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여름 어느 날, 한 아파트의 수풀 길은 조금 전까지 비가 왔기 때문인지 시원함이라는 단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상쾌함을 주고 있었다.
평화로운 날씨와 상황을 만끽하며 목적지를 향해 그 길을 걷던 나는, 양옆에서 울어대는 매미 집단의 방해 공작을 뚫어내고 불현듯 내 귀를 유혹하는 어떤 소리들에 귀가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기대를 잔뜩 모아가며 그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내가 목격한 것은 바로, '야구를 즐기고 있는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 소리'였다.
그들을 처음 본 순간, 나는.. 기뻤다. 자연스럽게 생긴 미소와 함께 그저 기뻤다. 이 말 말고는 어떤 말로도 표현이 안 된다. 이런 장면을 최근에 와서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반복되는 일상에 딱히 재미도 없었던 참이었는데, 마치 나의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듯한 녀석들이 너무나도 예쁘게 보였다. 그래서일까? 가던 길까지 멈추고 한동안 벤치에 앉아 녀석들의 야구를 관람하는 데에 기꺼이 나의 소중한 시간들을 투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재밌었고, 중간 중간 나에게 질문을 던져가며 판정을 부탁하는 상황도 종종 있어서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의 일원이 된 것 같아 무척이나 행복했다.
상황은 이랬다. 남자 아이 4명에 여자 아이 1명이 말 그대로 초미니 야구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배드민턴장에서 두 팀으로 나눠서 말이다.. 그들에 대해 간략한 소개와 함께 상황을 설명하자면,
-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상대 팀의 스트라이크는 모조리 볼이라고 태연하게 우기는 우리의 큰누님!(초등학교 4,5학년으로 추정) 그런데 이 소녀가 야구 배트의 주인이라는 사실은 그저 놀라웠고, 투수를 맡으면서 홍드로/유리 저리가라는 투구폼으로 스트라이크를 팍팍 꽂아 넣던 모습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 같은 팀에는 그녀의 친동생으로 보이는 개구쟁이(초등학교 3학년, *남자 아이들은 모두 동갑으로 추정)가 누나와 한 팀을 이루고 있었는데, 볼넷을 워낙 좋아해 방망이를 단 한 번도 휘두르지 않는 모습이 너무 웃겼다. 삼진 반.. 볼넷 반.. (출루율, 원츄!)
- 여기에 '안경 + 왼손잡이' 녀석이 뒤늦게 합류했는데 은근히 뛰어난 야구센스를 가지고 있어서 얘는 정말 선수를 권해보고 싶다는 충동까지 받았다. 무슨 아파트 한 구석에서 야구하는 녀석이 번트 타구 처리를 저렇게 부드럽게 한단 말인가! 왼손으로 번트 타구 잡아서 턴(turn)한 뒤에 1루로 송구하는 동작이 참.. 아름다웠다.
- 한편 상대 팀은 상황상 두 명뿐이었는데, 보크, 밀어내기, 만루 시 병살 유도 방법 등 해박한 지식으로 무장한 '딱 봐도 스포츠 소년'인 아이가 리더를 맡고 있었다. 당연히 투수는 이 아이의 몫이었고, 스트라이크도 제법 잘 던지던데, 위에서 언급한 큰누님께서 전부 볼이라 하시니 억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아.. 너도 어쩔 수 없는 남자구나.. (응?)'라는 생각과 함께 눈물이.. 아; 이건 아닌가;
- 딴 얘기로 빠지는 것 같은데, 다시 다시! 이 녀석의 파트너는 경기 내내 해맑게 웃고 있던 왼손잡이 포수였다. 명색이 포수인데 공을 한 번도 못 잡아서 너무 웃겼지만 불평 한 마디 안 하고 빠진 공을 계속해서 주으러 다녀오는 모습에 나름의 감동을 받았다. 엇, 그런데 큰누님의 지나친 볼 판정에 던질 힘이 빠져버린건지 '스포츠 소년'이 자신과 포지션을 바꾸자고 제안하는 게 아닌가.. 그.. 그러나 어찌된 게 던지자마자 공이 안드로메다로 향해 날아 가는지, 난 정말 뒤집어 질 뻔했다. 역시 바로 교체. 스포츠 소년 왈 '야~ 너 던지기 연습 좀 하라니깐..' (내가 볼 때는 받는 연습도 동시에 좀..) 아무튼 이 아이는 웃는 모습이 그 자체로도 나를 따라 웃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참 호감가는 녀석이었다.
내가 보기 시작한 뒤로도 이 아이들은 약 한 시간 좀 못 되는 시간동안 티격태격해가면서 야구를 즐겼는데, 누구 하나 욕을 내뱉지 않았고(나는 참 욕이 많은 아이였는데..), 때묻지 않은 그들만의 순수함으로 노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그 중에서 가장 놀랐던 부분은 큰누님이 무한 볼 판정을 해도 잠시 억울해할 뿐, 계속해서 스트라이크를 꽂으려 노력하는 '스포츠 소년의 행동'이었다. 그리고 끝내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정도의 스트라이크를 던져 삼진을 잡아 내고는 뛸듯이 기뻐하는 모습이란.. 아, 정말 잊을 수가 없다.
비록 목적지를 잠시 제쳐두고서 엄한 곳에 앉아 시간을 낭비한 본인이지만, 결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추억 들춰내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내게는 녀석들의 행동들이 많은 것을 떠오르게, 또 느끼게 해주었으며, 살아감에 있어 (당장은 말할 수 없겠지만) 뭔가를 생각할 수 있는 동기 역시 부여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순간들이 너무나 소중했고, 행복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내 방 한 구석에는 오래 전부터 자기 역할이 장식품인 줄로 착각하고 있는 주인 잘못 만난 리틀 야구용 글러브가 하나 있다.
조만간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해서, 꼭 그 날이 되면 난 이 글러브를 선물해주려한다.
값으로 환산할 순 없겠지만 나름의 관전 댓가를 부디 받아주기를.. 그리고 더욱 멋진 아이들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글과는 별개로 소식 하나! 오는 일요일(29일)에 잠실에서 펼쳐지는 '삼성 vs LG'의 경기는 '레이디데이'로 정가은(+_+)씨의 시구가 있습니다.(새벽에 라디오 듣고 알았네요~) 그리고 이대형/조인성 선수의 팬사인회도 열린다고 하니 엘지 여성팬분들이 많이 관전하셨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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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띄워쓰기, 맞춤법과 조사의 사용이 살짝 어색한데, 몇가지만 고쳐주시면 더 좋겠네요.
기교가 많이 들어간 글이라서 더 눈에 띄는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태연스럽게 -> 태연하게.
대충 그 상황을 -> 상황은.
리더를 맞고 -> 리더를 맡고.
본문 관련해서... 어릴 때,(9~10살 때였지 싶습니다.) 롯데 2군 출신 동네 아저씨가 가끔 놀고 있으면 공을 던져주면서 쳐 보라고 했었는데;;
(그걸 어떻게 치라고..;;;)
한 번 YMCA운동장에서 그 볼을 쳐서 건물 뒤로 넘겨버린 적이 있습니다 -_-;;
그 후로 그 어린이는 훌륭한 축구선수가 될 뻔하다가 지금은 훌륭한 술쟁이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