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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09/09/03 15:09:55
Name happyend
Subject [일반] 두둥!PGR 역사토론 공지
전체적인 목차를 정하고 세부주제를 의견을 바탕으로 정해봤습니다.(물론,지극히 저의 주관적인 눈으로 선택한 것이기도 합니다.)
순서나 방식에 대한 의견을 주시거나 쟁점에 대한 의견을 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의견이 없으면 제 주관대로 할겁니다.푸흐흐
정리되는대로 곧 공지를 통해서 토론 날짜와 관련주제(제가 제1발제자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생각도 듭니다만)를 발표하겠습니다. 관련 책이나 논문들도 함께 공고하고요, 공고할 때마다 댓글로 논문이나 책을 더 올려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1)고대사
-삼한시대에 대한 평가
-고대사미스터리
-가야 멸망이후
-신라 귀족의 계보 정리(사로6촌부터 진골,성골논쟁까지)

2)중세사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와 인조반정의 의미
-조선성리학에 대한 재평가
-사림파의 재평가

3)근현대사
-개화기 제 세력에 대한 재평가
-친일파 문제
-이승만 정부의 재평가
-박정희 정부의 재평가
-신구부와 광주민주화운동
-87년 민주화 운동
-신자유주의에 대하여


4)기타 쟁점토론
-위서논란
-우리나라 국호의 유래
-대륙백제
-뉴라이트의 역사관
제국주의는 식민지에 자본주의를 강제로 이식했지만 그 댓가로 식민지는 자본주의가 역사적 단계를 뛰어넘어 발전합니다.(이것은 역사의 보편)
이를 도덕적으로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사실,이 논쟁은 오래된 주제입니다.성장이냐 분배냐라는 이름으로 거듭되어 온.따라서 뉴라이트의 주장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자체가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렇습니다. 다만 뉴라이트 쪽에서 학술적인 문제를 너무 정치적으로 표현하다보니 논점이 다르게 형성된 것 같은데요,바로 역사관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이 항목만 따로 분류해봤습니다.(이견이 있으면 반영하겠습니다)

------------------------------------------------------

이전 글에 몇분의 의견 또는 질문을 더 올려주신 것도 참고했습니다만,제가 아는 것은 짤막하게 정리하겠습니다.
1)백제와 고구려의 인구수 문제
-대륙백제 항목은 따로 떼어 놨습니다.
다만 인구문제만은 제 의견을 보태면,
“고구려,백제 멸망시의 인구를 예를들자면,
<구당서>기준으로 고구려는 약 69만호, 백제는 약 76만호 였던것으로 전해집니다“

인구밀도가 고구려가 낮은 것은 지역적으로 평야지대가 발달하지 않은 점이 가장 컸고요, 그 외에 수나라와 당나라와의 기나긴 전쟁(더 거슬러 올라가 진나라,한나라까지)은 인구감소의 주요인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변방의 백성들은 전쟁없는 곳으로 탈출하기도 했고요.

백제의 인구가 증가한 요인은 중국과의 전쟁같은 대규모 전쟁이 없었고요, 신라나 고구려와의 국지적 전쟁에도 일본,가야의 용병을 쓰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특히 벽골제(벼의 고을이라는 뜻의 볏골에 만들어진 제방)나 일찍부터 발달한 천문기상학,그리고 유물에서 보이는 것처럼 다른 어떤 나라보다 일찍 발달한 선진농법인 논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인구가 증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다 백제가 마한 60여개의 소국을 전부 통일한 것은 아니라 자체적으로 지역자치향촌자치조직처럼 영산강유역에 소국들이 있었는데요,나주가 그 대표적인 지역입니다. 이들을 바탕으로 전쟁의 무풍지대에서 비옥한 평야를 바탕으로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백제 성왕때에 이르러 백제 남부도 완전한 영향력아래에 있게 되는데요, 이 때문에 인구는 고구려를 능가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인구밀도가 논농사지역인 백제가 수렵중심의 고구려보다 높은 것은 당연합니다.(대륙백제설에서 인구기준은 저로선 정말 납득이 안됩니다.엄밀히 말씀드리면 대륙백제설과 임나일본부설과 비교하면 비슷한 논리와 비슷한 전개로 보입니다.)

