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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6/10 17:19:26
Name aurelius
Subject [일반] [역사] 1987년, 민주주의는 결코 거저 얻어진게 아니다
아래 글에서 오늘이 6월10일이라는 사실을 (부끄럽게도) 이제 막 깨달았네요..

그래서 옛날에 다른 커뮤니티에 올린 글을 여기에도 올려봅니다.
6월항쟁의 역사는 정말 매우 소중한 역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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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의 전개과정을 보고 있자면, 보면 볼수록 이는 결코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니라 수많은 행동하는 양심들의 노력, 그리고 이들의 철저한 계획과 조직 하에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6월 항쟁의 시발점이 되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1987년 1월 14일에 일어났습니다. 당시 그 유명한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이 나왔죠. 정부는 물론 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양심있는 사람들의 행동으로 다행히 박종철의 죽음이 묻혀버리는 최악의 사태는 피할 수 있었습니다. 

박종철이 고문당해서 죽었다는 것이 최초로 밝혀진 것은 당시 서울지검 공안검사 "최환"의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자체적으로 박종철의 사인을 규명하려고 했지만 최환 검사는 청와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사건을 검찰로 넘기는 데 성공합니다. 

무엇보다 부검의의 용기있는 행동도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합니다.

오연상 교수가 박종철이 물고문에 의해 죽었고 이를 은폐하려는 경찰의 음모를 알아채고 중앙대병원 측에 시체를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고 요청하였다. 경찰은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이 아닌 병원에서 숨졌다고 조작하려는 것이었다. 당연히 같은 죽음이라도 고문실에서 사망과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 중 사망은 뉘앙스 자체가 다르다. 경찰은 이후 오연상 교수에게 수사관 3명을 붙여 감시하였고 그 다음날(15일)에도 감시를 당하였으나 화장실에서 언론사 기자를 만나서 박종철이 고문으로 죽었음을 알렸다. 소리소문없이 은폐될 수도 있었던 박종철 사건은 한 의사의 양심으로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이다.
- 나무위키

물론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 분노하였고 이를 규탄하는 산발적 시위가 여기저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정부는 책임자(라고 쓰지만 실제로는 그냥 말단직원 2명)들을 처벌하는 선에서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우리가 현재 목격하고 있는 시위의 양상이 그러하듯 시위는 추동력이 약해지면 결국 사그라들게 되어있습니다.

하지만 1987년 5월 17일 노동자였던 부산상고 출신 황보영국씨는 "독재타도"를 외치며 분신을 하고 그 다음날 5월 18일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용기있는 행동으로 인해 분노는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됩니다. 

1987년 5월 18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7주기 추모 미사에서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김승훈 신부의 폭로로 진상이 드러난다. 처음 제5공화국은 보도지침과 언론통제를 통해 이를 은폐하려고 했다. 5월 21일, 정구영 서울지검 검사장이 추가적으로 3명의 범인이 있음을 인정했다. 당시 정 검사장의 회고에 따르면 수사 중 3명의 공동정범이 있음을 인지했고 이를 서동권 검찰총장에게 보고했고, 서 총장은 얼굴이 새파래지더니 당분간은 우리만 알고 있자고 했다고 한다. 덮을 생각이 없었고 3명을 사법처리할 시기를 정하고 있을 때,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폭로했다는 것이다. -나무위키

상황이 이에 이르자 국민의 분노는 치밀어 올랐습니다. 대학가는 물론, 재야인사들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전두환 정부는 점점 타도의 대상으로 비춰졌습니다. 반대로 이는 다시 일반인들은 1980년대 초부터 학생들이 부르짖던 '민주주의' 따위의 가치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너무도 부도덕하고 잔인한 사건이 터지고 이에 대한 은폐시도가 일파만파로 드러나자 그제서야 문제의식을 느꼈다는 것이니까요. 

