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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23 03:26
수고하셨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막연하게 궁금했던 것을 물어볼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습니다.
사료같은 것을 잘 알지 못하고, 사료를 찾아본다한들 한자의 번역을 못하니 다른사람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번역한다면 그대로 휩쓸려 갈 수 밖에 없어 욕심은 나지 않지만... 우리역사를 좀 더 잘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교과서를 찾으면 알 수 있는 우리민족이나 한족의 역사보다는 위에 잠시 언급된 말갈족과 같은 지금은 국가를 형성하고 있지 않은 민족의 역사가 좀 더 궁금하기는 합니다. 제대로 공부하지 않다보니 뭔가 막연하거든요. 뭔가 다 그게 그거 같고...
09/09/23 03:50
개인적으로 눈팅만 하곤 있지만,
정리하시느라 고생하셨겠네요. 해피엔드님의 글도 엄청난 내공으로 쓰여진 좋은 글이지만, 이 글도 정리가 너무 잘되어있어서 그 불판에 관심있던 사람은 필독(!)해봄직한 좋은 글이네요.
09/09/23 09:24
크헉...정리란걸 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지신 분이었군요.굉장히 고맙습니다.넙죽
술이라도 한잔 사드리고 싶을 정도입니다^^만.... 중세사편부터는 저도 잘 모르는 형편이라 다들 마음껏 즐겁게 탕질을 쳤으면 좋겠습니다. 배울것도 많을 것 같아서,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고대사편은 아무래도, 물량공세면에서 저같은 히키코모리형 역사매니아가 유리한 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만)
09/09/23 10:59
나당전쟁이나 매소성 전투에 대해 조금만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신라의 대당전쟁은 고구려 멸망 이후 당군이 대동강 이남은 넘기겠다는 최초의 약속을 깨고 웅진도독부와 안동도호부를 설치하면서 신라까지 점령하려 했기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약속이 제대로 지켜졌다면 신라가 당군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겠다는 생각은 아마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생존을 위해 당군을 끌어 들인 것과 마찬가지로, 생존을 위해 다시 당군에 저항하게 된 것으로 자주적 통일전쟁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전반적인 대당전쟁에서의 성과, 특히 매소성 전투에서의 승리는 신라군 스스로의 힘에 의한 것이라 볼 수도 없습니다. 애초에 신라 정도의 군사력으로 고구려까지 정복한 당군과의 전쟁에서 승리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입니다. 고조선이나 고구려(광개토대왕 집권시기)가 요동과 만주의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중국대륙을 위협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힘이 강대하였기 때문이라기 보다 그 시기의 중국이 내전으로 혼란스러운 상태라 외부에 영향력을 미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제 역사적으로 고조선(전국시대)은 한 무제에게, 고구려(위진남북조시대)는 당 태종에게 무너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당전쟁의 수행이 가능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토번국의 등장이지요. 6세기 후반에 혜성같이 등장한 토번국(지금의 티벳)에 의해 실크로드가 장악당하고 국경 침범이 잦아지자 설인귀 등 한반도 전선에 투입되었던 당군의 주력이 토번에 인접한 서역 전선으로 급히 이동하게 됩니다. 구멍이 뚫린 한반도 전선을 지키고 있던 것은 말갈의 용병들로 이들은 전투에의 의지도 의욕도 없는 군대였죠. 670년에 신라군은 고구려 부흥군 등과 연합하여 북진, 압록강을 건너 요동까지 진격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가 "어익후 우리가 너무 오버했군" 하며 다시 남하해 내려오는 해프닝을 벌입니다. ........물론 위의 대사는 웃자고 하는 얘기고, 요동에서 말갈군의 강한 저항에 진격이 막히기도 했었고, 진격해 봐야 그 지역을 방어하며 주둔할 군사력도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겠지요. 광개토대왕 때 정복했던 광활한 중앙아시아의 영토를 장수왕 때 잃어버린 것과 같은 이치지요. 정복은 했으나 점령은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군사를 주둔 시키고 백성을 이주시켜 생활하게 해야 하는데 무리한 정복전쟁 탓에 그럴 힘도 없었고 애초에 정착이 가능한 땅들이 아니었죠. 