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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2/21 12:12
좋은글이네요..
우리나라에서는 아담 스미스를 무슨 민영화를 좋아한다는 식으로 왜곡해서 쓰는 사람이 너무 많죠.. 공공시설 및 교육 분야는 정부가 쥐고. 나머지를 시장에 맡기자가 핵심이였는데..
13/12/21 12:28
정확하십니다.
"부자와 가난한 이들을 똑같이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먼저 정의 구현이 가능한 체제를 수립한다. 정부는 도로, 철도 등의 공공시설과 교육 분야와 같이, 당장 높은 수익이 발생하지는 않지만 전체사회와, 궁극적으로는 비즈니스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분야에 투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가는 외침(外侵)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한다……" 라고 와이트는 이야기 하고 있죠. 즉, 공공시설 (무려 철도포함!!!)은 정부/혹은 사회에서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만, 그 점만 쏙 빼고 이야기하고 있죠.
13/12/21 12:25
전에 pgr 댓글을 보고 배운 건데,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자유방임주의를 뜻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정부의 개입을 뜻하는 거라고...
참 이런 '유명한' 저작들은 오히려 그 유명함때문에 길이길이 오독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13/12/21 12:52
조금 정정해서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손이란건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 하에서 합리적 개인의 이익추구는 결국 사회 전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시장논리의 작용을 말하는 것이었죠. 이건 정부가 계획해서 이뤄지는것도 아니고 어느 누가 조종하는 것도 아닌 자동적인 작용이라 '보이지 않는' 손 이라고 지칭을 한겁니다.
그럼 정부의 역할은 무엇이냐, 바로 시장에서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감독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고 있는 것이죠. 정부가 시장에서 최소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면 맞는 얘기지만 정부는 시장에 일체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 그건 아담 스미스의 입장에선 틀린 얘깁니다. 말하자면 정부는 축구 경기의 심판과 같은 겁니다. 심판이 경기에 개입을 안하나요? 해야죠. 경기도중 핸들링을 한다거나 상대 선수를 꼬집는다거나 수아레즈 처럼 깨문다거나(...)할 경우 옐로카드 주고 패널티 킥 주는 역할을 정확하게 수행을 해야죠. 그래야 경기가 공정하고 자유롭게 진행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만 심판이 직접 공을 몰고 가서 골대에 슈팅을 때리면 안되겠죠, 선수들이 정해진 룰을 지키면서 플레이하는 한 심판은 경기에 따로 개입할 일이 없을 겁니다.
13/12/21 13:16
저도 국부론 전체의 해석은 이 정도가 맞다고 보는데, <보이지 않는 손>의 개념 자체는 딱히 달리 해석할 이유가 없지 않나 싶습니다.
"(전략)...각 개인은 그가 지배할 수 있는 자본이 가장 유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사실, 그가 고려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이익이지 사회의 이익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또는 오히려 필연적으로, 그러 하여금 사회에 가장 유익한 사용방법을 채택하도록 한다... (중략)...둘째, 본국 노동의 유지에 자기의 자본을 사용하는 각 개인은 반드시 그 생산물이 가능한 한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노동을 인도하려고 애쓴다. 노동생산물은 노동의 대상과 사용된 재료에 노동이 첨가된 것이다. 이 생산물 가지의 대소에 비례해서 고용주의 이윤이 크거나 작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자본을 사용해서 노동을 유지하는 것은 이윤을 얻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그는 자기의 자본을, 그 생산물이 가장 큰 가치를 가질 수 있게 하는 노동, 즉 그 생산물이 가장 큰 양의 화폐나 다른 재화와 교환될 수 있게 하는 노동에 사용하려고 힘쓸 것이다. 그러나 한 사회의 연간수입은 그 사회의 노동의 연간 총생산물의 교환가치와 정확하게 같다. 또는 오히려 그것의 교환가치와 정확하게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각 개인이 최선을 다해 자기 자본을 본국 노동의 유지에 사용하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노동을 이끈다면, 각 개인은 필연적으로 사회의 연간 수입이 가능한 한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된다. 사실 그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지도 않고, 공공의 이익을 그가 얼마나 촉진하는지도 모른다. 외국 노동보다 본국 노동의 유지를 선호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였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그 노동을 이끈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였다. 이 경우 그는, 다른 많은 경우처럼,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회에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가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흔히, 그 자신이 진실로 사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는 경우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그것을 증진시킨다. 나는 공공이익을 위해 사업한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좋은 일을 많이 한 것을 본 적이 없다. 사실 상인들 사이에 이러한 허풍은 일반적인 것도 아니며, 상인들은 말 몇 마디만 해도 그런 허풍을 떨지 않는다. 각 개인은 자기의 자본을 국내산업의 어느 분야에 투자하면 좋은지, 그리고 어느 산업분야의 생산물이 가장 큰 가치를 가지는지에 대해, 자신의 현지 상황에 근거해서 어떠한 정치가나 입법자보다도 훨씬 더 잘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민간인들에게 그들의 자본을 어떻게 사용하라고 지시하려는 정치가는 스스로 불필요한 수고를 할 뿐만 아니라, 어떤 한 개인에게 안심하고 위임할 수 없으며 어떤 위원회나 참의원에게도 안심하고 위임할 수 없는 권력을, 또한 자신만이 이와 같은 권력을 행사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우둔하고 황당한 사람의 수중에 있을 때 가장 위험해지는 그런 권력을, 자신이 멋대로 휘두르려는 것이다..." 가 <보이지 않는 손>이 나오는 단락인데, 아무리 봐도 그리 모호하고 중의적인 내용은 아니라고 봅니다.
