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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5/03/30 13:02:10
Name Go2Universe
Subject [일반] 이룬것 없이 경력만 10년 되버린 영화편집자의 편집강의 #3-1
1. 이 내용은 제가 강의하는 대학교 전공과목의 강의록을 기본으로 쓰여졌습니다.
2. 전제된 모든 이미지, 영상들에 대한 권리는 원저작자에게 있습니다.
3. 나오는 내용들중 몇몇 내용들은 참고서적들을 참고했으나 대부분 제 생각을 바탕으로 작성한 내용들입니다.
   (최대한 둘을 구분해 쓰기는 하나 한계가 있기에 정확히 구분안된 지점들에 대해선 양해바랍니다.)
4. 강의록 원본은 아니고 연재를 위해 적당히 풀어서 썼습니다. 비문은 많으나 체력이 없어 수정을 못하겠습니다. 이미지 수정도요.
5. 혹시나 질문 있으시면 댓글을 달아주셔도 됩니다.
6. 이번 강의는 <영화에서의 몽타주 이론, 김용수>와 <몽타주, 벵상파넬>를 참고해서 쓰여졌습니다.
7. 이미 한주 강의가 밀린터라 이거 계속 할 수 있을지가 슬슬 부담되기 시작하네요. 일이 겹치니 멘탈이 안드로메다로.


3주 편집사 (1)

제가 고등학교때 가장 좋아했던 수업은 역사수업이었습니다. 그리고 대학교에 와서 가장 싫어했던 수업은 영화사수업이었습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던 것일까요? 역사수업을 지루하고 재미없고 쓸모없는걸 외우라고 하는 수업이라는데에 전혀 동의하지 못했었는데 대학교에 와서 영화사 수업을 듣다가 보면 그 말에 완전하게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왜 그런일이 벌어졌던 것일까요?

역사학자 E.H.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이런말을 합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대학교 영화사 수업이 재미없는건 별다른 이유때문이 아니다. 수업을 통해 과거의 영화(혹은 감독)와 대화하지를 못해서다. 미술 전시회에서 과거의 명화가 자꾸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느낌같은 것처럼 수많은 고민과 결정을 통해 만들어진 영화가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그게 역사라는 것일테고 역사수업은 그 대화를 하는 법에 대해 학생에게 전달해야 했었던게 아니었던가 싶다. 대체 <동경이야기>가 1953년에 나온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어쨌든 이번 강의는 편집의 역사입니다. 2주에 걸쳐 편집의 역사를 다룰 것입니다. 편집이 생겨났던 이유에서부터 새로운 편집 기법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죠. 편집기법이란 말이 어색하다면 ‘편집의 새로운 길들’이라 바꿔 이해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번 강의는 책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물론 책의 자의적 해석도 많이 추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처럼 - 이전은 한번뿐이니 앞으로도 언제나 - 이 시간도 왜?가 주 키워드가 됩니다. 지리한 역사 수업에 왜 그랬을까?라는 숨결을 부여하면 이제 과거의 영화가 화석이 아닌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바뀌어 나갈 것입니다.


오늘 강의의 시작은 최초의 편집입니다.


  1. 이전 강의 정리
    저번 수업시간때 빠진 이야기들에 코멘트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준비는 했지만 미처 이야기하지 못했거나 강의 도중 언급안한 중요한 이야기들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는 시간입니다.

    A)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왜 줄리엣 비노시의 키스를 동작연결로 편집했을까?
    연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첫장면을 봤습니다. 왜 ‘그’ 지점에서 편집을 한 걸까요? 여러분들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그냥, 그러니까 별 이유없이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아마 대부부분이 그런 이유에서 저 부분을 저렇게 편집했을테니까요. 그렇지만 첫수업부터 우리는 세상 모든 것에 질문을 해보자고 했으니 이 장면도 질문을 던져보자구요.  왜 그랬을까?”
    이 장편의 편집점은 키스를 하고 몸을 일으켜 세우는 줄리엣비노시의 앞보습과 뒷모습을 매치컷으로 편집했습니다. 만약 이 부분을 동작연결이 아니라 동작이 끝난 다음에 연결을 했다면 이 장면의 느낌은 어떻게 바뀌는 걸까요? 키스가 끝나고 몸을 들어올린다음에 편집을 했다면 상황이 종료된 후의 병사의 얼굴로 넘어가겠죠. 몸동작으로 가려졌던 병사의 얼굴이 나타나는 뉘앙스와 떡(!) 하고 얼굴을 보여주는 것간의 뉘앙스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부드러운 연결을 원하는가 강한 충격을 원하는가같은 것들이 그 차이겠죠. 이 뉘앙스를 말로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에 더 세세한 분류는 힘든데 우리는 편집을 할때 이 부분은 전제로 깔고 가야할겁니다.

