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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11 12:55
대신 중국은 춘추전국시대가 길었지요.
그리고 중국의 위촉오는 국력차이가 너무 심했기에 압도적으로 강했던 위가 촉과 오를 먹는 것은 시간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한반도의 삼국은 다르지요. 고구려와 백제의 힘이 팽팽했으니까요. 단순히 영토 크기만 보고 교과서만 보고 '고구려가 압도적으로 강했구나'하는 착각을 할 수도 있지만, 실제 백제의 힘은 대단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한반도 전체에서 나오는 쌀과 전라도 한 지역에서 나오는 쌀의 양이 비슷하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신라도 호락호락한 국가가 아니었으며, 산맥의 힘도 있으니..
10/02/11 12:55
실제로 세력간의 균형도 있었거니와, 막강했던 고구려는 북방과 중원으로 부터의 다툼(?)이 남쪽보다 중요시되었을 것이고, 백제나 신라는 다른 두 국가를 완전히 무너뜨릴 정도의 국력을 갖추지는 못했겠지요. 통일조차도 당과의 연합으로 이루어낸것이니 말입니다.
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10/02/11 13:10
사실 알고보면 수백 년동안 하나의 왕실이었던 것 같은 삼국도 내부에서 계속 왕통의 단절과 교체가 이루어져왔다고 합니다. 왕통이 바뀌면 나라 이름도 바뀌고, 예전 왕통을 버리고 새 국가를 선포하는 중국과는 달리, 왕통이 바뀌어도 예전 왕통의 역사와 대수를 버리지 않고 그대로 물려받고, 나라 이름도 안 바꿨죠.
아니, 사실 나라 이름도 몇 번 바꿨습니다. 백제는 원래 십제였다가 백제로 바꿨고, 나중에는 남부여로 바꿨지요. 신라도 처음에는 서라벌, 사로였다가 계림국이었다가 신라로 나라 이름을 바꿨고요. 이런 거 다 중국 기준으로 따지면 몇 번씩 무수히 망하고 다시 세워진 셈인데, 삼국사기로 정리할 때는 기존 왕통의 대수를 버리지 않고 그대로 물려받았으니까 그냥 다 하나의 국가 역사로 취급한 거죠.
10/02/11 13:11
중국의 통일은 삼국시대가 끝나고 훨씬 뒤에 이뤄집니다. 대략 400년간의 위진남북조-오호십육국이란 막장기를 거쳐서 수당에 이르러야 중국대륙이 통일되고 안정됩니다.
이런 것도 연의의 영향력인 걸까요. 중국은 후삼국시대를 넘어 촉오가 망하면서 잠깐 통일이 되나 했지만 초원 유목민족 남하 등의 내외 사건이 겹쳐 결국 오랫동안 통일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또, 그 틈을 타서 고구려 및 한반도가 강성해진 것이기도 하죠. 다만, 대륙에서 통일전쟁이나 내전의 형태를 통해 천하를 하나로 해야 한다는 일관된 인식이 있었던건 춘추전국기 후 진-한에 걸친 제국경험 때문일 겁니다. 진시황이 중원(=천하)은 하나란 틀을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죠. 한반도 및 만주의 역사야 환빠들은 하나의 통일제국(더 맛간 환빠들은 만주를 넘고 유라시아대륙을 넘고 전세계를 지배했다고 합니다만)이 먼저 있었다고 이야기하지만 제가 보기엔 하나의 국가 하나의 역사란 인식이 생긴 건 통일신라-고려 부터입니다. 이게 우리들의 진-한 정도 되겠지요. 그러므로, -(잠깐이긴 하나) 중국은 삼국시대에 빠르게 통일을 하려했고 했는데 왜 우리는 분열을 종식하려는 내전이 빠르게 끝나지 않았냐-고 묻는 건 선후가 바뀐 물음이라 봅니다. 애초에 한제국-삼국시대 처럼 하나의 국가에서 분열된 적이 없으니까요. 정복전쟁과 통일내전은 다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통일신라 성립 후엔 통일신라가 망하고 난세를 걸쳐 고려로 넘어가는 기간은 꽤 빠르죠.
10/02/11 13:14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병진 손제리가 뒷치기만 하지 않았어도 중국의 삼국시대는 꽤 오랫동안 유지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에 비해 나제연합은 상당히 끈질기게 남아 있었죠....