13/12/21 13:36
말씀하신 바를 본다면,
"보이지 않는 손"은 결국 의도했던 주체자(개인)의 목적과 방향과는 상관 없이 결론을 이끌어내는 행위의 fundamental한 주체(그러나 보이지 않는)라는 말이 되는데요. 그렇다면 개인의 이기심과는 별도의 무언가가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cue가 된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그렇다면, 도덕감정론의 연장선에서 그리고 국부론의 다른 부분을 포함하여 생각한다면 결국 보이지 않는 손은 개인의 차원이 아닌 다른 driving force 즉 정부나 사회 혹은 개인과 개인사이에서 벌어지는 개인의 자유의지와 이기심의 조율을 통해 만들어지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로 볼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13/12/21 14:05
제가 생각하기에는 해당 단락에서 <개인의 이기심과는 별도의 무언가>를 암시하는 것을 찾아보기는 어렵지 않나 싶습니다. '그가 고려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이익이지 사회의 이익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또는 오히려 필연적으로, 그러 하여금 사회에 가장 유익한 사용방법을 채택하도록 한다.'만으로도 의미가 분명하지 않나 싶네요. 마지막 문단도 자기 자신이야말로 스스로에 대해 최고의 전문가이므로 개인의 사유재산을 어떻게 처분할지 결정하는 데에 있어 정치가의 규제는 무익하다는 내용이고요.
13/12/21 14:10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제가 생각하는 점은 인과론적 사고로 봤을 때, 자아가 의도하지 않은 세계의 변화는 분명히 또다른 원인이 존재하는 것이고,보이지 않는 손이 또 다른 원인이라고 본다면, 그 보이지 않는 손의 주체는 자아 밖의 세계 즉 타자 혹은 자아를 둘러싼 세계의 인력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느냐라는 생각에서 온 것입니다.
13/12/21 14:17
예. 저는 그 세계의 인력이 개인의 이기심과 별도로 존재하는 여타 다른 대상이나 형이상학적인 실체와 같은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이기심의 총합이라고 해석하는 게 옳지 않나 싶은 거고요.
"<각 개인이 최선을 다해> 자기 자본을 본국 노동의 유지에 사용하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노동을 이끈다면(곧 자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각 개인은 필연적으로 사회의 연간 수입이 가능한 한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곧 공익이 증진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된다." 라는 구절에서도 잘 드러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13/12/21 14:55
아담스미스에게 있어서 '보이지 않는 손'은 '신의 섭리'입니다. 아담 스미스는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만드실때 조화를 이루도록 해두셨다는 자연조화설의 입장에 있었죠.
'사람들이 인간의 본성인 자기사랑(self-love)를 바탕으로하여 자기이익을 추구하면, 결국 신의 섭리인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잘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중상주의하에서 각종 인위적인 독점과 규제가 자유로운 시장을 통한 경쟁을 방해하고 있으니, 이것들을 철폐하고 자유로운 시장을 확립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것이고요.
