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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2/02 08:17
어디선가 팔랑크스가 근접전에도 약해서 로마병사들이 근접전에서 글라디우스로 찌르면 속절없이 죽었다고 읽었는데, 이 말이 맞나요?
10/02/02 08:24
marchrabbit님// 그렇진 않습니다. 피드나 전투에선 위에 썼다시피 요철 때문에 팔랑크스들 사이에 생긴 틈을 로마 군대가 찌른 것입니다. 초근접하여 백병전을 일으켜서 로마 군단병이 자신의 전황으로 유리하게 이끌고 간거죠. 그런데 정면으로 달려들어서 무슨 만화나 영화처럼 창을 글라디우스로 휙휙 다 쳐내며 백병전을 유도한게 아니라 팔랑크스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틈을타 측면을 주로 친거죠. 글에도 썼지만 모든 부대는 측면과 후방이 약점이고 팔랑크스는 그 점이 더 심한 것 뿐이었습니다.
만약 넓다란 평지에서 제대로 회전으로 붙었다면 모르는 일이긴 했습니다. 필룸을 던져 혼란을 야기시키고 스큐툼과 글라디우스가 아무리 기동성을 확보해줬다고 해도 5-6m되는 창을 단체로 들고 병사 각각은 중장갑으로 떡칠한 채로 앞에서 버티는 호플리테스들한텐 제 아무리 로마 군단이라고 해도 힘을었을 거란 의견이 많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창을 들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적이 지나치게 근접할 경우 창을 버리고 칼을 들고 싸웁니다. 물론 바로 뒤에 병사가 그 포지션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버티는 겁니다. 그래도 팔랑크스의 미덕이야 미칠듯이 버텨서 아예 근접시키지 않는 것이긴 합니다만. 물론 이러한 상황으로 이끌고 간 로마는 미리 이겨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죠.
10/02/02 09:47
로마 토탈워에서 팔랑크스모드의 홉라이트와 로마군단병의 싸움을 확대해서 보던 기억이 나네요.
공격도 못하고 방어도 못하고 앞에서 우왕좌왕...^^: 하지만 아주 극 소수라도 우회해서 측면을 공격하면 갑자기 홉라이트의 진형이 붕괴되면서 학살이 시작되죠.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10/02/02 09:58
재미있는 글 감사합니다. 또 상식이 조금이나마 증가하는 걸 느끼겠네요. 투창 외의 원거리 무기가 거의 등장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이 시기까지는 아직 활이 전술적 무기로서의 가치를 갖기 전인 건가요? 물론 영화적 과장이겠지만, 글레디에이터 같은 영화의 초반 전투신에서는 불화살의 일제 사격 같은 장면도 나오다 보니 그런가 했습니다. 원거리 투사무기가 한정적이라면 요새나 도시에서의 농성전이 전개될 경우 공격 수단도 성벽에 근접한 적을 상대로만 상당히 제한될 것 같아 흔히 생각하던 과거의 전쟁신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 같아요.
10/02/02 10:10
amoelsol님// 아닙니다. 물론 궁병이나 투석기도 모두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궁사는 워낙에 익히기 어려운 기술이고 투석기 같은 경우엔 제작이 어려운지라 많이 사용이 되지 않았을 뿐이지요.