    ‘미묘한 변화는 양이 적더라도 차이를 만든다.’

    여담이지만 몸을 일으켜세운 줄리엣 비노시가 아주 놀랍도록 매력적인 표정을 지었다면 병사의 얼굴로 넘어가지 않고 그 매력적인 얼굴을 끝까지 보여주는 것으로 영화를 편집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케이스도 실제 많이 나타나는 편집의 형태죠.


  2. 최초의 편집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필름으로 촬영된 영사들을 서로 잇기 위해 편집이 생겨났습니다. 단어에 따른 분류를 해보자면 Cutting,Editing,Montage 입니다. Cut은 자른다는 물리적인 행동을 뜻하고 Edit는 조합을 통해 영화를 완성해가는 것, Montage는 미학점 관점에서 편집을 기호학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사실 이 3단어는 책에 나온 그럴싸한 분류법이니 이 분류가 우리들의 행동을 강제할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단순한 마우스 클릭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그 이상의 이야기들에 편집수업의 의의가 있다고만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최초의 편집이란 것도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니까요.

    최초의 편집을 이야기할때면 최초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금 하게 됩니다. 이젠 너무 지겨울 이야기 뤼미에르 형제와 멜리에스에 대한 이야기를요. 고다르의 영화 <중국여인>에는 영화에 대해 토론하는 대학생들이 나오는데 이 68혁명 도중의 마오이스트 대학생들은 어떤 영화가 훌륭한 영화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두 감독의 영화중에 하나를 선택합니다. 그들의 선택은 현실을 있는그대로 담은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가 아니라 멜리에스의 영화입니다. 그리고 선택이유에 대해 말하기를 멜리에스는 세상을 해석했다 고 합니다. (이 내용은 10여년전에 나온 한겨레신문사의 세계영화100선 서문을 기억을 더듬어 쓴 내용입니다)

    멜리에스의 영화는 세상을 해석하고 자신의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 편집을 적절하게 잘 활용했습니다. 그의 원직업이 마술사였고 그가 많이 만들던 영화가 마술을 영화적 기법으로 재현한 작품이었던 사실을 생각해보면 태생적으로 편집이란 의도를 가진 기술이었던 것으로 보이죠.

    멜리에스의 마법필름에서 어느 순간에 편집을 했는지를 생각해보죠. 그가 여기서 편집을 한 순간은 마술 트릭을 숨기기위해 거짓이 탄로나는 순간을 삭제하고 다음 장면에서도 거짓이 드러날 장면을 삭제한 후에 두 장면을 연결하는 부분들입니다. 연기가 나고 폭발하는 장면이나 머리를 탁자위에 놓는 장면들이 그 장면들이 그런 장면들입니다. 이걸 그저 재미있는 과거의 마술필름으로만 생각한다면 우리가  이걸 수업시간에 이야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기서 도출되는, 그러니까 이 영화가 2015년에 살고있는 우리에게 무슨말을 하고 있는지를 영화를 보며 생각해봐야죠.

    The India Rubber Head ()

    멜리에스의 편집이 우리에게 하는 이야기는 이겁니다. 우리가 영화를 편집하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들을 사실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장면을 없애 이어 붙이면 우리는 그 것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는 거죠. 여기서 보이지 않는 편집도 시작되고, 실재와는 다른 영화적 사실도 시작됩니다. 거기에 편집이란게 쓸모없는 장면을 버리는 행위라는 것도 알 수 가 있게 되는거죠. 영화를 편집할때 항상 잊어버리는 사실, 쓸모없는 장면을 버린다는 영화가 시작될때부터 영화 편집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이야기라는 거죠.

    그리고 쓸모없는 장면을 선택하는 기준이라는 것은 가치판단과는 별개로 고도의 인위적인 행동입니다. 설령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속에서 판단했다 하더라도 그 의식 위의 대전제는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릴지를 강제하고 있으므로 편집은 대전제라는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인위적인 행동을 들키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이 목표라고 할 수가 있는거겠죠. 물론 이후에 차차 이야기하겠지만 편집의 인위성을 일부러 자극하는 방식으로도 편집은 발전해나갑니다. 일부러 행동을 들키는 방식을 통해서 말이죠. 간단한 예로 점프컷이 있네요.

