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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4/20 20:17:04
Name 드라카
Subject [일반] [완결] 웃는 좀비 - 6




그 날 저녁 식사시간은 음식을 넘기기가 무척 힘들었다. 사람의 머리가 박살나는 광경을 목격했고 목 위로 아무것도 없는 시체를 태어나 처음 만져 본데다 시체를 치우기 위해 창 밖으로 던졌다가 바닥에 처박히면서 사방에 피가 퍼지는 모습까지 봤더니 도저히 속이 진정되질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상태가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좀비이긴 하지만 바로 어제까지 정상이었던 사람의 머리를 으깨버린 승현씨는 깊은 상념에 빠져있었고 성훈씨는 겁에 질려있었다. 정은씨는 아예 회의실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답답한 분위기 속에 억지로 음식을 삼키고 슬쩍 출입구를 바라봤다. 자동문은 한쪽이 박살 나 뻥 뚫려있었고 그 주변엔 피가 가득했다. 저 피가 다른 좀비들을 자극하진 않을까? 더 이상 문도 없는데 이 사무실에서 더 머물러도 되는 걸까? 불안감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결국 침묵을 깬 건 나였다.



“우리, 여기에 계속 있어도 되는 걸까요? 문도 박살났고 식량도 다 떨어져 가고.”

내 말에 승현씨와 성훈씨가 날 바라봤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거보다 저 핏자국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아요. 아직도 소름이 가시질 않네요. 승현씨는 좀 어때요? 괜찮아요?”

“네. 아까 일이 좀 충격이 큰 거 같네요. 뭔가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인 거 같은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끔찍한 일을 저지른 것 같기도 하고. 생각이 많아지네요.” 그는 조심스레 성훈씨를 바라봤다. “성훈씨. 괜찮아요?”

“몸이 안 좋아서 먼저 들어가 쉽니다. 불침번 되면 깨워요.”



냉담한 반응에 승현씨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성훈씨는 다른 회의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고 다시 사무실에는 무거운 적막이 돌았다.



“아. 준성씨. 제가 몸이 좀 피곤해서 그런데 불침번 순번 좀 바꿀 수 있을까요?”

“아. 그러세요. 오늘 그.. 막아낸다고 고생하셨는데 푹 쉬셔야죠. 원래 승현씨가 맨 처음 순번이었죠?”

“네. 성훈씨가 그 다음인데 보시다시피 저 모양이라. 안 그래도 짜증나는 순간일 텐데 제가 깨우면 가만 안 있을 것 같네요.”



“그럼 제가 맨 처음에 불침번 설게요. 푹 주무시고 마지막에 일어나시면 되겠네요.”

“네. 부탁 좀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저도 몸이 안 좋아서 먼저 들어가 쉴게요. 내일 봬요.”

“쉬세요.”



일행들이 전부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나자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은씨가 있는 회의실로 들어가 말을 걸어봤지만 혼자 있고 싶다는 말에 다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어제 밤에 나눈 대화가 왠지 꿈처럼 느껴졌다. 책상 위에 성훈씨가 마시던 커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자 미적지근한 커피가 목을 적셨다. 사무실에 혼자 서서 물끄러미 문도 없이 활짝 열려있는 출입구를 바라보면서 조금 긴 불침번 초번 근무를 시작했다. 굉장히 피곤하고 몸이 무거웠다.



잠에서 깼을 때 승현씨는 옆에 없었다. 불침번 시간이 아닌가? 그냥 내 스스로 일어난 모양이다. 몇 시일까? 스마트 폰을 꺼내보니 새벽 5시였다. 아직 내 근무까지는 1시간이 남아 있는데 왜 잠이 깬 거지?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회의실 밖으로 나가자 믿기지 않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책상 위에서 두 남녀가 몸을 뒤섞은 채 진한 입맞춤을 하고 있었다. 입술과 혀가 맞부딪히며 나는 원초적인 소리가 내 귓전을 괴롭혔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네 개의 손이 어쩔 줄 모르며 서로의 몸을 성급하게 탐색하며 오갔다. 어두운 구석에 있어서인지 잘 보이진 않았지만 승현씨와 정은씨가 분명했다.


가슴이 꾸욱 눌리면서 바스러질듯이 고통이 느껴졌다. 조용히 회의실로 돌아와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끈적하고 시커먼 우울함이 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 둘 사이를 훼방 놓고 싶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저 더러운 놈의 턱주가리를 날려버리고 싶었다. 그녀의 작은 입술에 묻은 더러운 침을 닦아내고 내 입술을 포개고 싶었다. 저 여자는 내 것이었어야 했는데. 더럽고 추악한 욕망이 폭발하듯 쏟아져 나왔다. 나는…



“아.. 성훈씨? 안주무시고 뭐하세요?”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사무실을 바라보니 성훈씨가 회의실에서 나와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부끄러움과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책상에서 내려와 서로 떨어진 채 서 있었다.