2)현량과
-조광조의 개혁정치의 핵심중의 하나인 ‘현량과’에 대해 제 의견을 잠깐 적겠습니다.
말씀하신분의 의견은
“현량과 같은 제도가 국사책에는 신선하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쓰여 있지만 사실은 똑같은 자기 세력 키우기, 세력 만들기의 일환일 뿐이었는데 말이죠. ”
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어떤 정치도 자기세력을 대변하지 않는 정치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현실의 발전과 미래가치와 얼마나 부합하는가의 문제이기 때문에 역사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현량과의 근원적 이데올로기는 송나라 유학(신유학)의 가치에서 시작됩니다. 과거제도는 수나라가 만들고 당나라가 정착시킨 제도인데요, 그러다보니 당나라를 자기부정하고 만들어진 송나라에서는 과거제의 단점을 부각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유학이 추구하는 정신은 ‘사대부정신’즉, 신귀족주의입니다. 그러니까 품위있고,지혜를 갖춘 ‘철인통치’가 우매하고 글자 몇 개 외워서 합격한 공부벌레들보다는 훨씬 더 세상을 조화롭게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현량과는 그래서 지역향촌자치조직의 추천을 통해 관리를 뽑는 것입니다.
저는 이문제를 가끔 우리나라 사법제도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때가 있습니다. 사법시험으로 뽑힌 사람들의 지혜를 보강하기 위해 ‘추천 법관’제도나 ‘선거 검사’제도가 보완되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물론,제 공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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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
09/09/03 15:15
수정 아이콘
에.. 일단 현대사의 식민지배와 분단으로 인한 왜곡된 사관으로 모든 시대를 평가하는 우를 범하진 말아야 겠습니다... 뻔한 얘기입니다만
몽키.D.루피
09/09/03 15:30
수정 아이콘
지난 주 역사스페셜 만주 특집에 나왔던 요하문명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습니다. 고대사 부분에 해당하는가요? 요하, 홍산문명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중국과는 별개의 독자적인 문명에 의해 탄생된 민족이라는 건데, 심지어 그 문명들이 황하 보다 1000년 이상 앞서 있다는 사실이 정말 놀라웠거든요. 그리고 그 문명의 특징(빗살무늬 토기, 비파형 청동검, 암각화등)이 한반도와 만주일대에서만 발견되는 고조선의 전형적인 모습과도 일치하고 고구려 성의 특징과도 일치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중국 사학자들도 황하를 버리고 요하문명을 자신들의 문명의 시작으로 놓고 심지어 치우를 자신들의 3대 시조에 슬며시 끼워놓았다는 데서 동북공정의 치밀함에도 놀랐구요. 실상 홍산문명과 중국 한족들의 문화적 차이는 확연한데도 말이죠.
09/09/03 15:34
수정 아이콘
몽키.D.루피님// 치우는 동북공정과는 상관없죠; 묘족의 신화에 나오는 인물이라 소수민족 융화차원에서 3대시조에 넣었을뿐
BoSs_YiRuMa
09/09/03 15:42
수정 아이콘
김진명씨의 소설을 즐겨보는 입장인지라..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싶군요.
또한, 소설로 인한 상상력이 기반인지라;; 제2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정말로 있엇는지(CIA와 중국의 비밀회담- 그들이 정해놓은 최후의 시간까지 핵포기를 북이 안하면 김정일을 암살하고 평양-원산 이북을 중국의 영토로 편입시킨다는내용),중국의 북한 갉아먹기가 정말로 진행되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Siriuslee
09/09/03 15:55
수정 아이콘
고구려..

구글어스나 기타 지도에 지금 '요하' 라고 알려진 강 주위 지역은 남한의 모든 평야를 합친거보다 넓은 평야지대입니다.

보통 '국사' 책에 그려진 고구려 영토의 서쪽 경계선 부분쯔음입니다.

