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랑....현실이랑... 구분못해? 폼은 카메라 앞에서 잡는거야..."
-영화중 강패(소지섭)의 대사.
2008년 추석, 추석 대목 치고는 참으로 멋쩍은 영화가 개봉했다. 그게 바로 '영화는 영화다'라는 영화였다. 장훈 감독의 본격 데뷔작이기도 한 이 영화는, 추석에 개봉한 것 치고는 조금 색이 짙고 잔인한 영화였다. 더군다나 아무리 '김기덕사단'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첫 데뷔작인 영화를 분위기에 안맞는 시기에 개봉일을 잡은 것을 보니, '감독이 영화를 버렸나..'하는 생각에 영화를 보기를 좀 꺼려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감독은 고작 두개의 작품으로 내 머릿속에 영원히 이름을 남기고야 말았다. 최근에 성황리에 흥행을 한 '의형제'라는 영화도 이 감독의 영화이니 말이다.
내용을 간단히 서술하면, 이 영화는 두 남자의 끝없는 평행선을 그린 영화다. 서로의 삶에 대한 동경. 사사건건이 부딫히는 그들의 가치관은 관객을 계속 아슬아슬한 기분으로 남게 한다. '건달'로 나오는 강패와 주먹 잘 쓰는 양아치 배우 장수타. 굉장히 스릴있는 작품속에서 나오는 캐릭터들의 이름은 정말 명확하게 그들을 드러내준다. 피식 웃음이 나올 이름이기는 하나, 이 이름들 만큼 그들을 잘 나타내 주는 이름이 있을까? 어쨌든, 영화는 건달이 배우대신 영화를 찍게 되고, 양아치 배우가 건달과 영화를 찍으며 일어나는 다양한 에피소드를 그리는 영화이다. 결론만 말하자면, 결국 건달은 건달임이, 배우는 배우임이 드러나는 영화이긴 하지만, 그래서 더 좋은게 아닐까 싶다.
주먹 잘 쓰기로 소문나 액션을 찍을 상대 배우가 없는 장수타. 극중에서 그의 캐릭터는 참 재밌다. '건달'스럽지만 사실은 일반인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것에 대한 동경과 경멸을 함께 지닌다. 이는 극 초반 그의 대사에서 아주 잘 드러나는데, 첫 강패와 만남에서 들었던 말을 집에서 혼자 되뇌이며 그 느낌을 살려보려 하는가 하면, 직접적으로 강패에게 "쓰레기같은 새끼.. 짧은 인생 왜 그따위로 살아?" 라며 비아냥 거리기도 한다. 조금 간이 배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지극히 보통사람 스럽지 않은가? 우리는 깡패, 건달에 대해 한편으로는 남성적이고 소위 간지난다는 부러움을 가지면서도, 동시에 사회 쓰레기이자 암적존재라며 경멸을 지닌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삶을 정말로 원하지 않는다. 그러한 남성다움을 갖기 위해서 짊어져야 할 많은 것들을 어렴풋이나마 알기 때문이다.
장훈 감독의 캐릭터들은 전부 그렇다. 단편적이지 않고, 극단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캐릭터성을 잃지 않는다. 또한 그는 극속에서 쓰는 도구들을 매우 명백하게 보여주기를 좋아한다. 마지막에 강태가 박사장을 죽이는데 쓰는 부처상도 그렇고, 수면제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강태의 모습도 그렇다. 심지어 장수타가 앉아있는 장면의 배경에는 같은 자세로 대비되는 분위기의 포스터가 크게 붙어있기도 하다. 영화속에서 우리는 머리아프게 힌트를 찾을 필요가 없이, 그저 가볍게 보다보면 모든 것이 보인다. 데뷔작 치고는 너무나 깔끔한 영화의 진행이 놀라웠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도리어 그의 영화는 명확하지 않다. 우리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 영화가 대체 무얼말하는지 잘 알 수 없었으니까.
