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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6/26 18:10
감전주의님// 채월,창월 두 완결난 시리즈만 해도 총 17권이라... 제가 쓴건 정말 엄청나게 요약을 한 것이니 나중에 시간나시면 동네 책방에 가셔서 읽어보심도 괜찮을 것 같네요. 다만 장르소설 특성상 뭘 배운다거나 깊이있게 읽고 고찰한다기 보단 그냥 슥 읽어보기에도 좋아요.
09/06/26 18:11
제가 불교에서 배운바로는 선, 악은 정해진 바가 없다고 배웠습니다. 님의 말씀대로 언제나 상황, 결과, 과정이 변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어떤 마음으로 행동을 하였는가가 중요하고, 어떤 마음으로 인생을 사는가가 중요하다고 배웠습니다.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 타인을 자신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다만 이는 제가 이해한 수준입니다. =_= 제가 들은 이야기의 진의가 어떤지 확신은 없습니다.) 제 스승님이 해주신 말씀중 한 가지가 '능력이 없는 것도 죄다.' 입니다. 능력이 없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기 때문이지요. 능력이 없는 이유는?? 게으르기 때문이겠지요. 보통... 어떤 장애인이라도, 아무리 배운바가 없어도 자기 밥값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진정한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지혜도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지혜를 갈고닦아야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히지도 않고 자신이 피해를 입지도 않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지요.
09/06/26 18:19
KnightBaran.K님// 불교에 관해 잘 아시면 답변부탁드립니다.
환생에 관해서 불교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내가 다시 태어난다해도 나의 대한 기억과 몸이 아닌데 환생이라고 볼 수 있나요? 환생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와 죽어서 다시 환생의 나와 모두 다른 생각, 기억, 몸을 가지고 있는데 이걸 환생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그리고 억겁의 세월을 주로 언급하던데 우주의 나이는 130억년 정도로 겁의 시간에 비해 너무나도 극소 합니다. 겁의 시간은 빅뱅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나요? 그리고 득도하면 스스로 부처가 될 수 있는데 무엇때문에 허상에다가 절을 하나요? 자신이 부처가 될 수 있는데 부처나 보살이 되려면 절을 꼭 해야하는건가요?
09/06/26 18:43
Benjamin Linus님// 불교는 불상을 섬긴다기 보다는 자신의 목표(?) 로서 그 불상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는다고 들었습니다.
다른 신앙과는 차이가 있죠.
09/06/26 19:06
Benjamin Linus님// 불교도가 아니라 정확히는 모르지만 깨달음을 얻은 자에 대한 (일종의) 존경입니다. ^^;
그래서 반드시 절을 할 필요도, 불상을 모실 필요도 없고, 꼭 절에 가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역시나 일종의) 수련의 의미로 절을 하거나 경을 외우거나 읊는 거죠.
09/06/26 19:09
Benjamin Linus님// 불교에서 환생은 업(카르마)에 의한 윤회의 개념으로 보는게 맞을 겁니다. 모든 생명체는 6도 (천상, 인간,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에서 자신의 업에 따라 다시 태어납니다.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이런 윤회의 업을 끝내고 진정한 자아를 찾는것 즉 '성불'입니다. 처음 석가께서 가르침을 주셨을때는 개인의 깨달음과 수련을 중시하는 것이 불교였지만 석가모니께서 열반에 드신 후 제자와 신도들에 의해 종교의 형태를 가지면서 불상도 제작되고 각종 경전이 편찬되고 예불을 드리는 것이 생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겁이라는 시간은 정말 엄척난 시간입니다. 천지가 개벽하고 다시 한 번 개벽하는 시간이니 얼마나 긴 시간인지 모릅니다. 제가 지옥에 단단한 돌로 된 산이 있는데 속세의 시간으로 1년에 1번 선녀(이 부분이 잘 기억이 안나서요)가 내려와 옷으로 그 산의 꼭대기를 스치면서 그 산이 닳아 없어지는 시간이 겁이라고 설명들었던 것 같습니다. 개인의 깨달음을 중시하는 초기 소승 불교에서 대중의 구제를 중요시하는 대승 불교가 생겨나고 그러면서 개인이 깨닫는 것보다 부처님의 법력으로 대중을 구제하는 종교적 색채가 짙어지면서 불상에 대한 예불등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09/06/26 20:08
불교는 크리스트교나 이슬람교 같은 믿음의 영역과 유교 같은 학문의 영역의 중간에 있는 종교입니다.
