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이틀 좀 신경 쓴 일이 있어서인지 나름 그렇게 판단을 했나보다.
결혼 해 10년 동안 체해서 고생하는 것 외에는 딱히 아프다고 한 적도, 더군다나 아프니까 병원가자 얘기한 적도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웬만한건 티 안내고 그냥 참아 넘기는 사람이 아프긴 많이 아픈가 보다 했지만,
못걷는 정도도 아니고 해서 심각하게 생각 안하고 바로 옆 건물 내과를 찾았다.
등등 상태를 묻고 듣고는 배사진을 찍고 간단히 소변검사를 해 보더니,
배에 가스가 좀 있는 거 말고는 별 다른게 없다,
항생제 처방 해줄테니 그러고도 계속 아프면 내일 다시 오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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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디 흔하지만 그렇게 흔해 빠져도 나하고는 상관없다 쉽게 생각하는게 바로 맹장염이란 놈이다.
더군다나 의사의 소견을 너무 철썩같이 믿었고,
하루 지난 저녁 즈음 처형이랑 힘겹게 통화하는 걸 들어보니 산부인과 쪽 얘기도 하길래 월요일에 그럼 그쪽 병원으로 가 볼까 하며 하루를 또 보냈다.
의사가 별 얘기 안 했는데 큰일이야 있겠나, 하루 더 지나면 좀 괜찮아 지지 않을까 하며 말이다.
이틀을 물 말고는 아무 것도 못 먹고 끙끙거리며 널부러져 있는 사람을 아침 저녁으로 보며 그냥 안스러워 하고만 있었던 거다.
일요일 저녁.
퇴근해 들어온 나를 소파에 누워 맞이한 아내가 겨우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가더니, 침대에 걸터 앉아 한없이 서러운 울음을 쏟아낸다.
"병원 가자 안되겠다."
그때까지도 맹장 쪽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최소한 기운이라도 차려야지, 영양제라도 맞고 와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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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종합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의사의 진찰을 받고
피를 뽑고
x-ray 촬영을 하고
ct 촬영을 하고
기다리고.
그러고 있자니 환갑쯤 돼보일까 하는 남자 하나가 와이프에 장성한 아들 딸 모두를 대동하고 와 있다.
멀쩡하게 앉아있는가 싶더니 피 뽑는 순간부터 아이고~~ 아이고~~ 연신 곡소리를 읊는다.
옆에 있는 와이프와 딸 아들 모두 보는 사람 민망한지 서로 쳐다보며 끅끅 웃음 참느라고 난리다.
아이고~~ 아이고야~~ 아이고오오오~~~~
도대체 어디가 아픈건지 곡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목청은 또 얼마나 큰지 병원이 다 떠나간다.
응급실 복도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가 촛점 없는 눈을 하고 있다.
"좀 괜찮니?"
"저 XX가 하도 소릴 질러서 난 아픈지도 모르겠어"
"ㅡㅡ;"
욕쟁이 어머니 10년 수제자인지라 평소 말이 곱디 고운 사람은 아니지만 괜한 사람한테 이러지는 않는데..
아파서 신경이 곤두서서인지 거친 소릴 참 암팡지게 뱉어낸다.
"괜찮을 거야.."
그렇게 응급실에 도착한지 2시간 쯤 지났을까.
의사 두명이 다가오더니 댁이 어디시냐를 먼저 묻는다.
맹장염인 듯 하단다.
아내가 옆에서 '어허허..' 하고 어이없는 웃음을 흘린다.
ct 상태가 알아보기 힘든 걸 보니 터졌을 수도 있단다.
환자 본인한테는 응급한 수술이지만 병원 전체로 봐서는 더더욱 응급한 수술이 많기 때문에 언제 수술을 받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다면서, 다른 근처병원을 추천한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인지라 그 병원으로 가겠다 이내 결정을 내리니 연락을 취해 모든 세팅을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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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도착한 시간이 밤 12시가 채 안된 시간이었을까.
다행히 바로 직전 맹장염 수술을 끝낸 의사가 있어 더 기다리지 않고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래 저래 금식 시간도 맞아 떨어져 곧 수술을 받을 수 있단다.
