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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9/23 01:10:56
Name 루크레티아
Subject [일반] 고대사 토론의 간략 정리입니다.
우선 첫 당첨자가 된 책임감을 가지고, 그리고 happyend님의 의욕 충전(!)을 위해서 미력하나마 정리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고대사는 좀 밝혀지지 않거나 아직도 한참 피터지게 싸우는 부분이 많아서 아마추어로서 말하기가 엄청나게 힘든 부분입니다. 자료도 사실 우리나라의 자료 보다는 중국의 사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이 많아서 상당히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운 부분이죠. 그렇기에 happyend님 같은 굇수(!)급의 내공을 지니신 분들이 아니면 참 힘듭니다...

하지만 우선 판은 2개가 벌어졌고, 게다가 발제들도 처음에는 불판마다 2개씩이었으나 다른 분들께서 참여해 주신 덕분에 좀 늘어났으니 정리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happyend님께 이 짐을 죄다 지우는 것은 마치 이제동 선수에게 '닥치고 전 경기 다 뛰어라.' 라고 하는 격이나 다름이 없으니 필력도 부족하고 아는 것도 없지만 제가 정리를 해보겠습니다.


1. 삼한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들

삼한에 대한 거의 모든 전반적인 정보들은 happyend님의 첫 발제문에 이 보다 더 잘 설명할 수는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다른 분들께서 질문하신 내용을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한아님께서 질문하신 '마한과 그 마한을 지배하던 목지국은 왜 백제에게 그리도 허무하게 멸망 당했는가?'는 간단히 말하면 군사력을 갖춘 나라와 갖출 필요성이 별로 없었던 나라의 싸움이었기에 당연히 백제의 승리였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백제는 지금의 강원도 지방에 살고 있었던 말갈족과의 싸움으로 인해서 이미 고대 국가 중에서도 강대한 군사력을 갖춘 나라였고 고이왕 대에 이르러서는 왕권의 강화 마저도 이루어 낸 '알짜배기' 국가였습니다. 그렇기에 겨우 부족 국가들의 우두머리 격인 목지국과 그 부하들인 마한의 연합은 도무지 백제의 강대한 군사력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마한이 인구, 경제력 면에서는 백제를 분명 앞섰겠지만 군사력만은 넘사벽이었기에 이건 답이 없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信主SUNNY님께서 말씀하신 '왜 한반도의 북쪽 지방은 남쪽에 비해서 부족 국가의 수가 적었는가?' 입니다. 이것은 Tiffany님께서 설명해주신 내용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민족까지 수렵민족과 농경민족으로 나눌 이유는 없지만 자연 환경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부여와 고구려가 위치했던 북만주 일대는 지금에야 기술이 발달하고 농경이 자리잡았지만, 예전에는 추운 날씨에 키울 수 있는 작물이 별로 없었습니다. 따라서 부여와 고구려는 본격적으로 농경에 의지하여 나라를 꾸려가는 것이 애초에 자연적으로 불가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한나라와 가장 근접한 위치에 있었던 국가들이었기에 정복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필수로 강대한 군사력을 키워야만 했죠. 문제는 이 군사력이 뭘로 키워질까요? 농사도 안되서 재정도 그다지 풍족하지 않은 마당에 군사력은 키워놓았지만 이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옆 나라들을 정복해 가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부여와 고구려는 자연히 정복국가로 성장하게 되었고, 이러한 부지런한 정복이 결과적으로는 남녘의 고만고만한 나라들의 모임과는 정 반대가 되는 상황을 낳은 것입니다. 실제로 고구려가 건국하기 전에는 행인국 같은 소국들이 자리잡고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고구려에 정복당하게 됩니다.

