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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4/11/21 12:18:41
Name 가브리엘대천사
Subject [일반] [연재] 빼앗긴 자들 - 18 (아키엔 終)


가르멜 공작은 호들갑을 떠는 시종의 등쌀에 못 이겨 눈을 떴다가, 해가 하늘 높이 뜬 것을 보고는 기겁을 하며 벌떡 일어났다. 어젯밤 분명 와인은 한 잔밖에 안 마셨는데 머리는 왜 이리 깨질 것 같은지 정신이 멍할 지경이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폐하는? 폐하는 어디 계시느냐?”



자신이 떨었던 호들갑 보다 배는 더 부산을 떨며 방에서 나가려는 공작을 죽을 힘을 다해 붙잡은 시종이 헉헉거리며 말했다.



“폐하께서는 주인님께서 일어나시면 의관을 정제한 후 나팔 소리가 울리면 그랜드 홀로 와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왜 안 깨운 거냐?! 나팔은? 울렸느냐?”



언제부터 깨우기 시작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깨웠는데 이런 억울한 일이 따로 있을까 싶었지만, 별수 없었다. 성질 더러운 귀족들처럼 자신을 때리지는 않는다는 것에 감사하며 시종은 말을 이었다.



“나팔은 아직 안 울렸습니다. 인제 그만 고정하시고, 의관을 정제하시지요. 준비는 다 해 놨습니다.”



책망할 시간 따위는 주지 않겠다는 듯, 시종은 빠르게 이동한 뒤 그가 입을 옷들을 갖다 바쳤다. 공작은 그의 도움을 받아 의관을 정제하고 산발한 머리도 말끔하게 가다듬은 뒤 바로 방에서 나가려 했으나 시종이 그의 팔에 매달리듯이 달라붙었다.



“분명 나팔이 울리면 오라고 하셨습니다.”

“이거 놔라! 오늘이 무슨 날인지 정녕 몰라서 이러는 게냐? 한시라도 빨리 폐하께 가야 한단 말이다!”



옷에 묻은 파리를 떼어내듯 공작은 팔을 휘둘렀다. 벽 쪽으로 날아간 시종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달려들기 전에 공작은 방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고 그 길로 바로 그랜드 홀로 달렸다.

성은 이상하리 마치 조용했다. 이미 해가 중천에 떴는데, 활동하는 자들이 이다지도 없다니 너무도 수상했다. 혹시 자신이 자는 사이 이미 무슨 명령이 내려진 것은 아닌가 싶어 공작은 전력을 다해 뛰었고 미처 속도를 줄일 사이도 없이 쾅, 하며 그랜드 홀로 향하는 문을 열어젖혔다.



“폐하?!”



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휑한 공간이 그를 반길 뿐이었다. 너무 늦은 건가? 그 망할 시종이 거짓말이라도 한 것인가, 싶어 홀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그는 단상 위에 올려진 왕관과 국새 그리고 인장을 볼 수 있었다. 이것들은 분명 양위 의식을 거행할 때 필요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또한 항복할 때도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제야 안심이 됐다. 이것이 여기 이렇게 우아하게 놓여 있다는 것은 아직 사용되지 않았다는 뜻일 테고, 그 말은 곧…….



“일찍 오셨습니다.”

“폐, 폐하!”



느닷없이 뒤에서 소리가 들려오자 공작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돌아섰다. 거기에는 예의 검은색의 제의를 입은 칼레인이 빙긋 웃으며 서 있었다. 어제 입었던 제의와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은색으로 기묘한 문양들이 수놓아져 있는 것이 달랐다. 피어오르는 불꽃을 형상화한 듯한 그 문양은 정말로 타오르듯이 살며시 흔들리고 있었다. 물론 당연히 그럴 리는 없었기에 공작은 너무 급히 달려와서 숨이 차다 보니 헛것이 보이는 것으로 치부했다.



“아직 나팔이 울리지 않았는데 어찌 오셨습니까.”



질문해 놓고 대답을 요구한 건 아니라는 듯, 돌아서서 단상 위로 올라간 칼레인은 여기가 좀 비뚤어졌네, 하며 왕관의 방향을 살며시 틀었다. 준비가 다 된 것 같다며 좋아하는 그의 모습에 가르멜 공작은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폐하…… 그러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그러지 마십시오.”

“무엇이 말입니까?”

“오늘이, 그렇게…… 즐거워할 수 있는 날이 아니지 않습니까.”