    멜리에스에서 시작된 편집이 <대열차강도>에 이르러서는 또 다른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집니다. 열차 강도들이 기차를 털고 잡히는 것까지를 다룬 이 영화의 마지막에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열차강도로 보이는 한 무법자가 나와 관객을 향해 총을 쏘는 장면이 말이죠. 이게 <대열차강도>가 나왔던 초창기에는 편집되지 않은채로 극장에 보내졌다고 합니다. 극장에서 원하는 위치에 편집해 이 장면을 집어넣으라고 말이죠. 영화 전체 이야기와 별 상관이 없었던 이 장면은 극장에서 상영되면서 영화의 마지막에 넣는 것으로 정착되었다고 합니다. 자극의 기준으로 살펴볼때 가장 강한 자극을 영화의 앞부분에도 넣고, 중간에도 넣고, 뒷부분에도 넣어봤을텐데 귀납적으로 이뤄진 결론은 영화의 마지막에 이 장면을 넣는 것입니다. 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요?


    이 결과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나올 수 있을텐데 저는 이 것을 가장 중요한 장면, 혹은 가장 강력한 장면은 앞보다 뒤에 배치했을때에 그 효과가 더 커진다로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강도가 정면을 향해 총쏘는 장면이 등장했다면 이 맥락을 이해할수 없으니 당혹감을 느꼈을테고 중간에 배치하자니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흐름을 끊었을테니 말이죠. 역시나 차차 다룰 편집이란 벽돌쌓기와 같다는 견해가 이를 증명하는 이야기일테고 수많은 영화들이 순차적인 흐름을 통해 넓은 화면부터 작은 화면으로 옮겨가는 편집순서를 가지는 것도 이런 경험을 통해 정착이 된 형태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 대단한 2003년에 나온 이 영화의 첫장면은 어떻게 해석해야하는 것일까요?

  3. 그리피스, 최초의 테크니션


    이미 영화사 시간에 지겹도록 보셨을 국가의 탄생, 불관용을 만든 바로 그 DW 그리피스입니다. 영화의 아버지이자 저 모자속에 숨겨진 탈모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고도 알려진 사람입니다. 영화편집에서 그리피스를 꼭 기억해야하는건 그의 놀라운 발견(혹은 발명)때문입니다. 영화를 만들며 본능이라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본능이 아니라 오랜 시간 만들어져온 문화의 힘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이라는 거죠.



    그리피스의 발견중 가장 유명한 것은 문의 통과입니다. 세트와 세트, 세트와 로케이션을 문이라는 매개를 통해 서로 연결지은거죠. 문을 열고 나가면 집밖으로 나가는 공간의 연결이 그리피스부터 제대로 정착되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문에서 시작된 연결은 문을 넘어서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고 이렇게 연결된 공간들이 같은 시간대에서 이뤄지는 인상을 준다는 결론에 까지 이릅니다. 위 사진처럼 인물이 좌측을 바라보고 그 쪽으로 프레임 아웃을 하면 다음 쇼트에서 우측에서 프레임안으로 들오는 쇼트를 배치해 공간과 시간을 서로 연결시킨다는 거죠.

    이런 그리피스의 발명덕분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장면을 영화에서 흔하게 보게 됩니다.

    <무간도> 극장출구 추격 https://youtu.be/VZDQJ-EA-kg?t=1m18s

    추격 시퀀스에서는 그리피스가 발견한 영화의 특징인 공간과 시간의 연결이 도드라지게 나타납니다. 추격당하는 사람과 추격하는 사람이 약간의 거리와 약간의 시간차를 유지했을때 생기는 긴장감이 이 시퀀스에서 수행해야할 목적인데 이 것들은 모두 공간과 시간을 연결시키면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 것 외에도 서사구조의 배열을 바꿈으로 더 강력한 서스펜스를 얻을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죠. 위협받는 여성과 달려가는 기관차를 통해 서스펜스를 만든다거나 이미지들을 대비시켜 이미지를 강화하는 것을 말이죠. 이 런 양식은 시한폭탁을 두고 여자주인공을 구하러 가는 남자주인공류의 장면에서 많이 사용됩니다. 가령 <다크나이트>에서 애론 앵크하트와 메기 질렌할을 구하러 가는 장면처럼 말이죠