그에 비하면 일반적인 투창 기술은 굉장히 빨리 배울 수 있는 것이라 더 많이 운용된 것 뿐이지요. 그리고 서양의 활 제작 기술은 아직 조악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다지 멀리나가지 못했기도 했구요. 일반적인 발리스타나 투석기도 공성용 무기로는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병이 대세가 된 제정 말기 부턴 궁병이 조금씩 많아지기기 시작합니다. 기병 상대로 가장 효과적인 전술은 창으로 돌격 저지 + 활로 화망 형성 or 메이스등 중장비로 때려 잡기이기 때문이지요. 다만 어떠한 병기든 전술적 가치가 높아진다는 것은 대량 운용 가능해야 한다는것을 전제로 합니다. 예외라면 핵이나 생물 병기 정도일까요. 아 핵이나 생물 병기는 정치적 가치가 높다는 부분이 더 옳겠군요. 어쨌건 이러한 측면에서 원거리 무기가 대량 운용이 가능해질 정도로 전술적 가치가 높아진 것은 화포의 등장 이후 입니다. 영궁 장궁 부대가 유명하긴 했지만 결국 중세를 지배한 것은 기병이었고, 화포와 총이 등장하기 전까진 원거리 무기보다 기병의 전술적 가치가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아마 이 얘기는 swordfish 님의 글 중에 댓글로 논의가 된 부분이 있을겁니다. 그리고 고대나 중세 전투에는 시가전 같은 건 그다지 많이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시가전이라는 이름 보단 잔당 소탕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게 더 낫겠지요. 대부분 방어 입장에선 기반 시설이 파괴되는 농성을 싫어하고 왠만히 맞붙을 만한 전력이면 성밖으로 나가 야전을 유도하죠. 농성을 한다는 것 자체가 방어자의 입장에선 극히 절망적인 상황이란 얘기고 그만큼 방어 병력도 적고 여타 제반 상황도 나쁠 수 밖엔 없었습니다. 문이나 성벽이 점령되면 거의 끝이라고 봐야했지요. 화포가 등장한 이후엔 성 자체가 의미가 없어졌고, 일반적으로 생각되는 시가전은 역시 총이 발명된 이후에나 등장하고 그 극치가 스탈린그라드 전투입니다. 마지막으로 원거리 투사 무기가 조악하다고 해서 농성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끓는 기름이나 낙석이라는 훌륭한 공격 수단이 있었지요.
10/02/02 10:31
kapH님// 친절하신 설명 감사합니다. 마지막 단락에 대한 건데요, 물론 야전으로 깨끗하게 이기면 좋지만 야전의 경우 병사의 수나 역량 등에 따라 미리 어느 정도는 승패의 예측이 가능하지 않나요? 어떤 세력의 침략이 있을 경우, 이러한 면에서 우세하다는 확신이 있으니 가능한 것일 테고 방어하는 쪽에서는 성벽을 끼고 싸운다면 높이와 방어력의 이점 + 야전에서는 동원 불가능한 민간인의 전투 참여가 가능해지는 것이니(돌을 던지든, 기름을 끓이든) 군사력의 우위를 갖지 못했을 때에는 자주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가 해서요. 제가 그나마 기억하는 우리나라의 많은 전투가 주로 '~~성 전투/대첩'이라서 이러한 인상을 갖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싫어하시는) '먼나라 이웃나라' 밖에 읽은 적이 없으니 자신이 없는데, 거기서는 3차 카르타고 전쟁도 그런 식의 농성전처럼 묘사된 것으로 기억나네요.
10/02/02 10:41
amoelsol님// 3차 포에니 전쟁은 로마에 의한 카르타고의 완전 멸절이 로마 군단의 목표였습니다. 게다가 1,2 차 포에니 전쟁 패배로 인해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한 카르타고는 비교적 수세에 몰리는 상황일 수 밖에 없으니 그러한 농성이 자주 나온 것은 당연합니다. 어떻게든 버텨야 했으니까요.
그리고 전쟁은 이기기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이겨놓고 싸우는 것이죠. 따라서 농성을 선택하게 된쪽은 그만큼 수세일 수 밖에 없다는 이야깁니다. 다른 나라 땅에서 싸우는 대신 자신의 땅에서 싸울 수 밖에 없는 것을 선택하는 겁니다. 아니 선택을 강요당하는거죠. 물론 수세에 몰린 자가 공세를 이겨내고 역전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것은 다 따져보면 그럴만한 요인이 있었던 것이지요.
10/02/02 11:19
예전에 읽은 로마인 이야기란 책이 생각나네요.
로마에 대해서 꽤 자세히 설명된거 같아서 재밌게 읽었는데 말이죠. 예전 기억으로는 후반에 군단병을 줄이는 과정에서 보조병인가를 수비에 이용한거 같던데 맞나요?
