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과 일요일, 1박 2일로 사직에 다녀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잠실에서 벌어졌던 1, 2차전 승리로 기분 좋게 내려갔으나 암담함만을 안고 돌아온 길이었네요.
1박 2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아득하기만 하고, 남은 건 패잔병의 몸살기운뿐입니다.
대한민국이 진짜 이렇게나 넓었나 싶더군요.
서울은 일교차도 크고 쌀쌀한데 부산은 한여름.
그나마 비 온다고 하더니 경기할 때에는 무려 햇빛 쨍쨍.
바리바리 싸들고 갔던 가을옷이 무색할 지경이었습니다.
뭐 경기에 대해 간단히 코멘트를 하자면,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힌 격이지요.
3차전이 매우 아쉬운데, 4, 5, 6번이 12번 타석 중 볼넷 하나만 얻어냈을 뿐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경기였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안타 딱 두 개만 나왔더라면 3연승로 준플레이오프를 마감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저 1차전부터 4차전까지 내내 눈부신 활약을 보여준 주장님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진짜 캡틴이 왜 캡틴인지 확실하게 보여줬지요.
일단 사직은 잠실과는 분위기가 또 다릅니다.
잠실이 웅장하고 긴장감 넘치고 전투력 상승의 분위기라면, 사직은 동네 잔치 분위기에요.
실제로 길 가다가 들었는데, "너는 지금 부산에서 가장 큰 축제 중 하나를 보러 가는 길이다"라고 설명하더군요.
잠실에서의 응원전은 그야말로 뜨겁습니다.
아마 팬들도 상대 응원에 지기 싫어서 자기 팀 응원할 때 더 힘차게 하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어느 팀이 공격이든 어느 팀이 수비이든 응원 열기는 뜨겁습니다.
견제 응원할 때 주고받는 재미도 있지요.
사직은 일단 우리 팀 수비일 때 조용합니다.
뭐 호수비 나오거나 그러면 환호하지만, 대체적으로 조용합니다.
공격할 때에는 신나게 응원하다가도 수비할 때에는 다들 자리에 조용히 앉아 이것저것 먹기에 바쁩니다.
야구장 수용 인원 2만 8000명 중 2만 7000여 명가량이 다 롯데팬이라서 그렇습니다.
한 집안 식구들이 다 모여 있으니 시끄러울 때는 시끄럽고 조용할 때에는 조용합니다.
그리고 이토록 많은 팬이 한자리에 모여 있지만 저마다 성향은 다릅니다.
응원단장을 도와주면서 응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응원하는 사람도 있고, 때론 상대팀 네거티브 응원하는 바람에 같은 팀 팬의 마음을 어지럽게도 합니다.
그러다가 같은 팬들끼리 조용히 해라, 너나 조용히 해라 고성이 오고 가기도 합니다.-_-
물론 이런 사람들이 하나가 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견제 응원인 "마!"를 외칠 때죠.
혹시 유게에 올라왔던 네이트의 8개 구단 팬 성향 그림 보셨습니까?
딱 그거예요. 더 이상의 설명은 불필요합니다.^^;;
그리고 뭔가 결연하고 각이 딱딱 맞는 잠실의 두산 응원과는 달리 사직은 뭔가 허술합니다.
올해는 부정 탈까 봐 대형 갈매기(라고 쓰고 꼴매기라고 읽습니다) 안 뛰었다고 하던데요, 신문지 들고 있는 대형 누리인지 뭔지도 한 10분간 있다가 없어졌습니다.
'최강 롯데, 구도 부산'이라고 씌어진 대형 현수막은 잠실에서처럼 피고 접고 했지만, 저 멀리 기수들이 흔드는 대형 깃발은 그야말로 자기 흔들고 싶은 대로 흔들어서 뭔가 엉성한 느낌마저 들더군요.
그 깃발도 있다가 없어졌다가 다시 나타났다가 자기 맘대로...^^;;
사실 롯데백화점에서 관중들에게 나눠준 승리기원 깃발과 대형 현수막 등을 빼면 준플레이오프나 정규 시즌이나 별 다를 게 없더군요.
