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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
2010/08/27 14:50:34 |
Name |
게지히트 |
Subject |
[일반] 샴푸향 미소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제목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지은이 : 박민규
출판사 : 예담
먼저 나는 중학교 2학년때 잔인한 웃음을 고백하는게 좋을듯 하다.
중학교 2학년. 우신 중학교. 우리집은 온수동에 있었다. 온수동 대흥빌라 3동에서
비탈길을 거쳐 철길로 내려와 건너서 2차선 도로를 건넌후, 비가 오면 질척해지는
오르막 흙길을 넘어서면 아카시아 나무가 줄서있고. 나무 사이를 지나면 빌라단지가 나온다.
고등학교 1학까지 우신중 옆 우신고를 다녔으니. 4년을 같은길을 반복해서 다닌탓에
아직까지 눈을 감고도 그 길이 기억난다. 물론 이제 그 길은 없어졌겠지만 내 기억속에는
지도에 없는 그 길이 너무도 또렸하다.
중학교 2학년. 등교시간 8시를 맞추려면 아카시아 나뭇길을 지나 빌라단지에 진입할때 시간이
얼추 7시 45분은 되어야 한다.
.... 어떻게 그녀를 이야기 해야할지 모르겠다.
언제부터인가 그 빌라단지에서 나오는 그녀와 자꾸 마주치게 되었다. 직장인인듯한 그녀는
내가 등교하는 그 시간 언제나 같은 표정으로 서둘러 집을 나서고 있었다.
중학교 2학년. 그건 호기심이었을까. 아무리 무신경하려 해도. 아무리 신경쓰지 않으려고
해도 어쩔수 없이 흘끗거리며 그녀를 바라보며 스쳐지나가길 반복했다.
.... 그녀는 성인이 된 지금까지 내가 본 여자중에 가장 못생긴 여자였다.
뒷따라 오던 친구들이 내 어깨를 붙잡고 키득거렸다. 봤어? 봤어?
침팬지 같아 그치? 아냐아냐 고릴라 같아...
무엇이 그리 재밌는지 그녀가 지나쳐간 등교길은 숨죽인 웃음바다였다.
시간이 지나면 좀 덜 우스울만도 할텐데. 우신 중학교 3학년 형들, 1학년 동생들. 2학년 친구들
모두 지치지도 않고 키득댔다. 그만큼 그녀의 외모는 확실히 남다른데가 있었다.
중학생들 대부분 웃음이 많다. 사소한것도 우습다. 선생님이 판서하시다가 분필을 부러뜨려도
배를 잡고 웃는다. 그게 중학교 2학년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많은 중학교 2학년중에. 잘 웃지 않는 특이한 중학교 2학년 학생이었다.
나는 우리 웃음소리가 그녀를 슬프게 할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웃지 않은건 그녀의 외모가 기이하게 느껴질뿐 우습지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어느때와 마찬가지로 살짝 젖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그녀는 내 옆을
지나고 있었다. 그날도 나는 흘끗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고. 또 어느때처럼 눈이 마주치는일은
없었다. 지나치고 나서 바로 내뒤로 따라 달려온 친구는 참았던 웃음을 푸학 터트리며
내게 물었다. 그 여자가 듣지 않길 바라는 최소한의 예의였던걸까? 그 목소리가 나즈막했다.
'수형아 저 여자 별명이 뭔줄 알어?'
'... 글쎄.. .?'
'푸하하하하...'
친구는 나즈막한 질문과는 다른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그것이 불편하여 나는 뒤돌아
저만치 가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무슨 이야기인데 말도 못하고 저리 웃어대는걸까.
'.... 오... 온수트랄로피테쿠스야!.. 아하하하..'
온수동.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지금 생각해도 중학생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하기엔 꽤 재치있는
별명이었다. 순간 나도 푸학..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왜 그렇게 그 별명이 웃겼던걸까. 그 재치에 거의 이성을 잃고 웃어댔다....
그래. 맹세코 맹세코.. 나는 그녀의 외모가 우스운게 아니라. 별명의 기발함에 웃은것이었다.
그리고 그 웃음이 가시기전에 아무 의미없이 뒤돌아 봤을때...
아아... 그녀는 우리를 돌아보고 있었다. 꽤 거리가 되었을텐데도. 서른이 지난 지금 난 아직
그녀의 눈빛을 기억하고 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텅빈 표정. 그 눈빛.
착각일까. 그녀가 다시 돌아설때. 설핏 젖은 삼푸향 미소가 떠오르는것 같았다. 그게 그 어린 내 마음을
갈갈히 찢어놓았다......
음악을 들으며 이 책을 읽었다.
MP3P 에서 즐거운 음악. 발랄한 음악이 나오면 나는 서둘러 다음곡으로 넘겼다.
밝은 음악을 들으며 이 책을 읽는게 죄악처럼 느껴졌다.
그래. 난 이런 사랑 못해. 납득도 안돼. 스스로 너무 못생겼다고 우는 여자친구에게
그렇지만 널 사랑해라고 말하는 상황 자체가 이해가 안가.
나는 아름다운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어. 속물같아도 어쩔수가 없는걸.
내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어야 하니까.
나는 끊임없이 되뇌이며 스스로를 변호했다.
아름답지 못한 여성의 외모는 이 사회에서는 장애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진짜 지체부자유자들은 장애인으로서의 권리를 정당하게 요구하고. 주위 사람들은
그 장애인에게 괜시리 미안한 마음. 또 도와줘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추한 외모의 여자들은. 장애라 불리는 그 외모로 모멸과 멸시를 당연한듯 받아들어야 하며
정상인(?)들은 그녀들에 대한 차별과 학대를 죄책감없이 저지른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을 것 같다는 패배감은 어떻게 수습하며 살아가야 할까.
노래방에서 슬픈 발라드조차 부르는게 허락되지 않는 그들은 앗싸를 외치며 분위기를
띄워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회의 야만성에 나는. 중학교 2학년때처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동참하고 있는 것일까.
웃지마. 웃으면 더 이상해... 라는 농담과 핀잔이 반쯤 섞인 말 한마디에 그후 평생
웃을 수 없었다는 그녀의 편지에 오래전 그 샴푸향 미소가 떠오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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