고구려에 평야지대가 별로 없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 같은데요 ^^;
(물론 농업이 발달했었다는 기록같은것은 없습니다. 그 넓은 평야를 초지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크지요)
땅과자유
09/09/03 16:00
수정 아이콘
우와.. 전 죄송하지만 그냥 좀 나중에 올리시는 후기 혹은 토론글 열심히 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좋은 시도네요. 참여하시는 모든 분들이 항상 건강하시길..
BoSs_YiRuMa
09/09/03 16:16
수정 아이콘
참.소설의 한계가 있어서인지는 몰라도, '천년의금서'라는 책에 우리나라 국호인 한은 어디서 왓는가 에 대해서 쓰여지고 있는게 있습니다만, 역시 소설이라는점이;; (그분의 소설은 소설인지 진실인지 모를것들이 워낙많아서;;)
희망의 술을 따
09/09/03 16:17
수정 아이콘
좋은 토론을 구경할 수 있겠군요. 모두들 미리 감사드립니다.
happyend
09/09/03 17:04
수정 아이콘
몽키.D.루피님// 역사스페셜을 보지는 못했지만, 고대문명은 생각보다 광범위한 지역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던 때(그러니까 청동기 시대 국가 만들어지고,국경이 형성되기 전까지)에는 문명의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문명사이엔 유사성과 공통성이 엄청 많습니다. 그래서 빗살무늬토기 지역도 두개의 패턴으로 존재해서 북방을 따라 흐르는 패턴과 남방(바닷길로 오간)을 따라 흐르는 패턴이 다르지만, 스웨덴과 우리나라가 같은 패턴에 묶이기도 합니다.사람도 그렇듯이 여기저기 오가다 정착하다를 반복했습니다.
가령, 진주 남강유역의 유적지만 보아도 그곳을 스쳐간 문명의 갯수가 여럿입니다. 남방,북방,동북방,서북방 등등
그래서 고대사는 '우리것 네것'의 개념으로 보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물론 제 의견은 그렇습니다.
(중국 동북공정이 우리나라 극우를 먹여살린다고,누가 얘기하더군요)
몽키.D.루피
09/09/03 17:15
수정 아이콘
happyend님// 아, 그렇군요. 생각해보니 특정 고대 문명을 단순히 자기 나라만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있겠군요. 하지만 워낙 그런식의 교육에 익숙해 있던 터라..
역사스페셜에도 스웨덴을 비롯한 빗살무늬의 북방루트가 나왔었습니다. 다큐의 요지는 그러한 북방루트는 한족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고 그러므로 중국이 요하를 자신의 문명의 시조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honnysun
09/09/03 17:18
수정 아이콘
와 너무 참여하고 싶지만 곧 타향에 가게 되서 ㅜㅠ
멀리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09/09/03 17:29
수정 아이콘
Siriuslee님// 요하지역은 지금은 거대한 평야지대지만 고대에 특히 고구려시대에는 거대한 택지였습니다.(늪지대) 즉 사람이 살수없고 지나가기도 힘든 지역이였습니다. 고구려뿐 아니라 만주에 자리잡은 나라 대부분 요하를 국경을 삼았던 이유도 이런 택지를 이용한 방어에 유리함때문이었습니다.
사실좀괜찮은
09/09/03 17:33
수정 아이콘
올레... 실학쪽이라면 조금 찝적대보기라도 할 수 있었는데ㅠㅠ