세 번째는 김민규님께서 말씀하신 '중국의 국가들의 발전 과정' 에 대해서 정리하겠습니다. 삼한과 큰 관계는 없지만 세계 어느 곳이나 초기 국가 체제의 모습은 같기에 동일 범주에 넣었습니다. 우선 중국의 역사는 지금까지 공식적인 증거로 입증된 바로는 상나라(상나라와 은나라는 같은 나라입니다.)가 최초의 고대 국가입니다. 소위 4대 문명의 발원에서 항상 등장하는 황하의 그 국가죠. 물론 갑자기 이리두 유적지가 발견되서 상나라 이전의 하나라가 중국의 공식적인 역사라고 왠갖 떼를 쓰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리두 유적에서 그런 내용을 결정적으로 증명하는 유물이 발견되질 않아서 공식적으로 입장을 표명하지는 않고 있습니다.(만약 이리두 유적이 하나라의 유적이라고 판명되면 중국은 세계 최초로 문명화된 국가를 설립한 국가가 됩니다.) 그렇기에 하나라는 제껴두고 은나라에서부터 설명드리겠습니다.(아무래도 은나라가 익숙하실테니 앞으로는 은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중국의 역사서와 신화서만큼 설득력을 가진 책들도 없습니다. 신화에 나오는 3황 5제와 하나라의 시조라는 우, 마지막 임금이라는 걸에 이르기까지의 기록들은 정말 고대 부족국가의 우두머리들이 그럴듯하게 했을 법한 내용들이 세세한 내용까지 적혀있습니다. 그렇기에 중국의 사서를 본다면 고대의 국가 형태와 그것이 어떻게 발전하였는가가 잘 나와 있습니다. 우선 은나라의 경우에는 주변의 제후들을 중앙정부가 통치하는 형태였습니다. 이것은 주나라에서 실시한 봉건제도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은나라의 왕실은 제후국들을 관리하며 공물과 세금을 거두고 이민족의 침략으로부터 제후국들을 지켜주는 형태였습니다. 다만 그 제후들은 모두 은나라 왕실의 신하들이었고 주나라와 같은 인척관계는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삼한에 비유한다면 은나라 왕실은 마한의 목지국이 군사력까지 적절하게 갖춘 형태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들은 모두 주종관계였기에 은나라 왕실은 끊임없이 제후들에 대한 관리와 감독을 하면서 변방을 순시하기도 하고, 제후들을 견제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끝내 제후들의 세력을 견제하지 못하고 가장 큰 세력이었던 주나라에게 멸망당하고 맙니다. 은나라를 멸망시킨 주나라는 은나라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간파하고 세워진 나라였기에 곧바로 그 약점을 보완합니다. 바로 제후들을 임명하여 다스리되, 그 제후들에 왕실의 혈족을 심어놓고 왕실 주변의 제후들을 그 혈족들로 봉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주나라는 혈족들의 왕실에 대한 보호와 충성을 통하여 보다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게 됩니다. 상대적으로 강력해진 왕실의 힘 앞에서 다른 비혈족 제후들도 왕실에 복종할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주나라가 강력한 힘을 가진 고대 국가로 나아가는 계기가 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봉건제도 입니다. 김민규님께서 여쭈셨던 삼한과 봉건제도의 다른 점은 봉건제도는 곧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 체제를 정비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이었고, 삼한의 형태는 그저 원시적인 국가의 소극적인 통합 형태였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2. 가야에 대한 내용들.

antoninus_님께서 여쭈신 순장에 대한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하겠습니다. 순장은 죽은 자에 대한 고대 국가에서의 최고의 예우였습니다. 하지만 죽은 자를 위해서 산 자를 가장 비효율적으로 희생시키는 방법이었기에 이를 끝까지 지속시킨 가야는 국력의 커다란 약화를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순장은 왕족 뿐만이 아니라 일반 귀족들의 집안에서도 행해졌습니다. 신라의 경우에는 아찬이 죽자 그 집안의 노비들을 순장시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왕족 하나만 죽어서 그 주변인들을 순장한다고 하더라도 수십명의 엄한 생명이 죽어나가는 판에 귀족들까지 멀쩡한 사람들을 희생시켰으니 당시 그 손실이 알만 하죠? 게다가 가야는 안그래도 일손이 많이 필요한 농업국가였으니....이것은 제 살 깎아먹기에 지나지 않았던 우리 고대사의 안타까운 장면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야사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라서 토론의 발제가 별로 없었습니다. 물론 happyend님의 글이 가야사를 명료하게 정리하셔서 그런 부분도 있겠습니다. 발제문과 순장 부분만 보셔도 이번 토론에서는 충분할 듯 싶습니다.