칼레인의 입가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공작의 입가가 떨려왔다. 천천히 단상에서 내려와 공작의 앞에 선 칼레인은 깊은 빛이 담긴 눈동자로 찬찬히 공작을 살폈다. 그를 마주하던 공작은 그 눈빛에 압도되어 저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그랬기에 칼레인의 두 눈동자의 빛깔이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공이 살 수 있는데, 기쁘지 않다는 겁니까?”

“신이 산다고 하여도, 폐하께서는…… 아니지 않으십니까.”

“그럼, 공의 아들은 어떻습니까?”

“네?”



공작이 고개를 들어 올리자 칼레인은 옷깃을 여몄다. 그리고 굳었던 얼굴을 풀며 다시 살며시 미소 지었다.



“작위를 달라고 하던 아들을, 남작으로 봉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들은 분명 기뻐했을 겁니다. 현재는 남작으로서 자신의 영지를 관리할 수 있고, 오랜 시간이 흐르면 공작위를 계승하게 될 테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폐하, 무슨…….”

“공께서, 그런 아들의 목을 내게 가져다주실 수 있겠습니까?”



웃으면서 저런 말을 하는 모습에 공작은 소름이 돋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칼레인은 그것 보라는 듯이 싱긋 웃었다.



“공도 살고, 공의 아들도 살 수 있게 됐습니다.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없을 텐데, 짐은 공이 그토록 우울해 하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그 끝은 정해져 있었다. 도저히 깨뜨릴 수 없는, 헤어날 수 없는 수렁과도 같은 대화였기에 공작은 입을 다물었다. 그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 정오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저 멀리서 은은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라피엘 대주교가 그랜드 홀로 들어섰다. 이미 왕이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본 그는 화들짝 놀라더니 종종걸음으로 달려와 깊이 고개를 숙였다.



“폐하, 나팔 소리가 들리자마자 달려왔사오나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짐도 방금 왔습니다. 자, 이제 두 분이 다 오셨으니 출발해 볼까요. 라피엘 대주교께선 왕관을, 그리고 가르멜 공작께선 인장과 국새를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저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 서둘러 가도록 합시다.”



가르멜 공작은 마지막으로 뭐라고 더 말하고 싶었으나 말없이 왕관을 들어 올리는 대주교의 모습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왕관을 새로운 왕에게 수여하는 것은 대주교의 몫이었다. 그런 그가 아무런 반대도 없이 조용히 왕관을 들어 올렸다. 칼레인의 뜻을 거스를 의지가 없다는 뜻이었다.



“가르멜 공작?”

“……알겠습니다, 폐하.”



여전히 주저하던 공작이었으나 칼레인의 재촉에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그는 내키지 않는 손을 내밀어 아키엔 왕국의 국새와 현 국왕인 칼레인의 인장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칼레인을 따라 홀을 나섰고, 회랑을 지나, 성문으로 향했다. 오면서도 느낀 것이었지만 성문까지 향하는데 단 한 명도 보이지가 않았다. 다들 어디로 숨어버리기라도 한 것일까?

성문 앞까지 도착하자, 병사 몇 명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왕을 향해 예를 올렸고, 칼레인이 눈짓하자 천천히 성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 뒤 왕의 손짓에 맞춰 어디론가 사라져 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좇던 공작은 그들이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 쪽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왜 아무도 보이지 않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무래도 저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지하에 대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째, 좀 느낌이 이상하군요.”



옆에 있던 대주교가 속삭이듯 말했다. 천천히 칼레인의 뒤를 따라 걷던 공작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색의 제의가 바람에 흩날리며 기다란 그림자처럼 펄럭이는 것을 보고 있다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그것은 어둠이 되어 사방을 뒤덮었다. 흠칫 놀라 고개를 드니, 먹구름이 잔뜩 몰려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비라도 한바탕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걸 알고 있었던 것인지 저 앞에 놓인, 끝이 없이 펼쳐진 병사들의 막사 밖으로는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다. 이쪽에서 이렇게 다가가고 있으니 누군가는 나와서 그들의 대장에게 자신들을 이끌 법도 한데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그들은 막사 앞에 당도한 뒤 잠시 멈춰서야 했다.



“이쪽으로 갑시다.”