게다가 6월 9일 연세대학교의 이한열군이 최루탄에 맞아 생사를 오가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국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야당인사들도 점점 조직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전국의 재야인사 2200여명이 함께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이 결성됩니다. 국본과 같은 거대 조직은 결코 장난으로 결성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종교계의 진보인사들 - 현재 소위의 친북좌빨로 지칭되는 -, 예컨대 문익환 목사나 함세웅, 문정현 신부와 같은 사람들, 그리고 통일민주당과 같은 정치집단이 주도하였고 그 외에도 많은 재야정치인들 그리고 대학교 학생회들이 비밀스럽게 서로 연락하면서 행동을 기획한 결과입니다.

당시의 연대, 연계, 조직 등은 요즘 학부생 조모임 짜듯이 했던 것이 아니라 투철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사회각기 계층의 용기있는 사람들이 다음 행동을 공동으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을 바탕으로 6월 10일 국본의 주최로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 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개최합니다. 

그리고 국본은 민중항쟁의 뜻으로 오후 6시를 기해 차를 세워서 경적을 울려줄 것 또는 흰 손수건을 흔들어 달라고 지침을 만들고 이를 전국의 뜻있는 사람들에게 배포합니다. 그 결과 택시운전수, 버스기사는 경적을 울리고 또는 손수건을 흔들게 되고 사무실에서 흰 휴지 두루마리가 내려오고 시민들은 흰 손수건을 들게 되었습니다. 전국민적 저항이 명백하게 '시각화'되고 따라서 정부에게 '두려움'을 심어주는 중요한 기획이었죠. 

이렇게 재야단체와 시민단체의 시위가 터지자 정부는 야권의 집회가 '폭력성을 드러낸 법질서 유린행위'였다고 지적하고 '앞으로 법질서 파괴 행위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발표합니다. 

물론 국본은 비폭력을 고수하였지만, 일부 학생단체가 화염병이나 짱돌등을 이용한 '폭력(?)'을 사용한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용기있는 행동도 매우 중요했습니다.

학생들은 "국민대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산발적인 시위를 계속했고 저항에 계속 에너지를 부여했습니다. 특히 이들이 시위를 계속하면서 명동성당에 들어가서 농성한 것은 각계에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학생들의 과격한 시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취지에 공감했던 사람들은, 학생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기 시작했고 이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게 됩니다. 故김수환 추기경과, 당시 박원순 변호사와 조영래 변호사가 명동성당에서 이들을 지원했습니다.

이에 따라 6월 12일에는 시위의 규모가 커지고 오후 1시 쯤에는 코스모스 백화점 앞에서, 그리고 그 이후 명동, 삼일 고가도로, 을지로, 광교 사거리, 시청 등에서 기습시위와 해산을 거듭했습니다. 

자칫 단발적인 이벤트로 끝날 수 있었던 "국민대회"는 대학생들의 투지로 인해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또한 시위의 효율성을 재고하기 위해 대학교 학생회와 재야인사들은 전국 주요 도시에 동시다발적인 시시위를 기획하게 되고 이를 통해 경찰력을 효과적으로 분산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6월 18일 경찰의 최루탄 사용과 독재타도를 외치는 시위가 전국 주요 도시에 발발하고 거의 150만명이 되는 사람들이 참여하게 됩니다. 

이에 전두환 정부는 '군투입'을 진지하게 고려하였으나 당시 치안본부장은 경찰력으로 어떻게든 해결해보겠다고 전두환을 설득하였고 궁극적으로 당시 한국군의 평시통수권을 쥐고 있던 미국은 전두환에게 군사개입을 반대한다는 명백한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이로써 다행히 서울에서 광주와 같은 참극이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6월 26일 국본은 전국 37개 도시에서 '국민평화대행진'을 개최하고 이는 정부에 대한 엄청난 규모의 압력이었습니다.

그 결과 6월 29일 호헌철폐가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 아시는 바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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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가 6월 항쟁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당시의 항쟁은 수많은 용기있는 사람들의 노력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누구는 분신을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알렸고, 누구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음으로써 죽었습니다. 

