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상 경어를 생략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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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말야. 25살이 넘어서도 동정이라면, 마법을 쓸 수 있게 되지."
어떤 안경 쓴 중년의 남성이 하는 유명한 대사이다. 처음에는 그냥 나같은 모태솔로들의 자조섞인 유머라고 생각하고 웃어넘겼는데, 내일모레면 24살이 되는 요즈음 저 대사가 무척이나 와닿는다. 왜냐하면, 22살, 아니 23살이었던 올해 초 까지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내 내면의 어떤 제6의 감각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열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어서 그렇다. 예를들면 그전까지는 알바하러 출근했다가 아무생각없이 카운터에서 주문받고 계산하고 시간되면 퇴근해서 집에 갔다면, 요즈음에는 계산대에 앉아 손님 한명한명이 무슨 말을 하는지, 무슨 행동을 하는지, 또 누구와 얼만큼 자주 오는지 이러한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또 그러한 정보들을 모아서 손님이 주문하기 전에 미리 추천한다던가 또는 손님이 자주 찾는 무언가를 말하지 않아도 서빙한다던가 하는 행동들을 하고 또 그 행동들에 손님들이 웃으면서 만족한다. 또한, 매일 보지만 그리 친하진 않고 그저 서먹서먹한 상하관계였던 사장님과도 어느순간부턴가 친해지게 되었다. 사장님의 말과 행동을 하나하나 기억하다 보니 사장님이 천하에 둘도없는 딸바보라는걸 눈치채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매일 퇴근후 집에서 5살배기 딸이 재롱피우는것을 동영상으로 찍는다는것도 알게 되었다. 매일아침 사장님이 출근하실때마다 "새 동영상 보여주세요! 애가 너무너무 귀여워요." 라고 한마디 하는것으로 그날 사장님의 기분을 업시킬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쯤되니 왠지 내가 동정인채로 만 22년 반을 지냈기 때문에 슬슬 마법을 쓸수 있게 되는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소한 말 한마디, 작은 행동하나로 사람의 기분을 내 편한대로 조종할수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은 마법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던 어느날, 크리스마스를 3주정도 남긴 그시점에 이대로 동정마법사가 되어버릴것만 같았던 나에게 그녀가 다가왔다. 뭐 자세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지난번에도 글을 썼으니 링크(
https://ppt21.com../pb/pb.php?id=freedom&no=48772#1758451)로 대신하겠다. 뭐 어쨌든, 여차저차 해서 그녀와 같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되었다. 생애 처음으로 엄마가 아닌 다른 여자와 단둘이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된 나는 정말이지 많이 긴장했다. 물론 그전 두번의 데이트를 통해 그녀의 마음이 나에게 향하고 있다는것은 진즉에 알수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셜커머스를 통해 간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그녀에게 전날 고르고 고른 깜찍한 만화캐릭터 얼굴모양의 케잌을 선물하기 전까지의 나는 정말이지 극도로 긴장한 상태였다. 그러나 케잌을 받고나서 너무너무 귀엽다며 정말 아이처럼 기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자, 그전까지의 긴장감은 눈녹늣이 사라졌으며 그전까지 그녀에 대한 호감이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외로움에서 오는 여자를 탐하는 수컷의 본능이었는지 나 자신도 갈피를 잡지 못했던 감정이 단 한순간에 정리가 되어버렸다. 그녀가 진짜로 내 마음안에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장장 4시간동안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눈 후, 나와서 패밀리레스토랑의 느끼함을 한번에 날려버릴만큼 칼칼했던, 또한 그녀가 사주어서 더욱 맛있었던 순두부찌개를 먹고 그녀의 학교 과방에서 또 계속 수다를 떨었다. 비록, 손잡기는 실패했지만 (사실 지금생각해보면 팔짱 낄 기회는 정말 많이 있었던것 같은데 모쏠의 한계로 거기까지는 생각이 닿지 못한점이 정말이지 아쉽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1시 30분에 만나 그녀의 기숙사 통금시간인 밤 10시까지 그녀와 함께 있으면서 계속 이야기를 했다는 것만으로 나에겐 정말이지 성령이 충만한 축복받은 크리스마스가 아닐수 없었다. 그녀가 기숙사 통금시간이 다 되서 어쩔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을 때, 나는 정말 진한 아쉬움을 담아 그녀를 쳐다보았고 그녀도 아무말 않고 나를 바라보았다. 거짓말 좀 보태서 우린 그렇게 한 5분정도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녀를 내것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고 나도 모르게 사귀자는 말이 튀어나올뻔 했는데, 지난번에 먼저 대쉬해왔던 여자에게 고백했다가 차였던 기억이 떠올랐고 그 덕분에(?)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고백을 참아냈다.
