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만화 - 죽도 사무라이(마츠모토 타이요)
왜 하필 시점이 과거여야만 했는가, 라는 질문의 답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사극의 한 모범 예시라고 할 수 있을 법 합니다. 스스로를 도구화하지 않은 사뭇 순수한 검객들이 벌이는 승부의 비장함을 허구적 노스탤지어가 한층 더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사극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형식과 내용의 조화가 대단히 훌륭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 어우러짐은 일본 민화를 보는 듯한 작화가 드러내는 시대감에서도 드러나는데, 저는 이것을 '만화적이다'라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는 지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라고 할까요.
이 만화를 보며 어째서인지 머릿속에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라는 소설이 떠올랐습니다. 그 속에서도, 주인공인 다이스케가 '걷기 위해 걷는 것'을 예찬하는 장면이요.
(...) 걷고 싶으니까 걷는다. 그러면 걷는 것이 목적이 된다. 생각하고 싶으니까 생각한다. 그러면 생각하는 것이 목적이 된다. 그 이외의 목적을 가지고 걷거나 생각하는 것은 보행과 사색의 타락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 본래의 활동 이외에 어떤 목적을 세워서 활동하는 것은 활동의 타락이 된다 (...)
키쿠치와 세노, 또 다이자부로는 다이스케의 말로 표현하자면 타락하지 않은 인물들입니다. 그리고 타락하지 않은 방식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로 곧 세류에 거스르는, 즉 세상과의 투쟁을 벌이는 이들입니다. 이 만화의 매력으로서 비장함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는데, 마츠모토 타이요의 비장함에 역시 남다른 깊이가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단순히 인물 간의 승부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주재하는 존재로 세계를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탁구를 치고(핑퐁) 복싱을 한다거나(제로) 마운드 위에서 공을 뿌려도(스트레이트) 눈 앞의 상대가 전부가 아닙니다. 그들이 외나무다리 위에서 만나게 한 세계야말로 어쩌면 진정한 의미의 '상대'라고 할 수 있겠죠. 마츠모토 타이요 세계의 인물들은 이 적과 살아온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맞섭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이 만화에는 어째서 이런 그림이어야 하는가? 부터 어째서 시대극이어야 하는가? 까지, 틀의 존재 증명을 그 안에 든 것으로 완수하는 자기 완결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저는 만화의 그림이란 현실과 대응한다는 최소한의 상징성만 갖추면 된다는 점에서, 영화나 사진처럼 사실을 그대로 옮기는 것에 그쳐서는 만화의 모든 가능성을 현실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마츠모토 타이요는 저에게 아주 좋은 작가입니다. 이 작품은 비단 올해로 한정짓지 않아도 저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만화 중 하나였습니다.
그 외의 작품들
트윈 스피카(야기누마 고)
'기승전감동'의 원패턴으로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든가, '그 사람은 사실 착한 사람이었어' 류의 착한 반전을 너무 자주 써먹는다든가 하는 문제점은 좀 있습니다. 그래서 읽다 보면 김이 빠진다거나 질질 끌리는 것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아요. 아무래도 이런 점들이 이 만화를 비슷한 주제를 가진 '2001 야화' 나 '문라이트 마일'보다 좋은 작품으로 평가하기는 어려운 이유가 된다고 할 수 있겠죠. 우주를 향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은 잘 그려냈다는 생각이 들지만, 신비의 이면인 공포를 다루는 데는 약간 소홀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 만화가 착실하게 걸어 나간 이런 '착한' 노선의 끝에서 분명 그 나름의 울림은 있었습니다. 그것이 비록 명작이다! 라고 감탄할 만한 종류의 것은 아니었더라도.
히나마츠리(오타케 마사오)
올해 읽은 코미디 만화 중에서도 단연 최고였습니다. 언젠가부터 한국에서나 일본에서나 참으로 오묘한 호흡을 가진 코미디 만화가 대세가 된 것 같은데(소위 병맛이라고 하는) 그 코드의 장점을 취하고 단점은 최소화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크게 매력적으로 느낀 만화였습니다.
상식이나 논리 같은 것을 뒤트는 것까지는 좋은데, 이걸 과하게 뒤틀면 이야기가 사라집니다(방귀만 뀌어 대는 모 웹툰을 생각하면 쉬울 것 같네요). 웃긴 장면이야 연출할 수 있겠지만 딱 거기까지가 되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하이 텐션' 같은 미사여구로 수식되는 이런 류의 만화는 각별하게 싫어해서 지금껏 꺼려 왔지만, 이 만화는 어떤 적절함을 지켜 나가면서 제게도 상당히 재미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다음 권이 나오기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만화책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