3. 낙랑군의 위치.

가장 불꽃처럼 타올랐던(?) 내용인 낙랑군의 위치에 대한 토론입니다. 대략적으로 정리를 해보자면 우선 낙랑군의 위치는 유물과 유적들로 미루어보아 지금의 평안남,북도 일대를 아우르는 지역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고조선의 세력범위로 미루어보아 한 4군의 위치가 한반도 내부가 아닌 요동과 요서 지방에 있었을 것이다라는 의견도 있었습니다만, 낙랑군의 성격이 한나라의 직접적인 통치를 위한 군이 아니라 고조선 내부의 친한나라파가 자리잡고 정착하여 살았던 군이라는 것이 지배적이기에 중심 지역이었던 요동과 요서를 한나라가 직접 요동부를 설치하여 다스리고 그곳에 살던 친한나라파 세력들을 고조선의 남쪽 강역이던 한반도 북부로 이주시켜서 나머지 고조선의 영토를 간접적으로 다스리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끝까지 부득부득 우기고 싶었지만 역시 happyend님의 내공섞인 설명에 떡실신(...)당하며 조용히 토론을 마무리지었습니다...;;(하지만 통일이 되어서 좀 더 깊은 연구가 이루어 진다면 또 변할 것이라 믿습니다. 물론 통일되기 전에 이미 중국의 조작이 마무리될 듯 싶지만 말입니다....)


4.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평가

발제하신 Clostridiumbotulinum님이나 토론 하신 분들께서도 모두들 열을 올리시며 신라를 성토(?)하셨던 삼국통일 부분입니다. 사실 신라의 삼국통일은 명암이 너무나 극명하게 갈려서 아직도 역사학계에서도 논쟁이 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든지 잘한 부분이 있으면 못한 부분이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기에 신라의 삼국통일 역시 비판 받을 부분과 인정 받을 부분이 있습니다. 우선 다들 아시는 비판 받을 부분은 우리나라 영토의 엄청난 축소입니다. 신라의 통일은 대동강 이남의 영토만을 획득한 불완전한 통일이었고, 당나라의 혼란기에도 위쪽 영토를 수복할 생각을 전혀 안하고 있었으니(발해의 건국기에 신라가 치고 올라갔다면 분명 신라시대에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은 우리나라의 영토가 되었을 것 입니다.) 이건 두말할 필요가 없는 신라의 대실책이자 비판받아 마땅한 꺼리입니다.(당시 신라가 한 일은...절 짓고 종 만드는 점잖은 문화 정책이었지만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문화 정책이었습니다.) 또한 당나라를 굳이 끌어들여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점에서 전혀 자주적인 통일이 아니었고 이를 기초로 한 중국의 역사조작에 떳떳하지 못하다는 말씀도 계셨습니다.
지금까지는 개략적인 정리였고 이제 제 생각을 조금 덧붙일까 합니다.(이래저래 까이는 신라가 불쌍해서 조금 사족을 달아보겠습니다.) 우선 영토의 축소는 천년만년을 두고 까여도 할 말이 없는 뻘짓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당나라를 끌어들인 통일 정책은 당시 상황에서 신라에게는 생존을 위한 필사의 몸부림이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토론에서 말씀하신대로 당시 신라는 대야성도 함락당하고 당항성도 고구려, 백제 연합군에게 공격당하는 풍전등화의 상황이었습니다. 만약 당항성마저 빼앗긴다면 이는 곧 당나라와의 연락 두절을 의미하고, 하나뿐인 희망이 꺼져버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김춘추는 극단적이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을 하게 됩니다. 바로 피눈물 나고 비참한 일이었지만 당 태종에게 신라가 당나라의 반 속국임을 인정하고 SOS를 요청한 것이죠.(당의 지원을 얻기 위해서 김춘추는 당 태종에게 신라의 제도를 당나라식으로 바꾸고 아들을 당나라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이런 꼴을 겪으면서 살아남았던 신라였기에 겉으로는 당나라에게 충성하는 척 하고 있었지만 고구려가 멸망하고 나서 뻗어오는 당나라의 검은 손을 단호하게 쳐내면서 잃어버린 자신들의 자주성을 되찾게 됩니다. 만약 신라가 끝내 당나라의 세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속국화 되었다면 정말 신라의 통일은 역사에서 사라져야 할 우리 민족의 비극이었겠지만, 역사에 남을 전투들을 승리로 이끌며(매소성의 20만 대군을 물리친 싸움은 대단하죠.) 나름의 자주성을 지켜냈다는 측면에서는 충분히 평가받아야 할 일이라고 봅니다.