좌우로 몇 번 고개를 갸웃거리던 칼레인은 이내 감을 잡았다는 듯이 막사 사이를 휘저으며 어디론가 향했다. 그의 뒤를 말없이 따르는 공작과 대주교는 아까부터 풍기던 이상한 냄새가 더욱 강렬하게 퍼져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뭔가 말할 수 없는 불쾌함이 가득했다. 썩는 듯하기도 했고, 뭔가 구린 것 같기도 했다. 막사를 하나하나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신음성인지 코 고는 소리인지 알 수 없는 기이한 소리가 조금씩 더 커지고 있었다.

그때, 뭔가가 막사 바깥으로 스르르 쏟아졌다. 웬 검은 물체인가 싶어 봤더니 그것은 사람이었다. 온몸이 검게 변한 채 썩어버린 시체 덩어리였다. 쓰러질 때의 충격인지 아니면 이미 그렇게 된 것인지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에 나뒹굴었다. 흐물거리며 볼살이 녹아서 흘러내렸고, 그 사이로 눈알이 툭, 떨어지는 모습이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 이게 무슨……?!”



시체 주변에 맴돌던 쥐들이 찍찍거리더니 이내 사라져 버렸다. 공작과 대주교는 황망해 하면서도 서둘러 칼레인의 주변을 에워쌌다.



“폐하, 역병이라도 돈 모양입니다.”

“서둘러 환궁을 하셔야 합니다!”



호들갑을 떠는 그들과는 달리 칼레인은 평화로워 보였다. 그는 빙긋 웃으며 괜찮다 말했고, 너무나 해맑은 그의 모습에 둘은 정신이 나가 버릴 지경이었다. 하루 만에 사람이 저렇게 순식간에 썩어서 검게 변해 버린 이곳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는데 괜찮다니?!



“걱정하실 것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운명이지 우리들의 것은 아니니까요.”



칼레인은 나뒹굴고 있는 병사의 머리를 향해 손짓했다.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썩어 버린 시체는 순식간에 잿가루만 남긴 채 사라져 버렸다. 칼레인은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공작과 대주교는 불안해하면서도 말없이 따랐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걸을수록 마음속으로 알 수 없는 의혹이 조금씩 피어올랐다. 혹시, 이 역병을 창궐시킨 장본인이 자신들의 앞에 있는 남자가 아닐까…… 하는.

어느 순간, 칼레인의 발걸음이 멎었다. 그의 앞에는 다른 막사들의 몇 배는 더 큰, 과연 라키쉬만 후작이 있을 법한 막사가 놓여 있었다. 막사 옆에서 흩날리다가 축 늘어진 라키쉬만 가문의 문장이 어째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약속대로 항복하러 왔습니다.”



목을 가다듬은 칼레인은 이내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자 내부에서 소란이 일더니 입구의 장막이 확 걷히며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빛이 번쩍, 하며 칼레인을 향해 검이 휘둘러졌다. 뒤에 있던 공작이 몸으로라도 막으려고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챙,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퉁겨져 나갔다. 팔을 천천히 거둬들이며 칼레인은 입을 열었다.



“이딴 것으로 장난치지 말고, 아키엔의 왕이 왔다고 전해 주십시오.”

“네, 네 이놈…… 네놈, 대체, 무슨 사악한 짓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칼레인의 음성이 순간적으로 어둠에 잠식되듯이 말려 들어갔다. 제의의 끝에서 기다란 검은 그림자가 늘어뜨려지며 사방으로 펼쳐지자 그에게 검을 내질렀던 나르셀 백작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다가 그대로 볼썽사납게 자빠져 버렸다. 벌벌 떨던 백작은 칼레인이 한 걸음 더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자 뭔가 환각이라도 본 듯 비명을 지르며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양손에 국새와 인장을 들고 있던 공작을 대신하여 대주교가 막사 입구의 장막을 슬쩍 들어 올렸다. 내부로 들어서자 저 안쪽에 부르르 떨고 있는 나르셀 백작의 뒤로 라키쉬만 후작과 이사키엘 대주교가 보였다. 후작은 작은 남자아이를 품에 쥔 채 탈진한 듯한 표정이었다. 대주교는 칼레인 일행을 보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이 악마!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전능하신 주님의 품에서 벗어났을 때부터 네놈은 이미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던 거지! 이게 다 네놈이 벌인 짓이렷다! 네놈은, 네놈은 반드시 지옥의 유황불에 타버리고 말 것이다!”