다른 누군가는 안기부가 시퍼렇게 살아있는데도 다른 세력들과 비밀스럽게 연락을 취하고 조직을 결성하였고 또 다른 누군가는 검사나 의사의 신분으로서, 그 직무에 따른 양심을 지키면서 정의를 실천하려고 했습니다. 

각자 모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학생들은 학생회를 조직해서 그들의 '전매특허(?)'였던 시위를 하고

종교인들은 신의 가르침을 설파하면서 악을 규탄하고

의사는 부당한 압력에 맞섰으며

기자는 진실을 밝히려고 노력했고

검사는 범인을 밝히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리고 정치인은 사람들의 의지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하였고

평범한 택시기사, 버스기사, 직장인, 학부모들은 경적을 울리면서 또는 손수건을 흔들면서 의로운 양심들을 외롭지 않게 하였습니다. 

정말 각자 모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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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항쟁을 기억하고 대한민국이 튼튼한 민주주의로 거듭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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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타군
15/06/10 17:27
수정 아이콘
요즘 보며 많이 안타깝습니다.
목소리를 내야 할 대학생들과 지성인들은 삶이라는 무게로 조련을 하고 있는 현재사회와 그걸 못 벗어나는 사람들..
그 와중에 교묘하게 편을 나뉘어 싸움을 부추기는 사람들.
힘든 세상인 것 같습니다.
llAnotherll
15/06/10 17:30
수정 아이콘
100도씨... 라는 만화가 있었더랬죠.
15/06/10 17:41
수정 아이콘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순수했던 시절....흡사 와우 오리지날 시절이 생각나게 하는...
자본주의가 더욱 진행됨에 따라 지금같은 모습이 굳어졌고 와우도 더더욱 쉽게 만든다고 만들다 보니 오히려 골드팟 스팩팟 등등이 넘치게 되는....
과거보단 살기 편해진 시대이지만 와우도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듯이 이 나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실 뭐..지금은 다들 민주주의 그닥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는 듯....
15/06/10 17:46
수정 아이콘
610 항쟁은 모두에게 호헌철폐, 직선제라는 혜택을 주었지만, 모두가 참여하거나 동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419 역시 현대 한국 근대사를 뒤흔든 사건이었지만, 그것에 모두가 동조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도 그렇습니다.
고귀한 피를 통해 얻은 민주화를 누리는 사회에 살면서도 일부세력은 안타깝게도 그것의 가치를 평가절하합니다.
놀랍게도 극히 일부의 정치인은 당시에 참여도 하고 동조도 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현재는 그것을 폄훼하는데 앞장서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피로 이루어진 민주주의에 무임승차한 사람들이,
이승만을 옹호하고, 박정희의 공만을 치하하고 어두운면은 애써 눈감으며, 전두환을 옹호하고 있는 현실을 목도합니다.
본인이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가 내 부모의 내 자식의 내 친구의 피를 통해서 얻어졌다는 것을 전혀 인식을 못하는 것이겠지요..
이게 현 시대의 민주화에 대한 의식 차이를 가져오는 가장 큰 이유라 생각됩니다.

현 시대를 살고 있는 남녀 노소 모두 힘들게 얻은 민주화에 대해 감사하고, 정말로 소중히 여겼으면 좋겠습니다.
몇몇의 싸이트에서 놀이처럼 퍼지고 있는 광주에 대한 폄훼도 더이상은 방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F.Nietzsche
15/06/10 17:58
수정 아이콘
어떤 문턱을 넘어서서 견고한 민주주의 시스템을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 문턱 바로 앞에서 좌절한 느낌입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엄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지금 상황으로 보면 실패죠...
15/06/10 19:02
수정 아이콘
그래서 도올의 김대중, 노무현에 대한 비판이 더욱 뼈아프게 다가오는거 같습니다.
어차피 그리 될거.....본인의 목숨과 시스템의 구축을 바꿨어야 한다는 그 말이 요즘 더 와 닿습니다.
F.Nietzsche
15/06/10 19:15
수정 아이콘
도올선생님이 비판을 한 내용을 어디서 볼 수 있을까요? 동영상 링크나 글 제목 아시면 부탁 드립니다.
15/06/10 19:19
수정 아이콘
https://www.youtube.com/watch?v=9yQtv-bVXhA
요 인터뷰로도 볼 수 있고...그분이 쓰신 책에도 자세히 있습니다.
(인터뷰가 처음은 소리가 이상한데 조금 자니면 정상으로 돌아오네요..)