5. 이두에 대한 이야기.

happyend님과 azurespace님께서 토론을 벌이셨던 이두에 대한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이두는 아시는대로 설총이 집대성한 한자를 차용한 우리 고유의 표기법입니다. happyend님께서는 이두의 사용이 중,하급 관리들에게도 명령이 체계적으로 하달되는 상황을 낳았고 이것이 바로 신라의 삼국통일의 숨겨진 힘이라고 이야기 하셨습니다. azurespace님께서는 고구려와 백제 또한 그러한 표기법을 사용하고 있었으며 백제와 깊은 관련이 있는 일본에서도 이와 비슷한 가나가 만들어졌기에 생각을 달리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선 이 문제는 참으로 해결하기 힘든 난제입니다. azurespace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백제어나 고구려어의 사료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삼국간에는 통역을 두지 않았지만 중국과의 교역을 위해서는 통역을 두었다고 나와있습니다. 이는 곧 삼국간의 의사소통은 가능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했다고 해서 표기법마저 같은 표기법을 썼다고 하기에는 사료가 없기에 무리수가 있습니다. happyend님의 의견도 설득력은 있지만 azurespace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또한 버릴 수 없기에 확실한 자료가 나오기 전 까지는 오리무중인 난제입니다.


이상으로 대략적인 고대사 불판의 큰 줄거리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언급되지 않은 다른 여러가지 주제들도 있는데요, 우선 일본서기 문제는 귀염둥이님께서 정확하게 달아주셨기에 더는 말씀을 안드려도 될 듯 합니다. 메를린님께서 말씀하신 치우천왕의 이야기는 사실 위서 논란을 빚고 있는 환단고기가 주요 내용이기에 아직 학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내용입니다. 중국의 사서에는 중국측의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환단고기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내려져야 치우천왕에 대한 논란이 종지부가 찍힐 듯 합니다. 신라 왕실의 계보는 happyend님께서 가히 논문 수준으로 상세하게 설명해주셨기에 딱히 제가 사족을 달면 과유불급 상황이 올 듯 싶어서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날림 정리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무엇인가 빠지거나 더 궁금한 부분이 있으시면 다시 리플로 말씀해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정리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역시 글은 두 번, 세 번 읽을 때마다 느껴지는 내용이 많을 수록 좋은 글이며, 그렇기에 happyend님의 글이 좋은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므로 전 오늘부터 happyend님의 추종자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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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23 01:21
수정 아이콘
엄청나네요
다들 역사전공자신가요?
信主SUNNY
09/09/23 03:26
수정 아이콘
수고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막연하게 궁금했던 것을 물어볼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습니다.

사료같은 것을 잘 알지 못하고, 사료를 찾아본다한들 한자의 번역을 못하니 다른사람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번역한다면 그대로 휩쓸려 갈 수 밖에 없어 욕심은 나지 않지만...