13/12/21 12:28
아담 스미스 당시에는 경제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아직 없었던 때이죠. 맨더빌이라는 사람이 <꿀벌의 우화>라는 책에서 처음 자유 경제의 개념을 제시했고, 이후에 아담 스미스가 사실상 확립했다고 볼 수 있고요. 공리주의의 개념을 처음 창시한 벤담 역시 이 시기에 활동했는데,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경제학은 결국 아담 스미스의 사상과 공리주의가 만나야 탄생하는 것이니까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단어는 <국부론>을 통틀어 단 한 번 밖에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자유 경제의 개념을 함축해서 잘 전달해주기 때문에 자주 인용된다고 하더군요. 그 이전에 <도덕감정론>은 아담 스미스가 본인의 사상을 정립하고 위대한 학자 반열에 올라갈 수 있게 해준 철학 서적인데 반해, <국부론>은 경제학 교과서 느낌이 나는 책이긴 합니다. 어떻게 국가가 부를 축적할 수 있는지 매우 자세하게 항목별로 서술해두었죠. 그러니까 사상사에 있어서 아담 스미스의 진가가 <도덕감정론>에 있다는 의견은 일면 타당하기도 하면서, 좀 더 접근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애초에 정치 영역이 아닌 경제학에서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과 방임 사이의 요즘 나오는 식의 논쟁은, 시카고 학파나 프린스턴 학파 같은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케인즈 이후에나 활발하게 벌어진 것인데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추상적 이미지와 최신 경제학이 겹쳐지면서 개념의을 다소 오인하게 된 게 아닌가 합니다. 방임주의 입장에서 아담 스미스를 본인들의 최초의 시류 정도로 자꾸 인용하니까, 반대편에서 아담 스미스를 재발견한다는 의미로 <도덕감정론>에 대한 연구나 저서가 몇 년전에 유행한 걸로 압니다.
13/12/21 12:32
좋은 부연 설명 감사합니다.
즉, 삼공파일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존재했다라는 가능성은 충분이 높다고 봐야죠.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잘못된 해석만이 저같은 소시민의 머리속에는 박혀있는 것 또한 현실이죠.
13/12/21 12:40
일반적으로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말했다고만 배우고, 나중에 경제학자들끼리 파가 갈려서 싸우면서 아담 스미스가 서로 자기네들의 조상이라고 우기는 셈이죠. "보이지 않는 손"과 수요 공급 그래프를 직관적으로 연관시키는 것은 다소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도덕감정론> 때문에 아담 스미스를 프린스턴 학파의 조상이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네이버캐스트에 철학자들을 소개한 글들이 있는데 괜찮은 것들이 많더라고요.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88&contents_id=3369&leafId=88 이것도 함께 참조해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
13/12/21 12:31
애초에 저 시기의 이야기들은 사회에 있는 각 개인들이 이기적임과 동시에 지극히 합리적인(=공리주의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거라는 전제아래 나온 것들이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크고 아름다운 공산주의 이야기(....) 그런데 우리는 이미 그 개인들이 합리적이지 않음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차별적으로 그 시기의 이야기들을 끌어 쓰는것은, 400년전에 노예제도가 유용했다고 해서 지금 다시 하자는것, 그리고 400년전에 절대왕정이 통치를 잘 했으니 지금 다시 하자는 것과 같죠. 어, 어디서 많이 들은 이야긴데?
13/12/21 12:34
그렇습니다!
말씀하셨듯이 아담 스미스 또한 18세기의 사람이기 때문에, 그의 이론이나 철학이 현재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지하게 위험한 것이겠죠. 다만, 여기서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해석은 쉽게 생각할 것이 아니고, 우리가 잘못 의미를 알고 있지 않는가? 라는 점입니다.
13/12/21 12:40
네 그렇죠. 사실 곰주님과 같은 이야기인데, 그냥 조금 다른 관점에서 했던 이야기일 뿐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볼 때,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를 재단하는것은 지극히 위험한 것인만큼, 과거의 시점(?) 에서 현재를 재단하는것도 지극히 위험한 것이죠. 그런데 과거의 시점에서 현재를 바라볼 때, 우리가 그 과거의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것은 더 위험하니까요. 아담 스미스도 이 글에서 나온 것처럼 정말 재대로 알려지지도 않았고.... 그런데 누군가는 그걸 자기 좋은대로 취사선택해서 '아담 스미스가 내가 하는말이 맞데~' 라고 쓰고 있고.... (아담 스미스의 주장을 내가 하는게 아니라, 내 주장에 아담 스미스를 끼워넣는 고인능욕!) 아랫글 읽어서 뒤숭숭한 기분을 잘 풀어주는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13/12/21 12:41
감사합니다.
