단히 지적하는데, '사물의 본질'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것 자체가 사물에는 변하지 않는 본질이란 것이 있다! 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성립하는 것이라는 부분입니다. 물리학은 모든 사물에 일관되게 적용되는 궁극의 방정식을 찾으려고 합니다. 화학자에게 '탄소 중에서 양성자가 6 개가 아닌 놈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라고 물어보면 혼나지요. 즉, 과학이라는 학문이 시작된 원동력 자체가 '사물에 내재한 불변하는 어떤 성질을 발견하고자하는 욕구'라고 볼 수 있는데, 생물 분류학이라는 것도 애초에는 '생물 종은 불변하고, 각 종은 고유의 어떤 본성이 있고, 종 간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라는 가정 위에 성립했습니다. 이런 '본질' '불변' '잘 생각해보면 추상화 가능함' 등등의 개념은 플라톤의 이데아 이론에서 비롯된 것이죠. 그리고 유럽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관찰되는 모든 사실은 이런 생각들을 강하게 뒷받침했습니다. 돼지도 있고 고양이도 있지만 돼냥이라는 것은 없으니까요 (요즘은 있음!)


근데 그건 어디까지나 학문의 태동기에나 그랬던 것이고, 시간이 흘러갈수록 '생물에 있어서 분류학이란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던지게 하는 예들이 발견됩니다. 





Mudskipper - 이것은 물고기입니까 양서류입니까?




Llop.jpg

늑대개 - 개와 늑대는 다른 종입니까 같은 종입니까?


다윈의 종의 기원은 일단 이런 비직관적인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강력한 패러다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다윈에게 있어서 종의 다양성은 개체의 다양성이 넓게 퍼진 것에 불과하며, 종에게 불변하는 특성 같은 것은 없습니다. 또한 여기까지는 같은 종이고 저기서부터는 다른 종이다! 라는 정의도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지 양성자가 6개면 탄소이고 7개면 탄소가 아니다! 라는 식으로 딱 나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종분화라는 현상 역시 어제까지는 하나의 종이다가 오늘부터 다른 종으로 분화하는 것이 아니라, 지리적 혹은 다른 요인으로 고립된 두 동일 종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각자의 환경에 맞춰 다른 방향으로 진화해나가다 보니 서서히 교배율이 떨어지는 현상'임을 지적합니다. 즉 종분화는 새로운 종의 창조가 아니라 중간종의 멸종인 것이죠. 좋은 예로 고리종이 있습니다.




북극 주변 지역에 서식하는 Larus 갈매기들은 주변 지역의 갈매기와는 교배가 됩니다. 1: L. fuscus 은 2: Siberian population of Larus fuscus 와 교배가 되고, 2 번은 3: L. heuglini 와 교배가 되고, 3번은 4: L. birulai 와 교배가 되고 4번은 5번과 교배가 되고 5번은 6번과 교배가 되고 6번은 7: L. argentatus 와 교배가 됩니다. 근데

 



1번과 7번은 교배가 되지 않습니다. 생긴 것도 몸 크기도 많이 다르지요. 즉 이 두 집단은 다른 종으로 분류하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이 현상은 왜 생겼을까요? 1 번 집단이 수만 년에 거쳐 동쪽으로 조금씩 이동 (혹은 7 번 집단이 서쪽으로 이동) 해갔고, 이동하는 와중에 종의 평균 특성이 점차 변했고, 그러기 위해서 유전자풀도 변했으며,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원집단을 다시 만나게 될 무렵에는 누적된 유전자 차이가 너무 커서 서로 번식이 되지않게 된 것이지요.


생물의 진화는 '목적'이 없으며 '마음'의 개입도 필요 없다.


