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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10/06 03:44:57
Name INFINITI
Subject [일반] [연애잡담] 왜 강아지 따위를 키웠던걸까?
왜 강아지 따위를 키웠던걸까?

전날 싸웠던 그녀는 표정이 어두웠고, 난 좀처럼 그 어색한 틈새를 극복할 화제거리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로 갈지조차 알지 못해 차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을 무렵,
한가지 제안이 떠올랐다.

"우리 강아지 구경갈까?"

그녀는 가끔씩 애완견을 키우고 싶어했다.
그때마다 난 키우기 힘들다고, 귀여운건 잠깐이고 현실은 만만치 않다고 말렸었다.
.
.
난 조금은 알고 있었다.
애완견을 키우면서 정을 준다는 것.
말썽도 부리고 속상하게 아프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정을 띄는 일이다.
.
.

"정말?

그녀 얼굴에 화색이 돈다.
효과가 있었다. 언제 싸웠냐는 듯, 우리는 설레는 맘을 안고 애완센터가 밀집된 시내로 향했다.
처음에는 밖에서 보기만 했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구경만 하자'던 다짐을 뒤로하고,
귀여운 아기들 중 우리와 인연이 닿을 어떤 한 녀석을 찾고 있었다.

사람과 애완견 사이에는 분명 인연의 끈이 있다.
애완견센터 창문사이로 스쳐지나고 아무런 느낌이 없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어떤 아이들은 잠시만 바라보고 지나와도 잊혀지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그날 우리의 첫 애완견 똘이가 그랬다.
난 키우기 쉬운 시츄를 권했지만, 말티즈 똘이를 한번 본 그녀는 무언가 '느낌'을 받은 듯 했다.
한번 똘이를 안아본 그녀는 다시 내려놓지 못했다.

그렇게 그녀석을 데려오고, 필요한 물품을 샀다.
난 애완견에 대해서 조금 경험이 있기에 그녀에게 이것저것 조언을 해줬다.
그날 밤 똘이와 우리의 첫 만남은 그렇게 설레는 첫날밤 처럼 지나갔다.

사실 그 무렵 우린 권태기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그랬다.
그녀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이제는 조금 편안한 사이고 싶은 나에 대해서 그녀는 변했다고 말하곤 했다.
사실 우리의 첫 연애는 나의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다.
그렇게 그녀가 맘에 문을 열고 서로 사랑하게 되었을 때까지 난 항상 긴장상태였다.
이제 비로소 그녀가 진정한 내 사람이 되었구나.. 라고 느낄무렵, 난 긴장이 풀려갔고
그녀는 그런 내 모습에 다소 혼란을 느꼈다.
강아지는 그런 우리사이에 하나의 전환점이 되어줄것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실수였다.
전환점을 내 자신이 아닌 다른 것에서 찾으려 했다는 것 자체가.

똘이는 그녀의 강아지로 하기로 했다.
함께 있을 때는 함께 돌보고 밤에는 그녀 집에서 제우고,
어쩔수 없는 일이 생기면 우리 집에서 돌보기로 했다.
그녀와 나 모두 혼자 살고 있었기에, 가족들에게 눈치를 볼 일은 없었다.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똘이는 자주 아팠고, 난 그 무렵 출장이 잦아졌다.
그녀는 혼자서 똘이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일이 잦아졌고,
그때마다 울면서 나와 통화를 했다.
난 그녀를 달래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녀는 아픈 똘이에 모든 정신이 팔려있었다.
직장생활을 하던 그녀는 매일 똘이가 잘 있을지 걱정으로 가득찼다.
어느새 우리 둘 사이의 모든 이야기는 똘이 이야기만 오가게 되었다.

결국 한마리를 더 데려오기로 했다.
매일 집에 혼자있는 똘이의 친구를 만들어주기로 한 것이다.
이번에는 내 강아지로 삼기로 했고,
평소에는 그녀의 집에서 함께 키우기로 했다.
난 평소에 좋아하던 페키니즈를 선택했다.
그리고 우린 강아지 두마리와 동거아닌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퇴근하면 난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강아지 두마리가 있는 집은 난리통이었다.
서로 싸우기도 하고, 하나가 얌전하면 하나가 사건을 쳤다.
안그래도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난 퇴근후에도 편히 쉬지 못하는 것에 또다시 스트레스를 받았다.

