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를 시작하면서부터 고민이 많아졌다. 고민이라고 해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니, 따져보자면 행복한 고민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고민하는 동안에는 근심이 되는 것이 사실이고, 그 해결책을 찾기까지 답답함과 두려움을 만나게 된다.
처음 교제를 생각할 때 나는 그녀의 분위기에 끌렸었다. 관심을 가지고 내 이야기를 물어봐주고 들어주고 고민에 참여해주는, 또한 자신의 이야기도 꺼내놓으며 공유하는 기쁨들을 누릴 수 있는 상대. 그것이 그녀에게 처음 끌리게 되었던 이유였다.
나는 분위기라는 것은 그 사람의 다양한 면들이 한데 어우러져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인사담당자가 면접을 통해 사람의 인성을 쉽게 파악할 수 있고, 기술 면접관이 짧은 질문 몇 개로 그 사람의 업무능력을 쉽게 파악해 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녀의 성격과 선호, 재능, 화법, 신앙, 경험 등 다양한 면들을 대체로 마음에 들어 했던 것 같다.
물론 처음 나를 그녀에게 끌리게 했던 그 분위기가, 지금까지 계속해서 나에게 교제의 기쁨을 주는 마르지 않는 샘이 된 것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만남이 기쁜 이유도 달라졌고, 달라졌다 해도 계속해서 충족될 수 있었기에 그녀와의 만남은 계속 기쁠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라도 완벽할 순 없고, 그러함을 인정하더라도 그마저도 모두 받아들여질 순 없다. 나와 그녀의 관계에서도 그런 문제점들은 있을 것이고, 서로에게 맞추어 가기 위해서는 용납되거나 변하거나 어느 쪽이든 되어야 할 것이다. 어느 쪽도 되지 않으면 문제가 쌓일 것이고, 쌓여갈 수록 관계는 어렵게 될 것이다.
관계를 시작할 때 목사님께 얻은 조언은, 많이 용납하는 모습을 보여주라는 것이었다. 가능한 많이 용납할 때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좋아질 수 있고, 그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닮아가는 훈련이기도 하다는 이야기였다.
이러한 방법은 남녀의 특징에 비추어 생각해 볼 때도 적절한 부분이 있다. 남자는 어려운 문제가 있어도, 시간이 지나서 마음이 정리되고 난 뒤에는 덮고 넘어갈 수 있다. 그에 반해 여자는 충분한 대화로 문제를 풀지 않으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다. 때문에 여자들은 남자들에게도 자신에 대한 불만이나 고민되는 문제들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대화를 통해 풀기를 요청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남자에게는 꼭 좋은 해결일 순 없다. 그저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보내고 덮고 넘어가는 것이 남자에게는 완전한 해결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남녀관계에 있어서 서로 충돌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남자가 넓은 가슴으로 모든 문제를 용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관계는 좋은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문제에 대해서 언제나 양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때문에 남자 역시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이야기 하고, 상대의 이해를 구할 필요가 있다.
문제를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은 위험하다.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소심해 보일정도로 사소한 문제라도 오랜 시간 쌓이게 되면 관계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나는 가능한 내 생각을 솔직하게 나누려고 했고, 나누었다. 본래의 내 성향도 가식을 차리거나, 비위를 맞추거나, 예의상하는 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투박해서 촌스럽게 느껴질 만큼 꾸미지 않고 이야기 하는 편을 오히려 선호한다.
하지만 오늘의 고민은 덮고 가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 내 고민을 나누는 것이 그녀를 다시 불쾌하게 만들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전화통화를 하는 동안 나는 생각나는 대로 대화를 나누었다.
‘목소리 들으니까 좋다. 이번 주에는 더 만나고 싶었다’는 그녀에게 엉뚱하게도 나는 ‘서로의 감정곡선이 다르지는 않을까 걱정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그 말은 오빠의 감정곡선이 하강하고 있다는 소리’라고 했고, 나는 ‘그런건 아니고, 네가 만나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하니까 나도 그 감정을 따라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그런 생각을 하게됐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그런 생각이 든 것은 그 순간 내 감정이 그녀의 감정에 못미치기 때문인 것이 분명했다.