실은 얼마전부터 계속 준비했던 글입니다. 제 하드속에는 이런 글들이 좀 많이 쌓여있는데....쿨럭... 아직 퇴고를 좀 해보느라...
13/12/21 13:16
저도 글을 써... 보고 싶은 마음은 한가득이지만, 공부란걸 해본적이 별로 없다보니 지식이 부족함에 항상 한탄하고 갑니다. ㅠㅠ
부럽습니다 크흑.....
13/12/21 12:39
<국부>의 마지막 편인 5편은 <국왕 또는 국가의 수입>이란 제목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국가가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 국방, 조세, 공공사업, 공채 등등 - 에 대해 포괄적으로 논하고 있죠. 어찌보면 이게 국부론의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나 합니다. 1편부터 4편까지의 내용 - 분업의 효율성을 강조하고, 자본이 사회조직에 미치는 영향을 논하며, 경제사적 맥락을 따져보고, 각 경제이론을 비판 하는 등등 - 은 5편을 위해서라고 말해도 무리가 없죠. 무엇이 국가가 손댈 일이고 무엇이 국가가 손대지 말아야할 일인지의 한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봅니다.
13/12/21 12:46
언젠가 제가 시간이 난다면 국부론을 꼭 다 읽어보고 싶습니다.
게다가, 지식또한 일천한지라 부족한 점이 많았군요. 부연 설명 정말 감사드립니다!
13/12/21 12:51
몰랐던 사실이라 충격적이기까지 하네요
당연하다 생각했던 사실들의 이면이 얼마나 더 많을지 생각해보게됬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국부론 = 국가부도론 = 부도가 나야 다시 살릴수 있으니까 창조경제 류의 댓글을 기대했다가 없길래 제가 남기고 가봅니다. 크크
13/12/21 13:11
'보이지 않는 손' 에 대한 해석은 정말 어떻게 하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생각이 드네요 흐..
좋은글 감사 합니다.
13/12/21 13:14
가능한 저자의 의도대로 해석해야되겠죠.
특히 앞뒤 다 자르고 단어하나만 툭하니 사용하는 것은 과학자나 철학자가 제일 피해야 할 행동입니다.
13/12/21 13:57
신자유주의가 아담 스미스를 신봉한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에서 모두 틀린 말입니다.
첫째로 신자유주의라는 말은 반대파에 의해 규정된 레토릭 같은 것으로 실제로 자신을 신자유주의라고 자칭하는 경제학자는 없습니다. 실제로 신자유주의는 한국에서만 쓰이는 게토화된 말에 가깝습니다. 신자유주의를 구글에다 치면 60만 건 정도가 나오는데 neo liberalism을 쳐도 비슷하게 나옵니다. 반면 새고전학파 new classical을 구글에 치면 천오백만 건 정도가 나옵니다. 신자유주의를 비난하는 이들은 신자유주의의 아버지로 프리드먼이나 하이에크를 거론하는데 프리드먼은 통화주의자이고 하이에크는 오스트리안 학파입니다. 또한 프리드먼은 친 시장주의자였지 친 기업주의자가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신자유주의는 어떤 경제학 학파가 아닙니다. 지금 현재 있다면 새고전학파나 새케인즈학파이겠죠. 미시경제에서는 그런 일이 더 적고 시카고 학파 같은 걸로 통칭하는 것도 사실 무리에 가깝습니다. 또한 아담 스미스는 경제학에서 다뤄지지 않는데 이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사회과학적 성격보다 자연과학적 성격을 더 많이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과학이 플라톤이나 칸트 같은 지적 거인들의 유산을 통해 발전하고 그런 거인들에 대한 비판 -니체 등- 을 통해 자신을 정립시키는 반면 자연과학 -예컨대 천문학-에서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를 비판하지는 않습니다. 경제학에서 기존 주장과 배치되는 새로운 주장을 할 때 지적 거인들을 공격하지는 않습니다. 아담 스미스를 무너트리는 것은 실제 경제학적 논쟁과 하등의 상관도 없습니다. 보통 경제학에서 자신의 이론의 입증력은 실제 실증적 증거들을 얼마나 잘 설명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예컨대 실증임금이 경기후행하는가 선행하는가 같은 것 말이죠. 그래서 라구람 라잔 같은 경제학자가 이번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뜨게 된 것입니다. 보통 한국에서는 칼 폴라니 같은 학자들이 거론되곤 하는데 맑스나 폴라니 오스트리안은 비주류 경제학자들에 가깝고 실제 학문의 장에서 영향을 막대하게 주진 않습니다.