10/02/02 11:50
알렉산더 때부터 기병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하는데 너무 후대에 활약한거로 서술하신듯합니다
2차 포에니 전쟁 한니발이 초반에 로마 군단 몇만을 전멸시킬때도 기병의 압도적인 숫자와 기동력으로 승리하죠 스키피오가 한니발을 잡을때도 기병이 큰 역할을 하죠 물론 로마군의 주력은 중장보병이지만 양측이 중장보병일때는 승패의 열쇠는 동맹국의 기병을 얼마나 확보하느냐 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당시는 말산지에만 기병이 존재하던시기였으니요 로마인이야기를 보면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내전을 봐도 기병숫자에 대한 글이 많이 나오죠 카이사르는 기병숫자는 적었지만 갈리아,게르만출신의 정예기병이 있었고 말의 특성을 이용한 깡따구 전략으로 이기기는 했지만요
10/02/02 13:59
공화정시대에서나 제정시대에서는 기병은 기본적으로 기사계급(에퀴타스)에서 나왔습니다. 등자가 보급되기 이전까지는 말을 탄다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훈련을 받아야만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사 계급은 특정한 계급이 있는게 아니라 일반적인 부유층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국가의 명운을 건 전쟁에서야 기사계급을 총동원하는게 가능하지만, 중요한 전투가 아니면 가급적 기사계급을 동원하는 일은 자제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부유층의 비율은 고대로 갈수록 떨어지는게 상식인데, 보병과 기병 비율이 10:1이라는 것은 대강 인구 비례를 따져봐도 봐도 기사계급이 조금 많이 차출된겁니다. 따라서 야만족과의 소소한 전투에서는 기병이 쓰이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말은 장교들(그러니까 귀족, 부유층)의 지휘용, 뽀대용이었고 주력은 역시 중장보병이었습니다.
나중에 동방에서 밀려온 말을 주력으로 삼은 부족들과의 전쟁이 일상화되거나, 글에 있듯이 적의 기습에 맞서는 기동타격대에서만 기병이 주력으로 나서게 됩니다. 알렉산더나 시저 같은 경우에는 좀 따로 분류해야 하는 것이, 이들이 유명해진 것은 정복전쟁을 수행하는 등 일단 쌈질을 많이 했고, 쌈질에 특화된 부대를 편성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특수 사례이지, 보편화 시키기는 어렵습니다.
10/02/02 14:55
로마군의 주력이 중장보병인것은 사실이지만 군단병만으로 전쟁이나 수비를 한것은 아닙니다
로마는 전쟁을 할때 보급을 중요시하고 그에 따라 동맹국들을 전쟁에 참여시키는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대제국이 된후에는 현지인들에게 군복무를 마치면 로마 시민권을 주는 댓가로 현지인보조군단을 만들어 군단병을 보조하지요 즉 로마군대=군단병+동맹국&현지인으로 일반화가 가능합니다 크레타 궁병이니 누미디어기병이니하는 타민족 군대명칭을 자주볼수있죠 기사계급의 기병만을 생각하면 특수사례이고 큰 전력이 되지 않지만 기병산지의 기병은 당시 큰 전력이었습니다 2차포에니전쟁때부터 당시 최대기병산지인 누미디아 기병을 확보한 한니발이나 스키피오가 전쟁에서 승리하지요 3두정치의 일원인 크라수스가 동방원정을 갈때 폼페이우스는 자신의휘하 장수들을 부관으로 보내고 카이사르는 젋은 크라수스에게 기병을 500 주어 보내는데 이것만 봐도 기병이 당시 얼마나 중요한 전력이었는지 알수있죠
10/02/02 16:38
아 지금 돌아왔네요...
