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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1/20 23:24
"서태지가 한국 대중음악에 끼친 최고의 공헌은 최고의 혁명은요. 뮤지션이 음반 산업의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것이에요.
가장 그만의 뻔뻔한 방식으로, 식민지 시대 이후로 한국의 음반 산업을 지배해왔던 이름바 음반산업의 기존질서를 한번에 붕괴시켰습니다." 정말 혁명 그 자체죠.
14/11/20 23:28
음반도 음반이지만.. 방송도 자기 마음대로 컴백 정하고, 기간 지나면 들어가고 그래서 컨트롤하기 힘들었겠죠. 극초창기 빼곤 예능도 잘 안하고.. (뭐 이시기엔 가수들이 그렇게 오락프로그램에 많이 나오진 않았지만 여튼..)
14/11/20 23:33
흠...그렇다면 결국에는 MBC에서조차 서태지에게 항복했다고 봐야하려나요?
매 앨범마다 컴백 스페셜은 MBC에서 진행했고, 심지어 솔로 2집의 컴백과 북공고 1학년 서태지까지 죄다 MBC에서 앞장서서 서태지 모시기에 나섰던것 같은데말이죠.
14/11/20 23:41
이른바 컴백 스페셜이란걸 처음 만든게 서태지입니다.
MBC가 전설의 서태지 데뷔무대를 했던 인연 덕도 있고 SBS가 아직 신생 방송사 때를 못벗었고 KBS는 KBS라 서태지 3집 이후 컴백 스페셜은 MBC에서 방송됐습니다. 참 공중파에서 안흥찬의 그라울링을 듣게 될 줄이야
14/11/20 23:38
사실 가요 비평, 대중 문화 비평이라는 것 자체가 서태지 이후 등장한 겁니다. 서태지 이전의 가수들은 말 그대로 딴따라 '취급' 받았지 비평적 대상으로서 '아티스트' 대접은 서태지가 처음이라고 봐야죠. (팝과 영화는 빨랐지만)
강헌씨가 대중문화, 가요 비평 시작한 것도 서태지 덕이라고 봐야 할겁니다. 그리고 IMF 이후 다 망했지만 94년 계간 리뷰, 95년 월간 이매진 등 문화 잡지 창간을 이끈 것도 서태지 쇼크의 여파라고 봐도 좋습니다. 그런데 저 인터뷰 내용은 94년 리뷰 창간호에서 강헌씨와 서태지 인터뷰와 그렇게 내용이 다르지는 않네요. 이제는 서태지가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도 모르시는 분들이 피지알에도 적지 않을 텐데 어지간한 대학교 도서관에는 있을테니 당시 분위기를 아시려면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겁니다.
14/11/21 01:21
서태지 이후로 등장한 건 아니죠. 서태지가 만든 결과도 아니구요. 아티스트 대접은 서태지가 최초라는 것도 우습구요. 서태지 팬들은 서태지에 대해서 항상 과도한 신격화를 빼지 않더군요. 강헌이 대중 음악 비평을 서태지로 인해 구축하고 그 당시 가장 주목받던 비평이긴 하지만 서태지가 대중 문화 비평의 알파이자 인과관계와는 조금 다릅니다. 정확히 그렇게 서술하진 않으셨으나 그런 뉘앙스로 충분히 작성하셨네요. 문화잡지 창간도 보통은 경제 호황으로 인한 대중 문화 영역 확장 영향을 훨씬 크게 보지 서태지 영향을 절대적으로 보진 않습니다. 굳이 꼽자면 시너지에 가깝죠.
한국 대중 문화 비평은 보통 80년대부터 이어진 경제 호황기가 누적되면서 대중들의 문화 생활에 대한 욕구가 증가와 대규모 자본 투입에 따라 음악 전문 매체와 비평에 대한 수요가 생기고 80년대에서 모두가 정치에 신경썼던 시대에서 지식인들이 이념적 방향을 대중에게 90년대에 찾으면서 결합된 부분이라고 보는게 적절하고 그것이 많이 말하는 부분이죠. 요컨대, 시대적 상황이 서태지 데뷔때와 맞아 떨어진 것이 서태지가 만든 것이 아니죠. 서태지가 나타나기 전에 80년대때부터 그들이 전업으로 나서지 못했을 뿐 음악적 비평은 슬슬 출현하기 시작했고 메탈씬, 포크씬, 발라드를 거치면서 기존 가수들에 대한 재조명과 성과 발견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나온 상황입니다. 예를 들어 그렇게 까인 서태지 데뷔 무대 때 혹평도 하나의 비평 문화 발현으로 이미 충분히 자리매김한 상황이었죠. 그런 상황에 음악 비평이 없었다는 건 넌센스죠. 아티스트 대접 처음도 좀 너무 나가셨구요.