그렇게 그녀와 헤어지고 집에 와서 한참을 생각했다. 과연 고백을 했어야되나 하지 말았어야되나. 그녀의 마음도 나를 향하고 있음이 분명한데, 그때가 딱 타이밍일지도 몰랐는데, 혹여 그녀가 미적거리는 나의 모습에 실망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러다가 문득, 두번째 데이트때 영화시간을 기다리던 동안 그녀와 나의 대화가 떠올랐다. 그녀의 '여친이 왜 없냐'는 물음에 나는 '어차피 좀있으면 군대도 가야되고..'라고 대답했고 '군대가면 뭐 어떠냐 여자가 기다릴수도 있지'라는 그녀의 말에 '내친구들 거의다 예비역인데 군대가면 거의다 깨지더라, 꽤 오래사귄 것들도 군대가면 깨지던데 고작 몇개월 사귀고 군대 갈거면 차라리 안사귀는게 나을것도 같다'라고 대꾸했었다. 꽤 빙빙 돌려서 이야기했지만, 이 당시 그녀는 내가 미필이고 언제 입대해버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은연중에 나에게 표출했던 것이고, 그녀가 나에게서 얻고 싶었던 것은 그런것 따위 불안해할 필요 없다고 느낄만큼 그녀에게 확신을 줄수있는 그런 대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나는 그녀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그저 당시 떠오르는 대로 대답해버렸고, 비록 직접적으로 표출하진 않았지만 그녀는 적어도 그 당시에만큼은 나에게 적잖이 실망했을것이다.
물론 연애한다고 무조건 결혼해야하는것도 아니고, 그녀와 나는 아직 미래에 대해 걱정하기엔 나이가 너무 어린것은 사실이지만, 연애라는것 역시 결국에는 서로를 갖고싶어서 상호 합의된 약속으로 서로를 구속하는 행위인데, 내가 그녀를 갖고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그녀를 구속해 버리는것은 정말이지 비겁하고 무책임한 행동일 것이다. 또한, 그녀역시 그러한 나의 행동에 아까보다 더욱 큰 실망감을 느끼겠다는 생각역시 들었다. 행여나 그 실망감으로 인해서 그녀가 나를 거절했다면, 한순간 나의 어리석은 행동이 나와 그녀 둘다에게 매우 큰 상처를 줄수도 있었다는 데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지난번에 나를 갖고논뒤 뻥 차버렸던 그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감사를 표하고 싶을만큼 정말이지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3년차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겪은-짝사랑도 해보고 고백했다가 차여도 보고 바람둥이 여자와 사귈뻔도 해보고 또 여자가 먼저 대쉬했는데도 내가 고백하니까 귀신같이 차였던-모태솔로가 드디어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이제 끝났다. 그녀의 마음을 알았으니 마법사가 되어 그녀의 마음에 마법을 부릴 일만 남은 것이다. 물론 나는 연기력이 그렇게 출중하지 않으니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마법을 부려야겠지. 집에 도착해서 전화통화를 할때, 끊기 직전에 서로 '안녕~끊어.'라는 말을 한 네다섯 번은 주고받았고 결국 내가 먼저 전화를 끊었으니 최소한 아직 기차는 떠나지 않았다. 내일모레, 불타는 금요일 저녁에 그녀를 만나서 하늘이 두 쪽 나도 네 마음만 변하지 않는다면 내 마음역시 변하지 않을거라고, 그러니까 네 마음만 변하지 말라고, 이렇게 그녀에게 확신만 줄수 있다면 그녀를 내 것으로 만드는 지상 최대의 매직쇼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 역시 그녀의 것이 되어야겠지. 무책임하고 비겁한 놈이 될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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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생각은 많은데 필력이 너무 딸리네요. 두서없고 재미없는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첫 질문글부터 댓글 달아주시고 격려해주신 모든분들 감사드립니다. 꾸벅.
p.s.2)첫 문단에 적은 소위 제6의 감각에 갓 눈을 뜨기 시작했을 때, 생각이 많아지면서 그동안 나는 왜 연애에 계속해서 실패했을까를 끊임없이 자문해왔는데 그러던중 버스커버스커의 '정말로 사랑한다면'이라는 노래를 듣게 되었습니다. 사랑한단말로는 사랑할수 없고, 너무 쉽게뱉은 사랑은 다 거짓말이며, 무엇을 원하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신경쓰지도않고 오직 상대를 가지려고만 하고. 이 노래를 듣자마자 무릎을 탁 쳤습니다. 그동안 제가 왜 고백할때마다 차였는지 그 노래가사에 모두 쓰여있더라고요. 후렴구에 장범준씨가 정말로 사랑한다면 기다리라고, 상대가 원하는것은 진심이고 진심이 아니라면 모두 아픈추억이 되어버린다고 하시는데 너무너무 공감이 되었습니다. 이 노래덕분에 어제저녁 그녀의 기분은 생각하지도 않은채 그녀를 실망시키는 큰 잘못을 저지르는것을 막을수 있었던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