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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링크가 2006년에 썻던 글입니다. 그리고 그 뒷이야기를 오늘 생각난 김에 쓰고자 합니다. 지금 저 글을 읽어보니 03년에도 참 어렸었고 06년에도 역시나 어렸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일단 새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윗 글에서 댓글을 달아주셨던 오름 엠바르님, 안티세라님, 착한밥팅z님, 태님, 현경님, Jerry님, 비갠후에님, 마술피리님, 블러디샤인님, 니델님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당시에는 너무나 심란했기에 윗 분들의 댓글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번 글도 그냥 감상, 감정, 기억을 더듬어가면서 쓸 것이기에 그리 짜임새 있는 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재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주제로 글을 쓰는 것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윗 글을 쓴 이후로 3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박사과정은 막바지에 이르러야 맞지만 제가 연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터라 연차만 올랐고 졸업은 어찌 될는지 아직 묘연합니다. 그리고 나이도 먹고, 현실도 알게 됐고, 여러 가지 변화들이 있었지요. 아직까지도 그 아가씨와의 연락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같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은 동남아의 어떤 나라에, 그녀는 호주에, 저와 제 가족은 한국에 살고 있습니다. 그녀는 호주에서 회계사로 일하고 있고 이제 직장생활 4년차입니다. 한국을 초등학교 6학년에 떠나서 다른 나라에 살다가 호주로 유학을 갔습니다. 저는 박사과정 후반이지만 졸업의 비젼은 아직 잘 안 보입니다.
그 동안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몇 개 써봅니다.
1)..08년 12월
그녀가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를 만나러 오는 것은 아니고 친척분들에게 인사도 하고, 아주 어릴적부터 단짝이었던 소꿉친구와 같이 놀 생각도 하러 한국에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만나지 않았느냐...만났습니다.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 애가 저한테 연락을 했지요. 한국에서 보자고. 엄청 긴장도 되고 두근거리기도 하고 그냥 머리속이 새하얘졌습니다. 무엇을 해야하나, 무엇을 해야하나 생각을 많이 해봤는데 결국 밥 먹고 차 마시고 코스로 정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데 같이 무엇을 하는 것보다는 일단 얘기를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술도 같이 한 잔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만나는 날은 크리스마스 이브. 만남은 싸했습니다. 처음 만나서는 서로 그대로라고 반가워하면서 가벼운 포옹하고 밥먹으러 가고 차 마시고 했지만...그녀의 AT필드가 전방위로 펼쳐진 느낌이었습니다.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완전방어모드의 그녀를 앞에 두고 어떤 ice breaking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대화도 수박 겉핥기.
술 한 잔 하자는 얘기는 꺼낼 엄두도 나지 않을 분위기였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그녀의 손을 한 번 잡아볼까 싶었지만 그녀가 거절을 하였습니다. 대신 팔짱을 껴주더군요. 하지만 마냥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오히려 씁쓸했지요. 03년 12월부터 그렇게 고대하고 기대하던 만남이 이렇게 썰렁했으니까요. 왜 나를 만난다고 한 것일까...한국에 2주 동안 머문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리고 만남의 아쉬움이 너무 크기에 다시 한 번 만나자고 연락을 하였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긴장해서 그랬던 걸꺼야..라고 생각하면서. 그녀가 허락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런 갖가지 핑계를 대가면서 피해가더군요.
문자를 보냈습니다. 너무 섭섭하다...
답장이 왔습니다. 미안하다 하더군요...정말 미안하다고...
2)..09년 언젠가...
그녀와 자매처럼 지내던 친구가 09년 초에 한국으로 들어왔습니다. 안 그래도 좁은 인간관계의 그녀는 힘들고 외로웠겠죠. 바쁜 직장 생활로 그 친구를 자주 만나지는 못 했지만 뭐가 어찌 됐든 같은 하늘 아래,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는 거리에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크지요. 그래서인지 그녀가 저에게 연락을 먼저 해오는 횟수도 부쩍 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녀의 외로움을 덜어주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녀가 친구를 잘 사귀는 성품도, 그럴 환경도 아니구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연인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저와의 관계는 어차피 장래가 불투명하고 당장 어찌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녀는 너무나 힘들고 외로워하고...
그래서 그녀에게 제 생각을 전했으면 좋겠습니다. 남자를 만나볼 생각없냐고.
즉시 대답을 하더군요. 그거 진심이냐고...
저는 대답을 못 했습니다. 진심이었지만 대답을 못 했습니다.
그냥 둘러말하기를 니가 너무 힘들고 외로운 것 같으니 너에게 안식처가 되줄 사람이 생기면 좋지 않겠냐고. 너무 외롭게 살지 말라고. 그랬더니 그녀가 말하기를 '어떡하겠어요. 제가 원래 그런걸. 그냥 그렇게 살아야죠.' 더 이상 할 말이 없더군요.