새로이 찍은 배사진을 보더니 대장까지도 염증이 퍼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한다.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가는 아내가 내 손을 가볍게 잡으며 엷은 미소를 지어준다.
그래. 걱정 안 할게.
잘 하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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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에 들어간지 얼마가 됐을까, 보호자를 찾는다.
개복된 상태를 보여주며 상황을 설명한다.
대장까지 염증이 퍼져있는 상태지만, 일단 맹장 쪽만 처리를 하고 경과를 보는게 맞단다.
어떻게 이렇게 될때까지 있으셨냔다.
후우.........
그러게나 말입니다........................
.................................................
수술하러 들어간지 한시간 반 정도가 지났을까.
수술실에서 나온 침대가 병실을 향하고,
눈 뜨고 계속 호흡하라는 간호사의 다그침에 비몽사몽한 아내가 애써 눈을 뜨고 힘겹게 호흡을 들이고 낸다.
처남이 온 것을 아내에게 알려주니, 겨우 뜬 눈으로 동생을 알아보고는 울먹거리다 참는 시늉을 한다.
하필이면..
친정 부모님이 여행을 떠난 상태다.
엄마가 많이 보고 싶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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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내과 그 돌팔이 XXX"
하루가 지나고 이제 좀 정신이 드는지 동네 의사에게 살짝 살벌한 욕을 퍼부어댄다.
"그래 그 XX의XX."
제대로 살벌하게 맞장구를 쳐준다.
워낙 염증이 심하기도 하고,
수술하기 전부터 거의 못먹은게 사흘, 수술 끝나고 금식한게 이틀이다보니 몸상태가 최악이란다.
기본적으로 들어가는 수액 항생제 진통제에 빈혈치료 염증치료까지 몇일을 들어가다 보니 한쪽 팔이 부어 다른 쪽 팔로 들여 보내고, 거기가 또 부어 또 다시 바늘 위치를 바꾸고 또 바꾸고,
양쪽 팔이 퉁퉁 부어 퇴원할 즈음에는 혈관으로 들어가는 모든 약이 고통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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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열흘하고도 이틀을 병원에서 보내고,
그러고도 몸이 잘 회복되지를 않아 집에서도 일주일 정도 다소 고생을 하고,
이제 웬만큼 기운을 차리고 있는 요즈음이다.
돌아보면
둘 다 어찌 그리 똑같이 무식하게 병을 고스란히 키워 냈는지
뭐에 홀린 것도 아니고 씌인 것도 아니고.
나란 놈은 도대체 뭐 하는 놈인지 한심스럽고 화 나고..
병신스럽게 느껴지는게 한이 없고 또 없다.
나는 나대로 그렇고, 아내도 아내대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겠지.
잊고 싶은건 빨리 지워 내고,
앞으로 같은 실수 안 하며 더 잘 살아갈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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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아.. 오빠아아.."
아내가 퇴원하고 일주일이나 지났을까 하는 아침, 6시가 채 안된 시간에 조심스레 나를 깨운다.
"애가 배가 아프다고 막 우는데.. 아프다고 설명하는게 나랑 너무 비슷해..!"
"아.. 그래.."
옷을 차려입고 나온 큰 애 자태(?)가 썩 심각해 보이지는 않다.
"좀 어떠니?"
슬쩍 미심쩍은 투로 아이에게 상태를 물었다.
".. 그냥.. 계속 좀 아픈 것 같아요.. 훌쩍."
"나도 처음엔 윗배가 아팠단 말이야.. 얘도 그렇대.."
아내도 좀 미심쩍어 하는게 없지 않아 있는 듯 한데 의지를 굽히지 않으려 한마디 더 보탠다.
이제 자기든 아이든 아픈거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않기로 단단히 결심을 했나보다.
아니 결심이라기 보다 자동적으로 그렇겠지. 그렇게 크게 디었으니까.
그래. 그때처럼 어설프게 판단하고 버틸거 없지. 애가 아프다고 울기까지 하는데 바로 병원 가야지.