“짐이 악마라면 지옥의 유황불 따위에 탈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이, 이…… 주님의 이름으로 네놈을 벌하노니-”

“걸리적거리지 말고 저쪽으로 가 계시지요.”



칼레인은 단검을 뽑아들고 달려온 이사키엘 대주교를 가볍게 밀쳐냈다. 손짓 한번에 막사 구석까지 떠밀려난 대주교는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인지 스르르 주저앉은 채 두 눈에 증오를 가득 담아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그따위로는 칼레인의 발걸음을 막을 수 없었다.



“대관식을 치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르르 떨고 있는 나르셀 백작을 발로 밀어 옆으로 굴러가게 한 다음, 라키쉬만 후작의 바로 앞까지 당도한 칼레인은 빙긋 웃었다.



“그리고 짐의 목을 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짐이 알기에는 그런데, 뭔가 오해라도 있었던 겁니까?”

“너, 너는…… 아니, 폐하께서…… 이 일을 벌이셨소?”

“네. 짐이 이렇게 그대를 위해 대관식을 준비해 왔습니다.”

“그것이 아니라! 내 모든 병사와 내 아들까지! 이 알 수 없는 상태로 몰아넣었느냔 말이외다!”



칼레인의 눈빛이 그가 품고 있는 아이에게로 슬쩍 내려앉았다. 이제 너덧 살 정도 됐을까 싶은 남자아이였다. 그를 보는 순간 칼리스토가 떠올랐기에 칼레인의 눈동자가 살며시 빛나 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떠올랐던 것만큼이나 빠르게 사라져 버렸고, 감정 없는 목소리가 그것을 대신했다.



“그렇게 믿고 싶다면 그리 믿으셔도 무방합니다.”

“폐, 폐하는…… 진정 악마인 게요? 어, 어찌 악마가 이 세상에…….”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짐은 악마가 아닙니다. 짐은 오래된 종교의 사제입니다. 아무튼, 그것은 중요하지 않으니 이쯤 하지요. 그대가 대관식을 치르고 왕위를 계승할 의지가 없다면, 이제 짐의 요구를 받아들이셔야 할 겁니다. 짐이 항복을 권유했었던 것은 기억하시겠지요. 그 권유를 받아들이겠습니까?”



후작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안도한 눈빛이었다. 지금 항복한다고 말하면 어쩌면 이미 죽거나 죽을 것이 확실한 병사들은 몰라도 자기 아들은 치료해 줄지도 몰랐다. 운이 좋으면 자신들의 목숨도 구제할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낱 꿈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그것에 대한 증명으로 그대가 직접 동생의 미래를 부수길 바랍니다.”

“미, 미래를 부수다니……?”

“나르셀 백작은 아직 후계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허니, 그대로 가문이 단절되도록 그대의 손으로 백작을 거세하십시오.”

“무, 무슨……!!”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그럼, 그대의 손으로 아들을 거세하시지요.”

“폐, 폐하!”

“그대의 두 눈은 짐이 취할 것이니 그리 아시길.”

“폐하, 어찌 그런……! 항복한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후작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소리를 내질렀다. 바닥에 나뒹굴던 나르셀 백작 역시 멍한 표정을 지은 채 칼레인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저놈이 뭐라고 말을 한 거지? 미래를 부수라고? 거세? 나를……?



“그대의 병사들은 대부분 죽었습니다. 일부가 살아 있기는 하지만 이미 온몸이 썩어 버린 이상, 살아날 가능성은 없습니다. 이런 와중에, 왜 그대들만 멀쩡한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

“그대들은 잃어버린 이름의 신께 제물로 바치기 위해 짐이 특별히 놔둔 것입니다. 하지만 신께서는 자비로우시기에, 모든 이들을 취하시지 않습니다. 한 명이면 충분합니다.”

“그, 그런데 어찌 내 아우와 아들과 나까지 다 취하려 하시오? 말이 다르지 않소?!”



칼레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짐은 그대가 제물이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제물은 저쪽에 널브러진 이사키엘 대주교로 이미 정해놨습니다. 대주교 역시 그대들처럼 멀쩡하지 않습니까? 따라서 제물이 될 충분한 자격을 갖춘 셈이지요. 그대, 라키쉬만 가문의 남자들은 그저 짐의 손에 대가 끊길 뿐입니다. 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멀리서 듣고 있던 대주교의 눈이 크게 떠졌으나 그는 입조차 벙긋거리지 못했다. 알 수 없는 힘이 온몸을 옥죄고 있었다. 그를 제물로 바친다는 말에 라피엘 대주교가 뜨악한 표정을 짓기는 했으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선택하세요. 아들이냐, 아우냐.”