다른거 떠나서.....세월호 시국때 박근혜 물러나라고 일갈을 하는 그 패기만으로도 참 대단하죠..
지식인이란 이런 분을 보고 하는 이야기란 생각이 들더군요...
F.Nietzsche
15/06/10 19:32
수정 아이콘
링크 감사합니다.
주먹쥐고휘둘러
15/06/10 20:12
수정 아이콘
재야단체와 시민단체의 시위가 터지자 정부는 야권의 집회가 '폭력성을 드러낸 법질서 유린행위'였다고 지적하고 '앞으로 법질서 파괴 행위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발표합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권력 쥔자들의 대답은 한결같네요. 권력을 쥔자들은 그대로인데 우리는 참 많이 바뀐거 같습니다.
피지알중재위원장
15/06/10 21:21
수정 아이콘
87년의 항쟁도 중요하지만,
80년 5월 나아가 60~70년대를 거치며 이어져온 시민운동과 6월항쟁의 연결고리가 좀 더 부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에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사회 전체적으로요.

80년의 광주가 있었기에 87년의 직선제가 가능했던건데 일베애들 보면
6월항쟁은 인정하면서 광주민주화항쟁은 무시하는 이율배반적 모습을 보이더라고요.
15/06/10 21:57
수정 아이콘
고등학교 때 87년도에 연대 재학생이던, 같은 과 출신의 선생님 두 분이 계셨어요
그 중에 한 분이 운동권 출신이셔서 이런 저런 얘기를 좀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유명한 이한열 열사가 쓰러져가는 사진에서 부축하고 있는 분이
선생님 직속 선배 라고 하시더군요
근데 그런 상황에서도 동기인 다른 선생님은 도서관에서 책만 봤다고 하는 걸 보면

그 시대에도 희생할 사람들만 희생 했구나 싶더군요...
수면왕 김수면
15/06/11 00:02
수정 아이콘
문제는 항상 그렇게 희생한 사람들을 등진 사람들이 그 열매를 자기것인 것 마냥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거죠. punctum님 선생님께서 그랬다는게 아니고, 그런 경우를 제가 자주 봤다는 이야기입니다.
글투성이
15/06/11 00:51
수정 아이콘
하지만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학생운동세대란 단지 종북좌빨에 불과하죠. 타도해야 할 대상입니다. 심지어 야당지지자들에게도요. 역사는 가장 먼저 그들부터 떠나보내려는 듯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생각하죠. 선배들은 참 쓸데없는 짓을 했다. 희생의 댓가는 오욕만 남았습니다. 역시 비겁하게 시류에 편승하는 게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도 가장 좋다는 깨달음을 얻네요.
도라귀염
15/06/11 09:37
수정 아이콘
어짜피 인생은 짧고 역사는 길고 우주는 무한하다고 생각해보면 그때 그때 이득을 위해 사는 모리배들이 당장 현명한것 같아도 정의로운 이름이 남는것도 충분히 고려할만한 가치네요
지니팅커벨여행
15/06/11 11:12
수정 아이콘
최근 일련의 사태(?)들을 좌시하고 있는 제 자신이 부끄럽네요.
대학 졸업후에도 촛불 집회네 등록금 투쟁이네 하는 집회에 몇번 참가하긴 했는데 돌아오는 건 변하지 않는 사회와 무력감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한없이 무기력한 일개 시민일 뿐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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