10/02/11 13:34
삼국시대가 수세기 동안 있었던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우선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국가의 성립 이후 상당 시간은 각 지역을 통합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또한 삼국이 정립된 이후에도 신라 같은 경우에는 고구려의 반정도 복속된 시기가 있습니다. 거기에 삼국이란 이름을 무색케하는 가야국'들'이 6세기까지 존재했죠. 교과서에 나오는 교과서적인 삼국시대란 불과 100여년의 (가야멸망 562년부터 백제멸망660년, 혹은 고구려 멸망 668년) 기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삼국시대'란 말은 그냥 가르치고 배우기 쉽도록 역사학자들이 이름 붙힌 '편의'상의 시대라고 보시는 것이 낫습니다. 중국의 위오촉 삼국시대도 그냥 소설 이름이지, 중앙정부의 통제가 되지 않고 반독립상태의 지역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10/02/11 14:02
내일은// 삼국시대가 소설 이름은 아니지요. 삼국이라는 말이 진수의 삼국지에서 나온 것인데요.
물론 중앙정부의 통제가 되지 않는 지역이 있었지만, 당시의 중국이 어느 정도까지인가..로 보는 시각의 차이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삼국시대에 통제가 되지 않는 반독립 상태의 지역은 그들이 오랑캐라 부르던 지역들이었죠.
10/02/11 14:04
에초에 통일국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위에도 언급되어있지만, 흔히 말하는 삼국지의 시대인 위진남북조시대는 완전한 2차 분열기입니다. 그리고 진시황의 전국통일도 조금 웃긴것이 이전시기의 주나라의 영주국들이 분열하기 시작한것을 다시 함친것이지 최초의 통일은 아니지요. 암튼 진시황의 통일이후, 진시황 사후 바로 분열이 되죠. 항우 유방등등 지방군벌이 나서면서 다시 분열되었다가 유방이 통일하여 꽤 오래 유지하였습니다. (우리의 역사는 전한의 한무제때 고조선이 망했다고 되어있습죠) (리플수정 : 광무제인지 한무제인지 몰라서 걍 대강썼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후한이 분열되면서 발생한 시기가 삼국지의 배경이 됩니다만, 위,오,촉으로 삼국정립이 되는데 한 50년간 분쟁이 있었고, 이 삼국이 각각 망하는데 50년 정도 걸려서 결국 사마씨의 진국이 다시 통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진국역시 황제자리를 두고 서로 분열을 합니다.(3국을 망하게한 가씨.. 가규-가충-가황후) 이때 중원이 혼란해지자 한나라때부터 중원을 노려오던 북방민족들이 남하하여 남북조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북쪽은 북방민족의 국가, 남쪽의 남진.. 결국이러한 상황을 통일한것이 수나라입니다만, 수나라는 고구려침공으로 국력을 다 소모하고 망하고 이세민이 당나라를 세워 다시 통일국가를 이룬것이지요. 삼국지 시대만 놓고 본다면 100년정도 입니다만, 실제로 다시 통일되는데 까지 걸린 시간을 생각해보면 3세기 부터 당나라 형성까지의 시기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삼국이 형성되었다가 고구려의 패망으로 통일이 된 우리네 역사와 크게 차이나지 않습니다.
10/02/11 14:25
주나라는 봉건제후국 형태로 원래부터 자치국들의 연합형태였고 또 주왕을 받는 제후들의 영토를 다 합쳐도 범위 또한 북중국에 걸쳐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후대가 이야기하는 '중앙집권적 통일을 이룬 중원 제국=천하'이란 틀을 제공하진 못했다고 봅니다.
주나라는 이후의 중궈 역사론에서 하나의 이상적 정치 모델이였을 뿐이죠.
10/02/11 14:36
우리나라의 삼국시대 각국이 제대로 충돌하기 시작한 기간이 대략 4세기부터고, 마무리된 게 7세기. 대략 3~400년 정도지요.
중국사 분열기와 비교해 보면, 삼국지시기 100년, 대략 20~30년 사이의 서진, 이후 오호십륙국+남북조 하면 어림잡아 400년. 딱히 우리나라의 분열기가 특별히 길었던 건 아닙니다. 애시당초에 하나의 국가에서 갈라진 것도 아닌데 이정도 걸렸으면 평균수준의 기간이네요.