"저녁 먹고 너무 소화를 안 시키고 바로 자서 배 속에 가스가 찼어요.."
"와이프도 별거 아닌줄 알고 있다가 복막염이 돼서.. 혹시나 해서요. 그때도 의사가 처음엔 가스 얘기를 하더라고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럴 줄은 알았습니다 선생님.
애가 차 탈때부터 은근 신나 보였거든요.
좀 덜 민망할까 싶어 주절거려 봤습니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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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뚜껑 보고 놀라버린게 대수랴.
자라인지 솥뚜껑인지 잘 못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고 있는 거고
자라였는데 솥뚜껑으로 봐버린 이전 경우보다 비교도 안되게 낫지 않은가.
솥뚜껑 보고 조심하는게 나쁜건 아니니까.
근데 여보.
속이 좀 쓰리더라고.
응급사유가 아닌 일로 응급실에 들러 보험적용이 안됐다고 그랬던 건.
절.대. 아니야.
쿨럭.
제 동생이 7살 때 볼거리가 와서 학교 안가고 있다가 나을려는 찰나에 홍역이 와서 고열로 병원을 왔다갔다 하는 중에
소화가 안되고 배가 아프다고....병원가니 소화제만 주더라구요. 애가 밤에 잠을 못자고 새벽에 아버지차로 달려서 간
종합병원에서 맹장이 터져서 복막염...수술은 해야되는데 열은 고열인 홍역 중...
얼음 배드에 깔아놓고 아이를 거기에 던져놓더군요. 아이는 자기가 왜 이런 일을 당하는지도 모르고..엄마 아프다고 안
할께..여기서 꺼내줘....엄마, 아빠, 저는 울면서 조금만 견디라고..
수술실에 들어가는거 보고 그 복도에서 기다리는데..의사가 주머니에서 양주병을 꺼내더니 벌컥벌컥 마시고는 입을 훔치더니
우리동생 수술실로 들어가는 걸 목격했지요. 그러고 3시간이 지나도 안나오던 동생...
다행이 수술이 끝나고 중환자실로 갔다가 병실로 옮기고 난후 첫 주치의 회진때 주치의 왈...이제 비키니는 다입었네...
목숨 맡긴 의사라 울 아부지 멱살잡이도 한 번 못해보시고 엄마랑 저는 돌아서는 등에다 눈 한번 흘려주는게 다였던게
한이 되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일이네요.
물론 지금은 건강하게 자라서 미래 음악도들을 호령(-_-)하는 학원원장님으로 잘 살고 있지만...맹장..복막염 하면 그 때 그일이
어제일처럼 떠오르네요.
그리고 저도 저희 아이가 배가 좀 아프다 그러면 일단 들쳐 업고 뛰었는데..그게 자라보고 놀란 가슴..솥뚜껑...맞나보네요^^''
항상 그러려니님 글 너무 잘 보고 있습니다. 리플 다는건 처음인 것 같네요; (만렙으로 몇 년 지냈어서..)
저도 국민학교 6학년 때 그랬습니다.
낮 부터 배가 살살 아파오셨는데 어렸을 때 워낙에 좀 허약했던지라 그러려니 하고 약 먹고 있었는데
저녁에 배가 너무 아파와서 '엄마 나 배아파요' 라고 한 마디를 했더랍니다.
병약쟁이 아들네미에 익숙하시던 어머님 왈, '약먹고 자라.'
그리고 저는 '네.'
낑낑대는 소리 안새어 나가려 애쓰며 밤을 지새고
아침에 엄마 손 꼭 붙잡고 병원에 가보니 종합병원에 가보랍니다.
네네 복막염. 그 어린애 입에서 허허허라는 웃음이 나오더라구요.
의사 선생님이 정색을 하시며 '너 안아팠니?' 라시는 걸 어처구니 없이 쳐다보시던 어머니 표정이 아직도 안 잊혀지네요.
수술 네시간 하고 2주 입원하고 퇴원해서도 한참을 고생했습니다.
그 이후로 저희 어머니께서도 솥뚜껑의 악령에 한참을 시달리셨죠 하하. 그쵸. 솥뚜껑이 나은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