우리역사를 좀 더 잘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교과서를 찾으면 알 수 있는 우리민족이나 한족의 역사보다는 위에 잠시 언급된 말갈족과 같은 지금은 국가를 형성하고 있지 않은 민족의 역사가 좀 더 궁금하기는 합니다. 제대로 공부하지 않다보니 뭔가 막연하거든요. 뭔가 다 그게 그거 같고...
09/09/23 03:50
수정 아이콘
개인적으로 눈팅만 하곤 있지만,
정리하시느라 고생하셨겠네요.
해피엔드님의 글도 엄청난 내공으로 쓰여진 좋은 글이지만,
이 글도 정리가 너무 잘되어있어서 그 불판에 관심있던 사람은 필독(!)해봄직한 좋은 글이네요.
윤성민
09/09/23 06:25
수정 아이콘
아 좋다 ^^
happyend
09/09/23 09:24
수정 아이콘
크헉...정리란걸 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지신 분이었군요.굉장히 고맙습니다.넙죽
술이라도 한잔 사드리고 싶을 정도입니다^^만....

중세사편부터는 저도 잘 모르는 형편이라 다들 마음껏 즐겁게 탕질을 쳤으면 좋겠습니다. 배울것도 많을 것 같아서,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고대사편은 아무래도, 물량공세면에서 저같은 히키코모리형 역사매니아가 유리한 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Clostridiumbotulinum
09/09/23 10:59
수정 아이콘
나당전쟁이나 매소성 전투에 대해 조금만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신라의 대당전쟁은 고구려 멸망 이후 당군이 대동강 이남은 넘기겠다는 최초의 약속을 깨고
웅진도독부와 안동도호부를 설치하면서 신라까지 점령하려 했기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약속이 제대로 지켜졌다면 신라가 당군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겠다는 생각은 아마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생존을 위해 당군을 끌어 들인 것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해 다시 당군에 저항하게 된 것으로 자주적 통일전쟁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전반적인 대당전쟁에서의 성과, 특히 매소성 전투에서의 승리는 신라군 스스로의 힘에 의한 것이라 볼 수도 없습니다.
애초에 신라 정도의 군사력으로 고구려까지 정복한 당군과의 전쟁에서 승리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입니다.
고조선이나 고구려(광개토대왕 집권시기)가 요동과 만주의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중국대륙을 위협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힘이 강대하였기 때문이라기 보다 그 시기의 중국이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상태라 외부에 영향력을 미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역사적으로 고조선(전국시대)은 한 무제에게, 고구려(위진남북조시대)는 당 태종에게 무너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당전쟁의 수행이 가능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토번국의 등장이지요.
6세기 후반에 혜성같이 등장한 토번국(지금의 티벳)에 의해 실크로드가 장악당하고 국경 침범이 잦아지자
설인귀 등 한반도 전선에 투입되었던 당군의 주력이 토번에 인접한 서역 전선으로 급히 이동하게 됩니다.
구멍이 뚫린 한반도 전선을 지키고 있던 것은 말갈의 용병들로 이들은 전투에의 의지도 의욕도 없는 군대였죠.
670년에 신라군은 고구려 부흥군 등과 연합하여 북진, 압록강을 건너 요동까지 진격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가
"어익후 우리가 너무 오버했군" 하며 다시 남하해 내려오는 해프닝을 벌입니다.
........물론 위의 대사는 웃자고 하는 얘기고, 요동에서 말갈군의 강한 저항에 진격이 막히기도 했었고,
진격해 봐야 그 지역을 방어하며 주둔할 군사력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겠지요.
광개토대왕 때 정복했던 광활한 중앙아시아의 영토를 장수왕 때 잃어버린 것과 같은 이치지요.
정복은 했으나 점령은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군사를 주둔 시키고 백성을 이주시켜 생활하게 해야 하는데
무리한 정복전쟁 탓에 그럴 힘도 없었고 애초에 정착이 가능한 땅들이 아니었죠.
광개토대왕이 군사를 끌고 가서 "너네 세금 안내면 또 쳐들어온다" 라고 겁을 주고 항복을 받아 내긴 했으나
광개토대왕 사후에 조공은 뚝 끊기고 심지어 장수왕은 국내성에 기반을 둔 귀족들 조차 장악하지 못해 평양성으로 천도하고 맙니다.
잠시 이야기가 샜지만 딱히 신라를 폄하하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결과만을 놓고 평가해서는 안되고
인과관계나 사서의 과장되고 왜곡된 부분을 제대로 파악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라의 대당전쟁이나 통일 업적에 대한 저평가는 단지 영토의 축소 같은 결과적인 부분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일들이 일어난 원인, 이유, 혹은 그러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던 원인, 이유등을 따져 보고 난 결론에 의한 것입니다.
더 객관적이고 다양한 시각에서 특정 사건을 바라보자는 의도에서 올리는 댓글이니
혹시 기분이 언짢으시더라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다크드레곤
09/09/23 11:35
수정 아이콘
참 pgr오면 많은 것을 알게 되어서 좋습니다..
박학다식한 분들이 너무 많은 듯..재밌게 읽고 갑니다~
루크레티아
09/09/23 13:12
수정 아이콘
Clostridiumbotulinum님// 절대로 신라가 까이는 것에 대해서 기분이 나빠서 그런 것은 아니니 오해 마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도 신라의 통일 자체를 그다지 탐탁찮게 생각하는 사람이니까요.