어쨌든, 또 한명의 주인공인 강태는, 단역배우로서 일한적이 있는 '큰형님'이다. 그는 굉장히 잔인한, 그야말로 건달의 표본이다. 그러나 극중에서 그가 영화를 촬영함으로서, 그는 점점 건달로서의 삶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극 초반에 사람하나를 죽이는데에 전혀 망설임이 없던 그가, 중후반에 가서는 죽여야 할 사람을 살려주고, 그때문에 많은 것을 잃게되는 것이다. 배우로서의 삶. 강패는 장수타의 삶을 동경함과 동시에, 그의 어설픔에 대해 비꼰다. "흉내내는건 당신 전문이잖아..."
둘의 인생은 참 쓰라리다. 둘 다 믿는 도끼에 발등찍히고, 둘 다 험한 길위를 걷는다. 둘 다 자기가 낳은 폭력의 알때문에 고생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장수타는 그러한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한편, 강패는 그렇지 못했다. 영화가 영화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장수타와 강패는 빛과 어둠으로 대비된다. 극중 초반 그들의 옷은 화이트와 블랙의 대조로 명백히 대조되있으나, 서로 극중에서 여러가지 일을 겪고, 그 와중에도 촬영을 지속하며 조금씩 조금씩 옅어진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화이트였던 장수타는 점점 여러 색을 가지는 반면에, 강패는 검은 색을 벗지 못한다.
-둘의 삶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극 중반에 와서도 그들의 삶의 본질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라스트 씬을 촬영하기 전에, 강패는 장수타에게 한판 붙자며 시비를 건다. 그러나, 장수타는 '양아치'였었으나 '깡패'는 아니었다. 그는 여기가 아니라며 자리를 피한다. 그러한 장수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강패의 눈빛은 참으로 묘한것이다. 결국 그들의 싸움은 최후의 결투를 통해 보여주는데, 그렇게 극명하게 대비되면서도 서로를 동경하던 둘의 인생과 가치관이 폭발해버리는 것이다. 진흙으로 뒤덮인 그들은 '그놈이 그놈이네'라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니까. 진흙으로 뒤덮인 그들은 마치, 그들의 삶을 온 몸으로 표현하는 듯 하다. 누가 누군지도 모를 모습이 되버린 둘의 모습은, 영화속에서 그들은 빛과 어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임을 잘 보여주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개싸움과 같은 싸움에서, 결국 장수타는 극 내내 '진짜'에게 지기만 하다가, 마지막에 승리한다. 그리고, 영화가 정말 잘 끝난 후, 장수타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마치 '동료배우'마냥 친하게 대한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누가 누군지 알 수 없는 진흙탕 싸움. 그들의 삶의 진짜 본질은, 어둠과 빛이 아닌 남다를 것 없는 진흙 투성이의 인간임에 있었다.
극의 마지막에 와서 그놈이 그놈같았다 할 지라도, 그들에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그들이 살아온 삶속에서 가진 갈등해결의 방식이다. 장수타는 극 내내 주어진 갈등들을 밝은 세계 안에서 해결해 나간다. 그는 이제 폭력을 쓰더라도 맞아주지 않는 상대 배우와 작품을 했고, 그가 몰래 사귀던 여자와는 공개적으로 데이트를 함으로서 갈등을 풀어나간다. 그의 뒤통수를 치려던 기획사 사장이자 친한 형도 잡혀들어가고, 작품도 무사히 끝낸다. 그는 더 이상 극 초반의 양아치 배우가 아닌, 진짜 배우가 된 것이다. 강패는 마지막에 그에게 말한다. "이제 좀 진짜 배우같네.." 그리고 강패는, 다시 밝은 세상의 영화에서 리얼한 어둠의 장막뒤에 펼쳐져 있는 그의 인생으로 돌아간다. 그는 마무리 짓지 못한 박사장과의 은원을, 아주 잔인하게 해결한다. 불상을 들고 한번, 두번, 세번, 네번. 그를 뒤따라온 장수타는 '진짜배기' 건달의 삶을 보며 눈을 돌려버리고 만다. 강패는 그저 '영화 한편 찍으러 간다. 니가 카메라고.'라고 말하고는 정말로 그의 앞에서, 그리고 번화가 한복판에서 박사장의 머리를 깨부숴버린 것이다. 그리고 경찰차에 붙잡히면서도 박사장의 피로 얼룩진 머리로 차창을 깨면서 장수타를 향해 씨익 웃는다. 이게 진짜 건달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이.
