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안녕하냐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건 이 노래였습니다. 어째서였을까요, 그 안녕이 OK의 안녕인지, Hi의 안녕인지, 아니면 Bye의 안녕인지는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었을텐데, 왜 그 안녕을 먼저 떠올린 것이였을까요.
한국 사회에서, 인사는 안녕하세요에서 시작해서 안녕히가세요 로 끝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안녕은 어떤 안녕일까요. 아마도 여러 가지 뜻이 함께 섞였을 것입니다. 이 말은 상대방이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일까요. 아니면, 상대방이 잘 지내야만 내가 기분이 좋기 때문에 하는 말일까요. 안녕하세요 라고 했을때, 난 안녕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을까요, 아니면 자신은 안녕하지 않아도, 안녕하냐고 되물어 주는 사람이 많을까요. 우리는, 은연중에 전혀 괜찮지 않은 사람들을 괜찮다는 말을 하도록 만들어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자행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우리 자신에게 나는 괜찮다고, 내가 열심히 하면 잘 될 것이라고 세뇌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우리는 각자 어릴 때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 꿈은, 믿기지 않으실지도 모르겠지만 개발자였습니다. 하지만 그 꿈은, 더이상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는 정말로 비참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내가 그런 것을 잊고, 그저 안녕해지고 싶은 마음에, 다른 기억들로, 감정들로 그저 덮어 버렸기 때문일까요. 시간이 지나가면서, 내가 보고 싶어하지 않은 과거는 그렇게 잊혀지는 것일까요.
누군가는 물을지 모릅니다. 안녕하냐는게 도대체 무엇이냐고.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안녕하다는 것은, 희망이 있는 것이라고. 타인을 깔아뭉개면서 사회계층적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내일 나올 뉴스를 걱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내가 어떠한 일을 당해도, 그 일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과정 아래서 처리될 수 있을것이라는, 그리고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묻히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것이라고. 내가 기꺼이 사회의 발전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그리고, 먹고 살 걱정에 파묻히지 않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런 안녕따윈 없다고. 그런건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환상이라고.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현실이 어두울수록, 이상을 보고 방향을 잡아 나가야 할 것이라고. 현실을 현실에 타협해야 하는 것이지, 이상을 현실에 타협해서는 안된다고. 아무리 세상이 살기 힘들다고 할지라도, 도둑이나 강도가 장래희망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우리는 지난 여러해 동안, 점점 살기 어려워지고 있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생기고, 타블렛PC도 생겼지만, 점점 더 가난해져 가는듯만 같은 기분은, 결코 기분탓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힘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스펙을 쌓기 시작하더니, 스펙과잉이 되버리고, 신춘문예 투고용인듯한 자기소설서를 아주 열심히 창작해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치열한, 안녕이란 말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 안녕하냐고, 우리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전, 부끄럽습니다. 사실은 안녕하지 않은데, 그저 안녕했던 것처럼, 잘 살고 있다고, 그렇게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편하게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 만으로 내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은, 그것이 아니였습니다. 더 많은 행동을 했어야만 했습니다. 눈을 들어 거리를 바라봤습니다. 저 거리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그 얼굴보다 더 큰 이름표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불법파업, 직위해제, 귀족노조, 종북좌파, 국가전복, 이런 이름표들을 읊어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이름표만 보고 고개를 돌립니다.
어릴적, 그리스의 민주주의를 배우고 놀랐습니다. 저 사람들은 어떻게 모두가 토론을 할 수 있었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토론이 의미가 없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누군가의 이야기는 치밀하게 조각내어 사라지고, 누군가의 이야기는 아름답게 포장됩니다. 누군가는 추악해지고, 누군가는 자유민주주의의 수호꾼이 됩니다. 그런 식으로, 토론이 필요없는, 절대진리가 존재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것만 같습니다. 정말, 우리는 고대 그리스보다도 민주주의성이 결여된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일까요.
그래서 저는, 나 자신이라도 민주주의적인 가치를 실천해보고자, 거창하지도, 위대할수도 없지만, 작은 결심을 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야말로 개인으로써 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라고. 누군가는 이름표를 보고 고개를 돌리겠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그리고, 함께 하도록 하겠다고. 내가 타인의 목소리가 될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눈을 돌리고 귀를 닫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그렇게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눈과 귀를 막고 안녕하고자 했던 시간들을, 뒤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안녕하지 않으면서, 안녕하던 척은, 이제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분명, 듣지 않으면 편할 이야기들을 듣는 것은, 제 자신을 안녕에서 더더욱 멀어지게 하는 일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현실을 외면하고 도피하는 것의 끝은 언제나 비참하다는 것을 알기에, 내일을 위해 오늘 조금 더 힘들어지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가 안녕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을, 믿기로 했습니다.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글을 쓰면서 밤을 새는 것도, 안녕하지 못함의 일종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행복합니다. 만약 포기하지 않는다면,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며, 우리 또한 언젠가 안녕해질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둠이 짙은것은, 새벽이 가까왔기 때문이니까요.
-
이렇게 글을 오랜기간 붙잡아본건 정말 오랬만입니다. 댓글화해야하나 심각한 고민도 했었고, 이 글을 올리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고민도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필력이라 누가 되는것은 아닌가 싶었기도 했고, 아무튼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글이지만, 정말 부끄럽지만, 어여삐 보셨기를 바랍니다.
다음에는 더 좋은 글로 찾아뵐 것을 약속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