청염님// 병기나 병종이 주전력이나 아니냐는 두 가지 측면에서 판단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신뢰성입니다. 어떤 병종이나 병기가 사용될때 단순하고 직관적이며 안정성 있게 사용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기병의 신뢰성을 따지자면 어떠했느냐? 그다지 높지는 않았습니다. 일단 등자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는 것때문인데, 기병의 병과 특성상 충격력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제일 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돌격할 거리를 얻는 것이 기병으로선 선결과제이기도 했구요. 이때 충격력을 전달한다는 것은 반대로 그만큼의 충격력을 다시 기병에게 반작용시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고대 기병은 등자가 나오지 않았고 그 때문에 말등 위에 두터운 천을 깔고 다릿심으로 버텨야 했습니다. 결국 기병이 돌격하면서 전달한 충격력이 다시 기병에게 반작용할 때 그것을 버티게 해줄 안정적인 장치가 없었다는 거지요. 이로인해 기병들의 돌격은 중세 시대의 기병과는 달리 돌격시 상당수의 낙마를 동반하게 됩니다. 또한 등자가 없었기에 생각외로 창병의 공격이나 화살의 공격에도 약했습니다. 중장갑으로 떡칠해도 등자를 밟고 버틸 수 있었던 중세 기병과는 다르게 고대 기병은 가벼운 무장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만큼 기병을 노린 공격 자체에도 취약했다는 점이죠. 따라서 기병의 신뢰성은 로마 군단병보다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었습니다. 이로써 고대 기병의 활약에는 한가지 전제조건이 붙습니다. '일단 보병이 버텨줄 것.' 물론 로마는 군단병이고 그리스는 호플리테스겠죠. 사용에 있어 전제가 붙은 병종이 주전력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죠. 둘째로, 원활한 보급이 가능한가입니다. 어떤 병종이나 병기의 전술적 가치가 높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만큼의 대량 운용을 해낸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고대 기병은 굉장히 보급이 어려운 존재입니다. 일단 누미디아 동맹국 기병이나 갈리아 용병 기병은 군단병들과는 달리 이탈리아 본국에서 마음대로 편성하여 전방으로 제때 보낼 수 없었던 건 당연한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본국에서 길러내는 기병 자체는 꽤나 휼륭하긴 했습니다만, 당시 생산력으론 어렸을 때부터 승마 훈련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귀족층 혹은 부유층임을 뜻합니다. 이러한 계층은 극소수 였고 따라서 대량 운용할 만큼 기병의 안정적인 생산이 불가능했다는 점이지요. 끊임없이 생산, 훈련, 편성, 치료, 재훈련하여 계속해서 전장에 투입할 수 있는 병종과 병기를 주전력이라고 말하지 계속적인 보급이 어려운 병종을 주전력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고대 기병이 그 기동성으로 인해 알렉산더 이래로 총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꽤 유효한 전술이었던 '망치와 모루'에서 효과적인 망치 역할을 할 수 있었음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좀 극단적인 비유를 들자면 모루와 모루로 가운데 있는 철을 안정성있게 때릴 순 있습니다만 망치와 망치로 가운데 있는 철을 안정성있게 두들길 수는 없습니다. 결국 고대의 주전력은 기병이 아닌 중보병이었죠.
10/02/02 17:04
천우님// 예, 맞습니다. 제가 글쓰는 마지막에 힘이 딸려 서술하지는 못했습니다만 결국 지나치게 광대한 영토와 넓어진 전선을 모두 방어할 수 없었던 로마는 군단을 실제로는 대대 수준으로 격하시키면서 속주민을 보조병으로 대거 기용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보조병으로 대거 기용할 수 있게 된 정치적 배경에는 카라칼라 황제의 칙령이 있습니다. 바로 로마 시민과 속주민의 차이를 없애버린 것이지요.
이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제는 더 이상 팍스 로마나를 유지할 수 없게 됨을 뜻합니다. 로마의 힘으로 속주민들을 보호하던 우월한 자의 위치가 아닌 서로 돕고 살아가야 할 동료가 됐음을 뜻하죠. 물론 이러한 현상이 제정 말기의 피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임은 분명합니다만 그것을 공식화했느냐 안했느냐의 차이는 굉장히 큽니다. 팍스 로마나가 무너졌음을 지도자가 인정하게 된 거니까요. 이후 또 하나의 군제 개혁이 일어나게 되는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코미타텐세스comitatenses란 이름의 중앙 예비군을 편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의 리메스의 종심 방어진으로는 로마에 대한 침략을 막을 수 없음을 뜻하죠. 이는 전력을 중앙에 집중함으로써 상대적으로 국경선의 로마의 영향력이 약화되게 되고 곧 국경의 불안화로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후 콘스티아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인정하게 됩니다. 개인적으론 이 순간부터의 로마는 이전의 로마와는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네요.
