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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10/03 16:50:41
Name 헥스밤
Subject [일반] 미생 : 완생의 판타지와 미생의 리얼리즘


미생. 윤태호 작.


회사 생활을 하던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야, 미생 그거 완전 직장 생활을 미화한 만화 아니냐. 아니 일단 다른 거 다 떠나서, 대체 어느 회사가 계약직 사원을 저렇게 잘해 주냐?’ 그럴 지도 모른다. <원 인터내셔널>이라는 가상의 회사에, 프로 바둑 기사로 실패한 장그래가 인턴으로 입사, 계약직 사원으로 승진하여 팀원들과 함께 사회생활의 역경을 헤쳐 나가는 윤태호의 <미생>은 직장인들의 판타지일 지도 모른다. 당신의 팀장은 저돌적이고 원칙적이지만 부하 직원들에게는 따스한 오상식 차장이 아닐 것이며, 당신의 선임은 가끔 당신을 갈구기는 하지만 성실하고 유능하며 선한 김동식 대리가 아닐 것이다. 당신의 팀장은 상급자들에게만 따스하며 부하 직원들에게 저돌적인 망나니일 것이며, 당신의 선임은 당신을 갈구는 일에만 성실하고 유능한 양아치일 가능성이 높다. 당신이 여직원이라면 선 차장이나 안영이처럼 ‘여성의 역할과 노동’이라는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확률보다는 직장 내 성희롱이나 성추행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확률이 높을 것이고. 그리고 당신은 높은 확률로 장그래가 아닐 것이다.

우리 중의 누군가는 만화의 주인공일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아닐 것이다. 완생을 향해 달려가는 미생의 거대서사는 환상적일 수 있지만 그러한 서사가 스쳐가는 곳은 지독하게 현실적이다. 회사의 커다란 이익을 만들어봐야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얼마 없다는 것에 절망하여 비리를 저지르게 된 누군가의 이야기. 회사가 더러워서 퇴사하고 식당을 차렸지만 결국 망하고 또 망하는 이야기. 경력도 학력도 없이 계약직 사원으로 버텨보지만 결국 정규직 전환에 실패하는 이야기.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 상사의 눈치를 보며 허구한 날 회사 옥상에 올라 전전긍긍하는 이야기. 새로운 시작의 기회 앞에 자신의 삶을 올려 계산해보다 결국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살아남는 자의 이야기. 얼굴도 이름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정직원 전환에 실패한 무수한 인턴들의 이야기들. 어쩌면 <미생>의 진짜 주인공은 종국에는 완생을 이루어낸 장그래의 팀원들과 입사동기들이 아닌, 그들 옆을 스쳐간 사람들일 지도 모른다. 완생을 이루어내지 못한 미생들. 우리의 삶과 같은.

현실을 잊게 해주는 환상은 대체로 입에는 달지만 몸에는 해롭다. 하지만 입에 달콤한 모든 환상이 몸에 해로운 것은 아니다. 분명히 미생은 달콤하고 매력적이다. 나는 <미생>이 당신의 삶을 잊게 해주는 대신, 당신의 삶을 살아 나갈 힘을 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

2014 와우북페스티벌이 열렸습니다. 책 좋아하는 분들은 홍대로 놀러오세요 히히.
어쩌다보니 짧은 서평을 쓰게 되어 올립니다.
사실 미생은 나중에 좀 더 길고 공격적인(?) 서평을 써 보고 싶었는데. 그건 나중에 따로 한번 써봐야겠습니다.