아직도 진화 현상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많진 않지요. 대부분의 반대파는 '진화는 사실이지만 진화론은 틀리다!'라는 정도의 입장을 취합니다. 근데 편견 없는 사람이라면, '진화 현상이 실제로 관찰이 되는데 그걸 제일 잘 설명하는 이론이 진화론이면, 일단 진화론을 받아들이면 되는 거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어있습니다. 근데 그걸 거부하는 데에는 더욱 근본적인 두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라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을 파괴한다는 점입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자연 선택 과정의 본질이 '무목적한 알고리즘'이라는 점이죠. 위의 '종의 기원' 의 해당 문단을 중요한 부분을 굵은 글씨로 처리해서 다시 써보겠습니다.


"만약, 긴 세월이 지나고 주변 환경의 다양함 속에서 생물 개체들이 몸 이곳저곳에 약간이라도 다양성을 보유하게 된다면 (나는 이것에 대해서 반박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만약 각 개체가 낳는 아이의 숫자가 원래 개체 숫자보다 많아서 생존을 위한 경쟁이 펼쳐지게 된다면 (이것에 대해서도 반박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앞서 이야기한 약간의 다양성 중 적어도 몇몇 가지는 생물 개체의 생존에 유리함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생존에 유리한 특성을 가진 개체는 생존할 확률이 다른 개체에 비해서 높을 것이다. 그리고 생물은 자신을 닮은 개체를 낳는다는 점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 이런 과정의 무한한 반복을, 나는 자연선택이라고 부르겠다"


굵은 글씨 부분을 잘 들여다보면, 이것이 'YY를 위해서 XX의 일이 일어난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이나 기독교의 창조론과는 매우 다른, 'XX를 하다 보면 YY라는 결과가 나오는 경향이 있다' 라는 일종의 알고리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데닛은 주장합니다. 'YY라는 결과를 위해서 XX를 하는 것' 도 아니고, 'XX를 하다 보면 YY가 항상 되는 것' 같은 확실한 알고리즘도 아니고 [주: 만약 진화가 이런 원칙을 따른 다면, '이렇게 확실한 알고리즘은 누군가가 원해서 도입된 것이 틀림없다! 라는 해석도 가능할 수 있지요], 'XX를 하다 보면 YY가 되는 경향이 있다' 라는 수준의, 매우 건조하고 무목적하고 상당 부분 우연에 의지하는 알고리즘인 거지요.


또 하나의 이유라면, 진화는 아래에서 위로 저절로 올라가는, 창조주를 필요로 하지 않는 현상이라는 점입니다. 위에서 제가 존재의 피라밋 이야기를 잠시 했었는데, 그 그림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인간이 보기에 세상에는 많은 질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사과를 위로 던지면 반드시 떨어지죠. 이런 것은 패턴이자 질서입니다. 하지만 그런 질서에게 당장 이해할 만한 '목적'은 없지요. 하지만 그런 질서있는 존재 중에서 상당수는 '목적을 가지고 디자인된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시계는 그 정밀함과 복잡성이 우연히 생겨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것이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목적을 가지고' 만들었음을 이미 알지요. 정밀함과 복잡성이 시계를 훨씬 능가해서,
우연히 생겨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고 '목적을 가지고 디자인되었음을 확신할 수 있는 것'들이 자연계에는 많이 있습니다. 바로 생명이죠.





<유신론의 탄생>


따라서 우리는 시계의 존재가 '시계를 무엇엔 가에 쓰려고 의식적으로 창조한' 시계공의 존재를 유추할 수 있는 근거가 되듯이, 이 다양하고 복잡하고 아름다운 생물계의 존재가 '세계를 무엇엔 가에 쓰려고 의식적으로 창조한' 저 높은 곳의 창조주를 유추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자연신학자 윌리엄 페일리의 1802년에 발표한 시계공 논증입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이것을 결정적으로 망가뜨리며, 반대방향의 논증을 제시합니다.