10/02/02 19:31
당시 기병의 역할은 중세의 기병과는 역할이 다릅니다
중세의 기병은 중갑입고 돌격이엇으나 로마시기에는 중무장 밀집보병이 가운데 있고 양날개 역할을 하여 측면과 후방을 교란하거나 적을 포위하는데에 그 용도가 있었습니다 알렉산더를 시작으로 한니발 스키피오를 거쳐서 이미 로마 군대에서 기병 활용은 정석이 되어 있었다고 봅니다 당시 이름있는 인물들은 대부분 기병의 활용을 극대화해서 포위섬멸전으로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빠른시간에 전투를 마무리하지요 안토니우스 정도 되는 애들이야 보병끼리 정면충돌 할정도.. 그리고 카이사르 같은 경우는 이를 역이용해서 카르타고 지역에서의 폼페이우스 잔당 과의 전투에서 기병으로 중앙돌파를 합니다 -.-;;; 그리고 그 기병이 둘로 갈라져서 후방을 급습하지요 매우 정예한 기병이엇던 것과 지휘권이 불세출의 천재였기 때문에 가능하기는 했지만요 그리고 군단병이라고 다 같은 군단병이 아니지요 그 군단병이 얼마나 경험이 많은가도 중요합니다 카이사르의 경우는 각 군단의 개성을 중시해서 갈리아 정벌 때 처음 조직한 군단을 암살 당하기 전까지 10년넘게 개편하지 않습니다 결원을 보충하지 않아 군단 크기는 작지만 팀웍을 더 중시한거지요 군단병이라도 정예병으로 키워지는데는 수차례의 전투와 몇년간의 경험이 필요합니다 당시 의료기술을 생각하면 부상병의 재투입이 매우 어렵고 숙련과정을 생각하면 군단병도 즉각즉각 뽑아서 댈 상황은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보병이 주력이라는 것은 당연하지만 기병의 역할을 너무 낮게 보시는듯하군요
10/02/02 20:30
청염님// 기병의 역할이 변해왔을진 몰라도 기병의 특징은 드라군을 제외하면 항상 일정했습니다. 돌격 거리를 얻어 그 거리만큼의 충격력을 상대 부대에 전달시키는 것이지요. 저는 이 특징이 가지는 고대 기병의 신뢰성이 '상대적으로' 군단병보다 떨어지기에 기병의 주전력이 아님을 이야기하는거지 기병을 아주 낮게 보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댓글에서도 언급했듯이 기병을 망치로 사용할 때의 효용성은 저도 당연히 인정은 합니다.
그리고 카이사르의 전투를 언급하시며 기병이 강력하다는 것의 예를 드시는데 그건 카이사르의 천재성을 입증하는 것이지 당시의 기병이 중보병보다 '상대적으로' 주력임을 입증하는 데는 불충분합니다. 예를 드신 전투는 일종의 '종심 돌파-전과 확대'의 현대적인 종심 전투 교리의 일부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대신 전차가 기병으로 바뀌었다 점이 다르겠네요. 물론 완벽히 같은 것은 아니겠지만요. 어쨌든 이러한 현대적인 전술 비슷한 것을 그 옛날에 사용할 정도의 카이사르가 천재이고 그가 육성한 기병부대가 강력한 것이지 일반적으로 고대 기병이 중보병보다 우위에 있음을 입증하는 예는 아닙니다. 청염님과 제가 고대 기병을 보는 관점의 차이는 '강력함vs신뢰성'인듯 하네요. 저도 계속 말씀드리다시피 기병의 강력함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강력한 무기라도 기본적인 신뢰성이 없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강력한 무기가 아니게 됩니다. 무기(더 넓게 봐서는 병종까지)의 신뢰성은 어느 누가 사용하더라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때 확보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신뢰성에서 군단병이 고대 기병에 비해 상대적으로 앞서 나가기에 고대의 주력은 중보병이었음을 주장하는 겁니다.