    하지만 그리피스가 했던 가장 위대한 발명은 지금부터 이야기할 내용입니다. 그리피스가 촬영장에 갔던 어느날, 새로운 여배우가 세트에 와 있었습니다. 그리피스는 그녀를 보자마자 한눈에 반하게 됩니다. 호감이 가는 여자가 있으니 그리피스는 어떻게든 그녀에게 다가서고 싶고 자신의 마음을 어필하고 싶어했겠으리라는 것은 인지상정. 그리피스는 열심히 머리를 굴립니다. 어떻게 하면 덜 민망해진채 그녀에게 마음을 정할지를요. 그리고 그리피스는 마음을 결정한채 스텝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카메라를 여배우 앞으로 가져가주세요.”



    참 감격스러운 순간아닌가요? 그리피스가 카메라를 옮겨 여배우에게 다가간 다음부터 영화는 엄청난 변화가 생깁니다. 그 전까지 영화에서 의미를 결정하던 것은 배우의 연기와 미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순간부터요 카메라의 위치가 영화의 의미를 결정하는데에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 것도 아주 크게요.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가 클로즈업을 만들어낸다거나 더 멀찍이 떨어져 풀샷을 만들어내는 것. 영화역사에서 최초로 장면을 만드는 것에 대한 고민이 이 장면을 어떻게 촬영할 것이냐에 대한 고민으로 바뀌어나가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영화를 연출한다는 의미가 이전에 비해 그 내용이 훨씬 더 확장되어 나갑니다.

    배우의 연기와 미술이 아닌 영화적 행위가 쇼트의 의미를 바꾼 것은 평면성이 강한 타블로(풍경)에만 멈춰있던 영화에 새로운 숨결을 부여하고 이 순간부터 이런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 쇼트를 연결한다는, 즉 몽타주에 대한 생각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그리피스의 몽타주에 대한 견해를 가장 잘 이어받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신기한게 있다면 이 몽타주에 대해 가장 천착했던 사람들은 미국이 아닌 대서양을 건너, 혹은 태평양을 건너 시베리아를 횡단해야 갈 수 있는 러시아(혹은 이제는 사라진 소비에트) 였습니다. 영화를 영화답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던 러시아의 감독들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우선 이야기할 사람은 쿨레쇼프, 푸도프킨입니다.


  4. 쿨레쇼프

    미술학도로 세트디자이너로 영화작업을 시작한 쿨레쇼프는 그리피스에게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리피스의 빠른편집, 빈도 높은 클로즈업, 평행 액션들에 대해 경도되어 있었는데 이 과정이 흥미롭습니다. 소비에트의 영향때문이었는지 쿨레쇼프는 호소력이 있는 영화기교를 찾기위해 영화들을 보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영화는 미국영화였고 러시아 영화는 일부 상류층만 즐기는 고급문화처럼 되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대중들은 당시 러시아 영화들에 대해 굉장히 지루해하고 있었습니다. 두 나라의 영화를 비교하자 아주 큰 스타일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러시아 영화는 단일한 지점의 긴쇼트, 미국 영화는 다양한 지점의 짧은 쇼트로 구성되어 있었단 사실이죠. 대중의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영화의 힘이 있다 믿었던 쿨레쇼프는 이런 경험을 토대로 영화는 쇼트를 보여주는 것보다는 쇼트를 결합하고 구성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쇼트가 어떻게 찍혔냐보다 어떻게 연결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결론을 말이죠.

    후샤오시엔의 영화 <비정성시>는 영화가 대부분 단일지점의 긴쇼트로 이뤄져 있습니다. 풀샷에 롱테이크 형식으로 만들어졌기때문에 영화는 담보할 수 있는 것과 담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뉠수 밖에 없는 운명에 빠집니다. 담보할 수 있는 것은 진정성이고 담보하지 못하는 것은 호응입니다.