“성훈씨?”

성훈씨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가며 말했다.



“좆 긑은 쉐끼. 하 그년 참 므싯겠네. 씨발 개액은 놈들 감감이히 무윽시해? 끄윽끅흑..”

그는 잘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이를 꽉 악물고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나가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정상이 아니었다. 기이한 모습에 정은씨는 벌벌 떨며 신음소리를 냈고 승현씨는 그런 정은씨의 손을 잡고 뒤로 슬슬 물러서고 있었다.



“죽으! 뜨먹으주마! 그으으으으어허허어!”

성훈씨는 갑자기 온 몸을 비틀고 경련하며 엄청난 괴성을 질렀다. 사무실 밖 복도까지 쩌렁쩌렁 울리는 괴성 때문에 회의실 유리에서도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언제..언제 물린거지? 3층 베란다에서 좀비랑 마주쳤을 때 물렸었던 걸까.



“어어어허하하하! 크아하하하하하하!”

마침내 그 좀비는 양팔을 벌리고 고개를 뒤로 젖혀 천장을 바라보며 세상이 떠나가라 웃었다. 모두가 넋을 잃고 쳐다봤다. 그러던 중 좀비는 갑자기 승현씨에게 달려들었다. 승현씨는 빠르게 뒤로 빠져나가다 발이 꼬여 바닥에 넘어졌다. 언제나 침착한 태도를 유지했던 그도 당황해서 어떻게든 뒤로 도망가려고 애썼지만 바닥에서 버둥거릴 뿐이었다. 방금 전까지 함께 대화를 나누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싸우며 갈등까지 겪었던 기억과 관계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사람이 모든걸 무시해버리고 순수하게 살의만을 지닌 채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습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었지만 분명한 현실이었다.


좀비의 이빨이 승현씨의 몸을 뚫고 들어가며 피가 새어 나오고, 정은씨의 비명소리와 좀비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며 승현씨의 고통에 가득 찬 신음소리를 덮었다. 방금 전까지 한 여자의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던 그의 양 손은 그의 육체를 탐하는 좀비를 저지하기 위해 주먹으로 때리거나 밀쳐내려 애쓰며 필사적으로 움직였지만 이내 바닥에 힘없이 떨어졌다.


정은씨는 사무실 밖으로 도망가기 위해 책상 더미를 넘어가려고 애쓰고 있었다. 좀비는 여전히 승현씨의 몸을 물어뜯고 있었고 그제서야 난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 정신을 차렸다. 지금 당장 그녀를 쫓아가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회의실 문을 조용히 열고 나와 정은씨의 뒤를 따라 책상더미를 올라갔다. 쩝쩝대는 기분 나쁜 소리가 계속해서 나의 뒤를 쫓아왔다.



정은씨는 사무실을 나와 복도를 뛰어가며 계단으로 내려갔다. 난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따라갔지만 그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해서 달려갈 뿐 멈추지 않았다. 충격적인 광경을 보고 패닉 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난 더욱 속도를 높여 그녀를 쫓아갔다. 이대로 밖으로 나가면 너무 위험하다.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가던 그녀는 1층에서 층계 밖으로 나가 로비로 갔다. 회사 정문 쪽으로 가던 그녀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1층 로비 바닥에는 어제 봤던 시체는 단 한구도 보이지 않았고 핏자국만 군데군데 있을 뿐이었다.


계속 뒷걸음질 치며 온몸을 벌벌 떠는 그녀의 뒤로 천천히 다가가 부드럽게 안았다. 이젠 다 괜찮다. 진정하고 다른 사무실로 가서 대책을 짜 보자고 달래보았지만 그녀는 더욱 크게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가는 목소리로 울먹이며 몸을 떠는 그녀의 몸을 꽉 안고. 조심스레 머리를 쓰다듬으며 체취를 만끽했다. 진한 장미향의 좋은 냄새가 나의 욕망을 자극했다. 머리를 만지던 손을 목을 거쳐 등으로 내리자 그녀의 허리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이상하게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녀를 만질 수 있었다. 같은 사무실 동료끼리 이런 감정을 가져도 될까, 날 거부하면 어쩌나,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순수한 욕망으로 그녀의 몸을 탐하며 입술로 목을 애무하자 그녀의 목이 크게 떨렸다. 너무나 달콤한 향기에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려 그녀의 목을 물어뜯었다. 더 이상 그녀의 몸은 떨리지 않았고 난 마음껏 그녀를 만끽할 수 있었다. 이 세상에 오직 나와 그녀 둘 뿐이었다.