“……선택하면, 남은 자들은 살려주실 거…… 것입니까?”

“목숨만은 살려주겠습니다.”

“제, 제 아들도 살려주시는 겁니까? 치료해 주시는 겁니까?!”



칼레인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라키쉬만 후작은 살며시 고개를 내렸다. 아들의 팔다리에 생긴 검은 반점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 아직은 그 증상이 심하지 않았으나 언제 온몸이 순식간에 썩어 검게 변한 채 죽어버린 병사들처럼 될지 모르는 상황. 게다가 밤새 신열에 시달린 아들은 이미 숨소리조차 희미해져 있었다. 녹아내린 병사들의 말도 못할 정도로 괴이한 모습이 떠올라 후작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한시라도 빨리 치료를 하지 않는다면 아들의 생명은 보장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역병은 본 적도 없었고, 본국으로 귀환한다고 해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은 그때까지 아들이 버텨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불가능한 상황을 가능케 할 자가 눈앞에 있지 않은가?

천천히 후작의 눈이 백작에게로 향했다. 눈물 어린, 하지만 독기가 맺힌 눈빛이었다. 백작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그와 눈이 마주치자 화들짝 놀랐다.



“혀, 형님?”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어느새 다가온 칼레인이 그를 막았다. 그의 앞으로 검은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순간 나르셀 백작은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는 백작의 앞에 선 후작은 천천히 단검을 꺼내 들었다. 비통한 표정으로 힘없이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아우야…….”

“혀, 형님, 형님! 이러지 마시오! 지금 제, 제정신인 겁니까!”

“어쩔 수가 없구나…… 어쩔 수가…….”

“차라리 저놈을 죽이란 말입니다!”



검은 그림자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사방에서 백작을 붙들고 있었다. 그랬기에 도망갈 수도 없었고 팔다리를 휘두를 수도 없었다. 살기 위해 미친 듯이 소리치는 백작의 애원에 마음이 동할까 차마 그의 눈을 바라볼 수 없었다. 후작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휘둘러 용케 그의 벨트를 해체하였다. 바지와 갑옷이 후두두 밑으로 떨어졌다. 후작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칼레인을 바라보았다.



“약속은…… 지키셔야 합니다.”



칼레인은 대답 대신 손짓을 하였다. 나르셀 백작을 옥죄고 있는 그림자에서 한 줄기의 어둠이 피어올라 욕설을 쏟아 뱉는 백작의 입을 틀어막았다. 욱욱, 하고 신음만이 들려올 뿐 더 이상 후작의 마음을 동요케 할 말들은 들려오지 않았다.



“미안하다, 너도, 너도 아들이 있다면…… 내 마음을 이해했을 것이다.”



후작은 눈물을 쏟아내며 칼을 휘둘렀다. 고통에 못 이긴 백작이 요동을 쳤으나 칼은 다시 한 번 내쳐졌다. 살이 잘리고 피가 튀며 순식간에 주변이 핏빛으로 변해 버렸다. 툭, 하고 떨어져 내린 흉물스런 덩어리를 본 후작은 들고 있던 검을 떨어뜨린 뒤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오열하는 그의 머리 위로 핏물이 끝없이 떨어져 내렸다.



“흠, 짐도 저렇게 꼴사나운 모습이었겠구려.”



마치 남의 얘기 하듯 하는 칼레인의 말에 뒤에서 경악을 한 채 보고 있던 가르멜 공작은 하마터면 지금 그런 말이 나오십니까?! 하고 소리칠 뻔했다. 왕이 죽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기뻐하던 것도 잠시, 지금 당장 벌어진 이 해괴망측한 일에 혼이 다 빨려 나가 버릴 지경이었다. 내가 모시던 왕께 이런 잔혹한 면이 있을 줄이야?