    <비정성시> https://youtu.be/wGDwNGIiDaM?t=37s

    <비정성시>가 훌륭한 영화인 것은 진정성이 표현되어서지만 좋은 영화임에도 필연적으로 만나는 문제가 있다면 그 것은 단일쇼트가 발생시키는 문제, 주의 집중의 분산입니다. 관객들을 영화안으로 빠르게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필요한 정보들을 빠르게 제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비정성시>가 택한 방법의 반대로 가야하겠죠. 더 쪼개고 더 나눠라. 그래서 쿨레쇼프는 더 쪼개는 방법에 대한 실험을 합니다. 그리고 그 실험은 (말그대로 실험) 지금 우리가 하는 편집의 거의 모든 일반론을 설명해주는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5. 쿨레쇼프의 실험
    쿨레쇼프는 편집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증명하기 위해 세가지 실험을 합니다. 물론 여타 다른 사회학적 통계를 다룬 실험처럼 모두가 그러하다가 증명되는 연역적 결론이라기 보다는 많이들 이러저러한 견해를 가지더라 라는 귀납적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실험들입니다.

    쿨레쇼프의 첫번째 실험은 인위적 풍경
    넓은 초원의 철조망앞을 한 남자가 걸어갑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쇼트는 철조망 바로 옆에서 촬영한 남자의 무거운 표정을 닮은 근접쇼트. 자 우리는 이 두 쇼트를 연결시켰을때 도출되는 정보는 넓은 초원의 철조망앞을 걸어가는 한 남자의 우울함일 것입니다. 자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한가지 있습니다. 넓은 초원을 담은 풀샷과 철조망 바로 앞의 근접쇼트가 서로 다른 장소에서 촬영된 것이란 거죠. 서로 다른 장소에서 촬영된 비사실적인 조합을 우리는 영화내에서는 실재 존재하는 공간으로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이 인위적 풍경을 잘 사용하는 감독이 한국에서는 봉준호죠. <살인의 추억> 코멘터리에서 했던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나지만 이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추격장면에서 장면 구성을 이야기하며 집은 전라도, 문을 열고 나오면 충청도, 골목을 돌아 달리면 경상도. 그리고 마지막에 도착한 곳은 강원도라고 말이죠. 아마 제 기억이 맞다면 이 장면이 그런 방식으로 만들어진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정성일은 이런식의 편집에 대해 부자연스럽고 컷들 다 튀는데 어떻게 저런식의 엉망인 편집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었던 것으로도 기억하는데 이 말을 놓고보면 정성일은 에릭 로메르쪽 성향이 강한게 아닌가 합니다. 지독한 자연주의자의 모습이랄까요. 편집자와는 태생적으로 충돌을 일으킬 수 밖에 없는 전제인 자연주의자이 이야기도 천천히 나중 수업에 하도록 할죠. (<마더>와 <살인의추억>에 관한 이야기들이 섞인거라 정확한 지칭대상은 원래 했던 이야기와 다소 차이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두 영화중 무엇을 언급했었더라도 큰 문제는 없는 이야기라 생각되네요.)

    <살인의 추억>

    두번째 실험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
    영화 <러브픽션>에는 희진(공효진역)의 샤워 장면이 있습니다. 방에서 샤워하고 나올 희진을 기다리며 구주월(하정우역)의 머리는 희진에 대한 므흣한 상상으로 가득해집니다. 희진의 알몸에 대한 상상을요. 그런데 이 장면이 아마 보도자료로도 나와 있겠지만 대역을 이용해 촬영한 장면입니다. 얼굴을 제외한 몇몇 샤워장면은 연기한 공효진의 몸이 아닌 다른 대역으로 촬영해 편집했던 거죠. 그런데 이걸 보는 관객은 저 장면에서 공효진만을 생각합니다. 이런 편집은 미용과 관련된 CF에서 자주 나오는 편집인데 이런 편집방법을 최초로 정리한게 바로 쿨레쇼프이고 이게 그의 두번째 실험입니다. 아름다운 그녀와 그녀의 아름다운 눈, 목, 머리카락, 입술을 차례로 보여주면 사람들은 그녀의 얼굴은 부분 부분 다 아름답다고 여긴다는 거죠.

    <러브픽션> https://www.youtube.com/watch?v=EfoTkO2lNo0&feature=youtu.be

    마지막 실험은 쿨레쇼프 효과
    지금까지 설명한 실험은 실험 내용이 제목이었는데 마지막 실험은 실험의 내용이 아닌 실험을 행한 사람의 이름이 붙어있습니다. 발견자의 이름을 붙일만큼 대단한 발견이었고 이 발견은 무수히 많은 편집의 대전제가 되고 심하게는 도그마에 가까운 신념이 되어 가죠.