<진화론이 암시하는 무신론적 세계관>


저런 식으로요. 생물계의 진화가 무목적한 알고리즘이고, 그것을 통해서 보다 단순한 생명에서 보다 복잡한 생명이 발생할 수 있다면, 무에서 혼돈, 혼돈에서 질서, 질서에서 생명, 생명에서 마음이라는 다른 단계들도 [주: 다윈의 시대에는] 아직 설명할 수 없을 뿐, 실제로는 무목적한 알고리즘의 산물일 수 있고, 그렇다면 신이 설 자리는 없어지는 것이죠.


진화론의 공동발견자인 윌리암 월레스는 그의 과학적 발견이 암시하는 결론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해서 말년에는 '다른 건 몰라도 마음만큼은 진화 과정으로 생겨날 수 없다'라는 주장을 하며 오컬트에 심취하게 되었다더군요. 현대에도 이르러서도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조차 '에이 인간의 정신은 조금 특별하지'라던지 '최초의 생명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잖아? 거기에 신의 자리가 있는 거지'라던지 '무에서 우주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잖아? 거기에 신의 자리가 있는 거지'라는 식으로, 다윈주의를 생물학 영역에 가둬두려는 의도를 종종 드러냅니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다윈이 발견한 '알고리즘을 통한 상향식 창발 현상' 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를 관통하는 원리임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확고부동한 사실의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나머지는 이 글이 첫 페이지에서 사라지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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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ngjyess
15/03/20 03:57
수정 아이콘
신... 이렇게 절묘하고 유용한 거짓말이 또 있을까요... 크 무식하기는 커녕 너무 똑똑했기 때문에 발명할 수 있었던 개념이라고 생각합니다. 심하게 말하면 인류 초창기 문명의 발달은 누가 더 정교하게 이 거짓말을 완성시키느냐에 달려 있었고 <그럴듯한 신 만들기 경쟁> - 그 각축전에서 승리했기 때문에 로마가 있었고 중세 유럽이 있었고 심지어는 이성과 계몽이 최종적으로 신에게 승리한 것도 신에 대한 연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테죠... 사실 전 가장 현대적인 선진국인 2015년 3월 20일 지금 이시간의 미국조차 그들의 마음에서 하느님을 삭제시킨다면 와르르 무너져 내릴것이라 믿으니까요... 킄 아무튼 본문은 열심히 뻘글을 올려서 페이지를 밀어내고 싶어지게 하는 내용이군요... 크
15/03/20 04:33
수정 아이콘
댓글 감사합니다! 급하시면 디씨에서 마저 보셔도 되는데, 안 그러시기를 추천합니다. 저거 쓰면서 생각이 또 조금 바뀐 부분들이 제법 있는 지라.
아케르나르
15/03/20 11:23
수정 아이콘
추천하고 싶은 댓글이네요. 아마도 무서운 것들(자연현상이든, 다른 맹수들이든 간에)을 피해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게 되면서 그 무서운 것들을 이겨내기 위해서 만들어낸 게 종교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원시 신앙들 보면 다 그렇잖아요.
無識論者
15/03/20 04:34
수정 아이콘
본문 내용과는 별개로, 디씨에서 지난글 보니 재밌네요. 흐음, 역시 겉보기에 점잖은 전투적 무신론자는 있어도 사상이 온건한 전투적 무신론자는 없다는 제 생각이 굳어지는듯 합니다. 뭐 무신론 갤러리 자체가 그런 성향인건 감안해야겠지만요.
15/03/20 04:35
수정 아이콘
흐흐흐 뭐 그건 어쩔 수 없지요. 근데 저는 속 생각이 무엇이든 바깥에서 점잖게 행동한다면 그걸로 족하다고 보는 쪽인지라, '내심' 에 대해서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無識論者
15/03/20 04:47
수정 아이콘
문제는 그 '내심'이 결국에는 발언과 행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거죠. 예를 들어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믿는 근본주의 기독교인들도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굉장히 성실하고 신사적인 사람들 많습니다. 비기독교인에 대해서도 형제님 자매님 하면서 좋게좋게 생각하는듯하죠. 그런데 이들과 좀 더 많은 대화를 나눠보거나 써온 글들을 읽다보면 타협이나 평화라는게 존재할수 없는 그 독선적 성향이 드러납니다. 무신론으로 따지면 "난 선만 넘어오지 않으면 종교인과 유신론자들의 생각을 존중합니다."라는 겉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실상은 "종교 믿는 것들은 정신병자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요.
15/03/20 04:57
수정 아이콘
'종교는 오개념이지' 라는 것과 '종교 믿는 것들은 정신병자지' 는 조금 다르지요. 저는 전자쪽에 대해서는 확신을 지니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교인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데 아무 문제를 느끼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그 오개념으로 인해서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그런 신념을 바탕으로 열심히 살지요. 반대로 종교인들 입장에서도 '저 놈은 지옥 가겠구만' 이라고 확신하더라도 제게 그걸 강요하지만 않으면 마찬가지로 평화 공존에 지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충돌하는 경우를 상상해보자면 신생아가 죽게 되었는데 여호와의 증인인 부모가 수혈을 거부한다던지, 진화론을 수업에서 빼달라는 청원을 넣는 정도를 생각할 수 있겠네요. 전자는 '아이에게 너의 종교를 강요할 수 없다' 라는 원칙을 생각해보면 답이 뻔한 것이고, 후자도 '객관적인 사실 관계를 다룰 때 가치관은 끼어들 자리가 없다' 라는 원칙을 생각해보면 답이 뻔하죠.
15/03/20 05:23
수정 아이콘
[과학은 '불필요한 가정'을 최소화하는 것이 진실에 가까워지는 길이라고 보는 학문]
예전에는 오컴의 면도날이 오컴이 만든 게 아니라는 게 재밌었는데, 이걸 보니 오컴이 신학자라는 게 더 재밌는 것 같네요.
오컴의 면도날과 비슷한 얘기로 뷔리당의 당나귀도 뷔리당의 생각을 잘 설명할 뿐 뷔리당이 만든 건 아니라는 얘기도 있더군요.
15/03/20 05:31
수정 아이콘
음? 오컴의 면도날이 오컴이 만든 게 아닌가요? 뭐 이제와서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요...