가끔은 그냥 쉬고 싶어 오늘은 집에서 쉬겠다고 하면 그녀는 항상 말했다.

"그럼 어떻게~ 난 얘들 둘 데리고 얼마나 힘든 줄 알아?"

그래. 그녀도 힘들고 피곤하겠지.
그러면 난 그녀의 집으로 힘든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두 녀석을 데려오고 나서 단둘이 외출을 했던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한번은 여자 후배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 후배는 간단하게 말했다.

"강아지를 어디로 보내. 안그럼 곧 둘이 헤어질 것 같아"

그러다 둘이 다투면 난 내 강아지 페키를 데리고 와버렸다.
며칠씩 연락이 없이 지내다가도 어느날 그녀는 불쑥 우리집을 찾아왔다.
싸우고 연락조차 하기 싫어도 강아지 페키가 보고 싶어서 참지 못했던 것이다.

"페키 때문에 용서해 주는 줄 알아!"

그녀는 페키를 안아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나역시 그 녀석들이 잘 있는지 궁금해 출장을 나갈 무렵이면 꼭 들러서 살펴보곤 했다.
다만 그녀와 나 사이에 '강아지' 외엔 아무것도 없는 그런 현실이 싫어졌을 뿐이다.
난 지쳐갔고, 그런 날 바라보는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날 심하게 다툰 날.
그날은 지방에서 놀러와 그녀의 집에서 자기로 한 친구 때문에 두마리 모두 내가 돌보고 있었다.
나를 찾아온 그녀는 자신의 강아지인 똘이를 안으며 말했다.

"우리 그만 만나"

"... 그래"

난 짧게 대답했다.
그녀에게 안아달라고 바둥거리는 페키를 슬픈 눈으로 바라보며 그녀는 말했다.

"잘있어. 페키야"

대문을 나서는 그녀를 뒤따라 가던 페키를 난 안아올렸다.
그렇게 우리의 연인관계는 끝이났다.

그 뒤에도 몇번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페키가 잘 있냐며 울며 전화를 하기도 하고,
술에 잔뜩 취해 내 안부를 묻기도 했다.
몇번 만나서 술을 함께 하기도 했다.
이별을 했다고 서로 뒤도 안돌아보고 연락도 안하기엔
둘사이에 쌓았던 추억이 너무 많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한번 깨진 서로에 대한 믿음은 다시 연결하기엔 너무나 멀었다.
결국 몇번의 연락과 만남 끝에 이젠 더이상 그녀와의 연락마저 끊어져 버렸다.

그 후 난 혼자서 페키를 키우다가,
하루종일 혼자 있는 녀석이 안쓰러워,
시골 부모님 집으로 보냈다.
적적해하시던 부모님도 좋아하셨고,
그녀석도 마음껏 뛰어놀며 좋아했다.
페키를 처음 놓고 돌아오던 날.
그녀석은 내가 짐을 싣기 위해 조수석 문을 열자 훌쩍 올라탔다.
마치 잠시 여행을 온것이라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빨리 집으로 가자는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난 억지로 그녀석을 어머님 품에 안겨드리고 곧바로 출발했다.
페키를 안고 날 배웅하며 서있던 어머님의 모습이 룸미러로 비쳤다.
난 눈물을 흘렸다.

가끔 부모님 집에 가면, 아직도 페키는 날 알아보며 꼬리를 흔든다.
부모님이 섭섭해 할만큼 내 곁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석을 볼 때마다 불가결하게 그녀 생각이 난다.

"페키야. 지금이라도 엄마보면 알아볼 수 있겠어?"