    지금이야 메모리를 사용해 편하게 촬영한 영상을 기록했지만 과거에는 필름을 사용해 영상을 기록했습니다. 필름에는 은이 들어가기에 필름의 가격은 마음대로 사용하기엔 부담이 되는 물건이었으며 더군다나 1차세계대전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소비에트에서 필름을 사용하는 것은 굉장히 호사스런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돈이 든다고 실험을 멈출수는 없었던 쿨레쇼프는 촬영을 하지 않고 쓰고 남은 필름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인기 배우의 무표정한 얼굴. 이반 모주힌의 얼굴을 가지고서 쿨레쇼프는 편집 실험을 합니다.

    이반 모주힌의 얼굴은 상수로 두고 여기에 변수들을 대입합니다. 스프(A), 관속에 누워있는 죽은 여인(B), 놀고 있는 작은 소녀(C)라는 세가지 쇼트를 섞으며 쿨레쇼프는 한가지 사실을 알아내죠. 이반 모주힌의 얼굴 뒤에 어떤 쇼트가 오냐에 따라 그 얼굴의 의미가 바뀐다는 사실을요.  A는 배고픔, B는 슬픔, C는 애정이라는 의미로. 모주힌의 얼굴이 언제 어느때에 어떤 맥락으로 촬영되었는지와 별개로 그 얼굴에 조합을 통해 새로운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이 실험은 배우의 연기(혹은 쇼트의 의미)가 편집자의 의도(감독의 의다로 불리어도 무방)에 따라 다르게 지각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이 놀라운 발견은 영화에 한가지 대단한 가능성을 더해 주었다.

    ‘의미는 맥락속에서 존재한다.’

    그런데 왜 모주힌의 얼굴은 추가 쇼트의 앞에 놓여졌을까. 그리고 뒤에 놓여졌었다면 이 실험의 의미는 어떻게 바뀌게 되었을까. 이 우연은 후대의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걸까. 이 우연은 저번 수업, <어 퓨 굿맨>에서 강조했던 시선의 일치와도 연결되는 이야기이다. 모주힌의 얼굴이 먼저 배치되면서 우리의 시선은(혹은 우리의 감정) 모주힌의 시선과 일치되게 되고 그 시선을 통해 물체들(이어지는 세가지 쇼트)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불러일으킨 감정을 배우의 얼굴에 투영하게 된 다는 사실!


  6. 벽돌 쌓기

    쿨레쇼프의 이론에 대한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편집을 통한 갑작스러운 변환은 너무 급진적인 것이 아닌가?’
    ‘너무 빠른 쇼트의 전환은 이해할 시간을 주지 않아 너무 난해한 것이 되지 않느냐?’

    이에 대해 쿨레쇼프는 이렇게 반박하며 자신의 견해를 보충해 나간다.
    “급작스런 비약은 피하고 부드러운 전환을 가져와야 한다.”

    비약은 피하고 부드러운 전환을 가져오기 위해 그는 정보들을 누적시켜 완성된 형태로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 이를 집을 짓는 과정인 벽돌쌓기에 비유합니다. 벽돌은 한번에 소화하기 힘든 많은 양을 쌓아도 안되고 이상한 방식으로 쌓아도 안되며 천천히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 가장 견고하게 완성된 집을 만드는 방법이다라는 이야기를 하며 이 벽돌을 쌓아가는 과정이 영화의 편집이라 이야기를 합니다. 이는 조금후에 이야기할 푸도푸킨의 연결 몽타주와도 연결되며 현대 영화를 만들어가는 방식의 중요한 틀거리가 되죠. 세상만사 그렇듯이 이런 벽돌쌓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상한방식으로 이상하게 집을 지으며 그 아름다움에 대해 칭찬을 합니다. 이 이상한 집짓기를 하는 사람들의 영화 편집방식은 앞으로 불균질 편집이라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이야기는 앞으로 많이 다룰 겁니다.

    그렇다면 벽돌쌓기를 고수하며 집지었던 사람들은 이상한 집짓기를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바라봤을까요? 처음에는 뭐 저런 이상한 놈들이 다 있나 하다가 서서히 그들이 만들어지는 집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하더군요.

    “아 저 공법의 몇가지만 따오면 지금보다 더 빠르게 더 멋진 집을 만들수도 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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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내려갈게요
15/03/30 13:32
수정 아이콘
재... 재밌다.