사실 페일리의 자연 신학도 거슬러 올라가보면 토마스 아퀴나스가 계시 신학과 자연 신학을 구별한 것이 기원이죠. 결국 사람은 자기 시대의 한계 속에서 노는 것이고, 아퀴나스가 현대에 태어났으면 과연 진화론을 부정했을 지 생각해본 적이 있었는데, 재미있는 상상이었습니다.
yangjyess
15/03/20 05:35
수정 아이콘
똑같은 의미에서 현대의 전투적 무신론자들이 아퀴나스의 시대에 태어났으면 그들중 과연 몇%나 신을 부정했을지 궁금하군요... 크
15/03/20 05:37
수정 아이콘
아퀴나스의 신학을 설파하는 리처드 도킨스를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지요!
Philologist
15/03/20 05:38
수정 아이콘
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몇몇 가벼운 이야기들만 읽고 있는 처지인데, 이번에 정리해서 올려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그런데 진화론이 목적론적이 아니라는 점에 반해,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은 어느 정도 목적론적인 느낌(유전자를 아래로 퍼뜨려야 한다)이 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 왜 유전자는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가? 에 대한 대답이 이루어진 적이 있는지도 궁금하네요. 생물의 진화는 유전자에 유리한 쪽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요즘의 합의인지, 그리고 그것이 합의된 사항이라면 왜 유전자는 후대로 계속 내려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나오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바깥 사람 입장에서 보면 생물들의 행동이 유전자에 유리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실험이라는 것들이 약간의 아전인수적인 면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두 개의 대조군을 설정한 상황에서 다른 방향으로의 해석도 가능한 것 같은데 가설 단계에서 사회생물학적 패러다임에 의해 이미 배제되는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15/03/20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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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와 돌을 던지면 아래로 떨어져야 '한다' 는 문장 구조만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의미가 많이 다릅니다. 유전자가 끊임없이 복제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후자쪽의 의미죠.

