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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04 21:18
증자 잘못은 아닐 거 같습니다.
애초 기독교도 사해평등이었지만 권력과 가까워지면 성경의 논리에서 벗어난 온갖 이상한 지배옹호 논리가 신학적으로 개발되었죠. 두개의 칼이라든지 왕권 신수설 같이 말이죠. 어찌 보면 필연적 아닐까요?
14/02/04 21:23
논어를 보면 증자와 유자가 많이 나오죠. 후대에 그들의 제자가 논어집필에 많이 참여한 거 같습니다.
안회 상대로 공자는 데레데레, 자로 상대로는 츤데레, 자공 상대로는 쿨데레?
14/02/04 21:48
증자 까는 글이라 보겠습니다.
보통 유가의 도통을 공자(논어)-증자(효경?)-자사(중용)-맹자(맹자)로 본다고 하니, 공문십철에 들지 않았더라도 더 나은 위상인가요? 도올 선생이 [효경 한글 역주]를 썼고, 효경 분량이야 적기 때문에 효경과 호에 관련된 부대 사항을 자세히 다뤄주셨으니 한 번 읽을 만 합니다. 읽었는데 내용이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아 슬프지만, 도올 선생의 하신 말씀 중 인상이 남는 한 구절은, 부모에 대한 사랑보다 더 근원(본성, 그리스철학으로 치면 physis)적인 게 자식에 대한 사랑인데 유가의 영향으로 부모에 대한 효가 더 강조된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말이었네요. 공자의 정명론(이름을 바르게 하라), 君君, 臣臣, 父父, 子子(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은 바로 定分을 말하는 것이고, 이는 분쟁을 중지시키기 위함(중국법률문화탐구-정리법과 중국인/범충신 등 3인 공저/이인철역/p.40)이라 보기도 합니다. 여기서 분은 몫이고 정은 정하다이며 이름에 맞게 정하는 것(이것이 禮)이니,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와 유사합니다. 이래서 그리스쪽에서 정명론을 주장했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국가]편과 유사성이 생깁니다(正義=올바름의 정의로 가장 빈번히 나오는게 몫과 관련된 것임). 그리고 국가편에서 강조하는 것이 본성에 따른 몫입니다.(physis와 nomos가 대립되지 않음) 아래로의 사랑보다 위로의 존경을 강조하는 것은 본성에 맞지 않죠. 구체적 사례로 도올 선생이 드는 것은 일제치하까지도 신문에 보도돼 효 이데올로기를 강요했던 손가락을 깨물고 허벅지를 도려내 피와 살로 부모의 명줄을 늘렸던 효행 사례죠. 또한 이런 효는 의례 충과 연결되어 가부장적 국가관을 형성하는데, 이런 모습은 북한에서 찾을 수 있는 정치형태입니다. 관심있으시다면, [효경 한글역주]와 위에 적었던 [중국법률문화탐구]를 읽어보십시오. 특히 후자는 효에 얽힌 엽기적인 재판사례가 꽤 됩니다. 한국은 중국에 비하면 양반이란 생각이 들겁니다.
14/02/04 22:20
도올 선생이 증자를 깠다는 내용도 있는 글이군요;;
제 댓글은 도올 선생이 증자를 깐 이유의 보충이라고 보십시오. 본문의 표현을 그대로 차용해 '깠다'로 썼고, 증자를 비판한 것에 저 역시 동의하는 바라 불만도 없습니다. 다만, 공자의 제자가 누구냐란 간단한 소개 정도의 글로 보지 않고, 그 안에서 도올 선생의 입을 빌려 증자와 효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한 것이 아닌가 했습니다. 즉, 무언가의 간략 소개라기보다 피지알 회원(Duvet님)의 사상이 담긴 글이라 생각했습니다.
14/02/04 22:22
사상을 담은 글이아니라 공자의 3캐릭터가 개성이 뚜렸해서 소개글정도로 썼습니다. 증자는 공자의제자중 비중이 의외로 높아 추가했구요
사실 유교 사상들에 잘 알지는 못합니다
14/02/04 22:34
제가 반성할 사안 같군요. 어느 부분에서 반성할 사안인지 쓰다가 다른 오해가 불러일으킬까, 간단히 쓰자면, 사상은 생각이라고 표현한 것이 전달이 편한데 그러지 못했고, 첫 댓글에서 "증자를 깐 것이라 보겠다'는 것이 표현이 쎘네요.
14/02/04 22:01
안회가 죽었을 땐 天喪予라고 했지만
자로가 죽었을 땐 噫 天祝予라고 좀더 절망적인 탄식을 하죠..1년뒤에 공자마저 죽고..참 이양반 말년복 안좋아요. 느낌상 안회와는 조훈현9단과 이창호9단 같은 사이라면 자로와는 유비와 장비같은 사이가 아닌가...
14/02/04 23:00
안연이 공자에게 인을 물었다..
왜 공자가 안회 죽을 때 그리 슬퍼했는지, 왜 안회를 학문을 가장 좋아하는 제자라고 말했는지 잘 나타내는 소설이었죠. 지금 읽어도 참 명작입니다.
14/02/05 01:33
실은 이 전설들이 현재 전승되는 형태로 완성되는데 걸린 시간이 500년이 넘는다는게 함정이라면 함정이죠;
논어 이외의 소스가 믿기 어려운거야 그러려니 해도 논어 자체도 전한 중엽에서 말엽이나 되어야 간신히 현재의 판본과 유사한 모습으로 편집/완성되는데 심지어 그렇게 만들어진 판본조차도 현행본과 꽤 달라서 -_-; 논어 안에서도 2/3은 전국시대 중엽 이후 작품이라고 텍스트 크리틱의 집중포화를 맞았죠. 위의 내용은 사실 공자와 그의 그룹에 대한 사실묘사라기보다는 전국 말엽-전한무렵 학자들의 마음속에서 재구성되고 재투사된 공자와 그 학단의 꿈결같은 모습이라고 해야 정확합니다. 뭐 그렇다고 해도 벌써 2천2백년 된 이야기네요 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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