3)..09년 8월쯤.
어떤 날인가...저는 취직 면접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졸업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여러 회사의 분위기도 알고 싶었고 입사과정이란 어떤 것인지도 알고 싶었습니다. 합격한다고 하더라도 박사직원을 뽑는 경우는 입사 유예기간을 줘서 학업을 제대로 마치고 입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경우도 많기에 붙게 되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프레젠테이션 준비를 하는 도중에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서 제 상황을 설명하고 프레젠테이션 준비중이다, 요새 어떻게 지냈느냐 등등의 근황을 묻고 답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분 좋게 통화를 끝내고(언제나 그녀와 통화를 하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습니다. ^^;) 발표준비를 계속 하였죠. 그리고 다음 날 면접을 보고 돌아와서 쉬고 있는데 또 전화가 오더군요. 면접 잘 봤느냐, 어떤 질문을 했느냐 물어보았습니다. 기억하는 대로 답하였구요.
왜 이것을 기억하느냐...정말 사소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의미가 있게 다가왔습니다. 03년에 그녀가 저와 관계를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이후로 제 생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걱정을 해온 첫 사건이거든요. 언제나 거리를 두고 표면적으로만 연락을 했었는데 이 때의 연락은 뭔가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4)..09년 12월초.
전혀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습니다. 00700xx.... 국제문자네요. 헌데 내용은 한글. 아이폰 샀다고 그녀가 자랑하는 문자였습니다. 이제 한글로도 문자 보낼 수 있다고 신기하다고. 저도 답장을 했고, 그 후로 가끔 문자를 주고 받네요. 요새 직장일이 너무 힘들다고, 크리스마스 휴가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찡찡댑니다.
그녀에게 연락이 오면 언제나 반갑고 좋지요. 그녀에게 전화가 오면 만사 제쳐두고 일단 받습니다. 하지만 그녀와의 장래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우리 가족의 중심이 아버지에게서 저에게로 조금씩 넘어오는 느낌입니다. 제가 아직 직장도 잡지 못 했음에도 그런 느낌이 드네요. 제 동생도 자리를 잡고 결혼을 하고나서라면 모를까. 한동안은 제가 가족의 중심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제가 해외로 나갈 생각을 못 하겠습니다.
그녀와 생각의 격차도 너무 큽니다. 그녀는 초등학교 6학년때 한국을 떠난 이래로 한국에 살아본 경험이 없고 저는 한국 토박이입니다. 그녀는 호주에서 10년을 이미 살았고 이제 곧 시민권을 얻습니다. 저와 그녀는 서로의 생활도 모르고 가치관이나 친구나 기타 깊은 이야기를 해본지 오래 됐습니다. 단지 서로 안부만 묻고 살았을뿐.
그녀는 제가 아니라면 혼자 외롭게 살아갈 것 같습니다. 다인종사회, 그리고 교민과는 또 다른 입장으로 이리저리 치이면서 살아서인지 사람을 사귀는 일에도 매우 조심스럽고 특히나 남자사람친구를 사귀는 일에는 극단적으로 방어적입니다. 남자가 작업을 해 들어갈 구멍이 없지요. 그렇다고 자신을 바꿀 생각도 안 하고 지금의 스스로에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외로우면서......
제가 아니라면 그녀가 혼자 외롭게 살아갈 것이라는 생각...저만의 착각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습니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속내를 거의 드러내지 않습니다. 이것도 혼자서 호주에 유학생활, 직장생활 하면서 얻은 처세술이겠지요. 근데 저는 그녀의 감정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다 알 수 있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전화를 통해서도 그게 뻔히 보이더군요.
그녀가 지금도 솔로고 여태까지 솔로였다는 것은 그녀에게서, 그리고 그녀와 자매처럼 지내던 친구에게서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여자를 만나려고 노력을 꽤 했었지만 자중한지 1년...그리고 박사 졸업할때까지는 별로 여유도 생각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결혼을 할 여자를 만나야겠다고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한국에 올 가능성은? 거의 없지 않을까요. 호주에 연고라고는 직장말고는 없긴 합니다. 가족도 없고. 친구들이 있긴 하구요. 하지만 한국에는? 그녀의 먼 친척이나 할머니 정도는 계시군요.
저는 박사졸업후 취직하고 결혼을 하고 싶습니다. 꼭 그녀가 상대여야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신경은 쓰이지요.
그녀 생각을 제 머릿속에서 훅 날려버릴 수 있는 여자가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상상도 합니다.
그녀와의 결혼은 너무나 부담이 크지요. 살아온 경험과 가치관의 차이가 너무나 클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내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도 꽤 강하게 있습니다. 뭘 왜 책임을 진다는 것일까...저도 확실치 않습니다.
하지만...저도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고민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구요.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