그녀의 마음은 알 길이 없지만, 그 동안 내 마음은 꽤 불규칙하게 높은 온도와 낮은 온도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어떤 날은 기분이 좋아서 완전히 들뜨기도 했고, 어떤 날은 가슴이 설레거나 싱숭생숭했고, 어떤 날은 속상하거나 우울해지기까지 하기도 했다. 감정변화가 많지 않던 내게 생긴 이러한 파장들은 그녀로 인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각각의 감정변화들이 생긴 이유에 대해서 명확하게 인지하는 데는 마음 깊은 곳을 오랜 시간 솔직하게 들여 보아야만 겨우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대부분 무의식적인 변화들 이었다. 이런 때문에 최근에는 나를 들여다 보는 시간이 많이 필요했고, 계속해서 명확한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어쨌거나 감정의 변화가 점점 악화되는 방향은 아니었으니, 하강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비교적 바쁜 시간 동안에는 전화 연락하지 않고, 여유로운 저녁시간에 통화하던 최근의 추세는 내게 편했고, 곧 익숙해져 습관이 되었다. 이런 변화가 그녀에게는 내 마음이 변하는 것으로 오해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그녀가 공부로부터 비교적 긴 시간을 벗어나 있을 때 전화연락해주는 세심함을 보여주지는 못했고, 자주 연락 않는 것에 섭섭한 마음이 있는 것을 알기에 미안해하면서 계속 이러지는 말자는 생각을 할 뿐이었다.
‘감정곡선’ 이야기에 이어, 월요일에 만날 계획을 이야기 하면서 나는 ‘생각해보니 요즘 나 때문에 네가 공부하는데 방해되는 것 같아’라고 말을 꺼냈다.
처음 그녀를 사귀기 시작할 때 부터 지금까지는 보통 일주일에 두 차례정도를 만나곤 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월요일이나 목요일에 한차례 만나고, 토요일에 만나는 것이 자연스럽게 공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이러한 패턴이 그녀가 꾸준히 공부를 하는 습관을 잡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 때문에 평일에 만나는 빈도는 조금 줄여보는 것을 이야기 해볼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만나는 날의 간격을 벌이면,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져 어려울 것 같았고. 우리의 관계가 가깝게 잘 진행되고 있다는 안정감에서 벗어난 불안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녀의 의견은 어떤지 물어보고 그녀가 그렇게 하고 싶다면 변화를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질문에 그녀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문제’라는 차가운 대답을 주었다. 마치 그런 참견은 기분 나쁘니 이야기 꺼내지 말아달라는 느낌으로.
차갑게 말한게 미안했는지 이렇게 이야기 하면 어떤 느낌인지를 되묻긴 했지만, 나는 수긍할 수 있었기에 냉정하게 들리긴 하지만 괜찮다고 했다.
그녀는 왜 내 이야기에 불쾌한 반응을 보였던 것일까?
나는 몇 가지 가정을 세워본다.
공부문제로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압박감을 느끼게 했기 때문인 것일까.
최근에 무언가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교회 누나에게 ‘요즘 공부하는건 어떠냐’고 물었다가 “이야기 하고 싶지 않으니 묻지 말아줄래?”라는 대답을 들은적이 있었다. 평소에는 상냥하고 날카로운 말을 않는 누나여서 조금 더 센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이었다. 그녀에게도 그랬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공감을 원하는 문제에 대해 어설픈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일전에 이미 그런 태도에 대해 격한 분노를 표출한 적이 있고, 나는 내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할 수 밖에 없었다. 맞추어주는 배려는 부족했다 해도 남자로서의 관심의 행동인 해결책 제시에 대해 이해받지 못한 것은 섭섭한 마음이었지만, 내가 느낀 섭섭함보다 더 큰 섭섭함을 느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기에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변명 않고 여러 차례 들어야 했다.