14/11/21 11:45
분명 90년대 이후 한국대중문화가 하나의 '문화' 문화로 인정받을 수 있는 물질적 근거는 88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자계층의 소득 상승과 경제호황이 겹친 상황이 배경이 된거라고 봐야할겁니다(그러니 IMF 이후 꺾였죠) 경제적 기반이 갖춰진 상태에서 변동을 일으킨 촉매자 방아쇠가 서태지라는 겁니다. 고 신해철의 넥스트 1집이 서태지 1집과 같은 92년(발매는 살짝 더 빠릅니다)에 나왔지만 그 참신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평씬에서 영향력이 덜했던 것은 서태지 비평에 대해 경제적 가능성(덜 팔리는)이 약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른바 서태지가 가요계에서는 90년대의 경제적 호황을 바탕으로 한국가요가 HOT로 대변되는 기획-생산-판매로 이어지는 산업화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비평면에서는 그 전에 로드쑈나 스크린 같이 해외대중문화 소개-비평에 곁방살이하던 한국대중문화비평이 독자적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가령 이탈리아 르네상스에서 다빈치, 미켈란젤로가 장인이 아니라 예술가로 대접받게 된 시초라고 말하는 것이 15세기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경제적 성공과 그들 이전에 브루넬과 도나텔로 등에서 우리가 예술가적 기질이라고 부르는 것이 나타났던 것을 무시하고 다빈치나 미켈란젤로를 과도하게 신격화하는 것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14/11/21 00:37
pd나 기자가 가수들 엎드려뻗쳐시키고 건방지고 맘에 안 든다고 따귀 때리던 무식한 쌈마이들 시대였으니까요.
그리고 그 가수들에 조용필도 포함이 됩니다. 기자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이니 사실일겁니다.
14/11/20 23:48
생각해보면 서태지와 아이들이 대박이 나고, 그 대박난 멤버들이 기획사의 대표가 된게 차라리 잘되었다 싶네요. 감정노동자의 고뇌를 직접 겪었던 사람믈일테니까, 소속사 가수들을 소모품으로 생각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좋은 곡도 부르는 사람이 없으면 버려지는게 당연한건데.. 아무리 좋은 발전계획을 수립해도 실행력이나 능력이 없는 노동자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종이쪼가리가 되는건데..왜 이 단순한 진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건지..
14/11/20 23:51
갠적으로 서태지에 대해 과소평가 하는 편이었는데.. 이 글 보고 어떤 면은 RATM보다 낫다는 생각을 했고- 스티브 잡스 같이 기존 틀을 파괴하는 힘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이었네요-
14/11/21 00:12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이었네요 (2)
이 글 내용은 정말 충격적입니다. 전설급 아티스트들이 당시에 돈을 받지도 못했다는게 또 당연시 되었다는 것 자체가 정말 충격적입니다.
14/11/21 00:26
조용필씨와 지구레코드 얘기는 볼때마다 부들부들하네요
그런데 지구레코드가 조용필만 뜯어먹었던게 아니라는 것과 이렇게 뜯어먹는 사람이 그 당시에는 비일비재했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 잘 보고 갑니다
14/11/21 00:29
이런 얘기 은근히 많이 알려졌죠. 최근에 이이제이 나온 신대철도 비슷한 얘길 했던거 같네요.