"영화랑 현실이랑...구분 못해?"
-아연실색하는 '배우' 장수타와, 그저 씨익 웃는 '건달'강패. 창문을 깬다 한들, 그 둘의 세계는 평행선으로 이뤄져 있었다.
감독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영화는 영화다와 의형제를 보면서 느꼈던 것이지만, 장훈감독은 영화속에서 어떤 커다란 무엇인가를 전달하려는 스타일의 감독은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의 극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언제나 '인간'답다. 강패와 장수타가 번져내는 회색빛 영화는 굉장히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인간이란 저런거야- 하는 외침을 듣는 기분. 그러나, 그가 극중에서 강패가 빛의 세계로 나오지 않고 결국 어둠의 세계, 블랙톤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 이유가 뭘까 하고 생각해본다면, 아마도 삶에 대한 책임. 스스로가 가는 길의 '진짜배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도망칠 수 없는 삶의 이야기 말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 삶의 주인공이다. 장수타는 말한다. "거 짧은 인생 왜 그러고 사나?". 영화는 영화다라는 영화는 다시 엔딩롤에서 극장의 스크린을 비추어주며 이것이 또 다시 영화임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안타깝게도 스크린 속 각본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가 맞이하는 길들이 수없이 많고, 때로는 의지대로 살 수 없는경우도 있다. 우리는 우리가 주인공인 삶의 방향을 쉬이 바꿀 수 없다. 만일 우리의 삶의 색깔이 명백하게 검은 색으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아마 더 이상 삶을 바꿀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주인공인 영화의 장르가 결정되는 것이다. 화이트의 삶은 바뀌기 쉽다. 어떤 색이든 잘 입는다. 그러나, 검은색은 백색을 제외한 모든 색을 잡아먹어버리는 것이다. 강패가 마지막에 결국 벗어나지 못한 그의 삶의 굴레를 통해, 감독은 우리에게 외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당신이 주인공인 당신의 짧은 영화를, 왜 그러고 사냐고. 그리고 보여준 것이다. 양아치에서 이제 좀 진짜배기 배우가 된 것 같다는 장수타의 모습을 통해, 당신이 주인공인 영화는 언제든 바뀔 수 있음을.
영화는 영화다를 두번 보면서, 참 데뷔작 답지 않다 싶었다. 특히 마지막에 엔딩롤이 올라가는게 영화의 스크린안에서 올라가면서, 영화 속 영화속 영화라는 3단구조의 형식에 감탄하게 되었다. 그렇다. 우리가 본 영화는 영화다. 장수타와 강패의 삶은 허구적이고, 영화다. 그러나, 그러한 삶은 우리가 주인공인 영화속에선 리얼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선택이 삶을 옭아맬 것임을 항상 각오해야 하며, 우리의 길이 점점 바꾸기 힘들어 짐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주인공인 우리의 삶을 찍어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아마도 그건 우리가 앞으로 고민해야 할 몫일 것이다. 혹시 이 리뷰만 보고 내용 대충알았으니 영화 안봐도 되겠지 하는 사람들은 한 번쯤 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영상미 자체와 소지섭의 소간지가 엄청난 영화니까.
그렇다고 집에서 따라하면 안됩니다.
Please, Don't try this at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