광개토대왕이 군사를 끌고 가서 "너네 세금 안내면 또 쳐들어온다" 라고 겁을 주고 항복을 받아 내긴 했으나 광개토대왕 사후에 조공은 뚝 끊기고 심지어 장수왕은 국내성에 기반을 둔 귀족들 조차 장악하지 못해 평양성으로 천도하고 맙니다. 잠시 이야기가 샜지만 딱히 신라를 폄하하자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결과만을 놓고 평가해서는 안되고 인과관계나 사서의 과장되고 왜곡된 부분을 제대로 파악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라의 대당전쟁이나 통일 업적에 대한 저평가는 단지 영토의 축소 같은 결과적인 부분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일들이 일어난 원인, 이유, 혹은 그러한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던 원인, 이유등을 따져 보고 난 결론에 의한 것입니다. 더 객관적이고 다양한 시각에서 특정 사건을 바라보자는 의도에서 올리는 댓글이니 혹시 기분이 언짢으시더라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09/09/23 13:12
Clostridiumbotulinum님// 절대로 신라가 까이는 것에 대해서 기분이 나빠서 그런 것은 아니니 오해 마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도 신라의 통일 자체를 그다지 탐탁찮게 생각하는 사람이니까요.
말씀하신대로 매소성의 싸움에서 이긴 것은 순수한 신라 본연의 힘만은 아닙니다. 신라 뿐만이 아니고 당시 그 지역의 유민들과 저항세력들이 힘을 모아서 이루어 낸 승리입니다. 토번의 전성시대 덕분에 당군의 힘이 분산된 영향도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소성에 투입되었던 이근행의 20만 군사의 세력을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시면 안됩니다. 당군 역시도 매소성에 당시 한반도 작전 수행의 전력을 투입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죠. 하지만 이것도 통하지 않자 토번 전장으로 불려간 설인귀를 다시 투입해서 기벌포의 일전을 치루지만 신라에게 기벌포에서마저 패하면서 끝내 안동 도호부를 평양에서 철수한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자주성'이라는 단어는 남의 보호나 간섭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일을 처리하는 성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신라는 계림 도독부로 취급받으며 그 국가의 존립에 심대한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당나라의 맹약 위반은 차처하더라도 본인들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신라가 당나라에게 계림 도독부로 취급받는 굴욕을 받아도 찍소리도 못한 채로 그냥 가만히 있었다면 신라의 통일은 통일이라고 볼 수 없는 우리나라의 국치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한 굴욕에 저항하여 일어섰고 당나라라는 제국의 침략을 막아내었으며 결과적으로 그 제국보다도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가 되었습니다. 다른 것은 다 못난 통일이었다고 하더라도 이 외세의 간섭을 배제하고자 일어난 부분 하나만큼은 분명 인정받을 만한 일이라고 봅니다. 어떠한 일에도 명암이 있듯이 신라의 밝은 부분은 그동안 너무 기존의 학계에서 띄워준 덕분에 최근에는 격하게 비판받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어찌되었든 신라의 밝은 부분은 밝은 부분이기에 그것을 띄워준 것을 가라앉히는 것은 몰라도 깎아내릴 것 까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09/09/23 13:54
정말 잘 읽었습니다 ^^ 역사적 사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박학다식한 분들의 좋은 토론을 보는 것 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되는 것 같아서요.
저는 개인적으로 근대사 토론이 열리면 고종황제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만..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종황제의 삶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한국 근대사 연구에서 뜨거운 불판 중 하나로 올라오고 있다고 들었기에.. 중세사 파트에서도 좋은 토론글이 나오기를 바라겠습니다 ^^
09/09/23 20:02
루크레티아님// happyend님// 역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두분 정말 사..사.. 존경합니다 넙죽~
두분의 팬이 되어드립죠~ 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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