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을 걸고 8000미터가 넘는 히말라야의 고봉을 올라갔는데 정상까지 올라갔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가 없어서 본인이 목숨을 걸고 이루어 낸 등정이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기에 이러한 고산을 오르는 등반가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정상을 정복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합니다. 가장 확실하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일단 사진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그 사진도 그냥 정상에서 피켈에 깃발을 달고 만세 포즈로 찍은 사진만 가지고는 안 되고 적어도 정상에서 동, 서, 남, 북, 네 방향으로 주변 지형을 찍어서 확실하게 자신이 그곳에 올랐음을 증명하는 것이 불문율이라고 합니다.
사진만큼이나 좋은 증거가 되는 것이 바로 동영상이라고 합니다. 캠코더나 다른 촬영 장비로 정상 정복의 순간을 동영상으로 담는다면 재론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정상 정복의 증거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것은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 봐도 납득이 가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8000미터 이상의 고산의 정상부는 일반인이 상상을 초월하는 극한 환경이고 날씨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등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에 사진이나 동영상 촬영이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카메라나 캠코더가 하필 정상 정복의 순간에 고장이 날 수도 있고 잘 못해서 손에서 미끄러져서 천 길 낭떠러지도 굴러 떨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악천후 속에서 도저히 사진이나 동영상만으로는 촬영이 이루어진 곳이 정상임을 증명하기 어려울 상황도 있을 법 합니다.
그럼 사진을 못 찍거나 동영상을 못 찍으면 그 사람의 정상 정복은 영원히 증명을 할 수가 없을까요? 하지만 그런 경우도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가지고 올라간 물건 가운데 하나를 정상에 묻고 오거나 이전에 올랐던 사람들이 남기고 간 물건들 가운데 하나를 가지고 내려온다면 이것 역시 해당 등반가가 확실하게 정상에 올랐다는 증거가 되고 이러한 것도 산악계에서는 정상 정복의 증거로 다 인정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외로 이런 마지막 방법에 의해 정상 정복이 인정이 된 경우들이 좀 있었다고 합니다.
헤르만 볼
헤르만 볼이라는 오스트리아 등반가는 1953년 독일-오스트리아 등반대 소속으로 사상 최초로 낭가파르바트(8,126미터) 정상에 오릅니다. 그는 정상에서 자신의 피켈에 자신의 출신 지역인 티롤 지역의 깃발을 매달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는 올라갈 때도 엄청난 고생을 했지만 하산 하면서도 죽음의 고비를 수차례 넘기며 내려와서 등반 전에는 20대 청년이었던 모습이 하산해서는 70대 노인의 얼굴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자신의 모습은 없고 피켈과 깃발만 보이는 사진 때문에 실제로 그가 정말로 정상에 올랐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나중에 사진 판독을 통해 해당 사진이 정상에서 찍은 게 맞다는 결론은 나왔지만 논란의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었다고 합니다.
정상에서 찍은 거 맞아요?...올라가다 중간에서 찍었지 싶은데...
그러나 결국 이 문제는 나중에 더 이상 논란의 여지없이 풀리게 되는데 1999년 일본 원정대가 낭가파르바트 정상에서 문제의 사진 속 피켈을 발견하고 그것을 가지고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이로서 그가 낭가파르바트를 최초로 등정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100% 사실로 증명이 되게 되었습니다.
1975년 중국의 원정대가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올랐을 때도 정상 정복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었습니다. 주로 서구권 국가들이 이들의 정상 정복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서구의 입장에서 공산주의 국가 중국을 보는 편향된 시선도 한 몫 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나중에 영국 등반대가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서 중국 원정대가 정상에 남기고 간 삼각가(발이 셋 달린 받침대)를 발견하면서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사례는 한국의 한 등반가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폴란드의 전설적인 등반가이자 라인홀트 메스너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히말라야 14좌를 모두 완등했던 (콩라인!) 예지 쿠쿠츠카도 이러한 정상 정복 사실 여부를 놓고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1981년 마칼루(8,463미터)를 단독 등정하는 데 성공합니다. 하지만 같이 원정대에 참가했던 네팔 정부의 연락 장교가 “혼자서는 그 산을 올라갈 수 없다”면서 정상 정복에 의구심을 제시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고 말았습니다. 쿠쿠츠카는 어찌된 일인지 자신의 정상 정복 시의 사진을 찍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에지 쿠쿠츠카
그런데 이 문제는 그로부터 1년 뒤 한국의 고산 등반가 허영호 씨에 의해서 풀리게 됩니다. 그는 1982년 마칼루에 올랐는데 산 정상에서 바위틈에 자리잡고 있는 무당벌레 모양의 마스코트를 하나 발견하고는 그것을 가지고 내려옵니다. 알고 봤더니 그 무당벌레 모형은 1년 전 예지 쿠쿠츠카가 마칼루에 오르고 난 뒤 바위틈에 꽂아놓고 온 것이었습니다. 이 덕분에 예지 쿠쿠츠카의 마칼루 정상 정복 논란은 봄볕에 눈 녹 듯 사라져 버렸고 나중에 예치 쿠쿠츠카는 허영호 씨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하네요.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 중에 “나중에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고들 하시던데 옛말이 틀린 게 하나 없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