멋데로 데려와 책임지지 못한 것도 가슴아프고,
그런 날 볼 때마다 너무나 반가워서 떨어지지 못하는 녀석도 가슴아프다.
그리고 무엇보다 페키를 너무나 귀여워하던 그녀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 가슴아프다.
.
.
.
난 이미 알고 있었다.
애완견을 키우면서 정을 준다는 것.
말썽도 부리고 속상하게 아프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정을 띄는 일이다.

지금은 마냥 장난꾸러기인 페키도 길어야 10년 후면 내 곁을 떠나겠지.
그러면 정 띄는 것이 힘들어 한동안 고생할 것 같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그녀 역시 기억에서 떠나보내게 되겠지.

오늘 난 내 강아지 페키와, 그 아이와 함게 오버랩되는 그녀를 그리워 하면서 생각한다.
왜 강아지 따위를 키웠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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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호라이즌
09/10/06 03:56
수정 아이콘
글 멋지게 쓰시네요... 순식간에 끝까지 다 읽어내려왔습니다... 뭔가 짠하기도 하고요. 저도 강아지는 못키울 거 같습니다. 강아지, 개를 참 좋아하긴 하지만, 정을 떼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서요;;
09/10/06 03:56
수정 아이콘
전 교통사고/음독/유행성 출혈열 등으로 6 마리의 강아지를 떠나보냈는데, 정말로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입니다.
09/10/06 04:36
수정 아이콘
글을 어렵지 않으면서도 몰입감있게 쓰시네요 ^^
제가 좋아하는 문체인지라 추천하나 날립니다 히히
forgotteness
09/10/06 04:39
수정 아이콘
20년간 같이 산 우리집 '초롱이'가 죽었을때는 가족 모두가 울었더랬죠...TT
전 태어나서 아버지가 할아버지 돌아가실때 빼고 그렇게 우시는 모습 처음 봤습니다...

애완견은 4~5년지나면 그냥 가족이고...
10여년 지나니 정말 사람이나 매한가지 더군요...

사람들오면 반기고 하는 말 다 알아듣고...
가족 중 누가 아프면 꼭 그 가족 옆에가서 자고...
누군가 늦게 들어오거나 외박을 하면 잠도 안자고 현관앞에서 죽치고 기다리다가 쓰러져 잠들고...

특히 죽기전에 이별을 직감한 '초롱이'의 애처로운 모습은 평생토록 지워지지 않을것 같네요...
어떻게든 가족 얼굴 한번 더 볼려고 죽기 전날밤에 이방 저방을 절뚝 절뚝 걸어다니면서 물끄러미 쳐다보는데...
진짜 눈물없이는 못보겠더군요...

죽을때도 어머니가 내심 맘에 걸려서 밤새 꼭 안은채 뜬눈으로 새우시다가...
잠깐 잠들었는데 초롱이가 움직여서 이상하다 싶어서 잠에서 깨셨는데...
물끄러미 눈에 눈물 고인채 어머니 얼굴 바라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자...
그때서야 어머니 품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동물은 울지 못한다는거 사실이 아닐겁니다...)

다른건 몰라도 우리집 '초롱이'는 우리가 사랑한 것 이상 우리 가족을 많이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새벽에 괜시리 또 생각나고 보고싶네요...TT

저도 강아지 너무 좋아하는데 이제는 정말 못키울듯...


댓글이 너무 먼곳으로 가버렸네요...-___-;
어제 게시판에서 부터 자꾸 생각이 난데다가 이 글 보고 한번 또 울컥했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INFINITI
09/10/06 04:59
수정 아이콘
이번 추석에 부모님 댁에 갔다가 페키랑 며칠 뛰어놀고
온 뒤로 자꾸 옛생각이나서 심란합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그녀가 자꾸 떠올라서겠지요.
페키를 볼 때마다 그녀가 생각나는건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어쩌면 잊고 싶지 않은 것인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요며칠 그녀가 보고싶어 조금 힘듧니다.