진화의 주체가 유전자인지 개별 생물체인지 생물집단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도 데닛이 이것저것 언급하는데, 굴드 (진화의 주체가 유전자 아니야!) 를 좀 심하게 까서 나중에 둘이 서로 쌍욕을 하는 수준으로 싸웠었지요. 그것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이야기하겠습니다.
Philologist
15/03/20 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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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deontic이냐 epistemic이냐, law의 두 가지 외연 중 어느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문제라는 말이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의 차이가 그렇게나 명확한지 잘 모르겠습니다. deontic과 epistemic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전 유전자를 내려보내는 게 그들이 말하는 소위 궁극 기전(ultimate mechanism)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좀 더 생각하고, 좀 더 읽어보고 다음 글 기다리겠습니다.
15/03/20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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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진화론도 받아들이고 생명의 화학적 기원설도 받아들이고 빅뱅도 받아들이고 멀티버스도 받아들이고 나서도 기독교인으로 남기를 선택한 분들의 최후 주장이 "그런 모든 법칙은 왜 존재하는가? 그것이 신의 증거이다!" 라고 합니다. 이신론에 가까운 기독교 (혹은 다른 아브라함 계열 종교) 가 되는 것인데, 이 정도 되면 현실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의 차이는 전혀 없고 그냥 해석의 차이라고 보는 게 맞겠죠.
15/03/20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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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데닛이 이 책 속에서 유전자 정보를 비교해가면서 과거를 재구성하는 진화학자들의 작업이 Philology 와 놀랄 만큼 닮았다는 말을 한 챕터에 걸쳐서 이야기하는데, 아이디를 보니 반갑고 신기하네요! 니체도 Philologist 였고, 'There is no original document' 의 결론을 내리면서 결정적으로 종교를 버리게 되었다고....
Philologist
15/03/20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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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쪽 일 하고 있습니다 크크크 역사언어학은 진화론과 놀랍도록 닮아서(아무래도 뿌리가 그쪽에 있다 보니...) 진화론 쪽 이야기에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논문에서 종종 진화론적 비유가 나오는데 이게 제대로된 유추인지 갸우뚱할 때가 많아서 진화론의 굵직한 책들은 왠만하면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만....이게 쉽진 않군요.. 책을 읽는 게 일이다보니, 쉴 때도 책을 읽고 싶지 않아서...ㅠㅠ
ThreeAndOut
15/03/20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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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분화 이론 (a->a'->a''->...) 에 대해서 얘기만 들어 왔는데 저렇게 갈매기로 증거를 뙇 보여주다니 아름답습니다. ^^
아울러 제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진화론에 대한 생각을 명쾌하게 정리해주는 것 같은 책이네요. 주위에 교회다니는 사람이 많은 환경에 처해 있음으로 해서 종교와 진화론에 대해 많이 생각하면서 지내는 한사람으로서 추천 한방 올립니다.
속편 눈이 빠지게 기다리겠습니다.
15/03/20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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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요즘 종교는 왜 과학이 되려하는가 읽고있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네요.
F.Nietzsche
15/03/20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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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에서 첫번째 생명은 어떻게 생겼는가 하는 논란포인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얘기해주시면 좋겠네요. 이 부분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진화론도 밟고 설 땅이 없는 셈이니까요.
jjohny=쿠마
15/03/20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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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알기로는 이 부분에 조금 오해가 있는데, 진화론은 기존의 생명체(군)이 어떻게 분화되고 진화하는지를 설명하는 학문이지, 최초의 생명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는 핵심이 아닌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연장선이기는 하지만서도) 그렇기 때문에, 최초의 생명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명료하게 설명해내지 못하더라도 진화론이 가치를 잃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 설명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구요.)
15/03/20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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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마님이 말씀하셨다시피 첫 생명체의 기원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의 진화에 대한 설명이 틀리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말씀하신 질문이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데닛이 그 주제에 상당한 분량을 할당해서 이야기를 했으니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F.Nietzsche