물론 패배한 장수를 어떻게 하든 그것은 승자의 권한이었다. 그냥 처형하는 경우도 있고 몸값을 받고 풀어주는 경우도 있었지만 잔인하게 고문을 하고 죽여버리는 경우도 많았다. 그랬기에 그것 때문에 놀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전혀 그런 것과는 어울리지 않으리라고 생각한, 자신이 직접 가르치고 함께 해 온 칼레인의 이런 모습에 공작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칼레인이 손짓하자 나르셀 백작을 옥죄고 있던 그림자들이 사라져 버렸고 땅바닥으로 철퍼덕 떨어져 내린 백작은 후들거리면서도, 차마 맨정신으로는 들을 수 없는 갖은 욕설을 하며 밑에 널브러진 단검을 쥔 채 그대로 후작에게 돌진했다. 놀란 후작이 고개를 드는 순간 섬뜩한 소리와 함께 단검이 그의 눈을 뚫어 버렸다. 소름 끼치는 괴성이 터져 나와 막사를 가득 메웠다. 검이 뽑히고 다시 내질러졌다. 살이 찢기고, 눈알이 튀어나오며, 사방으로 핏줄기가 뿜어졌다. 머리통을 박살 내 버리기 위해 사력을 다해 검을 휘두르던 백작은 갑자기 훅, 하고 어디선가 몰려든 힘에 얻어맞은 채 저 뒤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축 늘어졌다.



“음…… 공작께선, 이것을 짐이 그랬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사고에요 사고. 내가 의도한 게 아니란 말입니다, 라는 식으로 가볍게 말하는 칼레인의 모습에 가르멜 공작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빙긋 웃어준 칼레인은 후작의 아들을 향해 다가갔다. 그의 얼굴을 가만히 쓸어내리며 뭐라고 중얼거리자, 후작의 아들은 천천히 눈을 떴다. 잠시 눈을 깜빡이던 그가 주위를 둘러보려는 순간, 칼레인은 그의 눈을 가렸다. 손을 떼자 이미 그는 다시 잠들어 있었다.



“이런 작은 아이까지…… 괴로워할 필요는 없겠지요.”



라키쉬만 형제들은 저 모양으로 처참하게 해 놓았으나, 그의 아들에게는 자비를 베푸는 칼레인의 모습에 공작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라도 저 아이까지 어떻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싶어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의 잔혹함이 어린아이까지 먹어치우지는 않는 듯싶었다. 물론, 그것이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임은 자명한 일이었다.



“자, 두 분은 이리 가까이 오십시오.”



가르멜 공작과 라피엘 대주교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에게 다가갔다. 칼레인이 두 팔을 내밀자 공작은 저도 모르게 국새와 인장을 넘겨 주었고, 그가 고개를 살짝 숙이자 라피엘 대주교는 들고 있던 왕관을 그의 머리에 씌어주었다.



“그대들을 봉신들의 대표로 하여 묻노니, 짐이 다시 한 번 아키엔의 군주가 되는 것을 지지하겠습니까?”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공작과 대주교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또한, 그대들의 새로운 왕에게 다시 한 번 충성을 맹세하겠습니까?”



일부러 ‘새로운 왕’을 강조하며 말하는 칼레인의 말에 공작은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어제까지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나는 잊고 새로운 왕에게 충성하라 말씀하시더니, 그게 다 연극이었단 말입니까?! 제게 어찌 이러실 수가 있단 말입니까?!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차마 뱉을 수가 없었기에 몇 번이나 침을 삼키며 그것들을 저 뱃속으로 밀어 넣어야만 했다.

그러나…… 나쁘지 않았다. 싫지 않았다. 자신이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일이었으니까. 조금 당하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상관없었다. 더 당해도 상관없었다. 자신의 왕이 살 수 있다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면.



“목숨을 걸고, 맹세합니다.”



공작과 대주교는 고개를 조아리며 칼레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만면에 미소를 띤 칼레인은 그들을 일으켜 세웠다.



“그대들의 충성 맹세를 받들어, 나, 칼리스토 폰 나이시아는 아키엔과 일곱 영지를 수호하고 그대들의 권리를 지켜줄 것을 맹세합니다. 그대들의 앞날에 신의 무한한 축복이 있기를.”



공작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대주교는 별말이 없었다. 그랬기에 공작은 착각이겠거니, 하며 의심을 접고 더욱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위로 칼레인은 잃어버린 이름의 신의 은총을 가득 담아 축복을 내려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라티움 제국은 라키쉬만 후작령과 나르셀 백작령이 모조리 아키엔 왕국에 흡수되었다는 비보를 전해 듣게 되었다. 이제 아키엔 왕국은 더 이상 변방의 소국이 아니라, 열여섯 개의 영지를 소유한 당당한 왕국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국이 내란에 휩싸이고 수도 비잔티노플이 콘스탄틴 왕에게 짓밟히기 직전이었기에 제국은 그들의 팽창에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 천 년간 이어져 내려온 장엄한 역사가 핏빛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는 가운데, 칼레인은 제국의 심장을 탈취할 것을 천명하였다.