13/12/21 14:36
정말 필요없는 사족이지만.. 사실 맨큐는 뉴케인지언 학파의 기초를 이루는 역할을 했었으나... "맨큐의 경제학"이라는 희대의 경제학계 베스트 셀러를 낸 후에 90년대 이후에는 현역이라고 하기 민망하죠.. 돈 맛을 너무 일찍 알았는지.. 요샌 블로그에 헛소리하는 게 일상이더군요.
13/12/21 14:08
고견 잘 들었습니다.
전 이글을 통해서 "아담 스미스를 무너트리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아담스미스가 무슨말을 하려했는가? 그런데 왜 소위 "게토화된" 우리나라 신자유주의적 성향 (이라고 하겠습니다) 경제학자들은 무슨일만 있으면 보이지 않는 손을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어 드는가... 라는 점이죠. 그렇기 때문에, 하이에크나 프리드먼에 대해서 이야기는 일절 꺼내지도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말씀하셨듯이 우리나라에서는 neoliberalism이라는 말이 전세계적으로 사용되어지는 의미로서가 아닌 "게토화된 의미"가 majority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슈가레이님의 말씀마따마 어떤 경제학 학파도 아니라고 한다면 왜 우리나라의 주류 경제학자들은 신자유주의 학파라고 하는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말을 사용하는 걸까요? 라는 질문을 던져보게 되네요.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말씀하셨던 "경제학에서 기존 주장과 배치되는 새로운 주장을 할 때 지적 거인들을 공격하지는 않습니다. 아담 스미스를 무너트리는 것은 실제 경제학적 논쟁과 하등의 상관도 없습니다." 라는 말씀과는 다르게 저는 아담 스미스를 무너뜨릴 생각으로 글을 쓴 것은 아닙니다.
13/12/21 14:24
신자유주의라는 말 자체가 게토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나라에서만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많이 쓴다는 의미입니다.
제 말은, 이 글이 아담 스미스를 공격하려는 시도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담 스미스가 실제로 무슨 말을 하였는가에 대한 것이 현재 존재하는 민영화 담론에 대한 공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단지 아담 스미스에 대한 이야기라면 제 댓글이 무례한 것이겠습니다만, 저는 이 글이 나온 배경이 어느 정도 현재 피지알에서 이야기되는 민영화 담론의 일부라고 판단합니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주류 경제학자들 중에서 누가 신자유주의라고 자임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주로 신자유주의는 반대파에 의해 규정당하고 공격당할 때 많이 쓰이는 용어라서요.
13/12/21 14:48
그렇군요.
민영화 담론의 일부라고 보실 수도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극단적 민영화 찬성론자들이 (밑의 글에서도 논란이 되긴 했지만) 근거로 사용하는 말 중에 가장 호소력있게 사용하는 말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어휘구요. 문제는 앞에서 이미 발제했듯이,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어지고 있는지 의문이 들어서 글을 적은 것이구요.
13/12/21 14:02
경제학 공부하면서도 국부론도 제대로 읽지 못한게 내내 마음에 걸립니다 ㅠ.ㅠ 덕분에 다시 한번 원점에서 제 자신을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나 현대 경제학이 틀린게 아니라는 확신도 드네요^^
감사합니다!
13/12/21 14:12
진지 좀 한상 차려보면, 사실 지금 박사과정 밟고 있는 수많은 한국 유학생 중에 경제학의 역사나 철학적 고찰이 부족한 사람들이 저포함 대다수라고 봅니다. 그런게 사실 좀 많이 아쉽습니다.
13/12/21 14:14
제 주변에 경제학 박사과정을 하는 친구들과 이야기 하면 저야 말로 많이 배우는데요 ㅠㅠ;;;
역시 사람은 인문/철학을 배워야 합니다 ㅠㅠ
13/12/21 14:47
이근식 교수님의 '애덤스미스의 고전적 자유주의'를 추천드립니다. 아담 스미스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정말 재미있게 읽으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도 얇습니다..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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