15/03/20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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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사안이 별개인 것과, 그럼에도 제 질문이 중요하다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음 글 기대하겠습니다~
Je ne sais quoi
15/03/20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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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밋게 잘 읽었습니다!
python3.x
15/03/2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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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Bef님이 예전에 영어 공부하자고 올리신
대니얼 데닛 영상보고 전도당했습니다. 오렐루야! 크크크
요새는 주문을 깨다라는 책 읽고있어요.
무신론자로서 초반부 읽을 때 통쾌함까지 들더라구요.
진지한 책인데 낄낄대면서 읽었다능...
15/03/2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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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닛은 농담을 워낙에 좋아해서 농담에 대한 논문도 하나 썼다고 하더군요.... 자유 의지에 대해서 논하다가 (이 사람은 자유 의지가 있다고 주장하는 쪽) '근데 솔직히 말하자면 자유 의지는 없어. 내가 그렇게 살을 빼고 싶어하는 데 밥 먹는 건 못 줄이겠더라고' 라고....
python3.x
15/03/20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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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도 농담이지만요. 비유의 찰짐이라고 할까요.
종교를 개미 뇌를 조종하는 기생충(!)에 비유한 걸 보면서
이야... 이 아저씨 온건하다 들었는데 꽤 쎄게 말하시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얼마 전에 SNS로 덕질하고 있는데 댓글로 사탄의 소리다 뭐다 시비걸던 인간이 있었거든요. 그 인간한테 이 책을 보여주면 얼마나 부들부들할까 생각하니 통쾌하더라구요.
그런 푸쉬가 많은 미국에서는 그 통쾌함이 내심 더 할거라 감히 예상해봅니다.
15/03/2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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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닛의 종교관은 절대 온건하지 않지요! 다만 종교'인'에 대해서는 온정어린 시선이 있고, 종교는 어느정도 견제만 하면 알아서 사라지거나 무해한 형태로 변할 거라고 생각하는 지라 덜 전투적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python3.x
15/03/2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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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그랬군요. 더 맘에 드네요.
다음 글도 기대하겠습니다!
곧내려갈게요
15/03/2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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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도 흥미롭네요. 진화론자와 자유의지가 제 좁은 식견으로는 잘 조화가 되지 않아서요.
15/03/20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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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닛은 결정론의 세계에서 자유의지 개념이 성립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양립 가능론 캠프의 철학자입니다. 오히려 비결정론의 세계에서는 '자신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하다' 는 점 때문에 자유의지가 더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지요. 그런데 제가 알기로는 자유 의지를 주제로 하는 철학 분과에서 결정론 + 양립 가능론 과 결정론 + 그러니까 자유의지 없음 이렇게 둘이 주류이고 비결정론을 바탕으로 하는 자유의지 캠프는 상대적으로 소수파라고 알고 있습니다.
곧내려갈게요
15/03/20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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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외한의 시각에서는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양립이 가능하다는게 참 신기하네요.
언젠가 친구와 자유의지가 가능하냐에 대헤서 며칠에 걸쳐서 토론한 적이 있었는데,
저는 결정론 하에서 자유의지가 존재할 수 없지 않느냐는 주장을 펼쳤고, 친구는 존재 할 수 있다고 주장하더군요.
그 친구는 그 방면에 식견이 저보다는 넓은 친구였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저를 납득시키지 못하고
"더 공부하고 와서 다음에는 너를 굴복시키겠노라" 하고 갔습니다.
저도 지지 않으려고 좀 찾아봤었는데 제게는 너무 어려운 영역이라 gg쳤던 기억이 있네요.
여하간 양립론이 주류를 양분하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15/03/20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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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대충 5년 전까지는 양립 불가능론에 기울어있었는데 지금은 양립가능론자입니다.. 양립 가능론과 불가능론은 사실 세계의 동작 원리에 대한 이해는 다르지 않고,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있어서만 다릅니다. 양자 주사위로 결과를 정하는 복권과, 이미 결과가 적혀있지만 그 결과를 누구도 모르는 즉석 복권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이 질문에 대해서 '그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라는 게 양립불가능론의 출발이고, '신이라면 모를까 인간에게는 아무 차이가 없다' 라는 게 양립가능론의 출발이죠.
곧내려갈게요
15/03/20 09:11
수정 아이콘
꿀잼이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Darwin4078
15/03/20 09:22
수정 아이콘
제목 띄엄띄엄 보고 내가 또 뭔 잘못을 했길래 대놓고 저격을 당하나 싶어서 클릭했더니 골치아픈 내용이 잔뜩 있어서 안심했습니다.
제가 저렇게 골치아픈 내용과 관계 있을리 없잖아요?