예술이 뭔지는 정확히 정의내리기 힘들겠지만, "쿨레쇼프 효과"는 영화에게 예술성이라는 날개를 달아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Go2Universe
15/03/30 13:50
수정 아이콘
100년 뒤의 저도 저 발견만 보면 가슴이 콩닥콩닥뛰면서 설레는데 쿨레쇼프는 오죽했을까 싶네요..
15/03/3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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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부분도 분량이 상당한데, 1부 2부로 나누어주실 수는 없나요?
재미있게 잘 보고 있습니다.
Go2Universe
15/03/30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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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미팅때문에 급히 마무리하고 나오느라 이리 된거라서. 밤쯤에 2부 올릴게요. 근데 진짜 메인디시는 3부긴 해요.
마스터충달
15/03/3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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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리에스의 시도는 사진의 경향이 강했던 촬영이란 작업을 회화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탈바꿈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이름도 '활동사진'에서 '영화'가 된 것이겠죠.

그리고 쿨레쇼프의 저 실험에 대해 처음 알게 됐을때는 정말 감탄했었습니다. 제가 비전공영역임에도 관심을 갖던 것이 심리학이었는데, 쿨레쇼프의 저 실험은 영상 실험이기도 하지만 심리학 실험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저에게 영화는 그냥 취미에서 공부하는 취미가 되었죠;;) 심리학을 공부하다면서 드는 생각 중에 하나는, 심리학을 통해 사람의 마음속을 알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아무리 공부해봤자 타고나길 눈치 빠르게 타고난 사람만 못하죠. 하지만 심리학을 이용하면 사람의 마음을 어떤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건 아주 강력하죠. 심지어 상대가 원치않는 행동을 유도하는 것도 가능하니까요.(리펜슈탈?) 그리고 쿨레쇼프의 저 실험은 단순한 시각정보라도 어떻게 나열하느냐에 따라 특별한 심리상태를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었죠.

쿨레쇼프는 '부드러운 전환'으로 한발 양보했지만, 편집의 예술성이 드러나는 부분은 오히려 부드럽지 못한 전환에서 온다고 봅니다. 이유는 자연스러운(균질한) 편집보다는 불균질한 편집에서 심리상태가 훨씬 극적으로 변화하기 때문이죠. 균질 편집이 일상적 시각정보와 비슷하다면, 불균질 편집은 그것을 망가뜨림으로써 감정에 편향성을 제공하는 셈입니다. 그런 면에서 영화를 볼 때 감탄하는 장면에는 어떤 '생경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어? 이게 뭐지?'하는 인지의 혼란이 감정의 편향성으로 연결된다고 할까요.(이를 서사적으로 보면 상징같은 것이 되겠죠) 이런 편집 사이의 생경감을 읽어내는 것은 시에서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부자연스럽기만 하면 뭘 보여주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 자연스러운 와중에 생경감을 불러일으켜야겠죠. 그런 것을 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역시 창의력일테고요. 이러니 예술은 천재들 싸움이 되는거겠죠 ㅠ,ㅠ

전부터 써주신 글을 보고 생각하는 점을 달고 있는데, 이거 꼭 수업 끝나고 일일레포트 내는 기분이네요 크크크.
Go2Universe
15/03/30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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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의 예술성이 나타나는게 불균질이라면 편집의 장인정신이 나타나는 것은 균질입니다.
완벽한 시선의 일치를 구성해서 인물의 시점과 감정의 흐름을 완벽하게 일치시킬때 나오는 완벽함은 또 그 것대로 무협지에 많이 나오는 단어인 '천의무봉'의 경지가 되기도 하거든요. 그리고 그 생경감의 놀라운 순간들에 대해서는 역시나 차후에 무진장 다룹니다. 하하하.
마스터충달
15/03/3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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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천의무봉의 영화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바쁘시겠지만 앞으로도 쭉 연재 기대하겠습니다. 차후에 무진장 다룰 그 이야기들이 너무 기다려집니다.
오클랜드에이스
15/03/3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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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 너무 좋네요.

계속 연재해주세요~
Go2Universe
15/03/30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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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주 강의가 밀려있답니다. 하하하하하. 이렇게 힘들줄 알았으면 시작도 안하는 거였는데 말이죠.
오도바리
15/04/0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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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늘 감사드립니다
학생들이 굉장히 좋아할 교수님이시겠네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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