음반이 몇장 팔렸든 공연수익이 얼마든 뮤지션한테 떨어지는 돈은 없고, 또 뮤지션들이 '내 몫'을 주장한다는 발상 자체를 못했다고 합니다. 사장이 생색내면서 차 한대 사주고 '어때 좋지?'하는 식이었다고... 심지어 그 차가 좋은차도 아니었다는;
14/11/21 00:40
이거 말고도 많죠. 당시 회사에서는 상의없이 가수들 얼굴 찍어다 상품 팔고 한 푼도 안주고 여러 업체들이 무단으로 지면 광고 마음대로 찍고 '초상권'이라는 개념이 없다시피 했는데 서태지가 소송 걸어서 이기고 나서부터 완전히 바뀌었죠. 거기다 '사전심의'에 저항해서 아예 가사 빼고 노래 발표하고 (그 때는 음반 내기 전에 가사를 써서 제출하면 국가에서 검열하고 허락을 해 준 다음에 녹음하고 나서 다시 검사 받고 했습니다. 그런데 서태지가 가사 수정하라는 지적을 받자 아예 연주곡으로 발표했죠. 그 노래가 시대유감 입니다. 그 후 곧 사전심의가 폐지됐죠.) 자기 허락없이 리메이크-패러디 하게 했다고 음저협 탈퇴하고-
14/11/21 10:22
사전심의제도 얘기하니까 뜬금없이 DOC 5집의 L.I.E. 가사가 생각나네요.
사전심의 심의제도 없어졌어도 / 여전히 분명히 존재하는 검열 제도 / 이름만 바뀐 청소년보호법 / 말하자면 그건 니네 검열제도 보호법 / 오랜만에 DOC 5집 앨범이나 다시 찾아 들어봐야겠어요.
14/11/21 00:47
조용필씨 저작권이야기는 유명하죠. 올초에 31곡에 대한 저작권을 지구레코드부터 돌려받긴 했지만, 지구레코드의 선의(?)로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이고 사실 대법원에서는 지구레코드 손을 들어줬었으니까요.
14/11/21 02:04
그때 당시 서태지의 나이가 만 20살이었는데 갓 새파란 신인이 방송사의 불합리한 관행, 음반산업의 부조리에 있어 정말 좌충우돌하며 겁없이 싸웠죠. 대중음악판이 누구 한 사람때문에 바뀌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의 뮤지션의 표현의 자유, 초상권, 저작권등 기본적인 권리에 있어서 서태지의 공은 정말로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신해철이 예전에 이점에 대해 서태지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보통 1집 신인이 그건 잘못됐다고 그렇게 개기고 그렇게 못하잖아. 그걸 어떻게 했어? 라고 물었었죠. 그때 서태지가 이렇게 대답했었어요. "형은 이해하겠지만 가수를 하려고 가수를 한게 아니라 음악하다가 음반을 내게된 거잖아요. 성격은 여전히 밴드였고 미련 없었고 음악만 계속 해야겠단 생각만 있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신해철이 저렇게 귀여운 얼굴로 노래하는데 성격은 낙원상가 국밥집 곰탕 성깔이라고 말했었죠
14/11/21 06:48
저도 정확히 어떻게 배분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곡가도 당연히 가수에 준하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대단하지만 그 노래를 만드는 것도 대단하죠. 위에 글에 따르면 음반사가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 같네요.
14/11/21 08:56
현재는 당시 제작사의 역할을 제작사와 유통사가 하고 있죠. 둘이 거의 대부분 가져가고 나머지를 작곡/작사/가수/세션 기타 사람들이 나눠먹는 모양새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작곡가와 가수는 비슷하게 을이에요.
14/11/21 09:47
본문이 얘기하는것은 앨범에 대한 이야기예요.. 앨범판매는 가수가 많이 가져가야하는게 맞고
작곡자는 저작권을 가져가는게 맞죠. 지구레코드사는 앨범과 저작권까지 전부 소유하고있었죠.
14/11/21 09:45
어제 2편도 새로 나왔습니다. 2편에서는 sm이 어떻게 원탑이 되었는가 와 신중현, 조용필에 대해 얘기합니다.
시간이 모자를 정도...2편이 아니라 10편으로 편성했어야..
14/11/21 11:55
방송국과 연예인들간의 알력은 여전합니다.
예능국은 이제 대형기획사 덕에 어느정도 연예인의 입지가 올랐고 드라마국 역시 한류 덕에 몇몇 연예인은 방송국에 대해 갑이 됐긴 하지만 방송 시스템이 위계체제 하의 월급받는 직장인이 갑이 되서 자유사업자를 고용하고 부리는 모양새라... 끊임없이 연예인을 서열체제 내에 끌어들이려는 동형화의 압력이 작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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