10/02/11 14:36
Siriuslee님// 고조선 멸망은 전한의 한무제 시기입니다. 대략 b.c 108년경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어찌보면 삼국시대라는 명칭 자체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의 한 획을 좋은 쪽과 나쁜 쪽에서 모두 그어버린 이 책 덕분에 우리는 지금도 우리나라 고대 왕국들을 고구려, 백제, 신라 위주로 배우고, 또한 알고 있는 것입니다. 삼국의 건국은 대략 최초로 세워진 신라가 b.c 57년, 마지막으로 세워진 백제가 b.c 18년 정도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물론 다들 아시는대로 고구려, 백제, 신라는 어느 나라가 그렇듯이 처음에는 작은 부족국가 규모로 시작했지요. 하지만 모든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듯이 역사에서 가장 승자의 반열에 속하는 이 세 나라만이 그 나라의 역사서를 자체 제작할 수 있었고, 후대 역사가들이 참고할 만한 기록들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김부식 역시 가장 신빙성이 있고 확실한 자료인 삼국에 대한 자료만으로 역사서를 저술하였고, 후대의 역사가들 역시 가장 기준이 되는 삼국사기에 목을 맬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발해사가 우리나라의 역사에 포함되어야만 한다는 입장이 반영되면서 이제 통일신라라는 말은 사라지고 남북국 시대라는 말이 쓰이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적어도 대가야가 병합된 신라 진흥왕 이전의 시대는 엄밀히 말하자면 삼국시대라고 볼 수 없습니다. 언젠가 역사학계에서 새로운 말을 만들어서 적용시키고, 이러한 움직임이 하루 빨리 뿌리내리기를 바랄 뿐입니다.
10/02/11 22:05
한반도는 외세가 깊게 개입되어 있어서 생각 보다 의외의 결과가 나타났던것 같습니다
흔히 의자왕 시절이 줄곧 백제가 신라보다 약했다고 착각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의자왕 초기만 해도 신라는 백제에게 벌벌 기었습니다 이후 김춘추가 신라를 당나라의 복색과 관직 체계등을 모두 받아 들이겠다고 선언하며 외세를 끌어 들였고 백제는 당나라의 압박에 신라정벌의 꿈을 접습니다 고구려도 여럿차례 백제와 신라를 정벌할 기회가 있었지만 국경을 접한 당나라의 존재 때문에 마무리를 짓는게 힘들었구요 결국 당나라를 끌어들인 신라의 공격으로 삼국은 유지 되었고 또 삼국시대가 끝나게 됩니다.
10/02/12 08:56
칠백 년에 가까운 삼국시대에서 '통일'을 지상목표로 한 전쟁은 최후에 나당연합군이 일으킨 전쟁이 사실상 유일합니다. 근초고왕이나 광개토대왕, 장수왕, 진흥왕, 모두 국력을 신장시키고 판도를 최대로 넓힌 군왕이었지만 이들 모두 '통일'을 하려고 하진 않았죠. 실제로 장수왕 때는 고구려의 국력이 강대했던데다 백제는 쑥대밭, 신라는 안습, 가야는 논외, 중국은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아수라장, 고구려가 마음 먹었으면 충분히 통일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냥 영토를 남쪽으로 상당히 넓히는 정도에서 끝났죠(이게 흔히 말하는 '남진정책'의 실체입니다). 실제로 백제는 국왕이 전사하고도 망하지 않았는데, 고구려가 그 이상 몰아치지 않았거든요. 이후의 나제동맹은 삼국지의 촉오동맹과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삼한에 세워진 국가들은 최소한의 정서적 동질감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이건 지식이 확실치 않아서 넘어가겠습니다). 창건 설화가 서로 연계되는(아마 지배층의 조상이 같을 것으로 생각되는) 고구려-백제는 또 나름 그런 연대감을 막연히나마 가지고 있었다고 쳐도, 이조차 없는 신라는 고구려를 (예를 들면)왜와 비슷한 위치에서 바라보았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당과 연합을 하면서 고구려를 통째로 포기하는 짓을 서슴없이... 아니, 아마 신라쪽은 고구려를 '포기'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을 게 분명합니다. 고구려사를 우리 역사의 일부로 인정하는 현대 한국인들이 바라볼 때야 당시 신라가 '고구려의 광활한 영토를 당에 팔아치운 쪼다'라며 옥할 수 있겠지만, 이들의 머릿속은 '당이 고구려 정복하는 걸 좀 도와주고, 대신 백제를 차지하는 데 도움을 받는다는 개념이 아니었을까요? 실제로 이들의 '통일'은 삼한통일이었지 '삼국'통일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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