나는 웃었다.












6개월 후.


“안녕하세요. 6개월 전에 발생했던 좀비사태에 대한 영상들을 보고 그들에 대해 분석하는 특집다큐멘터리 웃는 좀비의 진행자. 박정진입니다. 오늘은 판교에 위치한 한 대기업 회사의 CCTV에 담긴 영상 기록으로 시작하겠습니다.

회사 내에 설치된 수백 개의 CCTV를 통해 한 생존자 그룹의 비극적인 결말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4명으로 구성된 이 그룹은 사무실에 거점을 마련하고 2일간 버티다가 한 남성이 3층 베란다에서 좀비와 싸우다 발목을 물리게 되면서 시한폭탄을 끌어안게 됩니다.”



“대부분의 모든 감염자가 그렇듯 자신의 감염을 숨긴 이 남자는 그날 저녁에 사무실에서 입술 언저리가 찢어져 피가 나는 상태로 커피를 마셨고 이 커피는 저주받은 성배가 되어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남성 그룹원을 감염시킵니다.

저번 영상을 통해 혈액을 통해 전염된다는 사실을 시청자 분들도 아실 겁니다. 이렇게 두 명의 남자가 감염된 상태에서 잠을 자고 그 틈을 타 애정행각을 벌이던 다른 두 명의 남녀는 잠에서 깨어난 첫 번째 감염자에게 공격을 당합니다. 여기 이 영상을 보시면 좀비가 남자에게 달려들어 목을 물어뜯는 모습이 보이시죠?”



“겁에 질려 달아나는 여자를, 여기 두 번째 감염자. 그러니까 커피를 마셔서 감염된 남자가 회의실에서 뛰쳐나와 쫓아가기 시작합니다. 1층으로 내려와 밖으로 달아나려던 여자는 이미 로비에 모여있던 좀비 떼를 보고 절망에 빠져 달아날 생각도 못한 채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여자에게 살며시 다가가 목을 물어뜯는 두 번째 감염자. 이 여자는 좀비로 변할 틈도 없이 로비에 모여있던 좀비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합니다. 정말 처참한 비극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만한 점은 저 여자에게 달려드는 좀비들이 서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서로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이미 여자를 물어뜯는 다른 좀비의 등 뒤에서 옆으로 들어가지 않고 계속해서 손과 얼굴을 들이미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가설이 맞다면 좀비는 수천만의 집단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고요한 침묵 가운데 이 세상에 홀로 남아있는 것처럼 느끼겠지요. 그들은 고독을 추구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자. 그럼 계속해서 다음 영상을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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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좀비는 제가 처음으로 완결을 낸 작품입니다.

예전부터 소설을 한번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 잠시 쉬는동안 시간이 생겨 한번 도전해봐야겠다 결심했고 짧은 분량이나마 그 결심을 이룬 것 같아 뿌듯하네요.성실하게 매일 분량을 채워나갈 자신이 없어 모든 내용을 다 완성한 후에 매일 1편씩 나눠서 올리는 식으로 연재했습니다. 실제로 글을 쓰는데는 2주정도 걸렸네요.

웃는 좀비에 대한 발상은 굉장히 단순했습니다. 영화에서건, 소설에서건 좀비는 항상 입을 벌리고 팔을 내민 채 그웨에 소리를 내며 이동하는데 만약 좀비가 미친듯이 웃으며 쫓아오면 훨씬 더 무섭지 않을까? 이게 시작이었습니다.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의 크리스찬 베일이 전기톱을 들고 여자를 쫓아가는 장면이 굉장히 큰 영감을 줬지요.




저는 요즘 취업을 다시 준비중입니다. 동종업계의 다른 회사를 알아보고 있고 취업이 되면 그때 쯤 다른 소재의 소설을 써 볼까 합니다. 다음 소재는 도심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괴수가 땡기네요. 영화 불가사리나 미믹같은 괴생명체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마지막으로 연재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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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Mk2
15/04/21 02:32
수정 아이콘
잘 봤습니다. 추천하고 갈게요
대니얼
15/04/21 06:59
수정 아이콘
잘봤어요~
술 한잔 해요
15/04/21 08:31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에도 또 써주세요 ~
15/04/21 11:42
수정 아이콘
재밌게 잘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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