10/02/02 20:56
글쎄요. 이미 로마군은 3세기에 보병 중심에서 중장기병 중심으로 체제를 전환했고, 그 힘으로 위기를 극복했으며, 로마제국 전체로는 한세기를, 동로마제국으로 한정지으면 7세기 헤라클레리우스 황제때 재차 체제개혁을 할때까지(이것도 테마 설치를 포함한 행정적인 개혁이 주됨) 버틸 수 있었습니다.
후기 로마제국, 구체적으로는 3세기 이후의 로마제국의 주력은 보병이 아니라 기병입니다. 숫적 비중도, 전력적 비중도 기병에 맞춰져 있지 보병에 맞추져 있진 않습니다. 이는 필요에 따른 것이며, 더 효율적이었음을 증명합니다. 최소한 시대에 맞는 수준에서는 말이죠.
10/02/02 21:02
나이트해머님// 저도 그 이후부턴 기병이 강력하고 신뢰할만한 병종이었음은 인정합니다. 그런데 저와 청염님의 논의는 그 부분이 아닐 그보다 더 앞서의 고대 기병이 주력이었느냐 아니었느냐란 부분입니다. 아마도 제가 고대 기병을 좀 협의로 사용하다보니 이런 오해가 있는 것 같네요. 청염님의 첫 댓글을 읽어보시면 청염님은 제가 쓴 것처럼 기병의 활약은 너무 뒤에서부터 나타나지 않았다, 그전부터 기병은 주력이었다란 부분에서 논의가 일어나는 거지요.
10/02/02 21:22
이는 395년 로마군의 구성을 나타내는 정부 문서인 Notitia Dignitatum에 나타나는데, 이때 로마군의 구성을 보면.
소속부대 기병수 보병수 기병비율 ----------------------------------------------------------- 서로마제국 야전군 21,000명 92,000명 18.5% 서로마제국 국경군 58,500명 77,000명 43,2% 서로마 근위기병 2,500명 100% 동로마제국 야전군 21,500명 82,500명 20.7% 동로마제국 국경군 97,500명 98,000명 49.9% 동로마 근위기병 3,500명 100% 합계 204,500명 349,500명 36.9% 이렇게 되어 있으며, 보시다시피 기병의 비율이 평균 36%대로, 기병의 전투력을 생각하면 이정도 비율의 기병 비율은 곧 기병이 주력임을 의미합니다. 여기에 전문 궁병부대인 sagatarii의 명칭이 들어가 있는 부대의 숫자가 동서로마를 합처 69개. 총 34,500명에 달하는 '전문 궁병대' 가 존재합니다. 여기다가 베게티우스의 병서에 이르면 일반 병사들도 1/4~1/3 정도는 궁술 훈련을 시키라고 되어 있는 등 전문 궁병들을 제한 일반 부대도 다수의 궁병을 운용했음이 확인되고 있고, 궁수대가 아닌 'auxilia platina'의 보조병들도 적과 궁병 사격전을 벌인 기록이 있는 등 실제로 그러한 운용 기록이 많습니다.
10/02/02 21:29
kapH님// 보병대의 신뢰성, 이란 것 자체가 그닥 끌리는 말이 아니란 느낌이 드는 군요. 로마군도 만약 기병이 일찍부터 필요했다면, 그리고 그러한 기병을 구하기 쉬웠다면 3세기가 아니라 그 이전에 기병을 대량으로 확보했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만약 강력한 기병 보유국인 페르시아나 도나우강 하류 유역의 유목민족들을 처음부터 마주첬다면 로마군이 계속 보병 중심의 군단체계를 갖추었을까요? 전 부정적이라 봅니다. 대신 마케도니아나 기타 동지중해식의, 강력한 중기병을 주축으로 하는 부대를 꾸렸을 겁니다. 단순히 신뢰도의 높고 낮음을 따진다면 전면 공세와 방어에 있어서는 모든 고참 베테랑 병사들을 다 소모해 버리고 신병 중심이었던 말기에도 레기온을 압도해 버리던 마케도니안 팔랑크스가 못할 이유도 없습니다. 신뢰도가 문제가 아닌, 그때그때의 필요와 상황에 맞는 체제를 갖추었을 뿐입니다.
10/02/02 22:20
본문에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자면....