이승만 시절이야 다들 잘 씹으실 듯 하고...
나이트해머
09/09/03 19:26
수정 아이콘
고구려의 생산성이라... 요동 일대는 세계적인 콩의 생산지이고 대동강 유역은 한반도 내에서도 꽤나 알아주는 농경지지요. 현도 일대는 동아시아 최대 철 생산 지역이고.
하지만 고대의 요동는 상당부분이 늪지대였다는 게 깎아먹습니다.
그래도 다시 생각해 보면, 한참 나중이지만 여진족이 금나라를 세우고 인구를 세었을 때 여진족 인구수가 450만(출처 : 전쟁과 역사 2권, 임용한 저)였고 이때 고려의 인구수가 600만 선이라고 했었죠.
고구려가 여진족(고구려 시절의 물길, 말갈족. 한반도 중부의 영서, 영동말갈과는 다른 계통입니다. 이쪽 말갈은 토착세력.)을 전부 휘하에 부린 것이 아니란 점을 생각한다 해도 무시할 수 없는 인구죠. 대동강 유역의 생산력과 인구를 빼고도 저정도의 인구가 나왔습니다.
이점에서 볼때, 요동-대동강 일대의 나름 괜찮은 농업생산 지역을 확보하고 여기에 여진족들까지 거느린 고구려라면 350만 이상의 인구수도 불가능하진 않겠죠. 백제보다 적은지도 의심스러운 게, 당과 신라는 각각 요동, 대동강변의 고구려인들을 흡수했지만 그 외의 지역까지 손을 뻗지는 못했습니다. 백제와 비슷한 400만도 불가능하진 않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09/09/03 19:45
수정 아이콘
나이트해머님//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평야는 호남평야가 아니고 대동강 지역이죠.
그러나 호남평야랑 대동강평야랑 생산성을 따진다면 호남평야가 월등히 앞섭니다.
그 이유는 강수량의 차이에서 나옵니다.
호남평야 아래에는 지리산을 비롯한 소백산맥이 구름을 잡아줘서 겨울하고 초봄같이 가장 비가 안올때 강수량이 다른지역에 비에 비교적 많습니다. 그러나 대동강평야는 지리산같이 구름을 잡아줄 산이 없기 때문에 장마철을 제외하고 1년내내 비가 안옵니다. 대동강지역은 우리나라에서 산간지역을 제외하고 가장 비가 안오는 지역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넓은 평야에 비해 생산량이 그닥 좋지 않고요 북한에서 매년 가뭄이 들어 식량부족에 시달리는 것도 이런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백제에 한강지역 금강지역 호남평야 생산량에 비하면 고구려의 생산량은 턱없이 모자라죠
happyend
09/09/03 20:05
수정 아이콘
대동강 유역의 비옥도가 어느정도인지 비교분석까지할 자료는 없지만, 이곳은 초기부터 벼농사가 발달하였고,그래서 인구수가 상당히 많았나 봅니다. 평양성(을 포괄하는 범위까지 합한 인구)의 인구수가 최대 100만까지 집계되는 자료를 봤습니다.(이 자료를 찾으려고 했는데,2차저작만 있어서 근거논문이나 자료를 제시 못한 점 죄송합니다만)
당나라 설인귀는 고구려 정복후 평양성에 도착해서 무려 20만명을 영주지방으로 강제이주시킴으로써 고구려에 대한 중국의 뿌리깊은 증오심을 표현하기도 합니다.(이때 고구려 관련 자료의 분서가 있었다고도 합니다) 결국 영주로 이주한 세력의 리더격인 대조영집안에 의해 발해가 건국되는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지만.
지중해 무역도시로 끝발을 날리던 트로이의 인구가 불과 1만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동양의 성들은 농경국가답게 그 자릿수가 큰 것 같기는 합니다.
어찌되었든 고구려는 말기에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졌습니다. 실제 인구수가 저 정도였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그것만은 사실입니다.오히려 백제가 자신의 강력한 힘 한 번 써 볼 기회없이 무너진 것이 더 어처구니 없을지경입니다(그 이유에 대한 글은 예전에 한 번 쓴 것 같아 생략하겠습니다)
내일은
09/09/03 20:06
수정 아이콘
저는 현대사 외엔 찝적거릴 것도 없네요. 학부 때 주로 팠던 부분이 1870년대 이후 영, 미 경제라...
09/09/03 20:17
수정 아이콘
고대의 요하의 늪지대를 요택이라 하는데 그럼 요택에 관한 역사 이야기를 하자면
만주지역과 한반도는 지역적으로 알타이보다 황하지역이 훨씬 가까운데 인종적으로나 언어적으로나 알타이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유도 이 요택에 있습니다. 몽골지역이 고지대이기는 하나 급경사가아닌 완만하게 올라가 있기 때문에 이동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고 특히 말타고는 금방 이동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황하에서 한반도까지 올려면 요택을 지나야 하는데 선사시대에는 이 지역을 지나는 특별한 교통수단이 없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청동기문명도 중국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스키타이에서 받아드리면서 청동기를 받아드리는 시기는 중국과 비슷하고 독자적인 청동기문화가 발달할수가 있었습니다.(철기문명부터 만주와 한반도는 근대까지 중국에게 문화를 받아드리게 됩니다.)
초록불
09/09/03 20:34
수정 아이콘
예전에 역스에서 다루기도 했습니다만 625개전당시 북한군의 3일서울 지체도 꽤나 이유에 대한 논박이 있는걸로 알고있습니다.
그리고 중세사에대한 부분에서 고려사가 아예 빠졌군요... 조선사보다 더 베일에 가려진 것이 고려사인데.
고려사에서 흥미있고 비밀에 싸여진 부분이 바로 무신정권시대가 아닐까 싶네요... 무신정권시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봤으면 하네요.
또한 고조선 시기부터 현대까지의 갖가지 대첩들을 모아서 전쟁모음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재밌겠군요.
더불어 위서논쟁글은 개설 안하심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환빠들이란 어휴... 논쟁이고 자시고 할 것이 없이 환단고기,규원사화,단기고사는 100% 위서이고 , 그나마 논쟁 할만한 책이라면 최근 화제가 되고있는 화랑세기 정도가 되겠네요.)
만달라
09/09/03 20:44
수정 아이콘
구당서에 따르면, 고구려멸망당시 인구는 약 69만여호로 집계됩니다.
그러나 당시 당군은 고구려 전역을 점령한것이아닌, 요동일대의 주요성들과 평양을 비롯한 수도권을 점령한것에 지나지 않기에 정확한 수치라고 보기는 힘든면도 있습니다.
당시 부여성일대와 동북쪽은 아직 저항이 거센탓에 당나라가 보장왕을 닥달할정도였으니까요.


고구려인구를 보다 정확하게 계산하자면 크게 두가지 방법을 제시하고싶군요.

첫째는, 건국초기 한의 요동,낙랑,현도군과 같은 한의 군현들의 인구기록을 토대로 계산해볼수가 있습니다.

