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단풍잎이 붉게 물들고 낙엽이 지는 가을이 되었다. 이번 가을은 딸애가 7살이 되어 높지 않은 산은 오를만한 나이가 되었으니 등산을 가기로 마음먹었고 어느정도 시기가 무르익었다싶어 주말을 틈타 인근의 단풍나무가 상당한 산을 찾았다.
타는 듯한 열기를 자랑했던 여름은 이미 다 끝나버리고 선선한 바람이 체온을 낮추는데 단풍과 시들어 떨어지기 전의 갈색 잎사귀들이 산을 둘러싸 마치 불과 같은 형상을 해 보기에는 뜨거워 보인다. 그래도 시각적으로만 뜨거울 뿐이지 실제 날씨는 시원하니 이번 산행은 땀을 많이 흘릴 것 같지는 않다. 아침 기온이 쌀쌀하여 딸에게 긴 팔옷을 입혔는데 나중에도 더워지지는 않을 듯하니 다행이다.
딸은 같이 산에 온 것이 퍽이나 즐거워 보인다. 길지도 않은 발로 종종 뛰어가 아내와 나를 앞지르기도 하고 세상 모르게 꽃을 구경하다가 우리가 따라잡았는지도 모르고 가까이 다가가니 꽃이 이쁘다며 싱글벙글 웃는다. 꽃이 맘에 든 듯하여 '머리에 꽂아줄까?'하고 물으니 '그럼 꽃을 꺽어야하잖아요. 그건 싫어요.'라며 자기의 욕심만 부리지 않고 꽃까지 챙겨주는 이쁜 마음씨를 보여주는데, 어느 부모가 키웠는지 몰라도 상당히 마음씨 고운 꼬마 아가씨가 아닐 수 없다.
다시 앞서나간 딸은 갑자기 무엇인가 생각난듯 쪼르르 내게 달려와 어째서 단풍잎은 붉어지는 것이냐는 질문을 했다. 원래 엽록소가 분해되고, 안토시안이 생성되어 그렇게 된다는 모범적인 해답을 알고 있었지만 어린 아이의 동심을 자극하고 싶어져 어릴적 단풍잎에 대해 상상했던 것을 말해주기로 했다.
단풍나무의 잎은 단풍나무에서 태어나 녹색잎으로 자라나고 가지에 매달려 단풍나무의 보호아래서 살아가다가 그 근원이 되는 땅을 흠모하고 사랑하게되어 사랑의 열병으로 몸이 빨갛게 변해버리고, 더 이상 단풍잎을 잡고만 있을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은 단풍나무가 단풍잎을 놓아줘 단풍잎은 낙엽이 되어 땅에 떨어져 풍화되며 그와 융화되어 하나가 된다는 내용으로 어린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단어를 풀어 말해주었다.
그러자 딸은 그게 아니라며 정론을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는지 어려운 단어를 흐려뜨리면서 설명해주고는 아빠는 그것도 모르냐고 핀잔을 주었다. 아직 학교도 안들어간 녀석이 그런 것을 알고 있는 것이 신기해 어떻게 알고있냐고 물어보니 엄마가 사준 만화책에서 나왔다고 한다. 기억에 그 책은 만화로 상식같은 것을 설명해주는 것이었는데 그 안에 단풍잎이 붉어지는 것이 있었나보다.
확실히 요즘 얘들은 일찍 조숙해지는 것 같다. 나쁘게 말하면 빨리 동심이 깨어질달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세상이 속도감있게 변화해 가듯이 아이들도 일찍 세상을 알아버리는 것이다. 이 것이 좋은 방향인지 나쁜 방향인지 명확한 구분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동심이 있어야 할 나이에 동심이 없다는 것은 그것대로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을까 싶다.
단풍은 아름답고 산도 평탄한 길이 많아 산책하듯 올랐으며 딸이 무척이나 즐거워한 좋은 등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