글 앞부분에 그리스의 전술에 대해 기술하신 부분입니다. 그림으로 묘사된 '팔랑크스' 방진은 호플리테스 가 아니라 '페체타이로이'들이 형성한 방진입니다. 호플리테스 :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들(아테네, 스파르타, 테베 등등... )의 중장보병입니다. 큰 청동 방패(무릎 부터 목까지 보호할 수 있는 상당히 큰 원형방패) 와 2~3미터 정도의 창(한손으로 드는 창), 가죽 혹은 청동 흉갑 밑 정강이 보호대, 청동 투구, 청동 검 등으로 무장했습니다. 영화 300의 배경인 페르시아 전쟁때 그리스 연합군의 무장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물론 300은 주인공들이 갑옷 대신 갑빠(?)로 때우는 등 현실과 동떨어졌죠. 하지만 큰 방패를 겹쳐서 벽을 형성하는 방진의 형태는 실제와 유사합니다. ) 그리고 이보다 100~200년쯤 후 마케도니아(그리스 북부의 나라입니다. 사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성기때 야만인 취급을 받았던 나라죠.) 군의 주력이었던 장창병들을 '페체타이로이'라고 불렀습니다. 페체타이로이 : 4~5미터 이상의 '사리사' 장창(후기로 갈수록 길이가 더 늘어납니다.), 작은 방패( 장창은 양손으로 들어야 했기 때문에, 왼손을 자유롭게 하기위해 방패를 왼팔에 걸고, 목에 끈으로 다시 걸어서 고정했습니다. 크기는 당연히 작아질 수밖에 없었고요.) 그 외 투구, 흉갑 등.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시아를 침공하여 멸망시킬때 마케도니아 군의 주력이 페체타이로이였습니다. 그림과 본문에 묘사된 것은 이들이 형성한 방진 '팔랑크스' 입니다.
10/02/02 23:14
하이브님//제가 알기론 페체타이로이는 귀족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마케도니아 정예부대로 알고 있습니다.
제 지식으론 넓게 봐서는 호플리테스에 속한다고 봅니다. 일단 자료를 더 검색해보겠습니다. 나이트해머님// 하고자 하시는 말씀은 알겠습니다. 제가 처음엔 BC 3-2 세기경의 군단병에 대하여 말하려다 글이 길어져서 제정 말기까지 이끌어간 것과 논의 자체를 아우스투스 이전으로 한정지었어야 했는데 아마도 제가 고대란 말을 계속해서 쓴 것 때문에 혼란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실제로 중세로 넘어가지 않더라도 고대 말의 기병의 득세는 사실이었죠. 용어를 불명확하게 쓴 점 사과드립니다. 논의를 잘 못 이끌어간 제 불찰이 크네요. 그래서 다시 명확히 해서 시대를 아우구스투스 이전으로 한정 짓겠습니다. 나이트해머님이 쓰신 댓글에도 있듯이 어떠한 병종의 득세는 환경 적응의 산물이죠. 기본적으로 말 산지가 부족하지만 좋은 철은 나오는 로마의 특성상 중보병이 득세하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에 덧붙여 로마 군단은 여러 차례의 체질 개선을 통해 호플리테스의 경직성에서 벗어나고, 잡병들을 없앴으며 병종의 통일화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전술적 유연성을 강화해 나갑니다. 물론 영토의 확장은 로마의 뭇 영웅들에 의해 이루어지긴 합니다만 이를 통해 로마 군단병 자체를 왠만한 장수들이 운영하더라도 무리없이 큰 실패를 겪지 않고 지배권을 계속해서 유지해 나갈 수 있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점에서 저는 당시의 로마 군단병의 신뢰성이 기병보다 크다는 생각을 합니다. 실제로 기병을 잘 활용한 알렉산더, 한니발, 카이사르 등은 전술의 선구자였으며 그들이 아니라면 그렇게 큰 이득을 보지는 못 했겠지요. 따라서 누구라도 무리없이 안정적으로 운용할 수 있었던(제가 말하는 신뢰성은 이 부분입니다. 단순히 어떤 병종을 믿을만하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로마 군단병이나 호플리테스와 같은 중보병이 그 시대의 주전력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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