오늘도 내일 출근인데 이러고 있군요^^
마치 누군가에게 위로라도 받고 싶은 기분으로 끄적여봤습니다.
(글을 쓴다는건 생각보다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더군요.)
읽어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SCVgoodtogosir
09/10/06 05:52
수정 아이콘
글 너무 좋습니다. 소설 한편 쓰셔도 될 것 같네요^^
탈퇴한 회원
09/10/06 06:27
수정 아이콘
이글을 보니깐 이민오면서 두고온 커피랑 두한이가 그리워지네요 ㅠㅠ
나두미키
09/10/06 08:15
수정 아이콘
비슷한 경험을 하셨던 것 같습니다..쪼꼬와 꼬꼬 였죠..휴...........
09/10/06 09:25
수정 아이콘
잘 읽었습니다.

동물 참 키우고 싶은데 비염때문에 흑흑
09/10/06 09:25
수정 아이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루뚜님
09/10/06 09:43
수정 아이콘
글 너무 좋네요 ^^ 역시 pgr의 괴수분들은..
blacksim
09/10/06 09:51
수정 아이콘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가슴이 참 아프네요.
짜장소년
09/10/06 10:31
수정 아이콘
그러게요...왜 강아지 따위를 키웠던 걸까요? 그녀는...
여자예비역
09/10/06 10:45
수정 아이콘
아.. 슬프네요...ㅠㅠ 우리 부식이가 생각난다... 부식아...ㅠㅠ
09/10/06 10:49
수정 아이콘
"나를 너네집 강아지만큼이라도 생각하기나 해?! 너네 집 강아지가 더 좋아, 내가 더 좋아?!"

라고 화를 내면서 말했다가,

"....강아지는 가족인데...."

라는 대답을 들었던 기억이 떠오르는군요.

.... 왜 강아지 따위를 키웠던 걸까요? (2)
세이시로
09/10/06 11:20
수정 아이콘
왠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는 좋은 글이군요.
애완견을 키운 경험은 없지만 이런 글을 보면 역시 키우지 말아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추천 누르고 갑니다.
김한솔
09/10/06 11:39
수정 아이콘
이글을 보니 예전에 기르던 강아지 생각이 나네요
친구녀석네 강아지가 새끼낳은 것을 분양받은 것인데, 탄생의 순간에도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도 함께 했었던 애틋한 녀석이었습니다.
이별의 순간에는 정말 제자신의 모든 것이 떨어져 나갈정도로 슬피 울었던 기억도 납니다
이때의 충격이 너무 커서 강아지를 아무리 좋아해도 더이상 키울 수 없게 되버렸습니다.
정말 강아지는 키울 땐 그렇게 자식같고 이뻐서 좋지만 그 마지막 순간의 아픔을 생각하면 안 키우는게 낳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09/10/06 12:05
수정 아이콘
글 잘 쓰시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09/10/06 14:31
수정 아이콘
글 잘 쓰시네요.

우리집 돌돌이와 이별을 한 뒤로 ...
다시 개를 기르고 싶은 맘은... 있지만 -_-;
너무 빨리 이별해야 할 걸 알기에

요즘 회색앵무나 한 마리 기를 까 생각중입니다 -_-;;
YellOwFunnY
09/10/06 16:06
수정 아이콘
다들 강아지를 이별해 보신 경험이 있네요.
저도 우리 머털이가 오바이트를 하다가 털썩 주저앉는것을 보고 새벽3시에 동물병원까지 울면서 뛰어갔었는데,
결국 살리지를 못했더랬죠.

그 후로는 집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응급처치를 많이 배워두었답니다.
집에 14살짜리 푸들한마리가 있는데, 길어바야 2년 살것 같은데, 에효.. 마음이 아프군요.
카이레스
09/10/06 20:22
수정 아이콘
왜 제가 눈물이 나려 할까요.
INFINITI님의 심정이 제게도 전해졌나봅니다.
좋은 글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WizardMo진종
09/10/06 22:15
수정 아이콘
무라카미 하루끼 붓을 꺽게 만들 수준의 글이군요;;
눈팅매니아
09/10/06 23:10
수정 아이콘
멋지고 슬픈글이네요..
강아지를 키워보진 않았지만
글쓴분의 감정이 너무 와닿습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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