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유게에 업로드하는 것들 좀 보신 분이라면 아실수도 있겠지만 오로지 걸그룹만 파는 진성 걸그룹 덕후(...)이기 때문에 문학적 소양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책 좀 읽었다는건 어려서 만화삼국지(...) 읽던 때가 전부라. 순문학이나 클랙식 뭐 이런 어려운 것은 완전 젬병이죠
그러니 우연한 기회로 봐야만 할 일이 있어 이 연극을 보라고 했을 때는 반쯤 멘붕이었던 것이 뭐 우리나라 역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니 부조리극의 산실이니 이런 수식어를 볼 때 겁부터 났었거든요. 아 이 러닝타임도 만만치 않은 순도 높은 예술공연을 내가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까. 소극장이라 배우들 눈앞에 있을텐데 실례가 안되려나 그런저런 상상을 많이 했었는데요.
<이미 끝나긴 한달전에 끝났는데, 거의 한달전부터 전석매진 뜰정도 공연이었어서. 아마 어떻게든 다시 하실듯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전혀 그런걸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시작은 분명 부조리극이었을지 몰라도, 아이러니하게 지금의 우리 눈높이에서는 전혀 부조리하지 않거든요. 맥락없이 튀어나오는 말과 행동, 연기가 근 세시간을 채우지만 그것들이 순문학을 접하면서 우리가 주로 겪는 유체이탈을 발생시키는게 아니라 그 행간에서 읽혀지는 진실과 슬픔을 잘 표현하고, 지루하지도 않으며(심지어 재밌죠), 시간이 낭비되는(아 이쯤되면 끝나야되는데 하는) 구간자체도 전혀 발생시키지 않습니다.
<사실 당일 출연진도 못보고 표끊은 공연인데 지금 보니 저는 블라드미르는 정동환님, 에스트라공은 안석환님, 포조는 김명국님, 럭키는 박윤석님이실 때 간거 같군요>
왜냐하면 출연배우들의 연기가 소위 [미쳤다]고 밖에 할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거든요. TV에서도 주로 보이시는 배우분들인데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이는 이분들의 연기는 실제 내공에 10분의 1은 표현할까 싶을 정도로 정말 말도안되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그렇게 때려부수는데도 님은 솔직히 좀 지겨운 구간이 있었어-_-. 러닝타임이 존재하는 컨텐츠가 지겹지 않기는 편집의 힘이 들어가는 상품에서도 정말 힘든 일이죠.>
정말 조그마한 소극장 하나에 세트라고는 나무있는 바위하나, 배우가 넷(엄밀히는 다섯이지만). 그중에서도 사실상 저 블라드미르와 에스테라공 역할을 하는 두 배우가 애드립인지 대사인지도 알수 없는 온갖 대사와 연기를 펼치는 모습은 정말 [경악] 그자체였다고 생각합니다. 배우는 아니지만 제가 저런 자리에 던져져서 어쨌든 백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한다는걸 생각하면 식은땀이 다 흐를텐데. 근 세시간짜리 공연을 온연히 배우 본인의 내공으로 아주 그냥 꽈악 채워줍니다. 저로서는 보는 내내 이게 가능하다고? 싶었죠. 편집이 안들어가는데? 이게 다 리얼라이브인데? 어떻게 저럴수가 있지하는 탄성이 절로나오더군요. 저분들이 연기 잘하는 배우인거야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원작은 순문학고자-_-인 저는 못봤기에 말씀 못드리겠고 공연 그 자체만 말씀드리면 [얼간이 둘이서 한정없이 고도라는 자를 기다리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온다던 온다던 그 고도는 통 올줄을 모르고, 내일오겠다 내일오겠다만 하는 중이죠. 그 와중에 그들은 떠나고 싶어하고, 배고파하고, 절망하고 슬퍼하고 내가 기다리는게 맞는지, 기다리라고한 이 곳이 정말 그 장소가 맞는지 등등 온갖 이야기를 하며 최대한 [시간을 보내는데] 집중합니다.(이 연극에서 '고도를 기다려야하니까'라는 대사만큼 많이 나오는게 바로 '시간'이야기일겁니다) 어서 고도가 오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그냥 문자 그대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은 얼간이이고 바보 같으며, 기억력도 안좋은 가난한 사람들이지만 글쎄 그들에 비해 우리는 얼마나 다른가 싶더군요.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희망을 기다리고, 그것이 언제찾아올지 알수 없어하며 지쳐하고, 절망하면서, 또 자기자신은 못느끼는 본연의 처절할 정도로 학습능력 없음에 고생하면서도 기어코 또 마지막 그 한조각 실낱을 움켜쥐고자 하는.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희망은 고도 마냥 언제나 [내일 오겠다]는 전언만 남기고 결국 그들을 만나러 오지 않죠.
<뭐 전설상의 동물이신 저분으로 치환해도 해석은 매끄럽게 되지 않나 마 그런 생각을............??>
그렇게 전반부부터 주욱 바보짓 안에 울분을 감추어둔 그들의 감정은 별거는 아니지만 마지막에 한번 폭발하는데, 그 절절함은 절대 제대로된 연기가 없어서야 터져나올 수 없는 감정이라고 감히 말할 법 합니다. 그냥 노잼이거나 오로지 웃기는데 흘러가기 쉬운 이런류의 연극임에도, 3시간 내내 웃기면서도 바로 그 한번의 외침이 완전한 설득력을 가진다는게, 원작인 작품의 영향도 있겠고 이를 연출하고 연기하는 제작진과 연기자의 힘이라고 할 수 있겠죠.
사실 45주년 기념으로 하게된 공연이기 때문에 다음번에 이번 마냥 산울림 소극장에서 하게될지, 어디서 하게될지는 알수 없습니다만 언젠가 다시 공연을 하게 된다면, 한번 추천드리고 싶네요. 진성 연기자들의 찍어누르는 연기내공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두번 추천!
이상 좋아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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