http://somelist.com/wow

에 들어가시면 와우북페에서 주목해볼 여러 책들과 서평을 읽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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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0/03 17:19
수정 아이콘
미생 보면서도 한번 더 느꼈는데 회사에다가 백억 벌어다주면 다음달에 월급 나오죠...ㅠㅠ....
걸스데이 덕후
14/10/03 17:38
수정 아이콘
혹자는 허영만에서 벗어난 윤태호의 첫 작품이라 평하고
혹자는 허영만으로 돌아간 윤태호의 첫 작품이라 평하는 작품
14/10/03 17:44
수정 아이콘
전 잘 공감은 안되더군요 제가 상사를 안다녀봐서 그런지...
코지군
14/10/03 18:07
수정 아이콘
외국에서 한정판으로 구매했습니다. 일단 재밌습니다. 웹툰책 처음인데 책이랑도 잘 맞고...
다만 비싼 한정판임에도 책이 살짝 구겨지고 컬러부분이 살짝 스크래치 난 부분같은게 있어 맘이 아파서 그렇죠. 소장가치를 떠나서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The HUSE
14/10/03 18:20
수정 아이콘
재밌죠...환타지니까...
클레멘티아
14/10/03 18:40
수정 아이콘
곧 미생이 드라마로 나올껀데..
어떻게 드라마화가 될지 궁금합니다
안산드레아스
14/10/03 18:54
수정 아이콘
정말 몇년이라도 더 일찍 이 작품이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회생활하는데 큰 힘을 얻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싶어요. 하지만 뭐 이미.. 실패로 돌아간 직장생활..
그리고 장그래와 나는 다르죠. 장그래는 기원에 처박혀서 많은 시간을 보내느라 경험이 부족하지만 타고난 능력은 괜찮은 사람입죠. 그리고 오상식 차장같은 사람을 상사로 만나는 것도 꽤나 레어한 확률 아닐까요. 그리고 정말 섬뜩하고 가슴 써늘했던건.. 그 만화에서 나오는 인턴들 전부가 능력치 짱짱한 인재들이라는 것.. 하물며 그에 한없이 미치지도 못하는 제가 어떻게 직장에 들어가서 살아남을까,하고 상상해보니 사회가 정말 무서워지더라구요. 그래서 옛날에 계약직으로 사무실에서 일할 때 왜 욕먹는지 갈굼당하는지도 모르고 살 좀 빼라고 욕 먹기도 했고 결국 버티지 못해서 나와버렸는데.. 나오니까 밖은 정말 지옥이더라구요. 직장은 전쟁터다, 그래도 밀어낼때까지 무조건 버텨라.. 밖에 나오면 (백수 되면) 그곳이 지옥이라는 것, 정말 공감합니다.
유리한
14/10/03 18:56
수정 아이콘
중간쯤 까지 봤던것 같은데,
아무래도 워커홀릭을 미화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좀 불편하더군요.
낭만토스
14/10/03 20:27
수정 아이콘
내가 장그래가 아닌게 가장 크죠

핑계대봐야 뭐하겠습니까
선임 상사가 천사면
꿀빨꺼잖아요?크크
nicdbatt
14/10/03 20:41
수정 아이콘
미생 vs 가우스 전자..........................
어떤 것이 더 리얼할까요.....................
헥스밤
14/10/03 21:10
수정 아이콘
송곳
nicdbatt
14/10/03 21:48
수정 아이콘
송곳 개 쩔죠 ㅠㅠ
뚜비두바
14/10/03 22:32
수정 아이콘
누가 그러던데 미생의 직장생활의 판타지면 송곳은 현실이다라고
인간흑인대머리남캐
14/10/03 21:42
수정 아이콘
차라리 시마 시리즈가 덜 해롭더군요 이쪽은 대놓고 판타지라 크크
곧내려갈게요
14/10/03 21:59
수정 아이콘
아까 홍대 잠깐 다녀왔는데 주차장에 차들 대신 있던 천막들이 이 행사를 위한거였군요!
파랑파랑
14/10/04 21:06
수정 아이콘
재밌게 본 웹툰이었는데..
직장생활해보니 미생은 천국이었습니다..
카랑카
14/10/04 21:13
수정 아이콘
대단한 작품이죠. 단지 저런 상사를 만나는 것이 힘들어서 그런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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