아니면 보고싶은 마음을 말하는 그녀에게, 되도록 자주 보지 않도록 하자는 말을 꺼내 김빠지게 했기 때문이었을까.
말을 꺼내는 나보다도 말의 속뜻을 정확히 파악해내는 그녀이기에, 자꾸 연달아서 김빠지는 이야기를 꺼내며 그 순간의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이 그리 크지 않은 상태임을 굳이 내비치는 내가 못마땅 했던 것일까.
어떤 것이 그 이유였을지는 물어보고 확인하기 전까지는 알지 못한다.
크게 벗어나지 않게 짐작 할 수 있다해도, 본인에게 확인하지 않는 이상 오해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항해하는 배가 방향을 조금만 잘못 틀어도 먼거리를 잘못가게 되는 것과 같은 문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자세히 물어보고 고쳐 잡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녀는 왜 이번 주에 나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던 걸까?
이번 주는 내가 그녀 친구들과 함께 만나는 자리에 약속을 한 시간이나 늦고 속상해서 이틀 동안 자신감 잃고 기운 빠져 있었고, 연락도 잘 못해서 그런 나를 그녀도 안타깝게 생각했었는데.
단지 그녀의 마음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만날수록 내가 더 좋아진다고 늘 이야기 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단순히 생각하기는 어렵다.
만났을 때 주었던 로즈데이 장미 꽃다발과 선물, 편지가 그녀를 기쁘게 했고, 그러한 마음이 생각할 수록 커졌던걸까?
선물이나 편지를 유난히 더 기뻐하는 그녀이기에 충분히 그런 부분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녀는 손으로 건네주는 편지를 기뻐했고, 그 때마다 좋은 기분이 지속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음에 만나면 안아주겠다는 내 약속 때문에?
안아달라는 몇 번의 애교섞인 간접적인 요청에 나는 ‘진지하게 답변하면, 그래. 다음에 만날 때’라고 답변 문자를 해주었다.
조심스럽게 스킨십의 진도를 천천히 해나가자고 미리 이야기 했었지만, 포옹은 내가 나 스스로 참을 수 있는 범위 안의 것이기도 하고. 여자로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가장 받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포옹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나 자신도 그녀를 안고 싶은 마음이 크기에. 그녀의 어깨를 안는 것에서 한발 나아가, 두 팔로 그녀를 안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약속을 했고, 그것은 그녀를 기쁘게 했다.
어떤 한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그녀도 나처럼 생각한다면 어떤 한가지 큰 이유가 그 감정을 주도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러나 그녀는 남자가 아니기 때문에 나처럼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통화는 득보다 실이 많았던 것 같다. 내 느낌으로는 그렇다.
화제거리를 꺼내기 위해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이었지만, 충분히 생각하지 못한 만큼 대화 내용이 좋지 않았다.
별로 할 말이 없거든 어색한 분위기로 계속 통화하지 말고, 짧게 끊는게 낫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말수가 적은 나는 계속 그렇게 한다면 통화빈도나 시간이 너무 줄어 오히려 문제가 될 것 같다. 그래서 회피하기 보다는 그녀앞에서 완벽한 모습이고자 하는 내 집착으로부터 벗어나고 두려움을 극복함으로서 좀 더 편안한 대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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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시도해보는 것이지만, 3인칭으로 그녀에게 쓴 편지입니다.
조금 더 솔직하게 이야기 해보고자 해서 새롭게 시도해본 것이구요.
월요일에 만나기로 했는데, 프린트해서 들고가서. 같이 보면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입니다.
그전에 pgr에 올렸으니 다른분들의 반응을 보고 내용이 좀 수정될런지도 모르지요.
이번주 금요일이 백일입니다.
p.s : 염장질 죄송합니다.
p.s 2 : 일기를 일기장에 쓰지 않아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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