늦었지만, 유저라이프 입갤 축하드려요~
15/03/20 10:42
수정 아이콘
운영자분이 이 시리즈에서 세 번이나 보내주신 걸로 봐서 그 분도 무신론자이신 것이 분명하다능.
15/03/20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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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씨에 이런글을 올릴만한 공간이 있나보네요. 신기하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피지알에서 진화론에 대해 많은 이들과 이야기 한 후 '나는 진화론을 모르니 기회가 되면 알아보자'라는 생각이 생겼습니다.

근데 이 글을 읽고 생각해보니 역시 저는 애초부터 과학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네요.
15/03/2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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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대해서 관심이 적으신 거야 뭐 취향이니까요... 그리고 이 책이 좀 유난히 무겁습니다. 데닛 본인부터가 '이 책은 어려운 책입니다. 웬만하면 지금 덮으시지요' 라고 서문에 적은..... 이 할아버지가!!!

진화론에 대해서 알아보시려면 본문에 적은 도킨스의 지상최대의 쇼가 제일 재미있습니다. 번역판이 잘 나왔는지는 제가 잘 모르겠지만요...
별빛달빛
15/03/20 14:06
수정 아이콘
지상 최대의 쇼 번역판 있습니다. 몇년 전에 출간되어 있어서 본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뭔가 그림책처럼 되어 있어서 읽기 가벼운 편인 도킨스옹의 책으로 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the magic of reality)도 번역 출간되어 있습니다.
분리수거
15/03/20 10:24
수정 아이콘
진화는 종의 생존만을 목표로하고 그 과정에서 무목적한 알고리즘을 지닌다. 배제와 약육강식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진화론을 더 깊이 공부했다면 역사가 바뀌었겠지 하고 생각드네요.
15/03/2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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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그런 맥락에서, 이 책에서 사회진화론을 펼쳤던 스펜서에 대해서도 상당히 비판을 많이 합니다.
소독용 에탄올
15/03/20 15:22
수정 아이콘
스펜서 양반은 다윈과 '동시대'를 살았던 사회학자, 철학자(라지만 체계적으로 공부를 했다기 보다는 재능빨로 다양한 분야에 참여한 양반에 가깝다는 평가가 있기도 합니...논객이니 하는 이름으로 부를 수 있는 귀족적이고 나름 고급스런 '키보드워리어'랄까요...)로서의 '맥락'에 자리잡은 사람이니까요.

자연과학의 발전이 다른분과학문에 반영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오류에 대한 한 '좋은 사례'라고 봅니다.

물론 이후 대전-전간기-대전+사회생물학 논쟁을 거치며 '좋은 설명력'을 더 키울수 있었던 어떤 가능성이 덜 자라나게 하는데 나름 공헌을 했다는 점에서 비판받는것은 지극히 당연하기도 합니다.
15/03/20 22:47
수정 아이콘
데닛이 그래서 '어떻게 보면 스펜서가 다윈주의를 받아들인 게 아니라 다윈이 스펜서의 첨병 노릇을 한 것일 지도....' 라고 하더군요. 둘 간에 말빨이 너무 차이나서 스펜서가 좌충우돌할 때에도 다윈이 거의 손대지 못했다고....
삼공파일
15/03/20 12:02
수정 아이콘
시트콤 빅뱅 이론 주인공인 쉘든이랑 에이미가 서로 이런 식으로 말싸움하는 장면이 있어요.