불교도의 가장 큰 목표는 '믿음'이 아닌 '깨달음'인 것만 봐도 타 종교와는 목적의 차이가 있죠.
09/06/26 23:50
Benjamin Linus님// 나에 대한 기억과 몸은 아니고 새로운 생은 분명히 맞습니다. 하지만 불교에는 '업'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리고 '습'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무엇인고 하니... '업'은 자신이 행한 일의 결과입니다. 그것은 영혼에 새겨진다고 합니다. '인과응보'라고 얘기 들어보셨죠? 인과율, 인과의 법칙. 불교에서는 이 세상은 그 인과의 법칙이 확실히, 철저하게, 정확히 지켜진다고 합니다. 그러면 왜 이 생에서 악행을 저지르고도 잘 사는 사람이 있느냐....그 인과의 법칙이 이 생에 한해서만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전생, 후생에 걸쳐서 지켜지기 때문에 현생만 두고 본다면 인과의 법칙이 명확히 지켜지지 않을 수도 있지요. 모든 생을 걸쳐서 본다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지켜진다고 합니다. 이러한 '업'이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에 윤회를 해도 그것은 자신이라 할 수 있구요. 또 한 가지. '습'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습관이라고 볼 수 있는데, 행동의 습관뿐만이 아니라 마음, 그리고 무의식에 그리고 영혼에 새겨진 습관까지 포함합니다. 이런 습은 일종의 고정관념, 편견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라서 불교에서는 이것도 제거해야 성불에 가까이 가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러한 습도 따라가게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번 생에 이런 환경에서 이런 몸을 가지고 이런 부모들에게서 태어나게 된 것 자체가 자신이 전생에 지어놓은 인연, 업보의 결과이고, 그 인연이 그대로 이 생에서도 만나게 됩니다. 이런 많은 이유로 전생과 이번 생은 전혀 다른 생이지만 같은 영혼이 사는 생이라고 합니다. 위의 업, 습 모두 영혼에 새겨진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불교에서는 우주도 윤회를 하는 개체로 봅니다. 빅뱅은 그 중 우주의 탄생이고 우주도 소멸하겠지요. 그러므로 겁의 시간은 빅뱅이전에도 존재하지요. 아마 빅뱅이전에는 우주의 소멸이 있었을겁니다. 하지만 그것을 알고자 한다면 보살내지 성불한 부처님정도는 되어야 그 과정을 명확히 알 수 있을겁니다. 깨닫게 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지만 깨닫지 못한자가 모든 지혜를 얻은, 모든 고통에서 벗어난,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부처에 대하여 일종의 존경심을 표함과 동시에 가르침을 얻고자 절을 하는 것입니다. 가르침을 얻고자하는 일종의 최소한의 정성? 내지 스승을 모시는 자세? 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교만하지 않고 자세를 낮추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겠다는 일종의 다짐이 될 수도 있지요. 자신이 부처가 될 수 있지만 부처나 보살이 되었다는 것은......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떄문에 그것을 이루신 분들께 절을 하는겁니다. 딱히 절을 하거나 절에 갈 필요가 없다는 님의 결론에는 회의적입니다. ^^; 중생은 스스로의 힘으로 깨닫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나 보살님들의 도움과 가르침을 얻어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부처님이나 보살님들께서도 배울 자세가 전혀 안되어있고 배울 생각도 없는 사람에게 가르쳐줄 수도 도움을 줄 수도 없습니다. 절을 한다는 것은 위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최소한의 정성의 표시이자 가르침을 얻으려는 자세 입니다. 절은 보통....특히 오래된 절일수록 수행의 정도가 높으신 스님들이 좋은 터를 잡고 부처님이나 보살님께 지극한 정성을 들여서 그 절에 오는 중생들을 특별히 잘 돌봐달라는 부탁(?)을 드리고 또 지극한 정성을 들여서 지은 곳입니다. 다른 곳에서 수행하는 것보다는 더 부처님이나 보살님들의 도움을 받기가 쉬울것입니다. @@ 이상은 제가 듣고 이해한 바를 적은 것입니다. 실제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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