말씀하신대로 매소성의 싸움에서 이긴 것은 순수한 신라 본연의 힘만은 아닙니다. 신라 뿐만이 아니고 당시 그 지역의 유민들과 저항세력들이 힘을 모아서 이루어 낸 승리입니다. 토번의 전성시대 덕분에 당군의 힘이 분산된 영향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소성에 투입되었던 이근행의 20만 군사의 세력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시면 안됩니다. 당군 역시도 매소성에 당시 한반도 작전 수행의 전력을 투입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죠. 하지만 이것도 통하지 않자 토번 전장으로 불려간 설인귀를 다시 투입해서 기벌포의 일전을 치루지만 신라에게 기벌포에서마저 패하면서 끝내 안동 도호부를 평양에서 철수한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자주성'이라는 단어는 남의 보호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일을 처리하는 성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신라는 계림 도독부로 취급받으며 그 국가의 존립에 심대한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당나라의 맹약 위반은 차처하더라도 본인들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신라가 당나라에게 계림 도독부로 취급받는 굴욕을 받아도 찍소리도 못한 채로 그냥 가만히 있었다면 신라의 통일은 통일이라고 볼 수 없는 우리나라의 국치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굴욕에 저항하여 일어섰고 당나라라는 제국의 침략을 막아내었으며 결과적으로 그 제국보다도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다른 것은 다 못난 통일이었다고 하더라도 이 외세의 간섭을 배제하고자 일어난 부분 하나만큼은 분명 인정받을 만한 일이라고 봅니다.

어떠한 일에도 명암이 있듯이 신라의 밝은 부분은 그동안 너무 기존의 학계에서 띄워준 덕분에 최근에는 격하게 비판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어찌되었든 신라의 밝은 부분은 밝은 부분이기에 그것을 띄워준 것을 가라앉히는 것은 몰라도 깎아내릴 것 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크씨
09/09/23 13:54
수정 아이콘
정말 잘 읽었습니다 ^^ 역사적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박학다식한 분들의 좋은 토론을 보는 것 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되는 것 같아서요.

저는 개인적으로 근대사 토론이 열리면 고종황제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만..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종황제의 삶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한국 근대사 연구에서 뜨거운 불판 중 하나로 올라오고 있다고 들었기에..

중세사 파트에서도 좋은 토론글이 나오기를 바라겠습니다 ^^
남자의로망은
09/09/23 20:02
수정 아이콘
루크레티아님// happyend님//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두분 정말 사..사.. 존경합니다 넙죽~

두분의 팬이 되어드립죠~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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