근데 낮경기라서 그런 점도 있는 것 같긴 해요.
6시 넘어가면서 어둑어둑해지면 사직 조명탑에 불이 들어오는데 그때에는 분위기가 또 확 달라지거든요.
어쨌거나 사직 팬들이 하나로 모여서 즐겁게 노래할 때에는 정말이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노래방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절도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정말 흥겹게 즐긴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물론 4차전처럼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지면 관중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도 하지만...ㅠ_ㅠ
하지만 역시 사직하면 먹을거리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여자예비역 님이 저랑 같이 동행했는데, "여기는 정말 야구장에 특화된 것 같다"라며 놀라워하더군요.
야구장 근처에서 안 파는 게 없습니다.
야구장 근처에 있는 음식점은 품목이 무엇이든 간에 포장이 안 되는 게 없고요.
심지어 회를 미리 떠서 들고 지하철로 이동하는 사람마저 보이고...
이번에 갔더니 삼겹살을 도시락처럼 포장해서 팔더군요.
도시락 판매하는 것 같은 대형 플락스틱 그릇에 구운 삼겹살과 쌈장, 쌈, 야채 등등 포장해서 파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뭐 터키 사람이 들고 다니며 파는 케밥은 말할 것도 없고...
여역 님이 그거 먹고 싶다고 하셨는데, 결국 먹지는 못했습니다.
사직은 닭을 기본적으로 두 마리를 팔기 때문에(두 마리에 10000원에서 12000원입니다) 닭 먹기에도 벅찼던...(결국 얘마저 다 못 먹고 남은 거 버렸네요.ㅠ_ㅠ)
그리고 확실히 부산은 야구에 대한 반응이 다릅니다. 정확히는 롯데 자이언츠에 대한 반응이겠지요.
지하철이든 식당이든 응원 저지 입고 있으면 오늘 경기 있냐, 몇 시에 하냐, 이기길 바란다, 이겼나 졌나, 왜 그리 졌나 물어봅니다.
3차전 끝나고 술집으로 이동했는데 그때서 하는 녹화중계를 틀더군요.
경기 졌다, 굳이 안 봐도 된다, 했더니 종업원이 꿋꿋하게 음악소리마저 죽이고 중계 소리를 키우더군요.
이미 직관하고 온 마당에 진 경기를 다시 TV로 보면서 결국은 열이 받아 "에잇, 마셔~" 이럽니다.
다른 테이블은 녹화중계를 생중계처럼 보고 있고요.
여튼 날도 더워서 야구장에 도착하자마자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그날 밤 12시 30분까지 무려 10시간 30분을 술과 함께한 처지가 되어버렸습니다.-_-
(근데 사실 1차전부터 4차전까지 진행되는 동안 먹은 술 합치면 거짓말 하고 맥주로 15000에서 20000cc, 소주 10병은 될 것 같아요.-_- 맨 정신으로 보기 참 힘들더군요.)
이렇게 저의 일주일이 갔습니다.
완전 체험 극과 극! 야구장 버전이 된 것 같네요.^^;;
(잠실 직관기는
http://110.45.140.234/zboard4/zboard.php?id=freedom&page=5&sn1=&divpage=5&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25423 참조하세요~)
어쨌거나 홈팀팬에게 비수를 꽂아버린 양 팀의 준플의 끝은 어찌될까요?
맘 같아서는 지금부터 5차전이 끝나고 일주이 후까지 야구 없는 곳에서 살다오고 싶습니다. 흑...
그래도 인생은 흘러가고, 직장인의 일주일이 시작되니 일이나 열심히 해야지요.
힘겨운 월요일, 모두 파이팅입니다.
-Artemis
ps.
예전에 프로리그 광안리 결승전 화승 대 삼성전.
그때 갔던 돼지국밥 골목길을 우연히 다시 마주쳤습니다.
오래된 일인데도 왔던 기억이 딱 나더군요.
그래서 그 골목에서 다시 돼지국밥 먹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