주후 1187년, 햇살이 화창한 어느 가을날의 일이었다.





-------





이렇게 해서 아키엔 편이 끝났습니다.

2부는 아직 연재한 분량이 얼마 되지 않아서 조만간 연재가 끊길..... 예정입니다. 연재 중단은 아닌데, 제가 이 글을 워낙 잘 안 쓰고 있어서....;; 시간도 없고, 거의 보시는 분도 없다보니 화면에 띄워놓아도 손이 움직이질 않네요 ;;; 게다가 제가 쓸 마음이 없으면서도 억지로 쓸 경우 저도 재미없는 글이 만들어지는데 그걸 보는 분들은 오죽이나 재미가 없겠습니까.... 그래서 안 쓰는 중... (응?)

2부는 아키엔 왕국에서 무대를 옮겨, 라티움 제국으로 갑니다. 거기에서의 일들이 중심이 되며, 콤네노스 황실의 일원들이 주연으로 나옵니다. 두어 편 정도 지나면 익숙한 이름도 하나 나올 예정입니다만... 그 뒤로 써 놓은 게 없다는.....;; 그... 그러하여, 연재 주기는 매우... 매우.... 길어질 예정이옵니다....ㅠㅠ

사실 여기까지 올린 이 짧은 분량을(1~18편) 쓰는데도 거의 7개월 가까이 걸렸는지라 (물론 중간에 석달은 졸업 준비 땜에 손을 놨지만;;;) 앞으로도 장담할 수가 없네요. 22편까지는 비축분이 있지만 고작 4편을 더 쓰는데도 두 달이 걸려 버렸다는..... 글만 쓰고 있기에는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군요 ㅜㅜ

암튼!! 이렇게 반전 아닌 반전으로 1부는 막이 내렸습니다. 2부의 새로워진 모습으로 다시 뵙길 빌며, 연재가 되지 않더라도 연중된 것은 아니니, 참고 기다리시면 다음 편이 올라올지도.... (응?) 아, 담편 부터가 아니라 22편 다음부터요. 흐흐....

지금까지 함께 해 주신 분들과, 세상만사다반사 님 (출장은 잘 다녀오셨는지욤? ^^), 은별 님께 감사감사 드리며, 이만 물러가옵니다.
꾸벅.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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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21 12:35
수정 아이콘
1부 완결이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가브리엘대천사
14/11/21 16:35
수정 아이콘
댓글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
그라시아
14/11/21 13:28
수정 아이콘
1부완결 감사해요! 빠르게 2부도 써주시죠..중간에 끊기면 현기증납니다
가브리엘대천사
14/11/21 16:36
수정 아이콘
흑흑, 어디에 은폐하고 계시다가 이제야 뿅 나타나셨나요.... 그래도 완결은 함께 해 주시는군요. 감사합니다. 2부는... 그, 그게 저...... (후다닥)
그라시아
14/11/21 16:37
수정 아이콘
2부를 빨리 안써주시면 평생 여자친구가 안생기시는걸로.....
가브리엘대천사
14/11/21 17:10
수정 아이콘
지금까지 안 생겼는데 앞으로도 안 생긴다고 뭐..... 훌쩍. 그런 저주를....... (털썩).
그라시아 님께 저주 반사를 시전합니닷! +_+!!
세상만사다반사
14/11/21 15:50
수정 아이콘
이러지 마십시오! 여기 열렬한 독자 하나 있습니다! 순순히 2부를 내놓으신다면 댓글을 드리겠습니다?(흐흐) 전 이제 출발합니다. 닷새 뒤에 뵐께요. 1부 감사합니다.꾸벅
가브리엘대천사
14/11/21 16:35
수정 아이콘
으엉... 이러지 마십시옷! 가시는 길 혹시라도 붙잡을까 미리 올렸더니 이런 간계를 쓰시다니요! 흐흐흐흐... 그렇다면 저도 맞간계를.... 순순히 댓글을 토해내신다면 2부를 시작하겠습니다(훗훗훗훗)! +_+! 건강히 잘 다녀오시고, 다음에 뵙겠습니당. 꾸벅.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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