<한서지리지>에따르면, 요동군 7만여호 현도군 5만여호 낙랑군 4만여호로 나와있으며,
<후한서군국지>에따르면, 요동군 6만여호 현도군 8천여호 낙랑군 6만여호로 나와있습니다.

물론 저 기록들이 백프로 정확하다고 장담할수는 없습니다만, 당시의 고구려인구를 추정하는데에 도움이될거라 인용해봤습니다.
고구려는 건국초기부터 활발한 정복전쟁으로 영토를 넓혀왔는데요, 아마 중앙정부로부터 멀리떨어진 한4군들을 압박하며 상당수의 인구를 흡수했을것으로 추측됩니다. 위의 기록만으로도 당시 요동일대에는 16만~20여만호정도의 인구가 있었음이 확실해보이는군요.
훗날 요동일대가 평양일대와 더불어 가장중요한 지역이되는것을 감안하더라도, 멸망당시의 69만호이상의 인구는 허황되어보이진 않습니다. 따라서 이옥교수와같은 몇몇학자들의 69만호의 호는 호가아닌 명으로 계산해야한다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보입니다.

두번째는, 당시 고구려가 어느정도의 병력을 보유하고있었느냐? 로 추정해볼수 있습니다.

남아있는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는 강병 30만으로 당에 대항했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실제로 당태종이 요동성을 점령했을때 연개소문은 15만대군을 보내지만 패퇴했다는 기록도 남아있지요.
따라서 당시 요동일대에만 약 20여만의 고구려군이 작전중이었음을 짐작할수있습니다.
아마도 나머지 10여만은 주로 남쪽국경이나 북방변경을 지키고있었을것으로 보이는군요.

여기서 중요한것은 한국가의 전체인구중에서 대략 몇프로까지 동원할수있는가?하는 문제입니다.
강병30만이라하면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여군이 포함되있을 가능성은 낮다고 보기에, 성인남자30만이 당시 고구려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정도였는지를 계산해봐야합니다. 여기서 멸망당시의 대략70만호를 토대로 계산해본다면,
한호당 5~6명으로 잡아서 약 350만~400만내외로 계산됩니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전체인구중 군인비율은 약 10%내외가 되는군요.
근대적인 총력전의 개념이 없던 고대임을 감안했을때 10%내외의 동원률은 허무맹랑해보이진 않는다고 여겨집니다.


대충 끄적여봤습니다만, 제대로 정리가 되지못한 느낌이네요. 백제에대해서도 좀더 논하고싶습니다만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루크레티아
09/09/03 22:37
수정 아이콘
음...현량과에 대한 관점은 역시 여러가지로 볼 수 있겠군요.
물론 향촌 자치로 다져진 경험 많은 인재들을 추천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괜찮지만...당시 사림파라는 것이 결국에는 고루한 주자학에만 매달려있고, 주자학 만세인 질럿들로만 이루어 진 꽉 막힌 녀석들만 추천을 받고 올라왔다는 점을 볼 때에는 아무리 젊고 유능한 인재들이었더라도 결론적으로는 조선의 머리가 굳어지는데에 큰 일조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happyend님의 토론 주제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많이 배워가는 토론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탈퇴한 회원
09/09/04 00:28
수정 아이콘
좋은 토론 기대하겠습니다 ^^
파란별빛
09/09/04 01:11
수정 아이콘
현실로 직접 만나서 토론하는 건가요?
09/09/04 02:04
수정 아이콘
음... 올것이 오는군요(?)
만약에 오프모임을 하게 된다면, 그냥 가서 청강(도강이 되는건가... 하아...)만 해도 괜찮겠지요?
제가 역사쪽으론 너무 약해서. ^^;;
happyend
09/09/04 07:35
수정 아이콘
절대로,절대로 직접 만나는 일은 없을 겁니다.(제가 워낙...은둔형....부끄럼쟁이라)
물론 다른 분들이 만나시는것은 환영입니다만.

일종의 '댓글토론'이 될 것입니다.
피지알에 서식(후후후^^)하는 강자,초절정 고수들을 소환하면 좋겠고, 아니어도 평소 궁금한것들을 격의없이 나누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역사가 '떡밥'거리라서 토론하면 안되는 것이 정치,종교,역사...라고 하는데, 한 번 해보는거죠.후후후
09/09/04 15:33
수정 아이콘
그야말로 굇수분들의 대격돌 예고편이군요! 상상만 해도 눈과 두뇌가 즐거울 거 같습니다 >.<
권유리
09/09/04 21:52
수정 아이콘
드디어 오는군요 . 이것만 기다렸다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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