쉘든 "만물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물리 전공자로서 볼 때 생물학 같은 건 천박해"
에이미 "우리 신경생물학자들은 그 이론물리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차르트의 음악과 고흐의 그림은 어디서 나왔는지 알게 해주지"

시트콤에서 나오는 이야기지만 약간 생각할 부분이 있는 게 둘 다 극단적 수준의 과학주의자이지만 차이를 보이죠. 쉘든이 말하는 만물의 원리에 음악이나 그림 같은 건 포함도 안되고 이런 사소한 건 과학의 영역에 넣을 가치가 없는 거죠. 반면에 에이미한테 뇌는 모든 것이 출발하는 곳이고 이걸 설명하는 것이 과학이고요. 원래 저도 쉘든 같은 부류였는데 과학이 역시(?) 많은 것을 설명해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항상 잘 읽고 있어요.
15/03/20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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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분과사이에 귀천이야 당연히 없지만, 물리학이랑 생물학이 인간이 고대로부터 가지고 있던 호기심에 제일 잘 들어맞는 두 가지 분과인 것 같긴 해요.
검은책
15/03/21 08:29
수정 아이콘
[인간이 특별하다]라는 말을 하는 것은 텔레비젼의 30초 짜리 광고로도 충분하지만
그 반대의 이야기를 할 때는 많은 지면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저는 진화론 뿐만 아니라 사회생물학 관점의 인간도 흔쾌히 받아들였기 때문에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축복이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은 더한 축복이며, 더 열심히 하다 죽자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의 범위는 스스로 자신의 생과 사를 결정할 권리까지도 포함됩니다.
또한, 저는 진화론과 사회생물학을 믿는 것 만큼이나 정치적 올바름이나 휴머니티 같은 개념들은 아전인수라 생각하여 믿지 않습니다.
'난 특별해!' '왜?' '난 인간이니까!'이런 논증이야말로 인간이 해서는 안되는 짓이죠.
아마 Orbef님은 제가 이런 문제아(?)라는 거 알고 계실 것 같아서 막 쏴요. 크크크
정성들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 기다리죠.
15/03/2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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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닛도 윌슨의 좋은 친구인 만큼 '인간은 조금 특별하긴 하지 하지만 형이상학적인 차이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정도의 차이가 큰 거지. 너무 잘난 척할 필요도 없고 울적해 할 필요도 없고.' 정도의 입장입니다. 다만 윌슨과 약간 다른 점이라면, 윌슨보다 조금 '덜' 환원적인 느낌이에요. 이 이야기는 다음에 또 :)
롤하는철이
15/03/24 10:17
수정 아이콘
요새 <이기적 유전자>를 읽고 있습니다. 저 또한 진화론을 믿고 지지하는데, 진화론의 간략한 정의가 자연 선택 과정의 본질이 '무목적한 알고리즘'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이 진화론을 제대로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진화론은 말씀하신대로 무한대의 시간속에서 그리고 제 생각에는 '생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진화'들이 선택되면서 진행이 되는것인데, <이기적 유전자>는 생존 이외의 고려할 사항들이 많은 고도화된 사회의 모든 의사결정을 유전자의 보존 및 전파의 측면에서 설명하려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생각되더군요. 특히나 유전자간의 유사도를 고차원의 의식이 계산하여 그에 따라서 동작한다는 이런 주장들을 볼 때는, 책을 그만 읽고 싶을 정도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이 점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공돌이지만 이분야는 문외한이라 의견을 듣고 싶어 댓글을 남겨봅니다. 그리고 늦었지만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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